"‘십자가의 희생 제사'가 성사적 표지로 재현되는 곳이며,
미사에 모인 하느님 백성이 다 함께 참여하는 주님의 식탁’(296항)인 제대는
성찬례로 이뤄지는 감사 행위의 중심..."???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40321500025)
윤종식 티모테오 사제님께서 위와 같이 글을 쓰셨는데...
십자가의 희생 제사는 단 한 번 바쳐졌습니다.
재현이라고 하셨는데,
미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되새겨보는 것 입니다.
미사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제단, 제대의 의미는 없습니다.
미사는 자신을 봉헌하는것이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치는 제사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십자가가 바로 자신의 제대 입니다.
가톨릭이 사도시대부터 이어오는 교회라면,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회의 가르침은 일치해야 합니다.
아래 사도 바오로와 사도 베드로의 말씀을 참조하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의 희생 제사는 단 한 번 바쳐졌습니다.
재현이라고 하셨는데,
미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되새겨보는 것 입니다.
미사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바치는 것이라기 보다는
제사는 하나이고
그 십자가상의 예수님이 달리신
그 때의 제사에 참여하는 것,
예수님의 희생을 현재화해서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
따라서 제단, 제대의 의미는 없습니다.
미사는 자신을 봉헌하는것이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치는 제사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십자가가 바로 자신의 제대 입니다.
가톨릭이 사도시대부터 이어오는 교회라면,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회의 가르침은 일치해야 합니다.
아래 사도 바오로와 사도 베드로의 말씀을 참조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분께서는 다른 대사제들처럼 날마다 먼저 자기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치고
그다음으로 백성의 죄 때문에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으십니다.
당신 자신을 바치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다 이루신 것입니다.
(히브 7,27)
만일 그렇다면 세상 창조 때부터 여러 번 고난을 받으셔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쳐 죄를 없애시려고 단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히브 9,26)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고대하는 이들을 구원하시려고 죄와는 상관없이 두 번째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히브 9,28)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히브 10,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히브 10,12)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히브 10,14)
사실 그리스도께서도 죄 때문에 단 한 번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여러분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시려고,
의로우신 분께서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1베드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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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글 - 윤종식 티모테오 사제
1980년대 초까지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대성당에는 한국에서 유일한 ‘설교대’(pulpitum)가 제대를 바라보며 오른쪽 세 번째 기둥에 있었습니다. 현대적 음향 시설이 없던 시절, 성당 회중석 중간에 이런 ‘설교대’를 만들어 복음과 강론 및 특별한 설교를 미사에 참례한 신자들이 잘 들을 수 있도록 했지요. 로마의 트라스테베레에 있는 성모 마리아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in Trastevere)은 ‘설교대’에 마이크를 설치해 여전히 복음 선포를 위하여 사용하는 전통과 발전의 조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미사의 말씀 전례는 독서대에서 주로 이뤄집니다. 「로마미사경본 총지침」에 따르면 “독서대에서는 오로지 독서들, 화답송, 파스카 찬송을 한다. 그러나 강론과 보편 지향 기도도 할 수 있다”(309항)라고 합니다. 화답송의 경우 ‘시편 담당자 또는 독서자가 시편 구절을 바치고, 일반적으로 교우들은 후렴을’(129항) 바칩니다. 한국 성당에서는 대개 해설자와 성가대가 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각 성당에 가면 독서자가 독서대에 가면서 인사하는 곳이 있는데, 대개 세 곳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제대입니다. ‘십자가의 희생 제사가 성사적 표지로 재현되는 곳이며, 미사에 모인 하느님 백성이 다 함께 참여하는 주님의 식탁’(296항)인 제대는 성찬례로 이뤄지는 감사 행위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집전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집전자의 인격 안에’(27항) 현존하시며, 이를 통하여 집전 사제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회중을’(30항) 이끌어 거룩한 백성 전체와 모든 참석자 이름으로 하느님께 기도를 바칩니다. 세 번째는 독서집이지요. 하느님 말씀을 전례 주년에 따라 배분한 독서집을 하느님 말씀을 대하듯 인사합니다.
이렇게 인사하는 곳이 각기 다른 이유는 현재 전례 규정에 독서자가 인사해야 하는 곳에 대한 지침이 없기 때문입니다. 각 교구에서 관련 지침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사제가 미사를 드리기 위해 입당하여 제단 아래에서 제대를 향하여 인사하는 것입니다. 미사를 마치고 퇴장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독서자도 독서를 하기 위해 제단 위 독서대로 오르기 전과 후, 제대에 인사하는 것을 제안합니다.
부활 시기에 명동대성당을 가보면 파스카 촛대가 독서대 옆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성주간 파스카 성삼일」 예식서에 “부제는 독서대 옆이나 제단 안에 마련된 큰 촛대에 파스카 초를 놓는다”(195쪽)는 지침에 의한 것이며, 파스카 촛대를 파스카 선포 장소인 독서대 옆에 두는 오랜 교회 전통을 강조한 배치입니다. ‘용약하여라 하늘나라 천사들 무리’로 시작하는 파스카 찬송이 부제나 사제의 입을 통해 독서대에서 울려 퍼지며 그 옆에 어둠을 이기고 세상의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파스카 초 촛불이 타오르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찬미의 시간입니다.
성당에서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공간, 독서대는 이미 구약의 느헤미야서에서 미리 보여졌습니다. 바빌론 유배를 마치고 돌아온 이스라엘 민족은 ‘물 문’ 앞 광장에 모여, 율법 학자 에즈라가 ‘나무 단 위에’(느헤 8,4) 서서 낭독하는 율법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신 하느님의 놀라운 사건이 선포되는 독서대를 향해 집중하여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고 있지요.
출처 : [알기 쉬운 미사 전례] (13) 독서대와 독서자 (catholictimes.org)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4032150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