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38] 불체포 특권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주일대사관1등서기관
입력 2023.03.10 03:00
0310 여론3 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헌법상 ‘불체포 특권’을 누리는 국회의원이 회기 중에 체포되려면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되어야 한다. 일본에서는 체포동의안을 ‘체포허락 청구’라고 한다. 1998년 2월 19일 자민당 소속 아라이 쇼케이(新井將敬) 의원에 대한 체포허락 청구가 중의원 본회의에 회부될 예정이었으나 급거 철회되는 소동이 벌어진다. 철회 사유는 당사자인 아라이 의원의 자살이었다.
아라이 의원은 박경재라는 이름을 가진 재일조선적 귀화 정치인이었다. 동경대를 나와 대장성 관료로 엘리트 가도를 달리던 그는 정계로 진출하여 42살에 첫 당선을 거머쥔 후 내리 4선에 성공한 유력 정치인이었다. 버블 붕괴로 침체에 빠진 일본의 회생을 위해서는 고질적인 정경유착을 일신해야 하며, 부정부패에 연루되면 거물 정치인이라도 가차 없이 정계에서 퇴출시켜야 한다고 거침없이 주장하는 개혁 이미지가 그의 최대 정치 자산이었다.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한 증권사로부터 차명계좌 거래를 통해 부당한 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혐의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서 그는 정치 생명에 치명적 위기를 맞게 된다. 본인은 극구 결백을 주장하였지만 중의원 운영위에서 체포허락 청구가 가결되자, 그는 본회의 직전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다. 일본에서는 1947년 헌법 시행 이래 체포허락 청구 사례 20건 중 부결은 단 2건에 불과하다. 그 두 건도 1950년대의 일이다. 아라이 의원도 자신에 대한 체포 청구가 본회의에서 가결될 것이 확실했기에 더욱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 측면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운영 주체에 따라서 그 효과는 천차만별이다. 일본의 불체포 특권 제도는 법 앞의 평등에 예외가 되는 특권의 본래 취지를 최대한 훼손시키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염치와 자정(自淨) 능력이 정치 세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파적 이익이나 동료 의식으로 특권이 악용되고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두드러진다면 그러한 특권은 존재 이유를 상실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