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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죽 칼럼 (2009년 11월)
강남국
▢ 11월 1일 : 한 작가의 모든 책을 찾아 읽은 적이 있으신가요? 이름 하여 ‘전작주의’라고 하지요. 저에게도 그런 사람들이 몇몇 있습니다. 전혜린이나 요절한 시인 기형도를 비롯한 작품을 많이 남기기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한사람의 책을 모두 읽는 것 자체가 행복입니다. 최근엔 장영희, 신영복교수의 책들을 모두 읽었습니다. 시인 중에서도 특히 몇몇이 있는데, 늘 유심히 살피는 습관이 있습니다. 한 작가나 시인을 파고드는 행위는 그의 영혼을 훔치고 싶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인생의 역할모델이 있다는 것이 좋고 전작을 읽을 만큼 좋아하는 문인들이 있다는 것도 행복합니다. 멋진 11월 기원하오며!!!
▢ 11월 2일 : 며칠 전 우리나라 헌책방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는 누구인가라는 글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주인장들이 첫손에 꼽은 작가는 『태백산맥』『아리랑』『한강』등 대하소설을 쓴 조정래라고 하네요. 그 다음으로는 수많은 작품을 번역했고 역시 글을 쓰는 『그리스로마신화』의 이윤기, 안정효, 등이라고 합니다. 가장 인기 있는 책들은 절판된 책이 많고 인문학적 소양을 지닌 작가의 책이라고 합니다. 당연한 얘기라는 생각도 드네요. 책방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헌책방이라고 영향을 안받겠습니까만 뒷골목에 숨은 헌책방의 향기를 잊을 수 없습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없는 책을 손에 넣는 기쁨을 다시 맛보고 싶은 맘 간절합니다.
▢ 11월 3일 : 어제부터 월~수요일에 한국일보에 업데이트되는 ‘시로 여는 아침’에 시인 손택수(39), 허수경(45)에 이어 소설가 김연수씨가 새 필자가 되어 첫 선을 보였습니다. 그동안 시는 시인이 선택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만 그도 고정관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시인이 아닌 소설가가 시를 소개한다는 것이 조금 낯설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드네요. 사람들에겐 누구나 좋아하는 시가 있고, 특히 글을 쓰는 사람들에겐 더하겠지요. 김연수씨는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었습니다. ‘시란 사람들에게 ’아, 이런 방법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구나’란 견해가 좋네요. 기대가 됩니다.
▢ 11월 4일 : 『네이티브 스피커』와『제스처 라이프』등의 작품을 쓴 재미동포 작가 이창래는 최근 한인 2세 재니스 리(36)란 신인작가의 데뷔작에 대한 극찬을 했군요. “『피아노 교사』만큼 매력적이고 확실한 데뷔작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동양과 서양의 매력적인 상호작용과 생생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이 작품은 참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진정으로 뇌쇄적인 소설이다.”라고 썼군요. 올해 1월 미국에서 첫 출간된 이 소설은 뉴욕 타임스의 베스트셀러에 올라 23개 나라에 판권이 팔렸고 10만부가 나갔다고 합니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다.”는 저자는 홍콩에서 태어났고 하버드 영문과 출신입니다.
▢ 11월 5일 : 문인들은 대개 어디에서 글을 쓸까요? 대부분 집에서 쓰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안정적 창작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모든 예인들의 공통된 소망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작가들의 공동 집필공간으로 원주시의 토지문학관, 인제군의 만해마을 창작촌이 있지요. 그런데 오늘 서대문구 연희동 203-1에 ‘연희문학창작촌’이 문을 연다고 합니다. 집필실은 모두 20개로 17개는 국내작가, 3개는 해외작가를 위한 레지던스 공간으로 활용되며 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문학의 밤, 시낭송 행사 등도 마련될 모양입니다. 아주 좋은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곳에서 걸출한 작품들이 풍성히 창작되길 기원합니다.
▢ 11월 6일 : 언어학의 로만 야콥슨, 정신분석학의 바크 라캉과 함께 구조주의 시대를 열었던 20세기 지성계의 거목인 『슬픈 열대』『야생의 사고』를 쓴 프랑스의 세계적인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L'anthropologue Claude Lévi-Strauss)가 향년 100세로 지난달 30일 타계했네요. 저도 그분의 저서를 2권 읽었습니다. 지난 81년 10월에는 우리나라도 다녀갔지요. 그는 인류학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1908년 브뤼셀에서 태어났고, 1955년에 발간된 『슬픈 열대』는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저서입니다. 저자가 부라질 오지의 원주민을 실제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일종의 기행문이죠. 그는 프랑스 지성사에 큰 별이었습니다.
▢ 11월 7일 : “나뭇잎이 떨어집니다. 아슬한 곳에서 내려오는 양. 하늘나라 먼 정원이 시든 양.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집니다. 그리하여 밤이 되면 무거운 대지가 온 별들로부터 정적 속에 떨어집니다. 우리도 모두 떨어집니다. 여기 이 손도 떨어집니다. 그대여 보시라, 다른 것들을 만상이 떨어지는 것을 하지만 그 어느 한분이 있어 이 낙하(落下)를 무한히 다정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십니다.” R.M.릴케하면 ‘가을날’이라는 작품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저는 이 작품도 좋아합니다. 되풀이해서 읽다 보면 창밖의 깊어가는 가을을 이만큼 표현하기도 쉽지 않겠다 싶네요. 만산홍엽의 아름다움, 깊어가는 갈이 절정입니다.
▢ 11월 8일 :올해 40주기를 맞은 ‘껍데기는 가라’의 신동엽(申東曄 1930~1969) 시인은 역사와 현실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민중시를 정착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고 작품에 <아사녀>, <금강>등을 남겼습니다. 신동엽하면 김수영과 함께 1960년대의 대표적인 저항·민중시인으로 손꼽혀 왔습니다만 그는 문학에서 음악까지를 아우른 시인이었다고 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폭넓은 예술 활동을 했다는 것이지요. 최근에 신동엽학회발족과 함께 그동안 잘못 알려졌거나 또는 왜곡된 부분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리라 믿습니다. 그에게 ‘민족주의는 굴레였다’는 해석 뒤에 시인의 현재성을 재평가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 11월 9일 : 어제는 암으로 투병 중이신 어머니의 88회 생신을 맞아 7남매 모두와 손자손녀 그리고 친지 등이 모여 점심을 함께 먹었습니다. 올해도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했네요. 서로가 말은 안 해도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마음하나는 모두 똑같이 갖고 있기에 함께하는 순간들이 그렇게 소중하기만 했습니다. 하나라도 더 어머니와의 추억을 만들고파 마련한 자리이기도 했지요. 어머니께 전해드린 선물들도 하나같이 그런 마음을 담았기에 소중했고 올해도 드릴 수 있다는 것에 참석한 모두는 행복해 했습니다. 소유한 것은 많지 않으나 가장 부자인 마음으로 돌아와 거나하게 뒤풀이를 했네요.
▢ 11월 10일 :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의 문학상의 상금이 천만 원 이상이 20여개, 1억 원 이상이 7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지난 93년 한 신문사에 의해『새들도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라는 김형경씨의 소설이 1억원 시대를 열었지요. 그 이후에 많은 문학상들이 값을 올리며 독자의 반응을 살폈지만 요즘은 시큰둥해 진 것 같습니다. 솔직히 문학상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요. 가히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 문학상의 품위(?)를 그만큼 떨어뜨렸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상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본하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를 기념하여 1935년 분게이슌샤[文藝春秋社]가 창설한 ‘아쿠타가와상’ 프랑스하면 1903년에 시작된 공쿠르상이 떠오르는데 우리나라는 동인, 이상문학상 외에 너무 많아요.
▢ 11월 11일 : 어제도 문학상 얘길 썼습니다만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이 105년 역사 이래 처음으로 흑인 여성 수상자가 지난 2일 탄생했다고 합니다. 세네갈의 프랑스작가 마리 은디다예(42)씨가 ‘강한 세 여성(Trois femmes puissantes)’은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Le Monde)는 이렇게 평했군요. “완벽하게 투명하고 독창적인 그이 목소리는 의미 없는 지저귐 위로 솟아오른다”라고 했네요. 세상엔 장벽이 너무 많습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처한 입장이나 상황으로 대우하지요. 백인과 흑인이 그렇게 중요했던 아픈 세월이 낳은 결과란 생각도 듭니다. 기회가 되면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 11월 12일 : 세상이 온통 가을빛입니다. 낙엽길이 아닌 곳이 없더군요. 또 한해의 갈이 이렇게 깊어 조금은 쓸쓸하고 외롭게 ‘만추’를 실감케 합니다. ‘늦가을’이라는 말이 참 좋지요? 가을은 추남(秋男)도 추녀(秋女)도 아름다웠습니다. 때로 텅비어가는 가지들의 정 떼는 모습이 아련하기도 하지만 섭리에 순응하는 모습은 역시 아름답더이다. 맺었던 정과 사랑은 여기까지라는 것을 가을의 나무와 잎들은 보여주는 것 같군요. 내년의 더 넉넉한 맺음을 기약하는 것도 아름답습니다. 그렇기에 가을은 쓸쓸하고 외롭기만 한 계절만은 아닌 듯해요. 가을은 정말 멋진 계절입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 11월 13일 : 그동안 문고본으로만 읽어왔던 인도 사상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우파니샤드』를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인간이 공통으로 갖는 정신세계와 자아추구의 문제에 대하여 다루고 있지요. 편안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 좋네요. 이 책은 특히 자신의 내면과 조우하는 기쁨을 한 아름 안겨줍니다. 세상에 대한 성찰과 스스로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하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삶에 대한 투명한 각고(刻苦)없이 어떻게 참 자아(眞我)와 만날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생이란 저마다의 시각만큼 바라볼 수 있는 것이기에 그만큼 깊고 깊은 것인가 싶습니다.
▢ 11월 14일 : 다시 신춘문예의 계절입니다. 연말이 되면 신문사마다 공고를 내지요. 등단을 꿈꾸는 사람들은 그렇게 해마다 열병(熱病)을 앓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평생을 앓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문재(文才)가 없으니 도전도 쉽지 않지만, 이별의 능력도 없어 만년 문청(文靑)으로 삽니다. 소설가 천운영(38)씨는 “당선을 떠나서 신춘문예 열병을 앓는 것 자체가 대단히 아름다운 경험”이라고 위로해 주고 있네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냥 좋고, 문학을 통해 평생 사유(思惟)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이름 없이 사는 것도 좋네요.
▢ 11월 15일 : "매일 한 번씩 고향앞바다 앞장벌을 생각합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고요? 예, 맞습니다. 인터넷에서 삽시향우회에 들어가면 맨 먼저 접하게 되는 글이지요. 저도 이 글을 읽고 싶어(청죽칼럼도 그렇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삽시향우회를 찾아갑니다. 고향의 앞 장벌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 어느 것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넉넉하고 행복한 마음을 주기 때문이지요. 세상살이가 어렵고 힘들수록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 밭엔 늘 푸른 꽃이 핍니다. 어제도 삽시향우회 회장님을 만나 담소를 나눴습니다. 삽시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맨 먼저 떠올리는 곳이 바로 향우회가 돼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봤고, 선후배님들한테 가입을 권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고향냄새 풀풀 나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마음을 모았습니다. 기말시험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어제는 꼬박 김형경 애도 심리 에세이 『좋은 이별』을 읽었습니다. 『사람 풍경』과『천 개의 공감』을 읽었던 터라 신간의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내 신청을 했지요. 김형경은 소설가지만 다른 작가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벌써 수년전 그녀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1~2』라는 소설을 읽었을 때의 강렬함을 잊지 못하기에 그녀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서슴없이 구입하지요. 인간 심리에 초점을 맞춘 그녀의 작품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문제와 만나게 합니다. 심리학자 아닌 사람이 이 세상 어디 있겠습니까만 이 책에서 그녀가 들려주는 이별의 의미는 펄펄 살아있습니다.
▢ 11월 16일 : 작품을 읽고 시인이나 작가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소설은 허구인데도 실제인 냥 작가를 동일시하고 동경하는 경향이 있지요. 저도 그 중에 한명인데 작품과 작가는 결코 같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시나 수필은 소설에 비해 훨씬 더 작가의 내면을 깊숙이 읽을 수 있고 동일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편 생각해 보면 시는 은유나 비유로 빚어진 것이기에 시인의 내면을 숨기고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수필(에세이)은 글쓴이의 가장 적나라한 내면의 목소리가 아닐까 싶네요. 그래서 저는 수필을 좋아합니다. 함에도 수필이 신춘문예에서 제외돼 있다는 것이 여간 아쉽지 않군요.
▢ 11월 17일 : 톨스토이는 평생 동안 90권의 책을 썼다고 합니다. 눈부신 파란색 장정, 색깔이 참 곱다고 하지요. 엄청납니다. 저는 보지도 못했습니다. 인류의 지성이라는 칭찬을 받는 사람이긴 해도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고려대 교수인 석영중이 쓴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란 책을 읽었네요. 그는 왜 안나 카레니나를 죽였을까하고 집요하게 묻고 들어갑니다. 어제도 썼지만 시나 소설과 같은 작품을 읽고 작가를 좋아해서 만나보면 전혀 아니올시다였던 기억이 있지요. 작가 연구를 전문으로 하지 않는 한 작품만을 좋아해야 할 듯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아요. 작품이 좋으면요.
▢ 11월 18일 : 김장철입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되면 누구네 할 것 없이 김장을 했지요. 요즘엔 예전과는 같지 않지만, 그래도 김장은 반찬 중에서 혹한의 겨울을 나게 하는 가장 든든한 먹을거리 중의 하나였지요. 투병 중이신 어머닌 걱정을 많이 하시네요. 주말마다 오시는 손님이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아무것도 않고 그냥 있을 수 있냐고요. 시장에 가서 몇 가지 젓갈류를 구입해 오라십니다. 황색이 젓, 반지젓, 그리고 생새우도 사고 채소전에 가서 생강과 쑥갓, 그리고 청각도 사라십니다. 장가를 못가다보니 어머니께서 투병생활을 시작한 이후 시장은 제가 직접 보게 되네요. 이래저래 사연 많은 만추(晩秋)입니다.
▢ 11월 19일 : 어제는 안면도 고남 외가에서 8명이 어머니 병문차 오셨다 가셨습니다. 출발하셨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시장에 가서 장을 봤네요. 떡도 사고 고기를 사고 과일도 넉넉하게 샀습니다. 행복했어요. 말 그대로 천릿길을 달려오실 그 따뜻한 마음들을 맞을 생각을 하니 세상이 아름다웠습니다. 어머니 5형제가 모두 모여 얘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며 함께 식사를 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올해 92세이신 이모님은 연신 눈물을 훔치셨고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아프지 말고 살으라 동생의 어깨를 다독였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형제들의 만남엔 이렇듯 진하디 진한 사랑이 묻어있군요. 아름다운 눈물이었습니다.
▢ 11월 20일 : 법정스님의 새 법문집인『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이 나왔군요. 그동안 계속 몸이 아프셨다고 합니다. 이 책엔 1992년부터 지난 5월까지 이런저런 법회에서 말씀하신 35편의 법문이 실려 있습니다. 법정스님은 여느 스님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늘 하지요. 출가한 스님이면서도 한시도 세상바깥에 머문 적이 없으셨다는 생각입니다. 스님만큼 우리 대중들에게 크게 영향을 끼치신 분도 없지 않나 싶어요. 저는 그분의 왕팬 입니다.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거의 모든 저서를 다 갖고 있지요. 번역서도 대부분 읽었습니다. 새 책에서 세상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계도의 말씀은 또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 11월 21일 : 그동안 책이라고 하면 종이로 된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달라져서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 같군요. 바로 전자책 얘깁니다. 미국의 얘기이긴 합니다만 향후 5년 뒤엔 최소 25%를 전자책이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예사롭지가 않네요. 지난해엔 2%대였고 올해는 4%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지요. 전자책이 선택이 아닌 기본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인데 저는 영 내키지가 않습니다. 책이란 읽다가 밑줄도 긋고 느낌도 써가며 읽는 것이고 제일 좋은 것은 책의 냄새를 맛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그것을 못한다니 영 그러네요.
▢ 11월 22일 : 조동일 교수(70)의 『한국문학통사』(전6권·지식산업사 발행)은 지난 86년 한국출판문화상 저술상을 받았던 구비문학부터 세계문학사적 관점에서 우리문학을 서술한 대작입니다. 얼마 전 ‘동아시아 100권의 책’에 뽑히기도 했지요. 이 책이 완간된 것은 1988년이지만 끊임없이 개정작업을 거쳐 지난 2005에야 완결판을 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교수는 이 책에서 근대 이후의 문학은 서구에서 이식된 것을 주류로 여기고 연구, 교육했다고 하지요. 그러나 이 책에서 근대의 가사문학과 판소리문학 등을 재조명함으로써 자생적인 근대문학을 강조했습니다. 한국문학의 자랑입니다.
▢ 11월 23일 : 시뿐만이 아니라 작품을 깊이 있게 읽는 사람들을 보면 늘 부럽습니다. 평론가는 그런 면에서 작품을 가장 잘 읽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들이 읽어내는 깊이를 저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해석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 손 치더라도 작품이 의미하고 있는 세세한 부분을 잡아내는 것을 보면 역시 다르구나 싶을 때가 많지요. 저는 그런 혜안(慧眼)이 없습니다. 읽는다고는 해도 수준에 못 미치는 독서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김화영교수의 새 평론집인『소설의 숲에서 길을 묻다』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내내 했습니다. 문재(文才)가 없으면 글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는 것인가 싶어 안타깝습니다.
▢ 11월 24일 : 매달 한 달에 한권씩 회지를 만들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웁니다. 모든 것이 쉽지는 않지만 할 수 있다는 것이 좋고 행복하네요. 회원들이 쓴 글을 다듬고 오탈자 교정을 본 후 문맥에 맞춰 글을 완성합니다. 훌륭한 편집자란 때로 냉혹한 면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차 없이 문단을 잘라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가지치기를 제대로 해줘야 나무가 반듯하게 쭉쭉 뻗어나가듯 글도 그런 것 같습니다. 제일 어렵고 힘든 것은 제목을 바꾸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회지를 만들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문장은 단문일수록 좋다는 것인데 그것이 가장 힘든 듯해요. 문장을 짧게 쓰는 것, 그것이 저절로 되진 않네요.
▢ 11월 25일 : 제가 몸담고 있는 연합 봉사대에서 해마다 한 번씩 하는 일일찻집의 티켓을 판매하고 있는데 사연이 많네요. 배당된 티켓을 판매하려 연락을 해보면 꼭 한 장은 사줄 것 같은 사람이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사양을 할 때 좀처럼 서운한 마음이 가시질 않더군요. 더군다나 무료로 오랫동안 교육을 받고 있는 입장에서조차 거절을 당하고 나면 당황스럽기까지 하더군요. 세상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너무 단순할까요? 인생살이가 참 쉽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에 공짜가 없는 법이거늘 그렇게 나눔에 인색한 생을 살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해요. 만 원짜리 1장이 이 추운 겨울 누군가의 얼은 가슴을 녹일 뜨거운 불이 된다는 것을!!!
▢ 11월 26일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내 손안에 행복한 책”이라는 슬로건아래 북크로싱(Book-Crossing)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책 돌려 읽기”정도의 뜻이라고 할까요. 책을 읽은 후 책과 함께 메시지를 적어 공공장소에 두면 그 책을 습득한 사람이 마찬가지 방법으로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방법입니다. 아주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되지만, 어느 만큼의 효과를 거둘지는 알 수 없군요. 우리나라만큼 책을 읽지 않는 민족도 드물다고 합니다. 일 년에 평균 한권 꼴이 안 된다는 소식이고 보면 정신이 번뜩 들기도 하네요. 아무튼 좋은 취지의 운동이 큰 성과로 이어져 책 읽는 붐이 활화산처럼 타올랐으면 싶네요
▢ 11월 27일 : 오늘은 아버지의 28주기 제삿날입니다. 상여가 나가든 날 아침은 심한 눈보라가 날렸었지요. 저도 동생의 등에 업혀 매장지까지 갔었고 아버지의 영면장면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네요. 병든 어머니와 함께 사는 저에게 오늘 아버진 무슨 말씀을 하실까 싶습니다. 아마도 ‘고생이 많구나.’ 하시지 않을까요.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아버진 제 평생의 무언의 교육자입니다. 평생 동안 말이 아닌 몸으로 생의 진실을 증명하며 사셨던 분이셨고,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시던 분이셨지요. 일생 농군으로 흙을 사랑하셨고 친인척은 물론 형제간의 우애를 세상에서 제일의 가치로 치셨던 분이셨습니다.
▢ 11월 28일 : 어제는 뜻밖의 메일을 한통 받았습니다.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 교수인 오강남박사로부터 온 메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그분의 책을 거의 대부분 구입해 읽었고 지난달에도《또 다른 예수》라는 책일 읽었지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 책을 읽어주신다고 하는 글을 보고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고 이메일 드립니다. 청죽님 같으신 독자가 있어 힘이 나고 책을 계속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군요. 감사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2009. 11. 27. 오강남 드림” 좀 더 깊이 있게 책을 읽어낼 수 있는 고급독자가 돼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보네요. 행복합니다.
▢ 11월 29일 : 며칠 전인 지난 23일 민음사에서 “모던 클래식 시리즈”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간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젊은 거장들의 작품을 소개한다는 취지로 앞으로 계속 나온다고 합니다. 이 시리즈는 주로 1990년대 이후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고 해요. 시대를 앞서갈 수는 없다손 치더라도 시류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깊이 있는 독서를 할 수 있는 또 좋은 계기기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1세기의 버지니아 울프로 평가받는 영국의 지넷 윈터슨(50)과 일본계 영국작가 가쓰오 이시구로(55), 그리고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작가 한사오궁(56)등의 작품을 우선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 11월 30일 :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저술활동 50주년이 됐다고 합니다. 저의 20대는 이어령 교수의 책으7로 도배를 하다시피 했던 세월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만큼의 다작(多作)을 쓰신 분이 또 있나 싶군요. 지금까지 저서만 160권이랍니다. 퍼내도 퍼내도 밑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는 것 같은 그 지성의 심연엔 대체 어떤 물줄기가 숨어 있을까 하고 생각할 때가 많지요. 하도 많이 읽어서 자주 인용하는 그의 책들은 제 영혼의 완전한 자양분이 됐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술활동 50년을 기념해 ‘만남 50년’ 행사가 27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있었지요. 축하드리고 건강을 기원합니다. 그의 첫 저서는 지난 59년에 발간된 《저항의 문학》이었지요. 그는 1955년 서울대 문리대 학보에 ‘이상론’을 발표하면서 필명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이듬해 한국일보에 전후 한국문학을 비판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우상의 파괴’를 발표, 엄청난 반향과 논쟁을 촉발시켰던 인물입니다. 이어령 하면 떠오르는 저서는 무엇인가요?『흙 속에 저 바람 속에』『거부하는 몸짓으로 이 젊음을』『축소지향의 일본인』『차 한 잔의 사상』등 그이 저서를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는 진정 한국의 인물(人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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