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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의 열반>
붓다가 죽림정사에 머물러 있을 때, 어느 날 사리불과 목건련이 붓다 앞에 나아가 무릎을 끓으며 말했다.
"저희들은 붓다의 마지막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습니다. 저희가 먼저 멸도(滅渡)에 들겠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행자가, 사리불과 목건련이 왜 먼저 죽음을 맞이하려 하는지 붓다에게 물었다.
붓다는 수행자를 바라보며 사리불과 목건련은 정도를 걸어 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어버렸고, 바른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으며 이미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전생에 붓다와 수행을 했으며, 죽음을 먼저 맞이했다는 이야기를 곁들였다.
먼저 멸도에 들기로 한 목건련은 죽림정사로부터 멀리 떨어진 산 속에 자리를 잡고 선정에 들었다. 붓다의 승단을 무너뜨리기 위해 기회를 노리던, 육체 고행을 하는 교단의 교주는 부랑자들을 시켜 붓다의 제자인 목건련을 죽이도록 명령했다.
혼자 떨어져서 수행하고 있는 목건련을 발견한 부랑자들은 빨리 해치우려고 했지만 그의 선량하고 인자한 모습을 보고는 머뭇거렸다. 그러나 잠시 주춤거리던 그들은 목건련에게 돌을 던졌다. 날아오는 돌에 맞으면서도 목건련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목건련의 머리와 몸은 피로 젖었다. 결국 그의 몸은 옆으로 고꾸라졌다.
이윽고 그는 돌무덤 속에 묻히고 말았다.
며칠이 지나서야 목건련이 죽음이 밝혀졌고 수행자들은 슬픔과 분노에 빠졌다. 목건련의 제자들이 스승의 원수를 같아야 한다고 다짐하듯 말하자, 붓다는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육체는 무상한 것이다. 이 세상을 건너기 위한 배에 지나지 않는다. 목건련은 처참하게 죽어갔지만 그의 영혼은 아름다움과 환희에 가득 찬 열반에 들었다."
목건련의 죽음에 격분한 아사세왕은 목건련을 죽인 사람들을 화형에 처했다.
목건련이 열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붓다는 마가다국을 지나 바이샬리고 떠났다. 그곳에서 별에 걸린 붓다는 제자들이 흩어져 있는 지금 이대로 열반에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붓다는 정사에서 나와 시원한 그늘에 앉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보았다.
급한 걸음으로 온 아난이 붓다에게 물었다.
"어제보다 얼굴이 훨씬 좋아 보입니다. 붓다께서 병에 걸리자 저는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열반에 드시면 어떡하나? 아직 아무런 분부나 가르침을 받지 않았는데, 하면서 말입니다."
"아난아, 나에게 무엇을 더 기대하고 있느냐? 나는 지금까지 여러곳을 다니며 설법을 해왔다. 정법을 위해서라면 어떤 곳이든지 거절하지 않고 다녔다. 나는 여든 살이 넘었다. 나는 젊은 날에,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진했고,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정법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아난아,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스스로를 의지해야 한다. 다른 것이나 다른 사람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마음 속에 법등을 밝히고 그것을 실행해야 한다."
붓다의 말이 끝나자 사리불이 다가와 이별을 고했다.
"저는, 이제 고향에 돌아가 열반에 들고자 합니다. 저의 뜻을 거두어 주십시오."
붓다는 사리불로 하여금 수행자들에게 마지막 설법을 하도록 했다. 이는 붓다가 떠난 뒤에 중생들이 다른 수행자의 말을 믿지 않을까 염려해서이고, 모든 제자들로 하여금 법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으며,사리불에게 공덕을 표하기 위해서였다.
"저는 오래 전부터 붓다를 만나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여러 곳을 헤맸습니다. 바라문교의 선인을 스승으로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저는 붓다의 가르침을 받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붓다의 제자가 되어 많은 중생들에게 법을 알리는 일은 더할 수 없는 행복이었습니다. 이제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왔습니다. 육체를 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사리불은 붓다의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올리고 일어나 정사를 떠났다. 그를 따른던 제자들 중 한 명만 데리고 그의 고향인 날란다 마을로 향했다. 그는 고향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다.
<열반의 땅을 향하여>
차바라 사당에 있을 때였다. 붓다는 아난에게 말했다.
"등이 몹시 아프구나. 여기서 좀 쉬도록 하자."
아난은 말없이 붓다를 바라보았다. 붓다는 나눔에 기대어 앉았다. 심한 고통을 느낀 붓다는 잠시 얼굴을 찡그렀다.
어디선가 붓다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붓다여, 당신은 아무런 욕심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제 열반에 드십시오. 어서 빨리 열반에 드십시오."
붓다는 악마의 목소리임을 알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그때가 언제인지 알고 있다. 아무리 권해도 지금은 열반에 들 수 없다. 3개월 뒤에 사라쌍수(沙羅雙樹)사이에서 열반에 들 것이다."
악마는 붓다의 마음을 읽고 기뻐하며 사라졌다.
붓다는 곧 제자들을 모아두고 설법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하다.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수행에 정진해야 한다. 내가 이렇게 간곡히 말하는 것은 머지않아 열반에 들기 때문이다. 나는 3개월 후에 열반에 들 것이다."
순간 제자들은 술렁거렸다. 그 중에는 슬픔을 못 이겨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다.
"슬퍼하지 마라. 모든 만물이 태어나면 반드시 죽게 마련이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것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육체는 영원하지 않는 것이다. 너희는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게 생각하고 행동하여라. 잠시도 수행을 게울리하지 마라."
붓다는 피곤한 몸을 이끌며 열반의 땅으로 정해진 구시나가라를 향하여 서서히 발길을 옮겼다.
파바성에 도착하여 대장장이의 아들인 춘다의 공양을 받았다. 춘다는 선단나무에서 자란 버섯 요리를 대접했다.
춘다는 평소에 궁금해 하던 생각을 붓다에게 말했다.
"붓다님, 세상에는 몇 종류의 사로몬이 있는지요?"
붓다는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조용하게 말했다.
"네 종류의 수행자가 있는데, 첫 번째는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진실로 해탈한 수행자이고, 두 번째는 능히 도를 설할 수 있는 수행자인데, 이는 바른 길을 알고 모든 사람의 의혹을 풀어주는 자이다. 세 번째는 도에 의하여 생활하는 수행자이다. 정도(正道)를 생활의 척도로 생각하고 행하고 있으나 무구한 경지에 이른 자는 아니다. 마지막은 도를 더럽히는 수행자이다. 겉모습은 착하고 거짓이 없는 것처럼 보이나, 속마음은 욕망에 불타고 더럽혀져서 허구로 가득 차 있고 성실하지 못한 수행자이다. 이 세상에는 겉모습은 아름다우나 마음은 추하고 악한 자가 많다. 마음이 아름다운 자는 선을 알고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어 악에서 멀어지고, 욕망과 분노, 집착을 갖지 않는다."
말을 마친 후 붓다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춘다의 집에 들른 후부터 붓다의 얼굴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아난은 춘다가 공양한 음식이 잘못된 것이라며 탓했지만, 붓다는 아난에게 공양을 받는 마음 또한 중요하다고 말했다.
붓다 일행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긴 여행 끝에 구시나가라성에 다다랐다. 강을 따라 걷다가 붓다는 몸을 씻었다. 그리고 언덕에 올라 망고나무 숲으로 향했다.
붓다는 힘없이 서 있는 아난에게 담요를 네 겹으로 접어달고 했다. 나무에 기대어 휴식을 취했다.
붓다는 아난에게 구시나가라의 사라쌍수로 가자고 이르고는 다시 길을 떠났다. 일행이 구시나가라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바라문을 만났다.
그는 붓다의 온화하고 평화스러운 모습을 보고 감탄하여 자신의 집에 머무시기를 간청했으나 붓다는 사야했다.
"그대의 공양은 이미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요?."
이윽고 사라쌍수에 도착하여 아난은 붓다의 지시에 따라 자리를 폈다.
붓다는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얼굴은 서쪽을 향했다. 그리고는 마치 사자와 같이 다리를 포개고 누우셨다.
아난은 붓다에게 말했다.
"이런 곳에서 열반에 드시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귀의한 신자들이 많은 바이살리국이나 큰 나라로 가셔서 열반에 드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어서 가서 성 안에 있는 씨름꾼들에게 오늘 밤 내가 열반에 들 것이라고 전하여라."
아난은 눈물을 흘리면서 마을로 내려갔다. 아난이 일부러 찾아온 것을 본 씨름꾼들은 의아하게 생각하여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오늘 밤에 붓다께서 열반에 드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의문들을 풀고 가르침을 받도록 하십시오."
"왜 이리도 빠르단 말인가!"
얼마의 시간이 지나 잠잠해지자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사라쌍수로 찾아갔다. 의문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풀었고, 모두들 붓다의 가르침을 받고 돌아갔다.
<최후의 제자 시브리다>
붓다는 자연의 모습 속에 인간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음을 중요시했다. 붓다의 가르침은 팔정도를 마음의 잣대로 삼아, 서로를 위하고 은혜를 베풀어야 마음의 평온을 얻어 자신의 조화는 물론,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또 전생윤회의 법을, 태어나면 늙고 병들어 죽는 육체를 예를 들어 설명하기도 했다.
만생만물은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관계 속에 놓여 있으므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위하고 은혜를 베푸는 것이 중요하며, 동시에 자신의 처지에 맞는 봉사 활동을 해야 된다고 했다. 그리고 붓다 자신은 인류 사회를 위해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했다. 붓다가 걸어온 45년간의 여정은 자비와 사랑의 빛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쉬지 않고 제자들과 중생들에게 설법했다.
"인류는 모두 한 형제다. 가난한 사람도 부유한 사람도, 신분이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모두 붓다의 자녀이다. 자신이 태어난 환경은 자기가 선택한 것이며, 스스로 선택한 그 환경을 통해서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붓다는 인과의 법칙을 설명하면서 제자들과 중생들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했다.
붓다의 나이가 여든한 살이 되어, 구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들 준비를 하며 비구들과 비구니들을 앞에 두고 마지막 설법을 하려고 할 때였다.
멀리서 늙은 수행자 한 사람이 붓다를 만나게 해달라며 떼를 쓰고 있었다.
붓다는 그 소리를 듣고 아난에게 말했다.
"나의 마지막 제자가 왔구나. 어서 이곳으로 모셔라."
그는 100세가 훨씬 넘은 바라문 수행자인 시브라다였다. 오랫동안 여러 가지 수행을 쌓았지만,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어서 붓다가 죽기 전에 만아 의문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수척한 몸을 이끌고 먼 길을 여행했던 것이다.
시브리다는 많은 스승을 만났지만 모두가 스스로를 봇다라고 칭하는 자들이었다. 그는 붓다 역시 가짜라고 생각된다면 이곳을 조용히 떠나리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붓다는 이미 시브리다의 마음을 읽고 있었다. 아난은 붓다가 열반에 들 시간이 가까워졌으므로 늙은 수행자의 부탁을 거절하고 싶었지만, 명령을 어길 수가 없어 마지못해 붓다에게로 안내했다.
옆으로 몸을 누운 붓다의 머리맡에 앉자마자 시브리다는 입을 열었다.
"저는 올해 117세가 된 바라문 수행자인 시브리다입니다. 깨달음을 얻은 스승을 찾아 지금까지 인도를 방황하였습니다. 그러나 붓다를 자칭하는 분은 많았지만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진짜 수행자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시브리다는 두 손을 뻗고 당 위에 머리를 숙이며, 숨이 차서 더듬거리며 붓다에게 간전히 청원했다.
"시브리다여! 잘 찾아왔다."
붓다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다.
"세상에는 스스로 붓다라고 칭하면서 말과 행동을 달리하는 사람이 많다. 진짜 수행자란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해탈하기 위해 중도의 잣대를 가지고 생활을 하는 자이며, 보름달처럼 밝고 둥근 마음을 잃지 않는 자를 말한다.
중도의 잣대란 팔정도를 말하는데 이는 여덟 가지의 바르고 거룩한 길이다. 이 길은 걷는 자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도의 마음를 가지며 진정한 행복을 느끼면서 생활할 수 있다.
팔정도에는 욕심을 버리고 모든 만물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르게 보는 눈[正見] 그리고 모든 말과 행위, 만들어진 모든 것들은 생각에서 비롯되니 바르게 생각[正思惟]하는 것이 중요하다.
말은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다른 사람을 이롭게 만들 수 있고, 해칠 수도 있는 것이다. 바르게 말[正語]하는 것은 자신을 바르게 나타내는 것이므로 중요하다.
일을 할 때도 바른 자세[正業]와 마음으로 임한다면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해질 것이다.
올바른 생활[正命]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올바른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몸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대인 관계에서 곡 필요한 정정진[正精進]이 있는데, 이는 부모나 형제,친구, 이웃에게 도리를 다함으로써 자신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바른 방향으로 자신을 이끄는 것이다.
그리고 정념[正念]이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마련이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 인간이 꿈꾸는 희망에도 조화가 필요한데, 올바른 희망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바른 길을 걷게 하고, 무절제한 욕심을 제어시키기도 한다. 인간은 서로 도우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며 살아야 행복하다. 자신을 위한 염원도 조화에 초첨을 맞추지 않으면 정도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정[正定]이 있는데, 정정의 근본은 반성에 있다. 시기, 질투, 노여움, 비난, 험담 등의 마음을 버리고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반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반성을 함으로써 자신의 마음과 육체가 조화로워지고 나아가서는 자신의 마음과 대우주의 마음과 일체가 이루어진다.
이 팔정도를 일상생활에 실천함으로써 마음의 가시가 없어지고 공포심에서 벗어나 평안한 인생을 보낼 수 있게 된다. 고통은 사악한 마음과 잘못된 행동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집착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올바르게 살아갈 수 없다. 정도의 생활을 실천하는 자가 진짜 수행자이다."
붓다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어조로 시브리다에게 설법했다.
시브리다는 굵은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붓다의 말씀이 제 마음 속에 스며들어 기쁨이 깊숙한 곳에서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고```맙```습```."
시브리다는 감격에 겨워 말을 끝맺지 못하고 눈물을 속 흘렸다. 붓다는 시브리다가 팔정도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놀라웠다.
"저를 제자로 거두어주십시오. 저는 붓다께서 열반에 드시는 것을 지켜볼 수가 없습니다. 제가 먼저 가서 붓다를 마중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시브리다는 고개를 들어 붓다에게 간청했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제자들과 브리다가 마음의 문을 열고 깨달아가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눈물을 렀다. 흐느끼는 소리는 파문이 일어나 조용한 숲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붓다는 자비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소원대로 하는게 좋겠구나."
"고맙습니다."
시브리다는 몸을 일으켜 붓다 주위에 있던 제자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저는 붓다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선배님들께 실례가 되는 일입니다만 붓다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에 제가 먼저 왕생에 들까 합니다. 저는 이제 일체의 집착에서 벗어나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여러분의 활약을 진심을 기원합니다.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마지막 생명의 빛이 흔들이는 말이었다. 말을 마치자마자 시브리다는 썩은 고목이 무너지듯 붓다 옆에서 대왕생을 하였다. 시브다리의 입적을 지켜본 붓다는 조용히 눈을 감고 지난 45년간의 정도 포교의 발자취를 뒤돌아보면서 괴로운 숨결 가운데서도 미소를 지으며 추억에 잠겼다.
<붓다의 열반>
아난은 오랜 동안 붓다의 가르침과 은혜를 받았지만 지금까지 깨달음을 얻지 못한 자신을 생각하니 우울해졌다. 붓다는 아난의 마음을 읽고 위로해 주었다.
"과거의 모든 부처를 모시던 자들도 아난과 같았다. 미래의 부처님을 모실 자 또한 아난과 같을 것이다. 그들은 말을 듣고서야 뜻을 알았지만, 너는 눈만 보아도 뜻을 알고 있지 않느냐."
아난은 머리를 숙이고 붓다의 말을 마음에 새기며 들었다.
"내가 열반에 든 것을 보고 정법이 끊어지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바른 길을 걷게 하기 위해 게율을 정하고 설법을 해왔다. 그리고 너희와 함께 생활해 왔다. 내가 열반에 든 후로도 너희는 서로를 함부로 대하지 말고 공경해야 한다. 잘못을 범했을 땐 빌고, 자신에게 용서를 비는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여라."
나후라는 밤길을 뛰어와 붓다 앞에 무릎을 끓었다. 그는 아버지의 열반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다른 곳으로 피해 있었던 것이다.
"나후라야. 슬퍼하지 말아라. 너는 아들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했다. 나도 아버지로서 네게 가르쳐할 할 것을 모두 가르쳤다. 모든 것은 무상한 것이다."
나후라와 아난, 붓다의 곁에 있는 모든 수행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 붓다가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고통스러워하는 붓다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은 장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희는 오관의 유혹을 물리치고 모든 일에 사로잡히지 말며, 법을 마음과 행동의 지침으로 삼고 살아야 한다. 일체의 잡념에서 벗어나 마음과 행동을 늘 청정하게 하도록 하여라. 모든 괴로움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자신이 잘못한 일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뉘우쳐야 한다.
만약 너희를 해치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에 대한 나쁜 생각을 하고 나쁜 말을 하면 안 된다. 화는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욕심이 적은 사람은 근심도 적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불행하고, 가난하더라도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수행자들이여, 잠시도 쉬지 말고 수행에 정진하여라.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열심히 정진해야 한다. 한 방울의 물이 계속 떨어지면 바위에 구멍을 내는 것처럼 너희도 구준히 정진하면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나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와 같아. 약을 먹는 것은 환자의 마음에 달려 있다. 나는 단지 길을 가리킬 뿐이다. 길을 가는 것은 너희들의 마음이고 책임이다. 이제 나는 열반에 들 것이다."
붓다의 말이 끝나자 모든 수행자들은 숨을 죽이며 시간을 기다렸다. 그들은 침묵 속에서 각자 붓다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슬퍼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붓다는 다시 말을 이었다.
" 슬퍼하지 마라. 모든 생명은 태어나서 죽는다. 내가 천 년을 산다 해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나의 육체는 사라지지만 영혼은 영원하다. 그러니 슬퍼하지 말아라. 나는 해야 할 일을 모두 다 했다. 육체는 언젠가는 버려야 하는 것이다. 가르침이 있는 곳에 내가 항상 있을 것이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사람들은 무겁고, 단단한 침묵을 깨뜨리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속에 붓다의 가르침이 웅장한 음악처럼 울려 퍼졌다.
장엄한 침묵을 깨고 아난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붓다께서 열반에 드신 후에 저희들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리고 유해는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한참 후에 붓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한 설법은 너희들 마음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이 법을 방황하는 중생에게 똑똑하게 전달하여 구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비구, 비구니들이 할 일이다. 비록 내 육체는 없어지지만, 마음은 항상 너희 곁에 있다. 지금 태양은 서산을 넘어갔지만 내일이면 다시 동쪽에서 떠오른다. 내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해서 외로워하거나 슬퍼해서는 안 된다.
만약 외로워지면 내가 태어났던 룸비니를 생각하여라. 최초로 깨달음을 얻은 우루벨라의 딸을 생각하는 것도 좋겠구나. 내가 최초로 설법한 바라나시의 미가다야를 떠올러 보아라. 모든 태어나는 것은 죽는다. 이를 슬퍼하거나 괴로워해서는 안 된다.
내 유해는 재가 신도들이 처리할 것이다. 너희들은 정도를 모든 중생에게 설법하여 고통에서 벗어나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여라. 그것이 나에게 은혜를 갚는 길이다.
아누푸리야 숲에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바위산이 갈라지고 큰비가 내려 바위산은 고산 내[川]가 되었다. 짐승들은 갈 곳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대소동이 벌어졌다. 그때 한 마리의 늙은 코끼리가 골짜기의 물난리를 바라보았다. 도피처를 못 찾아 갈팡질팡하는 짐승들의 모습을 본 그 늙은 코끼리는 자신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스스로 그 육중한 몸을 바위산 골짜기에 던져 짐승들을 넓은 피안으로 건너가게 한 뒤 숨을 거두었다.
너희도 허둥거려서는 안 된다. 나를 그 늙은 코끼리처럼 발판으로 삼아, 방황하는 중생을 용기와 지혜와 노력으로 미망의 땅에서 개달음의 피안으로 인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젠가는 나의 법이 중국으로 건너가 자브토바의 켄토마니까지 퍼져 갈 것이다. 나는 그때 많은 제자들과 함께 다시 환생하여 이 법을 설할 것이다."
마이트레이어(미륵)는 붓다의 등을 어루만진 뒤 만치우리아 존자, 가챠나 존자, 우바리 존자, 수브티 존자에게 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돌아갔다.
아니룻다는 붓다의 선정 상태를 심안으로 살펴보고 마침내 9선정에 들어 열반에 들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사실을 비구와 비구니들에게 알렸다.
"붓다께서는 열반에 드셨습니다"
붓다가 열반한 사실이 벳다리에서 설법하고 있는 대가섭에게 전달되고, 이어서 죽림정사, 기원정사, 대림정사 등에 차례대로 전달되었다.
아난은 다음 날 새벽이 되자 성으로 가서, 탄식하는 사람들을 타일러 전륜선왕의 장례와 같이 장례를 준비했다. 화장을 하기 위해 불을 붙였으나 불은 타지 않았다.
이는 대가섭이 붓다를 보기 위해 수행자들과 함께 열반에 드신 구시나가라로 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가섭이 제자들과 함께 구시나가라에 도착한 것은 붓다가 돌아가신 지 일 주일 후였다.
구시나가라에 도착한 대가섭은 붓다를 뵙게 해달라고 아난에게 세 번 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대가섭은 향더미에 싸인 관이라도 만지기 위해 다가갔다. 붓다의 몸은 황금빛으로 변해 있었다.
대가섭은 절을 올린 후 관을 세 번 돌고서 계송을 읊었다. 그러자 향나무 더미에서 불이 일어났다.
붓다의 유해는 다비식을 올리고, 재가 신도들에 의해서 처리되었다.
그 후 대가섭이 중심이 되어 아난은 법을, 우바리는 계율을 맡아서 포교에 온 힘을 다했다.
붓다가 입적한 지 90일 째 되는 날 죽림정사 뒷산에 있는 동굴에서 첫 번째 집회가 열렸다. 대가섭, 우바리, 수브티, 마하가챠나, 아사지, 만치우리야, 마이트레이어, 아르닛다, 아난, 데사, 우파시카 등을 포함하여 집회에 모인 수행자들은 476명이었다.
일부 수행자들은 이미 소승 불교의 길을 택했다. 분열의 징조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었지만, 제자들은 붓다가 45년 동안 설법한 붓다 스트라[불교]를 암기하여 중생들을 지도했다.
마침내 아난도 아라한의 경지에 올라 붓다의 법과 가르침을 정리하는 경전을 만드는 결집의 구성원이 되었다. 지도자들은 여러 지방으로 흩어져 자브토바에서 만나자는 격려를 서로 주고받으며 정법을 유포해 갔다.
※출처: 高橋信次(다카하시 신지)의 『논픽션 붓다』「10장 위대한 열반」
기존의 인간석가에는 빠진 내용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소중한 자료 감사합니다 ^_^
고맙습니다*
선생님 수정 했어요... 제 안으로 소중히 들여 왔어요. *^^*~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