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가의 불행을 안고 있다."(안나 카레니나1 민음사, 2009)
세계 문학 사상 가장 유명한 첫 문장으로 손꼽히는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구절입니다.
이 대목은 해석하기에 따라 다양한 의미와 함의가 있겠지만, 저는 이 문장을 이렇게 해석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으로서 지닌 각각의 조건들이 모두 평균값 이상이어야 한다.
즉 건강, 재산, 현재와 미래, 가족과 자신이 맡은 일 등등의 조건들이 하나고 빠짐없이 모두 평균 이상일 때 인간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거의 모든 것을 갖췄지만 단 한가지라도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면 인간은 행복하기가 쉽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행복하기도 쉽지 않고, 그 행복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실존, 삶의 어려움과 고통이라는 문제에 대해, 굳이 인간의 삶은 고해라는 부처님 말씀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이 결코 쉽거나 만만하지 않다는 것에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에서 고통과 고민을 줄이는 것이 가능할까요? 행복이 가득한 삶은 과연 가능할까요?
석복이란 단어는 복을 아낀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한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깨닫고,
절제하며 검소하게 생활하여 일상의 행복을 발견하고 누리는 태도를 말합니다.
마음이 겸손한 사람이 일상의 신비 안에 하느님 은총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러한 신비를 향유할 수 있다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상통하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잘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잘 보고, 잘 듣고,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느님과 관련된 모든 질문과 답은 하느님의 본질적 모상인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1,9)
하느님께서 직접 창조하신 이 세상과 이 땅에 빛이 계속 빛나고 있는데, 신비롭게도 어둠은 여전히 짙습니다.
인간의 삶 속에 매일 낮과 밤, 빛과 어둠이 공존합니다.
행복을 밝게 보여주는 빛, 즉 말씀은 침묵 중에 고요해햐만 들을 수 있고, 그 말씀의 빛은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주변이 어두워야 더 잘 보입니다.
성당에 앉아 조용히 기도하고 미사 드리면, 세상은 너무나 평온하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살아나ㅐ야 하는 일상과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꽃이 죽어야만 열매를 맺는다는 말을 알면서도, 인내하고 포기하며 살아야 하는 삶이 때로 너무 버겁습니다.
석복, 즉 매일의 일상과 고달픈 현실에서 각자가 의미를 찾고 발견한다면,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 안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통해 세상 모든 것의 이치와 의미를 끄집어내고, 거기서 내 삶의 방향을 찾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날 수 셀 줄 알기를 가르쳐주시어, 우리들 마음이 슬기를 얻게 하소서"(시편 90,12: 최민순 역)
인간은 날 수를 셀 줄 알아야 지혜와 슬기를 얻는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날 수를 헤아린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젊고 힘 있꼬 즐거울때 사람들은 하느님이 있어도 좋고 없어도 큰 문제가 없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나온 날, 그리고 앞으로 남은 날을 헤아린다면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금방 알수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철이 든다는 것은 나에게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죽음이 가까워오면 인간은 철이 듭니다. 누구나 생로병사를 겪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날 수 셀 줄 안다는 것은 결국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고,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또 날 수 셀 줄 아는 사람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기쁘고 성실하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지혜를 가진 사람은 작고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않고, 작은 손해에 맘 상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 지혜를 가진 사람은 자신이 누군지, 하느님이 누구신지를 깨달을 수 있기에,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이라고 교회와 수많은 성인 성녀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행복한 삶의 길은 가깝고도 멀게 느껴집니다.
언제, 어떤 때에 행복하다고 느끼는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공통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상황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거의 모든 사람은 좋은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편안하고 좋은 분위기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둘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할 때 사람은 누구나 행복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만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나 행복해한다면, 우리 역시 눈물나게 행복할 것입니다.
자식을 둔 부모님들은 쉽게 공감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하느님께서도 그러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기쁘고 행복하게 산다면, 우리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웃으면서 하느님께 기도하며 희망한다면, 하느님께서 매우 행복해하시지 않을까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립시다.!
이탈리아 아시시의 산타 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 앞 코무네 광장에(평화와 행복)이라는 글귀가 새겨 있습니다.
아마도 평화와 행복은 함께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평화를 통한 행복, 행복을 통한 평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평화란 무엇일까요?
평화를 뜻하는 라틴어 Pax와 Pace, 영어 Peace의 동사형은 각각 Pacare(라), Pacify(영)입니다.
Pacify라는 단어의 다양한 뜻 중 대표적인 것은 평정하다입니다.
즉 Pax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평화란 원래 남을 정복해서, 상대방을 굴복시켜서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Pax Romana, Pax Americana처럼 힘에 의한 평화가 바로 Pax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참된 평화(Pax)란 절대자, 즉 하느님에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굴복하고 순종하여 얻는 평화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의탁하여 얻는 평화가 바로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참된 평화입니다.
신앙인에게 행복의 길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데 있습니다.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8,32), 진리에 순응하는 것이 평호하의 지름길이고, 행복한 삶의 과정이고 핵심이며 결론입니다.
Dona nobis pacem!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