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소녀가 발견되었던 적이 있다. 1920년 인도의 캘커타 근처 마을에서 늑대 떼와 함께 있는 두 여자 아이가 그들이다. 사람들은 8세와 15세로 추정되는 두 소녀에게 카말라와 아말라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들을 인간화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이들은 늑대처럼 네 발로 걷고 뛰었으며 으르렁거리고 울부짖었다. 음식은 냄새부터 맡았으며 고기나 우유만 먹었다. 시각과 후각이 매우 발달하여 어두운 곳에서도 큰 불편이 없었으며 먼 곳의 냄새도 곧잘 맡았다. 그러나 이들을 보살피려는 인간과의 의사소통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들은 인간일까? 늑대일까? 15살로 추정되는 아말라는 1년 후에 죽었고, 8살 정도로 보이는 카말라는 9년을 더 살았다. 9년 동안 가르친 결과 약 30개의 단어와 어휘를 알게 되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했다고 한다. 인간으로 보나 늑대로 보나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1894년에 발표한 {정글북}이라는 동물소설에서의 모굴리 소년은 짧은 시간에 인간을 이해하고 늑대와 인간 사이를 오갔지만, 늑대 소녀 카말라와 아말라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특히 사춘기를 늑대인지 인간인지 알지 못한 채 살다 간 카말라의 삶을 우리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되묻다가 죽어간 카말라가 불쌍하기 그지없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청소년들도 끊임없이 갖게 되는 물음의 하나이다. 나는 진짜 내가 맞을까? 또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이런 물음같은 것들이다. 이런 물음들은 청소년기에 누구에게나 있는 물음들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물음들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물음과 그에 대한 대답은 자아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이러한 자아 정체성 형성을 위한 고민은 한 인간으로서 성숙해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리가 나는 왜 자꾸 닭살이 돋지?라거나 칫솔이 나는 왜 이빨은 안 닦고 자꾸 신발만 닦지?라는 유머들은 바로 나를 찾기 위한 고민이자 방황을 희화화한 것이다.
이렇게 청소년의 정체성 형성의 과정을 그리는 소설을 두고 성장소설이라고 한다. 청소년 소설 대부분이 이 종류의 소설에 해당되는데 그 구성이 비슷할 때가 많다. 흔히 떠남 - 시련 - 깨달음 - 회귀의 구성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이러한 구성은 성장소설의 하위 분류인 예술가 소설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구성이다.
청소년기의 특징은 부모와의 긴밀한 관계에서 벗어나 주관적 세계에 눈뜨기 시작하고, 독립적인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독자성을 추구하여 독립하려고 하지만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못하고 의존하려는 독립과 의존의 양면성을 지니게 된다. 넓은 사회나 작은 집단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회나 집단에 소속하는 의존을 원하기도 하면서 대다수와는 다른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우리들은 여러 가지 ∼로서의 자기를 바탕으로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다. 고등학생으로서의 정체성, 부모나 가족과의 관계로서의 정체성, 친구로서의 정체성 등은 물론,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직업이나 역할로서의 정체성 등 우리들의 정체성은 복합적이고 총체적이라 할 것이다.
현대사회는 가족의 역할이 약화되고, 공동체의 전통이 점점 소멸되고 있으며, 미래 사회에 대한 전망은 불확실하여 청소년들이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많은 실험을 하게 된다. 연예인들을 흉내내기도 하고 어른들의 문화를 거슬러보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러 가지로 제한을 받기 마련이다. 때문에 청소년들은 이런 벽을 뛰어넘는 마술의 힘을 선망하여 환타지 소설을 즐겨 읽기도 한다. 김만중이 쓴 의 주인공 성진이가 잠시 꿈 속에서 8선녀와 놀다가 돌아오듯이 환타지 소설을 읽으면서 현실 밖에서 위안을 찾기도 하는 것이 청소년들의 독서 실태인 것이다.
우리들은 청소년들을 두고 주변인 또는 경계인이라고 한다. 주변인, 경계인이란 본래 두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문화나 민족의 갈등 속에서 그 어디에도 자기 동일화를 하지 못하고 적응 실패에 허덕이는 유형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소년을 두고 하는 말은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독립과 의존의 그 경계에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청소년을 두고 하는 말이든 문화나 민족을 두고 하는 말이든 모든 경계에 있는 것들은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것들이다. 경계에는 중심부나 주변부에서는 볼 수 없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나를 찾는 것은 자아라는 인격의 구심점인 기억과 체험을 바탕으로 이를 정돈하고 통일하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경험, 사고, 행동이 인격 속에서 나를 찾아야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말이나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더 낫다.라는 밀의 말에 우리들은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런 말도 있다. 너는 그 자체로 경이로움이고, 독창적인 존재이다. 이 세상에 너와 똑같은 아이는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수백만 년의 유구한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도 너와 똑같은 아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너는 그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에 … 토드 사일러가 쓴 {천재처럼 생각하기}에 있는 말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를 마인드 맵으로 구성해 보자. 나를 가장 가운데 위치시켜 놓고 나를 중심으로 하나씩 둘씩 가지를 만들어 나가다 보면 나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알렉스 헤일리가 그토록 찾아 헤맨 {뿌리}에서의 킨타쿤테! 킨타쿤테! 킨타쿤테!, 그 함성은 그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 마인드 맵으로 구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발로 뛰어 실천한 결과의 기쁨이자 영혼의 울림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