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위께 대해 ‘당신’을 쓸 수 없는가? (2)
필자가 성경, 찬송가 가사, 주기도 본문 번역을 하는 중에 언제나 당면하는 문제와, 또 많은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문제의 하나가 하나님이나 예수님에 대해 제2인칭으로서 ‘당신’을 쓸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사실 성경이나 찬송가 등 자체가 아직도 통일성을 결하고 있어 성도들로 하여금 한층 혼란을 야기케 하는 요인이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면 먼저 그 실상에 대하여 알아보자. 성경에서 보면 하나님이나 예수님에 대하여 세 가지로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것은 1) 회피현상으로 예컨대 주기도(개역성경)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나라가 ……. 뜻이 …….” 등에서 헬라어 원어 sou(‘당신의’; 영어의 thy/your)의 번역을 전연 하지 않은 것, 2) 대체현상으로 마 16:16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영어: You are the Christ …….)의 ‘주’ 와, 요 17장의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의 ‘아버지’ 등 33회, 그리고 3) 직역으로는 새번역(1967년) 마 16:16의 “당신은 그리스도시요 ….” 및 요 1:49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 의 ‘당신’ 등 15여 곳이나 있다.
이제 이 문제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말 문법에서의 존대법(대우법)의 체계를 알아야 한다. 우리말 존대법에는 대체로 4 단계의 구별이 있는데, 그것은 1) 아주낮춤, 2) 예사낮춤(이상 비존대), 3) 예사높임, 4) 아주높임(이상 존대)으로 되어 있다(최현배 설. 그 외 에 반말도 있다). 이 체계를 먼저 ‘-하다’ 동사 명령형에 적용해 보면 1) 아주낮춤은 ‘해라’, 예사낮춤은 ‘하게’, 예사높임은 ‘하소/하오’, 아주높임은 ‘하십시오’ 이다. 그러나 이것을 제2인칭 대명사에 적용해 보면, 아주낮춤(아들이나 어린이 같은 대상)은 ‘너’, 예사낮춤(친구의 아들이나 제자뻘)은 ‘자네’, 예사높임(부부간 또는 그 아래뻘)은 ‘당신’이 되나, 아주높임에 해당되는 제2인칭 대명사는 아예 없다. 즉 부모나 선생 등 어른들에게 쓸 수 있는 제2인칭 대명사가 아예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말에서는 명사로 대치하여 표현하는 길밖에 없다. 예컨대, ‘선생님’ ‘어르신’ 등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사회에서 제2인칭 대명사 중 최고의 존대법으로 대용하는 ‘선생님’이나 ‘어르신’ 등이 하나님이나 예수님에게 쓸 수 없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성경이나 찬송가 가사에서는 많은 경우에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대하여 ‘아버지’ 나 ‘주’(主)로 대치하여 쓰고 있는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 천주교에서는 선교를 받은 초기부터 주기도문과 그 외 성모 마리아와 하나님에 대한 기도문에서 그 대상에 대한 제2인칭 대명사를 ‘너’로 번역하여 오랫동안 써왔다. 이것은 라틴말의 존대형 vos 보다는 비존대형 tu 를 직역한 것인데 이는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친근감이 있다는 데서 그렇게 하였으나, ‘너’가 너무 비하칭(卑下稱)이 되어 끝까지 대중의 전면적인 호응을 받지 못하여 1965년 이후 ‘아버지’란 명사로 대치하고 있다(서정수, “초기 우리말 성경의 표기법과 대명사에 관하여” 참조).
우리말의 존대법을 쓰는 문제에 대하여 가장 좋은 참고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일본어이다. 인구어(印歐語)에서는 동사나 형용사나 인칭대명사에까지 거의 존대법이 없는데 반하여 일본어는 동사로나 인칭대명사로나 존대법을 쓰는 것이 우리말과 흡사하고, 어떤 점에서는 우리말보다도 더한 형태로 쓰인다. 예를 들면, ‘먹다’ 동사에서 영어의 eat 나 독일어의 essen 은 그 주체가 누구임을 막론하고 다 같이 쓰이지만, 우리말에서는 그 주체가 아들이면 ‘먹다’이지만 주체가 아버지이면 ‘잡수시다’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어에서도 전자에서는 ‘다베루’(食べる)가 되지만, 후자에서는 ‘메시아가루’(召し上がる)가 된다. 그뿐 아니라 일본어에서는 존대의 주체에 속한 객체에까지 ‘오’ 나 ‘고’ 또는 ‘미’(한자로는 ‘御-’ )와 같은 경의접사(敬意接辭)가 쓰이는 것이다.
그러면 일본어에서 하나님이나 예수님에 대한 제2인칭 대명사는 어떻게 쓰고 있는가? 앞에서 우리말과의 대응을 살펴보면 분명하게 된다. 즉 우리말의 ‘너’에 해당되는 것은 ‘오마에’(お前, おまえ), ‘자네’에 해당되는 것은 ‘기미’(君, きみ), ‘당신’에 해당되는 것은 ‘아나타’(あなた) 이다. 그러나 우리말과 마찬가지로 그 이상의 존대를 나타내는 제2인칭 대명사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일본어 성경에서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대하여 제2인칭으로 부를 때는 어떻게 하는가? 1888년의 明治譯에서는 문어(文語)인 ‘なんぢ’((汝, 난지)를 썼으나 1955년의 개역으로부터 현재의 신개역, 신공동역에 이르기까지 우리말의 ‘당신’에 해당되는 ‘あなた’(아나타)를 쓰고 있다. 필자는 이제 우리말로써도 ‘당신’을 쓸 수 있다는 이론을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주장한다.
1. 신약성경 중에 예수님에 대하여 ‘당신’을 쓰고 있는 사례가 수다하지만 그러한 본문을 읽으면서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마 3:14, 12:2, 47, 9:14, 11:3, 15:2, 22:16-17, 막 5:7, 8:29, 3:11, 12:14, 눅 9:40, 20:2, 요 1:49 등). .
2. 독일어에는 제2인칭에 존칭 Ihr 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기도 본문에서 그것을 쓰지 아니하고 평칭(平稱=親稱)인 dein을 쓰고 있으며, 중국어에서도 존대인 ‘您’(닌)을 쓰지 않고 평칭인 ‘你’(니)를 쓴다.
3. 우리말과 거의 같은 존대법을 쓰고 있는 일본어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제2인칭 대명사로 우리말의 ‘당신’에 해당되는 ‘아나타’를 전적으로 쓰고 있다(전술).
4. 문학 및 수사법상의 사례로 시나 조사(弔辭) 등에 부모나 스승에 대하여 ‘당신’을 쓰는데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예: “어머니, 당신의 은혜는 하늘 같고 …….”
5. 한글학회 편 우리말 큰 사전에 ‘당신’에 관하여 “기독교인이 하나님에 대하여 사용하는 최고의 존대”라고 하여 그 정당성을 분명히 천명하고 있다.
6. 언어 사용에 있어 경어나 경칭은 실제로 소외감을 느끼게 하고 평어는 친근감을 느끼게 하므로 하나님과 예수님에게 평어로 친근감을 나타내는 것이 낫다.
7. 기도에서 하나님이나 예수님에 대하여 제2인칭으로서 ‘당신’을 쓰는 경우에는 신격에 대하여 근접감(nearness)과 친근감(intimacy)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8. 성경에서나 찬송가에서는 그 어휘의 의미에 대한 정확한 전달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일반적인 존대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그 어휘가 가진 지시적(指示的) 기능이 약화되므로 존대법보다는 언어의 지시적 기능을 우선시해야 한다. 예컨대, 존대법을 위한 화자 겸양법(話者 謙讓法)을 써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로 한다든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을 “저 같은 죄인 살리신 …….” 하면 매우 어색하게 된다.
이상과 같이 언어현상의 실제, 일본어, 독일어, 중국어 성경의 사례, 우리말 사전상의 증언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이 성경 번역 상으로나, 찬송가 가사에 있어서나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하여 제2인칭 대명사로 ‘당신’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이상의 학문적인 이론은 아랑곳없이 단지 한 가지 이유에서다. 즉 부모에게나 10년 이상의 연상 관계에서도 쓸 수 없는 ‘당신’이란 말을 하나님이나 예수님에게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한 가지 고정관념으로 기도에서 ‘당신’이라는 말을 쓰면, 마치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나 예수님에게 불경스러운 말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우리의 친근한 아버지인 하나님이나,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시는 예수님에게 더 친근하게 ‘당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참으로 합당하고 바람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