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측의 농간"이라는 묘한 이름의 출판사에서, 김영민 선생의 <동무론>을 복간하였다. 일요일에 열리는 시독모임에 갔더니, 새로 나온 동무론이 차 방에 놓인 책장 안에서 나란히, 얌전히 빛나고 있었다. 사진으로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남보라 빛 표지에 형광색 오렌지 글씨가 퍽 모던(!)하고, 한겨레출판에서 나왔던 옛 판본이 하드커버였던데 비하면, 알뜰한 편집에 가벼운 단행본이다. 아래는 신판 서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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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처음 낸 이후 10년을 넘겼다. '우주는 변화이며 인생은 의견'이라는데 그 사이 개인의 생각 따위가 바뀌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자기-생각의 체계 속에 붙박힌 강박증적 점착도 그 자체로 문제이며 필경 공부에 이르지 못하는 못난 꼴이지만, 나날이 국경을 넘실거리는 가벼운 생각들의 유통과 범람의 풍경도 공부의 틀을 구성해 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생활을 낚아내고 주체를 잡아채며 먼 미래를 기약하는 이론들에 골몰하게 된다. 일급의 첨단 과학자들까지도 우주의 뜻과 인생의 의미를 곱씹는 이야기를 속삭이기 시작하는데, 인문학적 실천에 나서려는 자들이 자신의 삶을 문제시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생각을 어찌 감히 공부라고 할 수 있을까. '동무'라는 개념은, 상상은, 실천은 그같은 공부길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이율배반이었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오직 인간만이 절망'이라고 줄기차게 외쳐왔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그게 피할 수 없는 일차적인 현실이었다. 내 삶의 나은 부분은 모조리 이 현실을 넘어서려는 집요한 노력의 덕이었다. 내게 있어 결국 철학으로 동심원을 그리는 학술, 그리고 제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제반 수행적 실천이 인문공동체라는 형식을 통해 만나게 될 것은 이 노력의 성격상 피할 수 없었다. 나는 이 노력을 믿었고, 이 공부길의 다짐을 전파하였으며, 부족한 재능과 인끔으로 새로운 관계와 공동체의 꿈을 구체화하고자 애썼다. '동무'가 세속의 빛으로 기능할 수 있으려면 이 관계가 공동체의 장소로 익어가면서 생활의 안팎에서 비평의 숲을 드러낼 것이었다. 언제나 인간적인 이율배반은 착시이거나 환영, 혹은 기껏해야 무능일 것이므로, 공부길의 긴 실천 속에서만 파사현정(破邪顯正), 허실생백(虛室生白), 그리고 엄현허성(嚴賢虛聖)의 샛길이 열릴 터이기 때문이었다.
동무는 절망의 세속을 굄돌 삼아 세우려는 반정립(反正立)이고 역설이며, 이상한 무능의 급진성이었다. 잡박한 세속 속이 아니라면, '일'은 무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메타이론적 보편성을 얻고서도 하나의 선택에 견결하고(行方), 시전(市廛)에서 도(道)를 구하며, 인간들과 더불어 꿈을 꾸지 않으면 대체 어쩌겠는가? 그렇기에 애초 이 기획은 세속 중의 세속인 자본제적 체계와 길항하고 불화하려는 생활의 양식을 구체화하고자 애썼다. <동무론>에서 드러나는 반정립의 테제나 그 태세(態勢)는 이같은 삶의 지향을 수렴하고자 한 때문이다. 인문학적 실천을 글-말-생활양식-희망의 4층 구조로 엮었으되, 특히 <동무론>에서는 '어긋나지 않고 외려 어긋내는'생활양식의 공동체적 장치를 통해 자본제적 습기(習氣)와 싸우면서 창의적으로 불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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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근작인 <집중과 영혼>(2017)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삶과 공부길의 성격은 서서히 변화한다. 우선 내 공부의 지향과 그 실천이 내내 견결하려고 했던 공동체적 지향에 약간의 변침(變針)이 생긴 것이다. 이 변침은 어디에서, 어떻게 생긴 것인지를 탐문해 보려는 게 이 짧은 서문의 취지다. 이런저런 곡절이 있었지만, 간단히 정리하자면 나는 내 공부길의 성격을 '다시'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 옮겨 놓게 되었다. 이는 선조적인 반동이 아니라, '직접성-> 매개성-> 직접성'의 변증법적 추이처럼, 혹은 '즉자->대자->즉자대자'의 종합처럼 내 자신이 걸어온 공부길의 도정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물론 이 위기(爲己)는 곧 '위기의 공부(危機之學)'였으니, 그 무엇보다도 내 자신의 무능과 불초를 절감하였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계기를 통해 나는 내 여전한 지론이었던 '인간만이 절망'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한시도 떨쳐낼 수 없었다.)
나는 우선 내 존재에 오래 묵은 먼지처럼 끼여든 '허영'을 씻어내어야만 했는데, 여기에서 자세히 논급할 수 없지만, 이 변화의 일단은 '개입의 존재론/윤리학'이라는 명제와 실천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자본제적 체제를 일차적 여건으로 삼고 동무라는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말한 것이 '동무론'이라는 위인지학(爲人之學)이었다면, 개입의 철학에서는 사물과 동식물, 그리고 귀신의 자리까지를 품어내려는 위기지학의 가능성을 조형한 셈이다.
철학과 인문학이 한결같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거듭 묻듯이, 공부하는 학인으로서의 나는 언제나 '공부란 무엇인가?'를 쉼 없이 물어왔고, 이 물음의 수행 그 자체가 또 새로운 공부길을 열어내곤 하였다. 좋은 물음은 새 문을 열어내고(賢問開門), 절실한 물음은 내 삶을 문제시하기(切問近思) 때문일 것이다. 지난 세월 적지 않은 책을 쓰면서도 이 물음이 계속되었던 데에는, 역시 최고의 공부란 최고의 물음 속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글쓰기와 탈식민성, 비평의 숲과 동무론, 그리고 집중과 개입 등등의 문제의식은 모두 물음이 새로운 물음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의 결실이었다.
2018년의 가을에 되돌아보는 <동무론>은 내 공부길의 필연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주체의 (재)구성이라는 묵은 숙제에 대한 내 해답이었으며 내 나름의 실천이었다. 소년기의 내가 키에르케고르적 단독자의 길에 매료되었다면, 동무는 자본제적 체제 속을 버성기고 어긋내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주체'의 길을 공동체적 맥락 속에서 조형한 것으로서 그것은 그야말로 성인(成人)의 자리였다. 그러나 이 길의 위기(危機) 속에서 자생한 위기(爲己)의 공부는 어쩌면 '개인 문사에서 출발하여 성인에 이른다(始乎士終乎聖人)'는 낡은 이념에 새롭게 접근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성인(成人)이 성인(聖人)을 바라보는 일은 차라리 자연스럽지 않은가? 역설적이지만 어쩌면 현성(賢聖)의 이념 속에서야 비로소 진정한 동무의 현실이 착근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론>의 마지막 문단은 이러하다.
"개입의 깊이와 무게를 알아챌 때 윤리는 존재론적 의미를 띠며 인간의 책임은 되살아난다. 신생(新生)이란, 곧 새로운 책임에 다름이 아니다. 그것은 보다 원천적인 책임에 열려 있는 태도와 실천이며, 내남없이 자신이 하는 짓의 전모와 그 영향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한다는 사실에 터해 있다. 대양(大洋)속으로 열려 있는 배가 작은 변침(變針)만으로 그 행로와 목적지를 아득하게 바꾸는 것처럼, 각자의 일상 속에 장착된 버릇의 기계들이 작고 꾸준한 변침을 실천함으로써 가져올 작은 희망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그것은 그 무엇보다 개입-이미, 늘, 자신도 모르게 지속되고 있는 개입-의 무서움을 깨닫는 일이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인간에게 부과되는 책임 때문이며, 물론 그 첫걸음은 개입의 자각에 있다. 신생이라, 오직 새로운 (상호) 개입의 희망인 것이다."(562쪽)
선생과 나는, 오랜 세월, 인연을 이어오고 있지만, "여경씨는 나한테 배운 사람이 아니"라는 선생의 단호하고도 일관된 확인 사살 덕분에, '나와 선생님 사이에 선생-후학은 언제나 미래형식(!)인가보다'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십여년을 바라보게 되면서, 오늘날 선생은 내 유일한 선생이고, 나는 선생의 여러 후학/후배들 중의 하나라는 점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삶이 비루하고 내 존재가 문드러진 복숭아마냥 흐느적거릴 때, 내가 섬기는 종교는 너무도 멀고 심드렁하게 나를 소외시킨다 여겨질 때, 오직 '살아있는' 선생과 동학의 비평만이 나를 곧추세우고 다시금 옷깃을 여미게 한다.
오래 뵈었지만, 막상 야무지게 무릎꿇고 배운 시간은 실로 시장기에 마신 물 한모금 정도로 감질나는 것이었다. 시독, 헤세이티, 외이당학숙, 동서치, 금시정, 낭영회, 서울 장주학숙, 평인사....하나같이 내가 접근하기엔 너무 멀었거나, 고심 끝에 '이제 야무지게 공부해야겠다'고 자세를 가다듬을 때마다 접히는 통에 '어찌하여 이리 어긋나는가' 한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나는, 저 <동무론> 말미에 붙은 엄청난 문장들을 읽고나서야,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선생으로부터 '자기개입에 민활하시라'는 권면을 듣고도 도무지 짚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물음을 드디어 물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모든 모임이 망하고 사라지는데 나는 어떻게 개입했을까.....'라는. 사람은,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물음은 묻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