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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목적있는 삶(4) 제자되어 예수님을 만납시다!
♣ 말씀 / 에베소서 4장 13절 – 16절(신약성경 313쪽)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아멘!
얘기 사자가 아빠 사자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우리 목에 있는 갈퀴는 왜 있는 거예요?"
아빠 사자가 대답했습니다. "우린 밀림의 왕자니까 무섭게 보이기 위해서지."
얘기 사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아빠, 우린 날카로운 이빨, 사나운 발톱을 가지고 있어요. 왜 그렇죠?"
아빠 사자가 대답했습니다. "우린 밀림의 왕자니까 다른 짐승들을 낚아채고 사냥하기 위해서지.
우린 밀림의 왕자란다."
그러자 얘기 사자가 아빠 사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빠 왜 우리는 동물원 안에 갇혀있어요?"
동물원 안에 갇혀있는 아빠 사자, 얘기 사자는 이미 밀림의 왕자는 아닙니다.
사람들의 놀이개감, 구경거리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세상을 정복하는 하늘의 왕자로 디자인해 주셨는데,
우리에 갇혀 살아가는 초라하고 못난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지내시는 분 아니 계십니까?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내 삶의 목적대로 우리 살아봅시다.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내 삶의 목적은 영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 “여러분! 건강하십니까?”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옆에 계신 분에게 물어 보십시오. / “건강하십니까?” “행복하십니까?”
서로를 바라보면서 최고로 행복한 표정으로, 축복인사를 나눕시다. / “건강하세요. 행복하십시오.”
옛 어른들은 "건강을 잃고 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밥먹었냐고 묻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맛있는 밥이 있어도 건강을 잃고 나면, 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며
아무리 포근한 침대가 있어도 건강을 잃고 나면,
그 자리가 포근하게 느껴지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보고 싶은 사람이 있고 보고 싶은 책이 있어도,
시력을 잃고 나면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건강이 최고라는 겁니다.
그래서 “밥 먹었냐? 건강하냐?” 고 묻고 또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는 개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가정의 건강도 교회의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를 위하는 화목한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요, 건강한 가정입니다.
우리 교회의 꿈과 비전이 무엇입니까?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큰 교회가 되는 것보다 The Best Church! 가장 좋은 교회,
가장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를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와 함께, 모든 교회가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를 만드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나 혼자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나라가 건강해야 나도 함께 더불어 잘 살게 됩니다.
아무리 큰 기업체라도 나라가 어려워지면, 그 기업체도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나 혼자 잘하면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가 건강하고, 함께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이 건강한 신앙을 가질 때,
나의 신앙도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만 건강하면 그만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지역의 교회가 건강하고, 한국교회가 건강할 때, 우리 교회도 건강한 교회가 됩니다.
그리고 앞서가는 교회, 모델이 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치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공동체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먼저 저와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건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제가 여러분에게 주님을 대신해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 교회생활은 건강하십니까?
여러분의 신앙 체온은 정상온도를 유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뜨겁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여러분 영혼의 맥박은 제대로 뛰고 있습니까?
교회생활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영혼의 소화 기관은 건강하십니까?
그 어떤 하나님의 말씀도 아멘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어떤 신앙생활의 어려움이나, 믿는 형제 자매들 때문에 입은 상처도
이겨낼 수 있는 소화능력이 있느냐 하는 얘기입니다.
여러분 영혼의 호흡은 건강하십니까?
우리 영혼의 호흡이라고 할 수 있는 기도생활을 잘하고 있느냐 하는 얘기입니다.
건강을 잃고 나면 다 잃어버리듯이, 교회생활도 영혼의 건강을 잃어버린채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과 은혜를 체험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루는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일찍이 키에르케고르는 현대교회를 꼬집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다. 그런데 교회는 더 엄청난 일을 했다.
포도주를 물로 바꾸어 버렸다." - 이 말을 받아 어떤 신학자는 "현대교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포도주를 담았던 항아리마저 깨버렸다. 깨어진 항아리에
성직자도 찔렸고, 성도들도 찔렸고, 이웃들도 찔렸고,
교회를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이 실망함으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도, 시대도,
사회도, 역사도 찔려 피를 흘리고 있다.“ 고 혹평했습니다.
이처럼 교회를 비판하는 소리는 어제 오늘의 소리만은 아니었습니다.
캐토릭의 교황 이노센트 4세와 대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교황청 발코니에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바티칸 시로 각 국에서 보내온 헌금주머니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교황은 말했습니다. "선생 보시오. 베드로 사도께서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말했는데,
지금 교황청은 은과 금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합니다. "그러나 로마교황청은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돈은 넘치지만, 예수 이름의 능력,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성도들과
교회를 질타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건강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교회가 건강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세계가 놀랄 만큼, 가장 급성장한 교회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가장 급성장했다가 가장 빨리 성장이 멈추어진,
가장 빨리 쇠퇴하는 교회라는 오명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와 이 민족의 역사를 이끌어갈 힘이 없습니다.
허약 체질로 교회가 성장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교회가 건강해야 합니다. 교회에 속해 있는 성도들이 건강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와 성도가 건강하게 성장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의 비전이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와 성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를 주님의 심장 속에 있는 교회,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로 그 교회,
주님께서 마지막 때 보시고 싶어하는 바로 그 교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작은 우리 교회이지만, 세계 열방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꿈입니다.
이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뼈다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호흡으로 다시 살아나는 건강한 생명을 가져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할 사람들로 살아가면 안 됩니다.
이 땅을 구원할 건강한 의인 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큰 교회가 되는 것보다 먼저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건강한 가치관과 건강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일찍이 종교에 망해본 경험을 가진 민족입니다.
조선은 유교에 망했고, 삼국시대는 불교에 망했습니다.
유교에 망하고, 불교에 망한 이 나라 이 민족을 우리가 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섬기는 교회와 성도 여러분이 건강하지 아니하면,
사람들은 금방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은, 무익한 공동체와 성도, 해로운 공동체와 성도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물론 우리 교회와 성도 여러분에게도 연약하고 부족함, 허물도 많이 있음에 틀림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난 이천 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교회공동체를 구원공동체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를 통하여 많은 영혼들이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두통 있다고 모가지 자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이 씻은 물이 더럽다고 물을 버릴 때 아이와 함께 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가 많이 잘못되었다고, 성도들이 문제가 있다고,
그래서 복음도 예수도 함께 버릴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교회에 문제가 많아 보이는 것은 거기에는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연약하다고 하는 것은 교회의 연약성 때문이라기 보다는,
거기에 연약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흠이 많고 부족이 드러나는 이유는,
나와 너 우리 모두가 아직도 부족하고 허물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교회의 이 연약성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여기 모인 우리가 거룩하기 때문이 아니고, 부족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는 성령님이,
이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허물 많은 우리를 거룩하고 정결하고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예수님에 보혈의 피의 능력이,
이곳에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교회 생활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 할 수 있을까요?
너도나도 신앙생활이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이 땅에 성도들이 복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떠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어떻게 하면 그들을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요?
”교회가 교회다워지면 됩니다.“ ”예배가 예배다워지면 됩니다.“
“이제는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와
성도의 모델을 찾아, 그 모델의 모습대로 닮아가면 됩니다.” 믿습니까? 아멘!
여러분! 그러면 이 땅에 존재하는 건강한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무엇을 해야 건강한 신앙생활이 됩니까?"
우리는 우리 인간을 만들고, 교회를 만드신 하나님께 물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교회와 우리 성도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우린 진지하게 하나님께 물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나 주님의 기쁨이 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아버지를 모신 형제 자매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이웃을 사랑으로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불신자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이 땅을 정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 우리들의 모델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2천 년 전,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탄생하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누구입니까? 성탄의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예비한 후, 이 땅에 다시 오시마 약속하신 재림주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바로 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늘 나라 백성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닮기 위해 구원받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그리스도인“ 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닮기 원하여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제자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과 제자라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인 동시에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그렇게 믿는다면, 예수님을 닮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 성장훈련을 받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어린 아기를 키울 때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러나 힘만 드는 것이 아닙니다.
즐거움도 대단합니다.
아기를 키우면서 가장 큰 즐거움은 날마다 아기들이 자라간다는 사실입니다.
누워 있기만 하던 아기가 어느 날부터 몸을 뒤집고 기어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첫 걸음마를 내디딜 때, 심장이 뛰도록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온 식구들이 박수를 칩니다.
어느 날부터 자기 식구들을 알아보고 방긋방긋 웃습니다. 엄마 아빠를 시작합니다.
어느 날부터 조금씩 말을 하고, 흥얼흥얼 노래함으로 온 가정이 웃음바다가 됩니다.
그러더니 마침내 한글을 깨우칩니다. 밖에 데리고 나갔더니 간판을 척척 읽어냅니다.
엄마 아빠는 우리 가정에 천재가 났다고 너무 신나서 온갖 그림책,
동화책을 사들이기에 바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입을 열었다 하면 손자 자랑에 바쁩니다.
자랑하려면 오늘 점심을 사면서 자랑하라고 해도, 점심을 사면서까지 자랑을 합니다.
목회자인 저의 즐거움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린 신앙인이 성장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얼마나 행복하실까?
교회 찾아나올 때 얼굴을 보면, 처음 악수할 때 얼굴이 기억납니다.
지옥에서 출장 나온 얼굴 같았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그 얼굴에 기쁨이 넘쳐나기 시작합니다.
혼자서 성경을 읽기 시작합니다.
기도할 줄 압니다. 모임에 나와서 봉사를 합니다. 얼마나 목회자가 행복한지 모릅니다.
한 마리 새가 하늘을 솟아오르기까지 얼마나 퍼덕거리고 애를 쓰는지 모릅니다.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수 천, 수 만번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다가 떨어지고 날다가 떨어지면서,
마침내 하늘을 높이 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집을 짓는 방법을 가만히 관찰해 보면, 아주 이상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제일 먼저 새끼들이 사는 집을 지을 때 사용하는 재료는 가시덤불입니다.
그 다음 가시 사이사이에 삐쭉삐쭉 찌르는 돌멩이들을 가져다 박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짐승이나, 새의 깃털을 덮어서 마침내 보금자리인 둥지를 완성합니다.
그 둥지에 알을 낳고, 그 알에서 새끼가 태어나면, 어미 독수리는 열심히 먹이를 갖다 나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독수리 새끼가 자라면, 바깥으로 날 수 있도록 날개가 퍼덕거리면,
새끼는 나가기 싫어 날개를 접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어미 독수리는 둥지에서 날개를 퍼덕거려 둥지의 깃털은 다 날아가게 하고,
가시덤불과 돌멩이들만 남게 만듭니다.
삐쭉삐쭉 찌르는 가시와 돌맹이들 때문에 거기서 더 견딜 수 없던 새끼들이
벼랑에서 떨어집니다. 새끼들이 잘 날지 못해서 땅에 떨어지게 될 것 같으면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어미는 쏜살같이 가서 새끼를 잡아챕니다.
그렇게 하기를 수십, 수백, 수천번 하는 사이에 독수리는 하늘을 나는
하늘의 왕자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내가 스스로 훈련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 보금자리를 흔들어서라도,
기도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때로는 고난을 주고 시험을 줘서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슬프게도 많은 크리스챤들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 다닌지 10년 2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계속 기저귀를 차고 젖병을 빨며 영적 유아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왜요? 성장하기 위해 훈련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성장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과정에 참여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훈련과정에 헌신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자녀는 태어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제자는 훈련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떤 일에 헌신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어떤 일에 헌신하기를 원하십니까?
영적 성장이라고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면이 있습니다.
흔히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영적 성장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영적 성장은 오토매틱이 아닙니다.
교회에 나오면, 예배에만 참석하면 믿음이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일주일에 한 번 나와 예배 드리는 사람은
생명줄만 부지하고 살아가는 것이지, 성장은 어렵습니다.
어린아이가 모유도 먹어야 되고, 이유식도 먹어야 되고, 밥과 고기도 먹어야 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신앙훈련을 받으면서,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 다닌 연수와 직분의 경력에 따라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저절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느니라.” 믿습니까?
영적 성장은 시간이 흐른다고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신앙은 성장되지 않은 채, 신앙 연수와 직분의 경력만 자꾸 쌓여 가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전혀 다듬어지지 않고,
훈련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영적 성장은 의지적인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헌신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장하기를 원해야 하며, 성장하려고 결심해야 하며, 성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영적 성장에 대한 잘못된 또 다른 오해는 영적 성장은 신비한 것이며,
성숙은 선택받은 소수만이 이룰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영적 성장은 아무나 하나? 나 같은 사람들은 이류 크리스챤으로 남아 있으면 그만이지.
적당히 믿다가 천국만 가면 그만이지' 하면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스스로 포기하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숙이란, 하루 몇 시간씩 기도하고, 성경 열심히 읽고, 사역훈련에 참예하고, 헌신하는,
교회 안의 몇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도전해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포기한 채,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이,
누구나 다 예수님을 닮을 때까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 때까지
성장하기를 원하고, 하나님은 기대하고 여러분을 도와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발전하기 위해서, 성장하기 위해서, 성숙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이웃을 섬기기 위해서,
부단히 훈련받는 사람이 마지막 때에 주님을 닮은
영광스러운 주의 백성으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영적 성장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영적 성숙은 신비한 열쇠만 찾으면 즉시 일어나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현대인들은 급해서 기다리는 일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음식도 fast food점을 좋아하고 빨리 먹습니다.
그러다가 살이 찌면, 일주일 아니 3일 완성다이어트를 찾습니다.
진득하게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하기 보다는
족집게 과외로 단시일에 최대의 효과를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대가 영적 성장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즉시 변화시켜 줄 경험이나, 부흥회,
또는 어떤 사람이나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분명히 밝혀드리는데, 수많은 인스턴트 식품이 나왔지만
'인스턴트 영적 성숙' 이란 없습니다.
영적 성숙이란 반드시 시간이 걸리는 과정입니다. 성숙에는 지름길이 없습니다.
열심 있는 예배생활과 셀 목장 참예, 그리고 교회가 마련한 사역훈련 훈련에 참예하게 되면
영적 성장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 모두 내가 했던 일들을 동일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You can be a leader!” 여러분도 예수님의 제자가 다 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들도 예수님처럼 12제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보다 더 큰 일도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이 성취될 수 있습니다.
미국 동부의 유명한 성공 철학자 지그 지글러(Zig Ziglar)는 인간의 잠재의식이 한 사람의
성공과 성숙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를 실험을 통해서 입증하였습니다.
지그 지글러의 실험 대상은 벼룩이었습니다.
그는 벼룩을 병에 담아 놓고 뚜껑을 덮어놓았습니다.
여러분, 벼룩의 점프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잘 아시죠?
이 세상 그 어떤 생명체도 자신의 신장에 비례해서 벼룩만큼 높이 뛰어오르는
생명체는 없습니다. 그 만큼 높이 뜁니다.
지그 지글러가 병에 담아 놓은 벼룩도 처음에는 아주 열심히 병안에서 뛰어올랐습니다.
뛰어 오를 때마다 병 뚜껑에 머리가 부딪힙니다.
그래서 벼룩이 생각을 하기를 "아, 내 능력은 병 뚜껑까지로구나" 하고
스스로 자기의 한계를 정해버렸습니다.
이쯤 되자, 지그 지글러가 병의 뚜껑을 열어놓았습니다.
벼룩이 병을 빠져나왔을까요?
이미 자신의 한계를 병 뚜껑으로 한정했던 벼룩은
그 이상의 높이를 뛰지 못해 병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이 벼룩처럼 자신의 한계를 미리 정해놓고
'나 같은 사람이 이 정도 신앙생활 했으면 됐지, 뭐!'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향하여 만들어 놓으신 영광스런 세계, 복된 세계가 있습니다.
여러분을 통하여 정복하길 원하는 엄청난 세계가 여러분 앞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훈련과정에 몸 담고 헌신하십시요. 그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길입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왜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까?
온전한 신앙인으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영향력 있는 사역자로 쓰임 받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받은 복을 이 땅에 나누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얼마만큼 성장하고 성숙하기를 하나님은 기대하실까요?
우리는 예수님을 닮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를 당신의 아들 예수님처럼 만드셨습니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 1:26)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특권이며 존귀한 신분입니까?
우리가 자녀를 얻었을 때, 우리가 얼마나 흥분했습니까?
나를 꼭 닮은 생명의 신비! 너무 너무 신비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갈 때에 기뻐하십니다. 흥분하며 좋아하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목적은 편안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인격, 그리스도와 같은 사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CEO 징기스칸” 이란 책이 있습니다.
800년 전에 살았던 한 영웅이 오늘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그가 정복했던 땅이 얼마나 넓으냐 하면 7백 7십 7만 평방 킬로미터! 이것이 얼마나 되느냐?
알렉산더, 나폴레옹, 히틀러가 정복했던 모든 땅을 합친 것보다 더 넓은 땅입니다.
역사상에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던 시대의 영웅입니다.
징기스칸! 어떻게 150년 동안 영향력 있는 통치를 할 수 있었을까?
그의 인물 됨됨이, 성품 됨됨이가 워낙 컸기 때문에
넓은 세상을 정복할 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젊은 시절 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른 부족과 전쟁을 하다가 아내를 빼앗겼습니다.
힘없고 젊은 어린 나이에 강한 부족을 쳐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웃 부족들과 힘을 합치고, 그들과 화친하고,
그들과 하나가 되어 명분 있는 싸움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당히 쳐들어가 아내를 되찾아 왔는데,
그렇게 아내를 되찾았을 때는 이미 다른 사람의 아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합니까? 징기스칸은 껄껄 웃더니 "당신 잘못이 아니요.“
그리고 그 아이를 자기 아들로 삼습니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이 아이의 이름을 "조치" 라고 지었습니다.
그 말은 "나그네 손님" 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차별하지 아니하고 사랑했다고 합니다.
묻습니다. 여러분의 성품의 그릇은 얼마나 크십니까?
여러분의 믿음의 그릇은 얼마나 다듬어져 있습니까?
축복의 그릇은 얼마나 큼직하게 준비되어 있습니까?
큼직하게 쓰임 받도록 하나님 앞에 여러분 자신을 한번 던져보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지금 꽤 괜찮아 보여도 훈련, 성장, 성숙이 중단되면
"먼저 된 것처럼 보이나, 결국은 나중 됩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약해 보여도, 신앙이 어리고 연약해 보여도, 앞설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하고 성숙하는 일에, 여러분의 우선순위를 부여 하십시오.
하나님 나라 가치에 집중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내 삶의 목적을 멋지게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실패하는 신앙생활을 했어도 괜찮습니다.
초라한 모습으로 신앙생활 했어도 괜찮습니다.
지금까지는 전반전이 끝났을 뿐이라고 생각하시고,
남은 후반전에 멋지게 역전하는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함께 해 봅시다.
막스 비어의 소설 “행복한 위선자” 는 비양심적인 악인 로드 죠오지 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마음뿐 아니라 행동에도 얼마나 야비했던지
얼굴 모양에서도 야비함이 가득 흘러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소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소녀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싶은데 그의 얼굴만 보아도 기겁하고
도망갈 것을 생각하고 가면을 씁니다.
로드 헬은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고심한 끝에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인자하게 보이는 가면을 쓰고
프로포즈를 해서, 마침내 결혼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1년 2년... 5년 6년 지난 사이에
사랑하는 친구가 집에 왔다가 로드 헬의 가면을 벗겨 버립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가면속에서 드러난 로드 헬의 얼굴은
참으로 거룩하고 아름답고 인자한 얼굴 모습이었습니다.
거룩해지고자 애쓴 로드 헬을 하나님이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얼굴 모양까지 진짜 거룩하게 인자하게 바뀌어져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자는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주님이 원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이 원하는 참으로 거룩하고 아름답고 인자한 얼굴 모습을 가진
성숙한 예수님의 제자로, 아니면 성숙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는 각오로
예수님을 만나기를 진심으로 원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마무리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