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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요한복음(22) / “말씀 중심의 신앙생활”
☞ 말 씀 : 요한복음 6장 60절 - 71절 (신약성경 p.154)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2.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5.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아멘!
+ 서로 사랑의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행복하십시오.
요한복음 6장은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놀라운 기적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오병이어의 기적이 의미하는 귀한 영적 교훈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 무엇이고, 참 신앙이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한 교회의 부흥은 어떻게 나타나야 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가 되는 말씀을 증거하셨을 때는 많은 무리가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기독교의 핵심이 되는 십자가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는 많은 사람들이 물러갔습니다.
다시 말해서 증거가 있을 때는 부흥이 일어났는데, 진리의 핵심을 말했더니 다 흩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곁에 모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이 행하신 병 고치는 표적 때문이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 2절 말씀입니다. /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아멘!
예수님께서 각종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치시는 표적을 행하자, 그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요즘도 '신유 집회' 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병 고침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곁에 모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 때문이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 26절 말씀입니다. / "...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예수님의 오병이어 이적을 통해 떡과 생선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에 사람들이 벌떼같이 모였다는 말씀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예수님을 믿으면 건강해지고, 출세하고, 만사형통 한다는 번영의 복음, "하면 된다." 는
적극적인 사고를 외치는 설교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목회에 성공했다는 목사님들이 말하기를 "꿩 잡는 것이 매다. 어떻게든 많이 모으면 그것이
진리이지, 앞뒤 재면서 왜 따지느냐? 그러므로 사람들을 많이 모으는 것이 성공의 척도이다."
라고 양적 성장, 물질 성장을 주장합니다.
물론 지금도 예수님을 믿으면 병이 났고, 배부르게 되고, 출세하게 되고, 건강하게 되기에,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해서 치유와 회복을 선포하고, 예수님의 권능으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아무리 병을 고치고, 아무리 하면 된다는 메시지를 통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할지라도 거기에만 머물러 있으면 비진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니까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모든 병을 다 고쳐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니,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또 먹여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 "우리의 왕이 되어주십시오."
물론 예수님은 피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와 병을 고쳐주고, 먹여 주고, 왕으로 삼으려고 했던
이유가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기 위함임을 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큰 부흥을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헤매고 있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병을 고쳐주시고, 먹여 주시고, 왕으로 삼아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려고 했던 예수님 당시의 무리들과 똑같은 교인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생명의 떡이다. 내가 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었는지를
아느냐? 그 떡을 먹고 육체의 배부름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육체의 배부름을 통해서
영의 배부름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니라."
그래서 예수님은 "나의 피와 나의 몸을 먹지 아니하고는 생명을 얻을 수 없다.“ 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윤리로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보통 어린이주일에는 이런 메시지가 전달됩니다. "여러분, 자녀들을 잘 양육하십시오."
'참 좋은 말씀이군. 교회는 자녀 양육에 대해서 관심이 많구나' 하면서 흡족해 합니다.
그 다음 주는 어버이주일입니다. "주 안에서 부모님을 공경하십시오." 하고 설교하면, '역시 기독교는
효를 강조하는 종교구나. 예수님을 믿으면 다 효자 효녀가 되겠구나.' 하면서 만족해 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살인하지 마십시오" 하였더니, '요즘같이 험한 세상에서는 역시
종교교육을 시켜야만 심성이 순화돼지. 역시 우리 자녀들은 교회에 보내야 제대로 자라날 수
있어.' 라고 생각합니다.
추수감사절로 지키면서 “여러분! 감사하며 사십시오.” 하고 설교하면, ‘그래 감사하면서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지, 역시 기독교는 좋은 종교야“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신앙생활을 하나의 윤리로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인간은 죄인이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고서는 구원받을 길이 전혀 없다." 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죽음 이후에 부활이 있고, 심판이 있고, 천국과 지옥이 실재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십자가의 길을 걸으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래서 십자가 복음을 설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십자가의 길과 믿음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십자가 복음 설교에 은혜 받았다는 사람들도 보면,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심지어는 십자가 복음 설교가 계속되면, 들을게 없다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도 보면, 유대인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불리 먹으니까 참 좋습니다.
그래서 많은 무리가 따랐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십자가의 말씀을 증거하십니다. 십자가의 메시지를 증거하고 헌신을 요구합니다.
"너희들이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그랬더니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다 떠나갔습니다.
떡을 먹는 육에 대한 말씀에서, 십자가 복음인 영에 대한 말씀으로 설교가 바꾸니까 다 떠나갔습니다.
육적인 배부름보다는 영적인 배부름이 더 중요하다고 설교하니까, 예수님 곁을 다 떠나갔습니다.
60절을 보겠습니다. /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여기서 예수님을 말씀을 듣고 어렵다고 하는 것은 그 말이 틀렸다는 뜻이 아닌
"나는 싫다" "그런 말씀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는 뜻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님을 찾아 온 유대인들은 "우리가 십자가 길을 걸으려고 예수님께 온 것도 아니고,
영적 배부름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 주고, 밥을 주고 생선을 주어
배부르게 하고, 예수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복을 부어 준다길래 왔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웬 고난의 십자가가 나오고, 영적 배부름이 나오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 떠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은혜를 받고 아멘 했으면, 죽도록 충성해야 되고, 선교해야 되고,
고난의 십자가를 져야 되고, 십일조 생활을 해야 된다고 말하면서도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
복음을 설교하면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이젠 듣기 싫다." 고 말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은혜가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는 믿음이 약해서 그렇게 살 수 없다." 면서 불순종의 길로 걸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을 아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진정한 진리를 선포하면 수가 줄어들 수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도 예수 십자가의 복음은 선포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선포된 복음은 ‘오직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의 복음‘ 뿐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어했고, 핍박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초대교회 사도들이나 성도들이 ‘그래, 이렇게 많은 핍박 가운데서도 3천 명이 모이는 것을
보니,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아닌 병 고치는 신유의 복음, 만사형통 한다는 물질 축복의 복음을
전하면 핍박도 받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사람들이 좋아라 하고, 그러면 하루에 3천명이 아니라
하루에 3만 명도 모일 수 있을거야.‘ 하고서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의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만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병 고치는 신유의 복음, 만사형통 한다는 물질 축복의 복음을 전하면 핍박도 받지 않고,
사람들도 많이 모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잠시 뿐 영원한 부흥성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의 복음을 믿지 않으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만을 전한 것입니다.
중국교회를 보십시요. 핍박 이전에는 부흥이 안 되던 교회가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예수 믿으면
죽인다고 하고, 예수 믿으면 감옥에 가둔다고 하고, 예수 믿으면 벌금을 내야된다고 하니까
오직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의 복음만을 믿고 전하므로 더 큰 부흥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믿어야 할 복음은 오직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의 복음뿐이요,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
역시 오직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의 복음뿐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오직 십자가의 복음과 부활의 복음만을 믿고 전하면, 우리는 참 진리로 구원받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고, 우리 교회는 날마다 믿는 사람들이 더하는 큰 부흥이 일어나게 됩니다.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이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만을 믿고 전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니라.“(행 2:47 / 행 16:5)
결국 우리가 믿음으로 은혜 받고 구원받을 복음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요, 우리 교회가 진정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것도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 주님을 위해 충성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 위해서
배부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오늘 본문 63절 말씀을 중심으로 “생명” 에 대한 말씀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63절입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아멘!
세상의 모든 종교는 "우리 속에 있는 도를 깨우치면 구원을 받고, 우리 속에 있는 것을 잘 개발하면
발전이 있을 것이다.“ 하고 ‘인간의 가능성’ 을 강조합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득도' '각성' 또는 '깨달음'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일반 종교를 믿으면 자기 만족이 있고, 자기가 무엇인가 된 것 같습니다.
자신의 고행과 수행으로 자신 안에서 영적인 것이 살아나고, 그래서 도인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외침은 무엇입니까? 전혀 반대입니다. "너는 가망이 없다'라고 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너는 죽을 죄인이요, 소망도 없고 가망도 없고, 너 혼자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길이 전혀 없다."
로마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 3:10-12,23/6:23참조)
인간의 모든 가능성을 밀봉해버립니다. 그런 다음에 무슨 말씀을 합니까? "오직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드는 것뿐이다. 예수께서 모든 일을 다 이루셨다."
이에 교만한 사람들은 "그럼 인간은 꼭두각시란 말이냐? 인간은 무엇을 하란 말이냐?" 하고 화를 냅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고전 1:22,23 참조)
"십자가의 도가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고,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니라."
오늘 본문 63절에 보면, 우리 예수님은 죽을 죄인이요, 소망도, 가망도 없고, 혼자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길도 전혀 없는 우리 인간을 "살리는 것은 오직 영" 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영원히 사는 길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만들고, 영원한 새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요한복음 3장 5절, 6절에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그러므로 우리를 영적으로 살리는 것은, 우리 인간의 활동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건져 주시고, 우리를 변화시켜 주셔야만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것은 돈을 많이 들여 지은 교회당도 아니요,
그 교회당 안에서 행해지는 현란한 음악도 아니요,
조직적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나 방법도 아니요
목사의 듣기 좋은 멋진 설교도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 성령님 뿐입니다. 믿습니까?
지금 중국교회는 파이프 오르간이 없이도 부흥하고 있고, 장중한 성가대가 없이도, 전도 훈련 없이도,
은혜롭다는 경배와 찬양 모임이 없이도 지금 엄청나게 부흥하고 있습니다.
그 부흥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성령님을 의지하는 사역 , 성령님이 일하시는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심령을 변화시키는 것은 오직 성령님의 임재라는 것을 깨달아 기도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의 심령을 변화시키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 것은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꼭 기억할 것은, 성령의 사역이 함께 하기를
먼저 기도하고, 일하면 거기에 반드시 기적이 일어나고,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생명을 살리시는 일을 할 때, 사용하는 도구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63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예수님의 말씀 자체가 영이요,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사용하는 도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6장 17절 말씀입니다. /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말씀의 검을 사용하셔서 우리로 거듭나게 만드십니다.
야고보서 1장 18절 말씀입니다. / "그가 그의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았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말씀을 사용하셔서 우리 가운데 생명을 심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입니다. /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시대에 있어서 우리 인간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책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말 이 나라를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십시오. 그것이 우리나라를 살리는 길입니다.
정말 자녀들을 사랑하십니까?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주십시오. 그러면 그 영혼이 살아납니다.
정말 이웃들을 사랑하십니까?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주십시오. 그러면 그 영혼이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것에 신경쓸 것이 아닙니다. 말씀증거에 온 힘을 쏟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교회는 다른 것에 신경쓸 것이 아닙니다. 말씀증거에 온 힘을 쏟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2장 4, 5절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오직 성령을 의지하여 하나님 말씀을 증거할 때, 그것이 우리를 살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여건에서든 나를 살리신 성령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야 합니다.
흩어지는 군중을 보면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이때 베드로가 굉장히 중요한 고백을 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68절)
여러분에게도 이런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영생의 말씀이 있는데 내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무리는 놀라운 이적에 매혹되어 예수님을 쫒다가, 십자가의 복음이 걸림돌이 되어 모두 다 떠났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적에 대해서는 아무런 매혹도 없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는 인생을 걸고 쫒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 또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병 고치는 이적이나, 세상적인 축복에만 마음을
빼앗길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과 하나님 말씀에 우리 신앙의 기반을 두고,
성령님과 함께 영혼들을 살리는 사역에 헌신하는 사역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