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 2024.01.25 03:30
기온 1.5도 상승 의미
숫자는 상상 이상으로 큰 의미를 담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죽을 사(死)라는 한자와 발음이 겹치는 숫자 4를 매우 싫어하죠. 반면 숫자 9는 장수를 나타내는 오랠 구(久) 자를 떠올리며 좋아해 왔고요. 서양 문화권에서는 날짜에 숫자 13과 금요일이 겹치면 불운의 날이라고 여겨요. 숫자 7은 서양에서 행운의 숫자죠.
숫자 1.5를 기억해 주세요. 기후변화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숫자입니다. 국제기구 관계자나 기후과학자에게 1.5라는 숫자의 의미를 물어본다면 똑같은 답을 들을 겁니다. 바로 '기후 변화의 임계값'인데요. 임계값은 경계를 구분 짓는 값이라는 뜻으로, 임계값 위아래로 시스템이나 현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즉 기후변화는 1.5를 경계로 큰 차이를 보인다는 말이죠.
이 숫자는 지난 2018년 국제연합(UN)의 기후변화 담당 기관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기후변화의 임계값'으로 정했습니다. 당시 IPCC가 발표한 '지구온난화 섭씨 1.5도 특별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오르는 기온을 1.5도 미만으로 낮추면 기후변화가 육지, 담수 및 바다, 해안 생태계에 미치는 나쁜 영향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 폭이 절대로 1.5도를 넘지 말도록 막아야 한다는 말이죠.
어느 시점에 비해 앞으로 지구 기온이 1.5도가 오르면 안 된다는 걸까요. 그 시점은 '산업화 이전' 또는 '인간 배출로 인한 대기 온실가스의 증가가 지구 온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기 전의 기간'입니다. 기후과학에서 정의하는 '산업화 이전 기온'은 1850년에서 1900년 사이의 50년간 평균기온 13.5도입니다. 가장 광범위하면서 일관된 온도 기록이 있는 가장 이른 기간의 평균기온을 기준으로 삼은 겁니다.
그렇다면 언제 1.5도를 넘어섰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인간이 초래한 지구온난화가 산업화 이전 시대보다 지속해서 1.5도를 넘어서는 경우입니다. 단순히 지구의 평균기온이 특정 날짜, 한 달 또는 한 해에 그 선을 넘었을 때가 아니지요. 지난해 9월, 10월, 11월의 지구 표면 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이상 높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전 지구 기온이 1.5도를 넘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봄철이 되면 지구 평균기온은 다시 1.5도 미만으로 내려간다고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은 예측하고 있습니다.
1.5도를 넘으면 기후 재난이 극도로 많이 발생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기후 재난과 생태계 변화가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지점입니다. 1.5도를 넘는 순간 모든 종류의 기후 재앙이 발생한다고 생각하고 공포를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고속도로 속도제한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높일 때마다 사고 위험이 커진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고속도로 제한속도가 시속 100㎞라면 그 속도 이상으로 달릴 때 교통사고가 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후에 영향을 미치는 운전자이자 인간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제일 나은 방법은 1.5도를 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겁니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