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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2월 17일 대강절 셋째주일 낮 예배 설교 +
+ 제 목 : “예수오심(6) -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님!”
+ 본 문 : 요한복음 14장 1절 – 6절 (신약성경 172쪽)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멘!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선포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인 / 성경을 읽고 듣고 지켜 행하여 /
100배의 복을 받으리라. / 아멘! 아멘!
“인사만 잘 해도 먹고 산다.” - 사고행축 /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축복합니다.”
오늘은 예수님 오심을 기념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대강절 셋째 주일,
“예수 오심(6) :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님!”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선포합니다. “예수 믿는 나는 /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을 / 믿습니다. / 아멘!”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동안 가족, 직업, 고향 등,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이 그들의 유일한 인생 목표이고, 그들의 삶이었습니다.
그 예수님이 어느 날, 허리에 수건을 동이고, 대야에 물을 떠오신 후, 자신들의 발을,
씻기신 다음 “너희들도 나처럼 섬기는 자가 되어라. 그리고 나는 성경에 예언한 대로,
관원들과 대제사장들에게 붙잡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유일한 소망이요, 전부이신 예수님께서 갑자기 죽으신다는,
말씀을 하시자, 제자들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마음에 근심과 함께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런 제자들의 마음을 아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절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우리 예수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저와 여러분들에게, 똑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여러분! 믿습니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는 이 말씀 속에서,
우리 예수님은 우리 마음의 근심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이라고 강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를 지으시고,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려고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마음의 모든 근심은 눈 녹듯이 다 사라집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근심을 믿음이 아닌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의 근심에서 벗어나려고, 많은 돈을 벌어들여 쌓아두려고 합니다.
그렇게 돈이 많아지면 행복해지고, 마음에는 평안이 넘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지면 가질수록 불안하고, 마음의 근심을 더하게 하는 것이 돈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돈이 많은 사람들은 겉으로는 으스대지만, 사실은 그 심령에 평안이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마음의 근심을 벗어나려고, 권력을 가진 권세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마음의 근심이 없다면, 왜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닙니까?
그것은 권력이 마음의 불안과 염려, 근심과 걱정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일수록 경호원의 수가 더 많아지고, 근심도 더 많아집니다.
결국 이 세상의 돈과 권력은 마음의 근심만 더하며, 있는 평안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참 평안은, 이 험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보내 주시고,
그 외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만이, 내게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우리가 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의 모든 근심은 다 사라집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 평안이 넘치게 됩니다.
어느 날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거센 풍랑이 일어나 갈릴리 호수를 완전히 뒤집어 놓을 듯이 날뛰었습니다.
그래서 그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로 살았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애를 써 봅니다.
그러나 자기들의 능력으로는 어찌 해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예수님을 흔들어 깨웁니다.
그렇게 큰 풍랑이 일렁이는 가운데서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잠을 자던 예수님이,
잠에서 깨어나 제자들을 책망하며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왜 두려워하느냐?“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영접하면 모두 구원 받습니다. 승리합니다.
비록 홍해와 같은 우리 인생의 장애물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애굽 군대 같은 마귀가,
우리들을 둘러싼다고 해도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 주신 능력이 많으신,
예수님을 믿는 큰 믿음이 있는 사람은 마음의 근심이 사라지고, 참 평안이 찾아옵니다.
다니엘처럼 사자 굴에 던져지는 일들이 벌어지고, 에스더처럼 죽음을 앞에 두었어도,
예수님을 믿는 큰 믿음이 있는 사람은, 마음의 근심이 사라지고, 참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이 자라지 않으면, 마음에 근심이 싹트고, 두려움이 가득 차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아멘입니까?
남아메리카를 뻗어 내려가는 안데스 산맥은, 세계에서 기류가 가장 변화무쌍하답니다.
이 안데스 산맥 상공을 날아가던 비행기가 아주 나쁜 난기류에서 에어파켓을 만났습니다.
비행기가 갑자기 100 - 200미터를 급강하를 시작하면서, 비행기 안에 탔던 사람들이,
처음에는 내장이 흔들리는 듯한 큰 고통이 오고, 나중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오고,
비행기 몸체가 요동을 치자, 모든 승객이 사색이 되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맨 앞에 앉아 있는 한 소년은 비행기가 '쿵' 하고 떨어질 때마다 깔깔 웃습니다.
다행히 한 20여분 동안 그렇게 난기류에 흔들리다가, 안데스 산맥 상공을 빠져나가자,
비행기가 다시 안정을 찾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목적지를 향해 비행을 합니다.
비행기 안에 탔던 사람들이 안정을 찾은 후, 자신들이 그렇게 고통가운데 두려워 할 때에,
아무렇지도 않게 깔깔대며 웃었던 그 소년의 웃음소리가 궁금해, 옆자리 신사가 물었습니다.
‘애야, 넌 비행기가 흔들릴 때에 무섭지 않았니?’ ‘예, 나는 전혀 무섭지 않았어요.’
‘우리들은 비행기가 추락하면 죽을까바 참 무서웠단다. 그런데 왜 너만 무섭지 않았니?’
‘그것은요, 이 비행기의 조종사가 우리 아빠거든요. 나는 아빠의 조종 실력을 믿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의 고통을 느낄 때도, 그 아이는 자신의 아빠를 믿었기 때문에,
평안을 누렸고, 비행기가 뚝 떨어지면 롤러코스터를 타는 스릴에 기뻐하며 웃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우리의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는다면, 왜 근심해야 합니까?
그 어떤 일에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며,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야 마땅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믿는 창조주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되,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시는,
세심한 하나님이시오. 나를 사랑하시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예수님을 믿는다면 근심하지 말고 평안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께 그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우리에게,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엇까지도 근심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죽음까지도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죽음까지도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2절, 3절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아멘! 믿습니까? 아멘!
우리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두려움은 죽는다는 ‘죽음’ 이라는 두려움입니다.
우리 사람들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람들이 그토록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 앞에서 근심합니다.
이렇게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 앞에서 근심하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아멘!
그러면 우리 예수님이 준비하신 거처인, 우리 아버지 집은 과연 어떤 집입니까?
요한계시록 21장, 22장에 사도 요한이 본 우리 예수님이 준비하신 거처인 아버지 집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 앞에 내려오는데, 마치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것처럼,
인간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최선의 아름다움으로 꾸며져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예비한 아버지 집에는, 이 세상에 있는 애통하고 애곡하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애통하고 애고하며 울어야 할 일이 많은 눈물의 땅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많이 울고 삽니다.
너무 억울해서 울고, 너무 슬퍼서 울고, 고통스러워서 울고, 심지어는 너무 기뻐도 웁니다.
그러나 천국에는 눈물 흘릴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가,
천국에 입성하는 그 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친히 다 씻겨 주심으로,
천국의 첫 시작을 눈물 흘릴 일이 전혀 없는, 기쁨으로 살아가도록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하나님 아버지 집은 만나는 장소입니다.
우리가 오래 살았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이별을 했다는 이력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얼마나 많은 눈물과 깊은 아픔을 당합니까?
이 땅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의 장소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다시 만나는 곳입니다.
다시 만나되 절대로 이별이 없는 곳입니다. 영원히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과 살 것입니다.
그처럼 아름다운 곳을, 우리 예수님께서 친히 – 미리 가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집인 천국에 가면, 먼저 보낸 사랑하는 사람들을,
영광의 주님 앞에서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확실한 소망입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사랑의 아버지와 탕자의 이야기를 잘 압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에게 상속분을 요구하고, 이를 받아 먼 곳으로 떠났습니다.
아버지가 귀찮은 존재로 생각되었고, 아버지의 함께 있는 것이 싫어서 떠났습니다.
아버지의 자상한 가르침이 잔소리로 들렸고, 아버지의 배려를 간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분깃을 받는 즉시, 아버지가 없는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탕자는 그렇게 자유를 얻었습니다. 아무도 자기에게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돈은 그를 더욱 즐겁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자신은 모든 것을 얻은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임을 알게 됩니다.
자유가 아니라 방종임을 알게 되고, 아버님의 말씀이 잔소리가 아닌 사랑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난 뒤였습니다.
그는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돼지가 먹는 쥐염 열매로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습니다.
아주 비참한 존재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때가 되어서야 그는 중얼거립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고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 그리고 아버지의 집으로 갑니다.
이 탕자가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도 얼마든지 풍요롭게,
평안하게 잘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지 않고 관심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즐길까? 그러나 탕자의 삶의 종말은 비참합니다.
잠시는 풍요롭고 자유롭지만, 점점 하나 둘 그리고 모든 것을 잃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절대 가면 안 되는 영원한 지옥의 형벌과 완전한 사망의 길을 향하여 가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돌아서서 아버지의 집을 향하여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탕자는 품꾼의 하나로 써 주기를 바라며, 아버지의 집에 가까이 왔습니다.
고개만 넘으면 아버지의 집입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어떻게 들어가야 할까 생각합니다.
아버지께 가서 무슨 말을 먼저 드려야 할까? 아버지는 과연 나를 어떻게 대하실까?
아마 몹쓸 녀석이라고 당장 문을 걸어 잠그고, 집 안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실거야?
이런 저런 생각으로 집으로 가고 있는데, 그런 생각은 다 부질없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고갯마루에서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집을 나간 후부터 지금까지, 아들이 돌아오기를 줄곧 기다리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야단을 치기는커녕, 더럽고 역겨운 냄새가 나는 아들을 얼싸 안았습니다.
죽은 아들이 돌아왔다고 말씀하시면서, 집으로 데리고 와 씻기고 좋은 옷을 입히고,
새 신을 신겼습니다. 그리고 아들임을 상징하는 반지를 끼워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둘째 아들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는,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은혜 주시고, 복주시고, 함께 있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죄와 짝하여 죄를 지으면서, 세상에서 살아갈 때에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하나님이 안 계셔서가 아니라, 하나님은 지금까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나의 형편이 어려워지고, 곤고함 가운데 던져진 것은 빨리 돌아오기를 재촉하셨던 것입니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신대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자를 영접하시고, 맞아주시고, 자녀로 삼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생애를 마치는 죽음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예수님이 친히 예비하신 하늘 집으로, 존귀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영접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후, 항상 기쁘고, 행복한 것은 바로 이 일 때문입니다.
집을 떠나는 잠시의 여행이 즐거운 유일한 이유는, 다시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저런 일을 당하면서도 항상 기뻐하는 이유도,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임종은 슬픈 일이 아닙니다. 천국 입성의 영광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도마가 이 예수님의 말씀에, 정말로 뚱딴지 같은 육적인 질문을 합니다.
5절입니다.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 이 유치한 질문에 예수님은 내색하지 않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멘! -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 내가 가는 그 길이 너희가 아버지 집으로 가는 길이다. 진리다.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행을 하다보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지만, 가이드만 따라가면 됩니다.
여행지서 무얼 먹고, 어디서 자고, 내일은 또 어디로 갈 것인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이드가 알아서 해주는 대로만 따라가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안내해 주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인생을 안내하는 길이요.
내가 알고 싶어 하는 진리요. 아버지께로 가서 영원히 우리를 살게 하는 생명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두려워합니까? 왜 우리가 마음에 근심 걱정을 산처럼 쌓으며 삽니까?
우리가 마음에 근심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눈물 뿌리며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하면 주님으로부터 오는 위로와 평강의 복을 받고, 반드시 승리를 경험하게 됩니다.
"아들이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주지 않고, 아들이 떡을 달라면 돌멩이를 주지 않는다.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일까 보냐?"
영원한 천국을 그처럼 멋지게 준비한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이 세상 마치고 천국 길을 가는 동안, 주님은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여,
주님이 친히 예비하신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