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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 백사장이 펼쳐진 늦가을의 하조대 바닷가 풍경. |
파도 소리 요란한 모래밭을 빠져 나와 작은 고개를 하나 넘으면 해수욕장 이름의 유래가 된 바위 벼랑 하조대가 반긴다. 그 절벽 꼭대기엔 정자가 독수리처럼 앉아 있다. 여기엔 두 사람 얘기가 전한다. 대변혁기인 고려 말엽 하륜(河崙·1347∼1416)과 조준(趙浚·1346∼1405)은 고려가 기울어져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풍광이 좋다는 이곳으로 내려왔다. 두 사람은 이곳에서 새 왕조 건립의 모사를 했으며,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자 벼슬길에 오르기 위해 이곳을 떠났다고 전한다. 그래서 하조대다.
정자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푸른 물결과 홀로 떨어진 갯바위에 우뚝솟은 소나무 하며 아름다운 풍광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갈매기 날개를 훑고 불어오는 바람이 살며시 들려주는 하조대의 또 다른 전설은 슬프다.
옛날 인근 바닷가 마을에 용모가 출중한 하(河)씨 성의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이웃 마을 조(趙)씨 집안엔 혼기가 찬 두 자매가 있었는데, 그녀들은 그 젊은이에게 애정을 품게 되었다. 셋의 사랑은 갈수록 깊어졌지만, 결국 그들은 관습이란 바다를 넘지 못하고 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그후 사람들은 이곳을 하조대라 불렀다 한다. 다른 데보다 유난히 붉게 피는 붉은 해당화는 이들의 슬픈 넋이라고…. 먼 발치 갯바위엔 푸른 바다에서 자라난 새하얀 ‘물꽃’이 전설처럼 피었다 사그라진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절망감에 몸을 던진 세 남녀의 전설이 더 가슴에 와닿는 건 건너편 바위에 자리잡은 새하얀 등대 때문인지도 모른다. 푸른 바다와 잘 어울려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듯한 하조대 등대는 밤이면 저절로 불이 켜져 동이 틀 때까지 바닷길을 밝혀주는 무인 등대. 박인환(朴寅煥·1926∼1956)의 시 ‘목마와 숙녀’를 기억한다면 ‘…등대(燈臺)에/불이 보이지 않아도 …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하는 시구를 읊어봐도 좋으리라. 현실에 절망하고 벼랑에서 뛰어내린 전설 속 세 남녀의 슬픈 마지막 모습이 늦가을 바닷바람에 오버랩 된다.
▲주변 볼거리=양양에서 하조대 거쳐 강릉까지의 국도변은 동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만날 수 있는 곳이지만 시속 80km로 달리면서 바다 경치를 감상하긴 수월치 않다. 중간중간 만나는 항구나 해수욕장이 있는 마을로 들어가면 조용히 즐길 수 있는 해변이 많다. 하조대 남쪽의 기사문(基士門)항도 깨끗한 반원형 백사장이 아담하고 예쁘다. 마을 포구에선 갓 잡아올린 수산물을 구할 수 있다. 해안선을 따라 강릉 방향으로 가다가 주문진 6km쯤 못 미친 지점에 있는 남애항은 해안에 즐비한 바위섬과 방파제로 연결된 두 개의 섬이 한 폭의 그림 같은 미항(美港)이다.
▲숙식=등대와 정자가 있는 바위 사이 안부엔 차 한 잔 마시며 여유 있게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가 한 채 있다. 하조대해수욕장 입구엔 하우스여관(033-672-2285), 이천여관(033-672-1113), 굿모닝하조대(033-672-0089), 서울여관 (033-672-1113) 등의 숙박업소가 있다. 또 함금출(033-672-1235), 김승찬(033-672-1195), 함영진(033-672-2644)씨 집 등에서 민박을 친다. 현북면사무소(033-670-2604)에 전화하면 민박 소개를 받을 수 있다.
▲찾아가는 길=서울에서 홍천과 인제를 지나 한계령을 넘으면 양양. 우회전해 양양교를 건너 7번 국도를 타고 주문진 방향으로 10km쯤 내려가면 하조대.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대관령을 넘었으면 강릉을 거쳐 7번 국도를 타고 북쪽의 양양 방면으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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