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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앤 카슨'의 초상화. / 노벨상
지난 8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됐어요. 올해의 주인공은 캐나다 작가인 ‘앤 카슨’이었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그동안 노벨 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돼 온 작가죠. 카슨은 고전학을 전공해, 그리스·로마 신화와 고전 문학에서 영감을 받아 시, 소설, 에세이를 넘나드는 형식의 작품을 써왔어요. 노벨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이후, 카슨의 책 판매량이 200배 넘게 치솟으며 그녀의 작품들도 주목받고 있는데요. 특이한 점은, 카슨의 책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책과 다르게 생겼다는 거예요. 과연 카슨은 왜 이렇게 특이한 모양의 책을 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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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카슨이 오빠를 추모하며 쓴 책 '녹스'(2010). 아코디언 형식이 특징으로, 192쪽에 달하는 종이들이 아코디언처럼 펼쳐지는 과정에서 오빠의 흔적을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 뉴욕매거진
카슨의 대표작인 ‘녹스’를 펼치면, 마치 아코디언처럼 종이가 길게 늘어져 있어요. 녹스는 그녀가 오빠를 그리며 쓴 작품인데요. 카슨의 오빠 마이클은 그녀가 28세일 때 캐나다를 떠나 유럽과 인도를 떠돌기 시작하며 가족과 연락이 끊겼어요. 카슨은 오빠가 떠난 1978년부터 2000년까지 오빠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죠. 그러다 오빠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어요. 오빠와 22년 만에 통화를 한 지 2주 만이었죠. 카슨은 세상을 떠난 오빠의 흔적이 담긴 모든 것을 모으고 기록하며 그를 기리기 시작했어요. 그 마음이 담긴 작품이 바로 ‘녹스’입니다. 카슨은 책을 아코디언처럼 길게 이어지도록 만들었어요. 그리고 오른쪽에는 오빠가 남긴 편지와 사진과 유품을 싣고, 왼쪽에는 고대 로마 시인 카툴루스의 시를 번역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담았죠. 카툴루스 역시 형을 잃은 슬픔을 시로 적었거든요. 아코디언 모양의 책은, 형을 잃은 카툴루스의 슬픔과 오빠를 잃은 카슨의 슬픔이 겹쳐지는 모습인 셈입니다. 종이들이 아코디언처럼 펼쳐지는 과정에서 오빠의 흔적을 따라갈 수 있도록 설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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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책자 22편을 상자에 담은 책 '플로트'(2016). 주제와 형식이 다양한 소책자들은 어떤 순서로 읽어도 무방하다. 정해진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읽으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도록 했다. / _womenread 인스타그램
실험적인 형식은 ‘플로트’에서도 볼 수 있어요. ‘플로트’는 글 모음이에요. 소책자 22편을 투명한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담았죠. 각각의 책자에는 고대 그리스 신화, 프루스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알베르틴’에 대한 관찰기, 낭독용 대본 등 다양한 작품이 섞여 있어요. 책에는 페이지 번호나 읽는 순서가 적혀 있지 않죠. 어떤 순서로 읽어도 이야기가 된답니다. 카슨은 독자에게 “마음 내키는 대로 읽거나, 읽지 않거나, 섞어서 읽어도 좋다”고 전했어요. 독자가 정해진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읽으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도록 한 것이죠.
카슨의 작품이 특이한 모양인 건, 이야기의 내용과 형식을 새롭게 담아내기 위한 거예요. 원래 있던 내용과 형식을 빌려 오는 대신, 자신의 시각과 방법으로 재구성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카슨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가 인정받아 2026년 노벨 문학상까지 받게 된 것이랍니다. 여러분도 책을 읽을 때,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만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읽어내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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