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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본주의택시에 맞서 투쟁하자! 원문보기 글쓴이: 민중택시
빈자의 미학!!! 승 효 상
승효상의 건축관은
- 우리의 삶을 짓는것
- 좋은 건축의 기준[합목적성(건축의 목적 및 기능, 시대와의 관련성), 장소의
성격을 반영)]
- 빈자의 미학으로 축약할 수 있습니다.
"가짐보다 쓰임이 중요하고, 더함보다 나눔이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중요하다."는 20세기를 주도한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빈자(비움, void)의 미학』으로 대표하는 승효상은 1952년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대를 졸업한 그의 건축인생은 인본, 자연주의적 건축철학을 정립한 김수근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스태프 역활 5년만에 그는 비엔나(공과대학)로 건너가 두해에 걸쳐 학업과 실무를 병행하고 귀국후 김수근의 공간으로 복귀하여 그가 타계하기까지 5년간 관계를 이어 갔습니다.
1989년 이로재 건축사무소를 개설하고 비엔나의 기억과 김수근과의 오랜생활 그리고 홀로선 후 다가오는 절대적인 고독속에서 이땅에 이시대를 울리고픈 자기의 목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그는 건축계의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4.3그룹의 일원이었으며, "건미준"이라는 대 사회적 건축운동, 새로운 건축교육을 모색하고자 설립된 서울건축학교 설립·운영 및 건축교육, 그리고 대중매체를 통한 글쓰기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빈자의 미학(1996)』과 『지혜의 도시/지혜의 건축(1999)』등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수졸당(1993), 수백당(1998), 웰콤시티(2000)등의 있습니다.
[ 웰콤시티 ]
웰코시티(welcomm city - well + communication city의 조어로 "소통이 잘되는 도시"라는 뜻으로 장충단 공원에서 퇴계로로 돌아 넘어가는 언덕길에 노출콘크리트의 기단과 그 위에 내후성강판으로 포장된 구두상자(shoe box)네개로 구성된 하나의 건축 복합체로 웰콤이라는광고회사의 사옥입니다.
[ 수백당 ]
승효상은 조선시대에 상류주택에서 등장하는 "여러개의 마당들이 건물과 담에 의해 구획"되어 있는 독특한 공간체계를 자신의 건축이 적용시키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공간 체계는 유교이념이 샹활속에 반영된 결과로 수백당을 통해 "단절과 연속되는 공간속에서 다양한 사건들이 실제 일어나기"를 시도 하였습니다.
수백당이 자연속의 개인공간이라면, 웰콤시티는 복잡한 도시에 세워져서 건축의 공공성이 보다 중요한 개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건축가로서는 최초로 올해의 작가라는 예술가로 선정된 승효상은 한국 근현대건축의 대가인 김수근의 제자로 수입된 형식에서 탈피한 독자적인 언어 구축, 빈자의 미학과 실천미학을 통한 순수건축이론의 시도, 도시와 건축의 문제를 동시에 다루는 어번 보이드(Urban Void) 개념의 집중적인 탐구를 해왔으며, 건축문화가 지니는 다중시점의 관점들을 실천하려고 노력해온 작가다. 땅은 무엇인가에 대한 오래된 질문 지금 ‘쇳대 박물관’에서 선뵈고 있는 그의 근작들에선 그동안의 승효상의 건축사뿐만 아니라, 일상의 소중함을 실천 윤리로 다듬고 표방하는 그의 건축관을 엿볼 수 있어 그가 현재 한국의 건축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또한 그의 건축에 대한 이전의 비평적 수식어들이 표현하던 ‘장소의 뜻’을 읽어내고, ‘삶의 궤적’을 건축공간에 반영한다는 것과 ‘현재성의 재구축’이 어떻게 설득력을 지니는가를 볼 수 있다. 승효상의 ‘貧者의 미학’은 이번 작품을 포함해 1992년 수졸당과 돌마루 공소, 웰컴시티 등과 또한 그의 건축이념을 담은 ‘빈자의 미학’이라는 책을 통해 지속돼왔다. 굳이 루카치를 인용하지 않아도 그가 건축에서 가장 중요시해왔던 건 역시 삶의 실체로서 ‘일상’에 대한 문제였다. 즉 건축이 지니는 소기의 목적과 기능에 부합하게 공간이 짜여지고 다시금 기억의 장치가 되고, 건축이 본질로 돌아가도록 묻게 하는 건축과 장소, 즉 땅에 대한 고유한 정의들이 그가 풀어왔던 숙제였다. 이들 중 어느 하나도 건축가에겐 완벽히 풀릴 수 없는 것으로, 단지 좀더 근접하려 할 뿐이다. 그래서 지금의 건축은 건축의 지위를 대중에게 이해시키는 방법으로 건축을 조각에, 건축을 미술과 음악에, 건축을 철학과 춤에 비유하는 등 타 장르와의 교류를 무던히도 시도해왔다. 물론 이런 모습은 때로 그 본질을 잃어버리고 타 장르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확대돼 비굴함과 초라함으로 읽혀지기까지 한다. 건축가 승효상은 우리시대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모범적으로 또 설득력 있게 일관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즉 다양한 문화행사의 리더와 신문칼럼의 글쓰기로 한국건축의 사회적 위상회복에 힘쓰며, 건축주와의 관계에서도 건축의 지위를 결코 훼손시키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그의 건축은 순수하게 건축으로서 평가되는 못해온 것도 사실이다. 건축이 예술에 더 가까워지고 문화전반에서 그 위치를 회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뤄가는 건축 이야기가 진정한 건축의 본질에 얼마나 근접해 있는가 하는 의문은 해결되지 않는다. 즉 그의 건축이 말하는 외형들에서 우린 그 속삶의 시스템을 읽어내기가 아직도 어렵고 때론 포장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재료 등의 구체적인 의도 역시 시각적인 상징과 기호로만 취급되는 것 같아 그의 작업에 대해 공유하기 위해선 아직 얼마간의 시간이 요구되는 것 같다. 보편적 공감획득 가능할까
지금 대중들이 보듯이 건축은 두 가지 종류만 있다. 어렵고 멋진 건축과 싸구려고 못생긴 건축이다. 그 사이의 보편적인 질서를 만드는 진실한 건축은 아직 부재하다. 우리는 승효상의 작업이 건축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며 여러 가지 실천들을 이뤄낸다는 점에서 높이 인정한다. 단지 그 모습이 책임으로만 일관돼, 그 건축의 표현이 이상적인 가치개념으로 표현되는 것만이 아닌 우리의 건축현실에 조금 더 연결돼 삶을 이야기하는 실제(Reality)가 되길 바란다. 건축계 선두자로서 본의 아니게 접근하기 어렵고 추상적인 건축이 아니라 대중과 호흡하는 일상으로의 현재성이 담겨있는 건축으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도시가 지금 이해되고 있는 오브제의 건축에서 일체화된 도시건축으로 보다 단단해지길 바라는 것이다. 임종엽 / 인하대 건축사 필자는 이탈리아 밀라노 건축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신사동 프로젝트와 담제헌 등을 설계했고, 역서로는 ‘건축 속으로’와 ‘실내 디자인론’ 등이 있다. ●한국 현대건축의 두 계보: 김수근과 김중업
한국 건축예술계는 두 계보로 나뉘는데, 그 물줄기는 김중업과 김수근이라는 양대산맥에서 시작한다. 김중업(1922~1988)은 서구 모더니즘을 한국건축으로 승화시킨 최초의 건축가로 한국건축의 현대화를 이뤄냈다. 1952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르 코르뷔지에게서 수학해 유럽건축을 보고 배우게 된다. 콘크리트 디자인으로 형태가 대담하고 디테일은 섬세하며, 여기에 한국적 전통을 재현하려는 것이 김중업의 전형적인 미학이다. 그는 특히 한옥의 지붕이 주는 양감에 주목했는데, 그의 건축에선 굵게 움직이는 선과 작은 원이 서로 병치되면서 하나의 전체가 구성되고 예각으로 된 삼각형의 선이 더해져 깊이와 미묘함이 느껴진다. 대표작으로 서강대 본관, 주한 프랑스대사관, 제주대학본관, 삼일로 빌딩, 육군박물관 등이 있다. 한편 김수근(1931~1986)은 한국 현대건축 1세대들이 서구 근대건축의 도시질서와 정체성 개념을 그대로 도입하는 것에 반해 한국전통예술에서 깊이 있는 안목을 보여왔다. 즉 서구의 합리적 도식에 반발해 한국의 무정형적인 자연적인 모습들에서 건축미학을 완성해나갔다. 그의 건축은 사용자가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의 크기와 휴먼 스케일로 구성돼있다. 또한 의도된 작의성으로 인간을 억압하지 않고 공간 내에서 다양한 해프닝과 놀이가 이뤄지도록 해 기능적인 것과는 다른 창조적인 공간을 만들어낸다. 김수근의 이런 미학은 ‘사이’, ‘멋’ 으로 표현된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공간사옥, 자유센터, 이란 테헤란의 엑바탄 주거단지,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내 올림픽 주경기장, 마산 양덕성당 등이 있다.
출처 :박수남의 隨處作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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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리틀일오
건축비평_승효상 展
여전히 어려운 건축과 일상의 결합
2004년 04월 14일 (수) 00:00:00
임종엽 인하대
thirteen@kyosu.net
▲수졸당 ©
대개의 건축가들은 현 사회보다 조금 더 앞서는 건축 개념이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의 스승인 김수근의 작품조차 아직도 보편적인 공감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표작 중 하나인 ‘자유센터’가 대중들의 기억 속엔 그저 현재의 ‘웨딩 홀’로만 기억되고 있을 따름이다. 동일한 관점에서 승효상의 탁월한 감각으로 선택돼 그 성격과 의도가 분명해진 코르텐 강판도 대중의 눈에는 그저 녹슬은 철판이어서 매끈하고 광택 나는 스테인레스 재료보다 무엇이 더 좋은 지를 인정하기 어려운 게 현재 우리 사회다. 즉 건축이 지니던 일상과의 공유가 체험적인 감동과는 거리가 멀리 있다. 그래서 그 모든 노력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예술의 한 단편으로만 인식돼야 한다는 것이 지금의 실제이고 사실이다.
▲수백당 ©
건축의 공간과 연출이 따로 만들어지는 게 일반화 된 이 사회에서 승효상에게 거는 기대란 우리 시대의 몽상적 현실로부터 실제를 열어주는 것이며, 근본주의자나 영원한 본원의 세계를 추구하는 구도자이기보다는 진정한 침묵의 몸짓을 통해 본질을 추구하는 교훈적 작가로 계속 서있기를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순수하고 단순한 예술이 상표로서 예술이 되는 게 아니라 그의 철학에 있는 진정한 ‘실천적 윤리학’으로 건축의 사회적 의무가 현실에 이어져 보편적 대중들이 진정 공유할 수 있는 건축의 모습으로 전진하길 바라는 것이다.
▲김수근 ©
▲김중업 ©
‘비움의 미학’으로 세운 순백(純白)의 공간
수백당에는 ‘방안의 방’보다 ‘방밖의 방’이 더 많다. ‘방 밖의 방’은 잔디, 마사토, 나무 등
이 주인으로 제각기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방안의 방’은 각각 브리지로 연결되는데 식당이 가
장 먼저 놓이고 침실, 작업실이 그 다음에 놓이는 독특한 배치를 보이고 있다. 다양한 표정과 이야기
를 담고 있는 수백당 들여다보기.
▲ 수백당은 30m×15m의 크기로 영역을 엄격하게 규정했다. 수백당의 영역은 프레임과 담장 등으로
고정되어 있지만 다양한 비례를 갖는 창문과 개성이 뚜렷한 공간 때문에 남다른 조형미를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이러한 영역 안에서 방들이 다양한 형태로 놓여져 있는데 ‘방안의 방’과 ‘방 밖의
방’들은 각자의 독립성을 최대로 확보하면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 다양한 표정을 갖고 있는 작업실. 안주인을 위한 공간이다.
가로 5m40cm, 세로 9m60cm의 크기에 2층 높이의 천장고를 갖고 있다.
▶ 작업실에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가지고 있는 창문이 여럿 있다.
다양한 형태의
창문을 통과한
빛은 실내의
모습을 시시각
각으로 바꾸어
주고 있다.
사진은 ‘물의 공간’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든 창문.
◀ 막대기 모양으로 길게 뚫어 놓은 작업실 천창에서 빛이 떨어지는 모습
◀ 작업실 공간을 심플하게 처리하기 위해
지지대가 없는 계단을 설치했다. 그대로
하나의 조각 작품이다.
▲ 식당에서 바라본 ‘흙의 공간’. 이 집은 식당과 침실 사이에 ‘흙의 공간’, 침실과 작업실 사이
에 ‘물의 공간’, 그 앞쪽에 ‘나무의 공간(테라스)’ 등 다양한 방 밖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 방 밖의 방 가운데 하나인‘물의 공간’.
침실과 작업실 사이에 있다.
▶ ‘물의 공간’인 수반에는 브리지와 테라스를 연결하는 징검돌을 놓았다.
“다양한 표정과 이야기가 있는 집”
▶ 외관을 흰색으로 마감한 것은 ‘비움’을 강조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라고 건축가는 설명한다.
‘수백당(守白堂)’, 비움을 지키는 집.
이름에 걸맞게
이 집에는 비어 있는 방, ‘방 밖의 방’이 7개나 있다. 영역 표시만 있고 하늘로 뚫린 방에 대한 건
축가와 건축주의 애착은 남다르다.
“하늘로 뚫려 있는 방은 대부분 목적이 없습니다. 물을 담기도 하고 마루나 흙, 돌을 덮기도 하지
만 기본적으로는 공백입니다. 이 공백은 마당이 아니며 더더구나 정원이나 뜰이란 말도 적당하지 않
습니다.”
수백당을 이루는 ‘방 안의 방’과 방 밖의 방‘들은 모두 독립되어 있다. 더러는 서로 긴밀히 연관
되어 다른 영역을 만들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하나의 공간이 다른 공간에 종속되지 않을 뿐 아니
라 모두가 하나의 다른 세계다.
수백당은 나지막한 2층집이다. 아니 1층집니다. 집주인이 건축 중에 2층을 요구해 와 2층을 만들었지
만 집의 느낌은 세로로 긴 단층집이다. 이 집은 가로 30m, 세로 15m의 영역을 갖고 있다. 2대 1의 비
율을 갖는 직사각형 대지는 주변 땅과의 타협 속에서 찾은 것이다. 이 고정된 영역은 다시 내부에서
12개의 서로 다른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식당과 침실을 제외하고는 같은 크기의 공간이 하나도 없으며 각 공간이 만들어 내는 표정도 제각각
이다. 이 집의 각 실은 대지를 가로지르는 브리지에 연결된다. 각 실은 독립된 하나의 공간으로 되
어 있으며 실의 배치는 여느 집과는 다르게 삭당을 맨앞에 두고 중간에 침실, 끝에 작업실을 두었
다. 사랑방으로 사용되는 공간은 본채 영역에서 떼어 놓았다.
▲ 건축가 승효상씨.
각 실의 사이와 앞 뒤에는 이른바 ‘방 밖의 방’을 두고 있는
데 ‘물의 공간’, ‘흙의 공간’, ‘나무의 공간’ 등으로 독립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침실과 작업실 사이에 있는 ‘물의 공
간’, 이른바 수반(水盤)에는 브리지에서 테라스로 연결되는
징검돌을 놓았다.
이 집에서 가장 변화 무쌍한 공간은 작업실이다. 가로 5m40
cm×세로 9m60cm의 크기에 2층 높이의 천장고를 가지고
있다. 작업실 안에는 원형의 화장실이 있으며 다양한 크기
의 창문이 빚어 내는 빛의 움직임으로 인해 공간은 수시로
변한다.
작업실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받침대 없이 만들어
놓아 하나의 조형 작품 같은 느낌을 준다. 2층엔 침실 위에
만 방을 만들었다. 식당 위의 공간은 비어 있지만 침실과
작업장 부분의 높이와 맞추기 위해 가벽을 둘렀다.
이 집의 외관은 백색이다. 건축가가 백색을 고집한 이유는
이 백색 위에 많은 그림과 자국이 그려지고 남게 되기를 바라서였다.
“수백당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직영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경제적인 문제도 간과할 수 없었습니
다. 무엇보다도 이 집 설계의 중요한 키워드인 보이드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습니
다.”
이 집은 건축주, 건축가, 건축의 삼위 일체로 만들어졌다. 단독주택을 지으려면 건축가는 건축주의
삶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가져야 하며 건축주는 그들의 삶을 의탁할 수밖에 없는 건축가에 대한 이해
와 신뢰가 독실해야 한다. 따라서 주택을 매개로 건축주와 건축가가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깊은 인연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 승효상. 서울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공간연구소에서 15년간 일했다. 1989년 자신의 연구소인
‘이로재’를 설립하고 북런던대학의 객원명예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수졸당’, ‘대학
로 문화공간’ 등이 있다.
출처 :THE INDI Beauty & inter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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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IN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