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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듣고, 잘 가르치고, 잘 기억하게 하라 (신명기 6장 4-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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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이 땅의 모든 부모님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어느 국가든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들은 그에 따른 희생적인 세대들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6.25 전쟁을 겪은 세대가 희생 1세대라고 할 수 있고, 베이비부머(Baby Boomer-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가족계획정책이 시행된 1963년까지 태어난 세대) 시대에 태어나서 산업화, 민주화, 외환위기를 지나온 세대가 희생 2세대 일 것입니다. 희생 세대들이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피땀 흘리며 일구어온 헌신과 희생 덕분에 우리가 이 만큼 좋은 환경에서 먹고 마시며 살고 있습니다. 앞선 부모님 세대들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신앙도 희생의 세대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카톨릭은 200년 전에, 개신교는 100년 전에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면서 참혹하리만큼 끔찍한 박해와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있었습니다. 박해 초기에는 예수님을 믿는 것을 서양귀신을 믿는다고 비하했고, 카톨릭신자들을 가리켜 ‘천주학쟁이들’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군졸들이 천주교 신자들을 발견하면 어느 누구라도 선참후계(先斬後啓), 즉, 먼저 참수하고 후일에 임금에게 보고하라는 명령을 내릴 정도로, 예수 믿으면 곧 죽음을 면치 못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와 동족간의 전쟁 중에는 많은 개신교인들도 순교를 당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복음 역사에 비추어 유래 없는 속도로 교회가 성장해 갈 수 있었던 것은 순교의 피가 이 강토에 뿌려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나 교회 십자가가 있고, 어디에서든 마음대로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는 복음의 나라가 된 것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 돌려야 할 것입니다.
00교회도 지난 35년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부모님 세대들이 눈물로 기도하고 땀으로 일구어온 거룩한 예배 장소입니다. 자리를 지키며, 기도로 심었던 씨앗이 열매로 맺어 이렇게 함께 예배드리는 장소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살피시는 주님의 손길이 35년 동안 이 장소에서 예배해온 가난한 심령과 늘 함께 해 오셨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여 순종하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냉 수 한 그릇을 대접하려는 섬김의 자세가 이 장소에 깊이 베여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이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온 믿음의 선진들이 내가 존경할 신앙의 부모요 내가 사랑해야 할 형제자매들입니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가 영원한 아버지요 부모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신앙의 선배로서, 그리고 부모로서 온전히 믿음을 지켜온 앞선 믿음의 선진들에게 예의와 존경을 담아 감사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시는 말씀입니다. 4절에 “들으라”라는 히브리어 “쉐마”라는 단어로 시작 된다고 해서, “쉐마의 말씀”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랍비들의 전승에 의하면 원래는 4절만 “쉐마”였는데, 이후 6절까지 확대되어서 인식되고, 이해되어 왔다고 전해집니다. 인터넷에서 “쉐마”를 검색하면 제일 많이 나오는 단어가 쉐마교육과, 쉐마 기독교 학교입니다. 교육과 관련된 검색어가 많이 등장합니다. 쉐마교육이 주는 탁월한 효과를 강조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이름만 갖다 붙인 교육 프로그램 홍보가 무척 많습니다.
쉐마 교육이란 무엇 인가?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가 좀 어렵고 복잡하지만, 쉽게 요약해보면, ① 말씀과 연계된 교육, ② 가족교육, ③ 생활교육을 말합니다.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성경을 들려주고, 중요 구절을 암송하게 하고, 삶에서 지켜나가게 하는 교육입니다. 이 유대식 교육이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자칫 율법주의로 빠질 수도 있고, 무늬만 성경 말씀을 덧입힌 값싼 사교육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쉐마 교육이라는 것이 부모 중심의 말씀교육을 어려서부터 시작한다는 데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도 부모가 모든 자녀 교육의 핵심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라고 했으니, 이스라엘 전체 백성에게 선포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7절 이하에 자녀에게 가르치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면, 이 쉐마의 말씀이 우선적으로 자녀를 둔 성인 부모들에게 선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쉐마의 말씀을 부모가 먼저 듣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자녀에게 학습이 가능합니다.
부모에게 먼저 이 말씀을 하신 이유를 1-3절에서 설명합니다. 첫째, 가나안 땅에서 지켜 행하게 하기 위해서, 둘째, 자손들이 평생에 하나을 경외하고 그 땅에서 오래오래 살게 하기 위해서, 셋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번성하게 하기 위해서(아브라함과의 약속 성취)입니다. 땅도 얻고, 장수하고, 자손이 번영 하는 세 가지는 반드시 얻어야 하고, 꼭 얻고 싶은 약속과 성취의 말씀입니다. 쉽게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제조건으로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야 취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먼저 이 말씀대로 실천할 수 있는 신앙적인 토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부모가 먼저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통해서 자녀들에게 쉐마의 교육을 할 수 가 있는 것입니다.
쉐마의 말씀은 이 시대의 부모님들, 저와 여러분들이 신앙인으로서 어떤 위치에 서 있어야 하는지 세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부모로서, 어떤 신앙의 위치에 서 있어야 하는지, 자녀들에게 미치는 신앙의 영향력은 어떠해야 하는지 성경 말씀을 통해 생각해 봅니다.
첫째, 부모로서 신앙의 위치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항상 듣는 자의 위치에 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감당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이 말씀은 곧, “부모들은 들으라”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부모는 하나님과 가족 구성원들을 연결하는 대화 창구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모든 지도자들은 다 듣는 자 였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듣는 데 집중하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에게 “듣는 마음”을 구함으로 지혜와 부를 얻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위대한 사사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환상과 예언을 보았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들음으로 민족을 구하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들어야 모든 것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듣지 않거나, 듣지 못하면 헤매고 주저앉게 됩니다.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순종의 시작입니다. 성경은 이를 청종한다고 표현합니다.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려면 우선 들어야 하고, 그 듣는 자리에 부모인 저와 여러분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모님들에게 들려주는 말씀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쉐마가 정언명령이라면, 이 말씀은 그에 따른 부수적인 명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원어의 뜻에 좀 더 가깝게 번역해 보면, “너는 너의 모든 마음 중심을 다하여, 너의 영혼을 다하여, 네가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것으로, 너와 관계를 맺고 있는 그 하나님 만을 사랑하라”는 뜻이 됩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어떤 태도를 취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명백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6절에서 “가슴에 새기라”고 합니다. 내가 부모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슴에 새기는 장착작업이 끝나야 다음단계로 진행됩니다. 이것이 안 되면, 땅도, 장수도, 번영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약속관계가 성립조차 되지 않습니다.
가슴에 새기라는 것이 잊지 말고 오래도록 기억하라는 뜻이지만, 실제적으로 삶에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향기를 발하는 품위와 인격을 갖추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새기는 행위가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행일치(信行一致)의 삶으로 열매 맺어가도록 지속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부모들이 만약 가슴에 새기라는 것을 소홀히 하고, 지켜내지 못한다면, 자신의 삶도 궁핍하고 피폐해 질 것이고, 자녀들에게도 좋지 못한 것들만 남겨주고 불행한 삶을 대물림 하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엄한 명령을 허투루 흘려보내서는 안 됩니다. 부모님들은 그 어떤 일에 우선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세밀한 음성까지도 놓치지 않고 다 듣고, 가슴에 깊이 새기고,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부모로서 신앙의 위치는,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말씀을 반드시 자녀에게 그대로 들려주는 전달자의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7절에,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라고 말씀 합니다. 부모는 하나님께로부터 듣고, 가슴에 새긴 것만을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치라는 말씀 속에는 어떤 생각이나 의도를 섞지 말고, 오로지 들은 대로만, 가슴에 새긴 대로만 가르치라는 뜻입니다. 부모의 욕심으로 세상의 기준에 맞는 주관적인교육 방법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가르치라”는 말은 가슴 깊숙이 찔러 넣어서 새기게 한다는 뜻입니다. 부모가 이미 가슴에 새고 있는 말씀을, 자녀도 그대로 가슴에 새기게 하는 행위가 가르치는 것입니다. 집이나, 길이나, 누워있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강론하라(가르치라)는 말은, 자녀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삶의 모든 현장에서 말씀을 적용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훈련하라는 말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 우선주의, 신본주의 사고를 지니고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처를 하면서 험한 세상을 능히 이기고 살아가도록 강한 용사로 키워야 합니다. 이것이 부모의 크나큰 역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것만 가르치라고 하시는데, 현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 예로, 신앙의 자녀가 고3이면 예배에 불참하고, 수련회나 여러 가지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당연시 되고 있습니다. 간혹 예배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부(시험)와 학원을 선택합니다. 자녀들이 그렇게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아이들을 그렇게 가르칩니다. “공부 열심히 해! 돈 벌어서 남 주나?”라는 불신자의 철학이 신자인 부모들에게도 금과옥조로서 힘을 발휘합니다.
구약의 엘리 제사장, 기드온, 솔로몬, 등등 자녀 교육에 실패한 사람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부모들은 자신 스스로도 일하고, 모임에 참석하고, 사람 만나 사교하는 일을 예배보다 더 우선하는 행동을 할지 모릅니다. 하나님께로 들은 것도 없고, 가슴에 새겨진 것도 없다면 자녀 교육은 지식위주, 진학위주, 성공위주의 가르침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듣지 않는 부모는 완전한 인본주의 사고를 자녀들에게 주입시키는데 앞장서게 됩니다. 단지 부모 자신은 잘못 하지 않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아이들을 망치는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는 부모가 잘못된 가르침을 행사하려 할 때 충분한 거부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말씀 합니다. 일방적인 순종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순종입니다. 주님 뜻에 부합되지 않는 부모의 욕심과 강권적인 가르침에도 무조건 순종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 하나님 우선의 가르침만이 순종의 조건이 됩니다.
부모라고 완벽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고 심성이 온유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내면에는 죄인의 습성이 남아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어른이라는 위력을 동원해서 독단적으로 자녀들을 이끌어 가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 안에서 가르치는 것만이 옳은 방법입니다. 자녀들이, “이건 옳은 방법이 아니지 않나요?” 가르침에 거부의사를 표할 때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옳지 않는 방법으로 가르치고 있지는 않는지 자신의 언행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세 살 어린 아이에게도 분명히 배울 점이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똑똑한 부모라도 자녀들에게 인성, 교육, 종교적으로 완벽한 가르침을 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계속 옳은 방법과, 올흔 선택, 올바른 길에 대해서 말씀으로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됩니다.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들은 것만 가르치고, 새긴 것만 가르치고, 행동으로 그러한 가르침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주면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가르침을 포기하지 않고 반복해 나간다면, 우리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부모를 공경하고 주 안에서 순종하는 건강한 영혼의 소유자로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셋째, 부모로서 신앙의 위치는, 후손들에게 영원토록 기억되는 신앙의 이정표를 남기는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자녀들에게 어떤 유언을 남기시겠습니까? 저는 우리 자녀들에게, “예수 잘 믿어라! 예수 잘 믿고, 네 자녀들에게도 예수 잘 믿으라고 가르쳐 주어라!” 이 말을 남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을 가진 부모의 마음은 자녀들이, 예수 잘 믿는 배우자 만나서, 예수 잘 믿는 손자 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고, 대대로 후손들이 믿음의 명문가문이 되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이런 생각을 품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번성의 복이 우리에게도 항상 영향력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손들이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으로 세워지고 복 받는 삶을 누리기 원하는 것은 우리 마음 밑바닥에 잠재되어 있는 원초적인 신앙본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9절에,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고 합니다. 부모는 자신이 진정으로 말씀을 듣는 자로, 새기는 자로, 가르치는 자로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음을 자녀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 말씀을 손에 매고, 미간에 붙이라는 것은 평소에 습관처럼 말씀이 생활화 되는 삶의 현장을 유지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말로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행동으로 보여 준 것은 자녀들이 오래도록 기억합니다. 자녀들은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도 문득 문득 그 장면을 회상하면서 자신들의 신앙을 점검해 보기도 할 것입니다.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는 것은 집안 대대로 물려줄 전통으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후손들은 문 앞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선조들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이 자신들과도 영원히 함께 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불변의 진리인 성경 말씀을 후손들이 기억하게 하는 행동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일생을, 특별히 그 영혼을 하나님 안에서 올바르게 세우는 일의 관건을 쥐고 있다는 확고한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정말 엄숙하고도 진지하게 평생을 두고 가장 먼저, 또 가장 중점적으로 해야 할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보일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자신의 가난한 심령을 꺼내놓고 엎드려서 주님의 거룩하고도 온전한 통치에 자신의 전부를 내어 맡기는 것뿐입니다. 그것을 실천함으로 자녀에게 그대로 보여 주면 됩니다. 이것 말고는 우리가 실제로 잘 할 수 있는 일도 별반 없지 않습니까? 부모가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자 못하면, 우리 자녀들이 성장해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우리와 똑 같이 연약한 모습에 머물 뿐입니다. 그들에게도 주님만 붙드는 것이 자기 인생을 가장 풍성하고 윤택하게 하는 길일진대 이것부터, 주님 앞에 확실하게 엎드리는 것부터, 십자가 복음 앞에 자신을 쳐서 확실하게 무릎 꿇게 만드는 것부터 가르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자녀부터 말씀으로 올바르게 교육 시키고,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세워 놓으면, 그 자식 한 사람이 열 사람 백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내 가족이 올바르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 이웃에게 주님의 이름이 증거 되는 것입니다. 내 교회가 올바르게 구원사역을 감당해 나가면 우리 주변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신앙인으로서 듣는 위치에, 가르치는 위치에, 기억하게 표를 세우는 위치에 서 있다면, 우리 자녀들은 안심할 수 있습니다. 평생 감사와 평안이 보장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부모로서 나는 지금 어느 위치에 서 있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잘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마십시오. 난 무지하다고 해서 자신감을 잃지 마십시오. 난 너무 늦었다고 포기 하지 마십시오.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라도 듣고 가슴에 새기는 위치부터 서겠다고 결단하시고 순종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부모에게 반드시 견고한 신앙으로 세워주시고, 순종하는 부모를 통해 복 받고 번성하는 자녀들을 양육하게 하실 것입니다.
부모로서 사명을 다하여 자녀를 교육시켰고, 자녀가 장성했으면, 자녀 스스로가 자기의 몫을 알아서 감당하도록 지켜보시면 됩니다. 나이 드신 부모님들 중에 장성한 자식들에게 의존하고 기대려는 분이 꽤 많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조금 소홀하다 싶고, 조금만 서운한 일이 있으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내가 죽는 꼴 봐야 좋겠니? 억울 하고 분해서 못 살아!”가슴을 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어떻게 키웠는지 자식이 다 알고 있고, 세상도 이웃도 다 알고 있고, 하나님도 다 알고 계십니다. 자녀들을 사랑으로, 따뜻한 가슴으로 키운 것은 부모로서의 의무이자 사명이라 생각 하십시오. 어떤 대가도, 바람도 없이 당연한 일을 다 했다라고 생각하시면 마음이 편합니다. 우리가 받을 칭찬과 보상은 하나님께 주시는 것으로 충분하고, 또 그 것만 바라야 합니다.
자식을 손에서 놓으시고 마음 안에서 내려놓으십시오. 무언가 기대하면 상처가 될 수 있고, 보상을 바란다면 만족함이 끝이 없게 됩니다. 자식들에게 보상 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맡기시고 자녀들을 위해 축복기도 많이 하십시오. 그것이 부모가 마지막까지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난당하심을 자랑하거나, 알아달라고 하거나, 부담 주거나, 갚아서 보상하라고 일절 요구 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자녀들을 대하면, 보상 보다는 더 인자함으로, 긍휼함으로, 사랑함으로 자녀들을 품어 줄 있을 것입니다.
어버이 주일에 부모님들에게 평안함을 드려야 하는데, 이것 해야 된다, 저것 해야 된다, 보상 받기를 버려야 한다, 여러 가지로 잔뜩 부담감을 드린 것 같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자녀 교육은 부모의 사명입니다. 신앙교육은 미룰 수 없는 중요한 부모의 사역입니다. 에베소서 6장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아닌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통하지도 않고, 자녀들의 반발만 사게 됩니다. 내 자녀와 교회 공동체의 자녀들 교육이 내 짐이다, 내 몫이고 사명이다 생각하시고, 주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과 지혜로 잘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예배드리는 분들 대부분이 부모이면서 동시에 자녀인 분이 많기에 예화 한 가지 말씀드리고 마치려 합니다.
(예화) 82세의 노인이 45세 된 아들과 거실에 마주 앉아 있었습니다. 그 때 우연히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의 나무에 날아와 앉았습니다. 노인이 아들에게 물었다. “저게 뭐야?” 아들은 말했습니다. “까마귀에요. 아버지!” 조금 후 노인은 다시 물었습니다. “저게 뭐야?” 아들은 다시 대답했다. “까마귀라니까요.” 조금 뒤 또 물었습니다. “저게 뭐야?” 아들은 짜증이 났습니다. “글쎄 까마귀라구요!” 아들의 음성엔 아버지가 느낄 만큼 짜증이 섞여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 다시 물었습니다. 네 번째였습니다. “저게 뭐야?” 아들은 그만 화가 나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까마귀, 까마귀라구요! 그 말도 이해가 안 되세요?, 왜 자꾸만 같은 질문을 반복해 물으세요?”
그러자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 때가 묻은 일기장을 들고 나왔습니다. 일기장을 펴서 아들에게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아들이 세 살 때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은 까마귀 한 마리가 창가에 날아와 앉았다. 어린 아들은 “저게 뭐야?” 하고 물었다. 나는 까마귀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연거푸 23번을 똑 같이 물었다. 나는 귀여운 아들을 안아주며 끝까지 다정하게 대답해주었다. 아들에게 사랑을 준다는 게 너무나도 기쁜 하루였다. 예화에 대해 부연 설명 안 드려도 무슨 뜻인지 잘 아실 겁니다.
잠언 23장 25절에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자녀에게 모든 것을 희생적으로 다 내어주려는 부모의 끝없는 내리사랑을 조금이라도 아는 자녀라면, 부모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의와 존경을 표해야 합니다. 00교회 부모님들은 자신의 신앙의 위치를 잘 지켜서 자녀들에게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교육을 게을리 하지 마시고, 00교회 자녀분들은 육신의 부모님께 최선을 다해 공경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는 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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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말씀으로 우리 부모들의 신앙위치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부모로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슴에 새기도록, 자녀들에게 새긴 그대로 잘 가르치도록, 그리고 우리 후손들이 그 말씀을 영원토록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이정표를 새워가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부모와 자녀 모두가, 오직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사랑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들려주시고 순종하는 마음 주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60508 주일설교. 잘 듣고, 잘 가르치고, 잘 기억하게 하라 (신명기 6장 4-9절).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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