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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성산(鸣声山)등산로 에 들어서기전. 자인사***
친구들이 빨리 올라가자고 재촉을 하지 않앗으면 이곳 자인사에 들러 잠깐 둘러볼건데 친구들이 빨리 산에 올라가자고 하는 통에...
어느날 중학교 동창 카폐에는 쥔장(카폐지기) 의 공지가 떳다. 명성산 등산할사람 선착순. 그래서 오케이 했다.
마침 포천에는 마라톤 풀코스를 몇십번이나 완주하고 지리산 혹은 다른산들, 50킬로 60킬로 등등은 뛰어서 다니는 마라톤맨 친구가 안내를 한다고 하고,,,, 해서
동서울 터미널에서 아침 8시 30분,
운천까지는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운천 시장에서 김밥을 산다고 한친구는 돌아다니고 그사이 운천에서 한의원하는 원장 친구를 잠깐 방문했다. 그런데 몇년전에 보앗을 때는 배가 산더미만한 햇는데 운동으로 그리고 자기의지로 50킬로 이상을 감량했다고 한다. 하루에 push-up 을 몇천개 한다고 하고 윗몸일으키기를 몇천개 이상한다고 하길래 "친구야!!!! 세상에 이런일이 한번 나가봐 " 햇더니 그렇잖아도 제작팀에서 의뢰가 왔는데 사양을 햇다고 한다.
건강한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기분좋앗다.
그친구가 자기차로 산정호수를 지나서 자인사 입구 까지 바래다 주고 거기서 포천 마라톤 맨 철인(铁人)을 만나서 합류를 했다.
명성산은 경기도 포천과 강원도 철원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923m 높이의 산으로
가을 능선의 억새가 유명하다.
명성산이라는 말은 '울음산'을 한자로 표기한 것인데
918년, 왕건에게 쫓기어 피신하던 궁예가 죽음을 맞았던 산이라고 한다.
궁예가 망국의 슬픔에 통곡하자 산도 따라 울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주인을 잃은 신하와 말이 산이 울릴 정도로 울었다고 하여 울음산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고....
마의 태자가 이 곳에서 나라를 잃고 통곡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역사적으로 볼때 한시대를 풍미했던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상당히 정치적인 사연이 있는 산이다.
*** 자인사를 좌측으로 두고 등산은 시작 되었다. 능선에서 명성산 정상쪽으로 가는 길. 친구들은 계단을 힘들게 올라오고 잇다***
자인사 쪽에서 능선 쪽으로 올라가는 산행코스는 구파발에서 북한산 위문쪽으로 올라가는 분위기 하고 비슷하다, 여기저기 바위들이 많이 널려 있다. 마음속으로는 한국 100대 명산을 하나씩 둘러보자는 계획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목표에서 하나의 산이 오늘 떨어져 나간다.
명성산도 100대 명산중의 하나이니까....
시간이 날때 앞으로 몇개의 산이 더 남아 잇을까 한번 세보기로 했다.
능선의 억새밭,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그래서인지 여기저기 억새밭이 초등학교때 박박머리 기계독이 있는 아이 머리 처럼 군데군데 드문 드문 빈자리가 많이 보이고 사람들이 다니는 길들은 얼었던 땅들이 녹아서인지 진흙탕 길이었다. 등산화가 진흙탕에 빠져서 발에서 벗겨질것 같은 ...............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곳, 발길이 잦은 곳은 남아나는게 없다.
가는중에 내가 말하기를 "꼭 돼지우리 바닥같애" 했더니 한바탕 웃음으로.....
억새가 가장 왕성했을때 왓으면 괜 찮았을것 같은데 조금 시기를 놓친것 같기도 하다.
능선에서 내려다 본 억새밭,
저멀리 보이는 도로가 있는곳은 한국에서 제일큰 규모의 군 사격장이라고 한다,
대포 사격, 미사일 사격. 전폭기 사격 등등.
포천에 사는 마라톤맨 친구말로는 사격 훈련할때 군인들이 통제를 한다고 한다, 하지만 통제 사이사이로 침입을 해서 능선에서 사격훈련하는것을 보면 전쟁 영화가 따로 없다고 한다, 아주 볼만하다고 한다.
사격훈련시 산에 불이 일어날까보아서 나무들을 다베어버리니 그자리에 억새들이 자라서 억새밭이 되었다고 한다.
일기예보상으로는 흐린 날씨라고 우려를 햇는데 탁월한 택일을 했다., 날씨는 쾌청하고 그리 춥지도 않은 안성 맞춤인 날씨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친구들, 그리고 억새가 시원한 느낌을 주고 잇다.
드디어 일용할 양식을 먹는 시간,
산행을 할때 빼놓을수 없는것이 점심식사시간인지 싶다. 모두 술꾼들이라서 1인당 막걸리 한통. 총 5통이네...
시골에서 가져온 김장김치. 그리고 추석때 고향 텃밭근처에서 뜯은 모싯잎으로 만든 개떡.
이개떡은 특별하다. 요즘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모싯잎. 요즘 세대들은 잘모를것이다.
우리세대들은 이런 모싯잎에 추억이 많은데. 모싯잎 밭 옆에는 삼밭(대마)도 많았고 그것으로 해서 여름에는 삼베옷을 만들어서 시원하게 여름을 지냈고 삼베잎 줄기를 꺽어서 두눈사이로 집어넣어서 눈꺼플을 상하로 밀어내니 눈이 실제보다 훨씬 크게 하는 역할을 했다. 흔히 요즘 말하는 눈이 크게 보이게 하는 일종의 눈 성형을 해서 서로 서로 마주보며 웃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대마였는지 몰랐다.
우리 옆에 계신 다른팀 아주머니들께 카폐 쥔장이 " 이 개떡한번 드셔보세요" 하니 어느새 없어져 버렸다.
귀한것이라서 더 맛이 있는것 같다,
능선에서 바라본 산정호수. 그리고 능선 주위의 억새들,,,
그사이사이로 잎들을 다 팽개쳐 버리고 우두커니 서서 내년 봄을위하여 잔뜩 긴장하고 있는 나무들, 추운 북풍한설에 잘지내소... 내년에 꽃피고 새가우는 봄이 오면 내 다시 한번 한번 찾아오리다...
맞은편 산에는 이굴곡, 저굴곡 등등 많은 세월들의 흔적이 보인다,
친구들의 환한 표정.
오랫만에 만나니 표정들도 밝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중에 장소에 걸맞지 않게 아니면 정치적인 사연이 있는 산이 라서 그런지 정치 이야기가 나온다.
아니면 정확히 말하면 모두들 막걸리 한잔씩 햇다는것이 정확한 이야기 일거다.
2012년 12월 19일은 18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우리들 친구중에는 꼴통 진보도 있고 꼴통 보수도 잇엇다. 막걸리 한통 마신김에 정치가 어쩌고 저쩌고, 이러쿵 저러쿵, 나름대로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한다.
사실 산에까지 와서 그럴 필요는 없는데 남자들이라서 술한잔 마시면 군대이야기 하고 정치이야기는 빼놓을수가 없는것이지...
우리는 흔히 국민을 나라의 주인라고 한다, 과연 그런가?
그 그럴듯한 말을 틀림없는 진실인것처럼주는 믿게 해주는 한가지 사실이 있다.
투표권행사, 남,여, 유,무식을 불문하고 누구나 한표씩인 권리. 그 권리는 법앞에 만인이 평등을 입증해주는 동시에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 것을 확실하게 확인시켜준다.
그러나 이런말이 잇다,
'선거는 지배 계급에게 주기적적으로 지배와 억압에 대한 정당성을 선사해주는 제도일뿐이다."
프루동의 말이다.
그러니까 지배 계급일수없는 일반 국민들은 단지 투표장에서만 나라의 주인일 뿐이다. 그들은 투표장을 나서는순간 지배 계급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짓밣히는 노예로 전락한다, 왜 그럴까?
이말을 들어보라.
"정치란 비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무도덕적인 것이다," 마키아 밸리의 말이다,
그런 존재들에게 국민의 생존권과 재산권을 좌지우지 할수 있는 국가 권력을 송두리째 넘겨주고야 말앗으니 그 결과야 뻔한 것 아니겟는가,
그들이 돈과 결탁하는 정경유착 이 벌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들의 배신과 불의를 막기 위해서는 국민들은 또다른 감시와 감독조직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바로 시민 단체이다,
우리가 거의 무조건적으로 선망하는 선진국이란 나라들은 우리와 다른 것이 두가지가 잇다. 하나는 우리보다 GDP가 두세배는 많은 부자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 제도가 훨씬 앞서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될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수많은 시민단체들의 철저한 감시와 감독활동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인구를 가진 프랑스나 독일 같은 나라에는 5만여개에 이르는 시민단체들이 활약하고 있다.
그많은 시민단체들은 국민들의 생활과 직결되어 잇는 모든 권력기관들을 이중 삼중으로 감시하고 감독한다,
그러니 정경유착, 경권유착, 경법유착, 경언 유착, 정언유착. 권언유착 같은 것들이 발생할 기회가 훨씬 적다는것이다,
우리 모두 독수리 같은 눈으로 투표장에 가서 국민의 권리인 탁월한 선택을 해야 할것이며 시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만 될것 같다.
우리 아들 딸 세대.. 혹은 그이후를 위해서라도....
명성산 정상을 돌아서 이제는 하산길이다, 사격장 쪽으로 내려가니 벌써 해는 서쪽 하늘 산넘어로 기울기 시작한다.
억새들이 역광을 받아서 몽환적인 장면을 만들어준다.
이때를 놓치면 안되지 ... 찰카닥....
앞산 구릉에는 낮에 나온 반달이 둥그렇게 친구들 머리위로 걸려 잇다
억새풀 사이 사이로 능선 따라 가는 친구들 폼이 달따러 나온 달빛 사냥꾼 들 같은 폼.
오른손을 높이 들고 한번 폴짝 튀어 오르면 금방 손안에 잡힐것 같은 낮달이 바로 능선위에.....
1.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
꼬부랑 할머니가 물 길러 갈 때
치마끈에 달랑달랑 채워 줬으면
2.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신다 버린 신짝인가요
우리 아기 아장아장 걸음 배울 때
한쪽 발에 딸깍딸깍 신겨 줬으면
3.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빗다 버린 면빗인가요
우리 누나 방아 찧고 아픈 팔 쉴 때
흩은 머리 곱게 곱게 빗겨 줬으면
누런 콧물이 오른쪽 콧구멍 혹은 왼쪽 콧구멍에서 내려오고 휘리릭 올라갔다가 다시내려오고 몇번 반복을 하면 창피하기도 해서
앞가슴에 매달린 손수건으로 쓱 싹,
혹은 윗 저고리 팔뚝 소매로 휙 문질러서 딱곤 했던 때 였는데...
요즘 애들은 안그런것 같은데 그때 애들은 왜 열이면 열 거의 모두가 누런 콧물을 빼물고 살앗는지 몰라...
그 콧물들이 소매에 혹은 손수건에 떡이 되어서 굳곤 하던때 부르던 노래인데....
이제는 다들 초로의 영감탱이가 되어가고 잇다.
그때 생각하며 한곡조 부를까?
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
앵두 따다 실에 꿰어 목에다 걸고
검둥개야 너도 가자 냇가로 가자
비단 물결 남실남실 어깨춤 추고
머리 감은 수양버들 거문고 타면
달밤에 소금쟁이 맴을 돈단다
아가야 나오너라 냇가로 가자
달밤에 달각달각 나막신 신고
도랑물 쫄랑쫄랑 달맞이 가자
내려오는길은 일명 "장준하" 계곡 쪽으로 내려 왓다.
장준하(張俊河), 그는 누구인가?
일제강점기 때인 1944년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강제징병되었던 장 선생은 목숨을 걸고 탈영,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가 있던 중국 충칭까지 6천리길을 걸어 광복군(光復軍)에 합류한 장 선생은 광복군 장교가 되어 대일항전(對日抗戰)에 참가하였다. 임시정부 주석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의 비서로 활동했던 장 선생은 8,15 해방 후에 백범 선생과 함께 환국(還國)하였다.
장 선생이 당시 행동하는 지식인의 구심체로 떠오른 것은 1953년 시사월간지 사상계(思想界)를 창간하면서부터이다. 장 선생은 사상계를 통해 이승만(李承晩) 정권에 신랄한 비판을 가하면서 반독재항쟁(反獨裁抗爭)에 불을 지폈다. 장 선생의 날카로운 비판 정신은 4.19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됐고 이후 박정희(朴正熙) 집권 이후에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으로 떠올랐다.
장준하 선생이 추락사(墜落死)했다는 경기도 포천의 약사봉 계곡 현장,
14m나 되는 가파른 벼랑길 아래에서 장 선생의 시신(屍身)이 발견된다. 평소 등산을 즐겼던 장 선생은 매주 지인(知人)들과 산행(山行)을 즐겼다. 그러나 1975년 8월 17일, 이날은 날씨가 더워서 본래 산행을 쉬기로 했었는데, 하루 전날 평소 안면이 있었던 소림등산산악회 회장으로부터 등산을 가자는 연락을 받고 예정에 없던 산행에 나섰다고 한다.
장 선생은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오전 11시 30분경 약사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30여분 동안 계곡을 따라 올라가던 일행은 점심을 먹기 위해 등산로가 시작되는 계곡 상류에 여장을 풀었다. 이때가 12시 무렵, 곧이어 장 선생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일행과 따로 떨어져 혼자 정상 쪽으로 올라갔다고 목격자들은 증언했다. 이것이 산악회원들이 장 선생을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고 2시간 뒤 장 선생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이 2시간 동안 장 선생과 함께 있었다고 주장하는 K씨는 장 선생이 홀로 정상 쪽으로 올라갔다는 얘기를 듣고 곧장 뒤따라 갔다고 한다. 12시 25분, 식사장소에서 5백여m 떨어진 곳에서 K씨는 경계근무 중이던 군인 2명과 함께 얘기를 나누던 장 선생을 발견했다고 한다. 군인들과 헤어진뒤 K씨는 장 선생과 함께 산을 타기 시작해 액사봉 정상에 오른뒤 점심을 먹었다고 증언했다. 그런데 K씨에 따르면 하산하는 과정에서 장 선생이 빨리 내려가자면서 길도 없는 가파른 벼랑길을 고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함께 벼랑을 내려오던 중 장 선생이 소나무를 붙잡고 내려오다가 나무가 휘어지면서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고 한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사....
그 의문사를 확인하기 위해 장준하 선생을 부검을 한다고 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던가???
정치적으로 이런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고 참된, 그리고 정직한 민주주의가 이땅에 뿌리가 굳건히 내리기를 빌어본다.
산을 내려와서 서울로 오기전 이동 갈비집에서 육회하고 육회 사시미 하고 거나하게 술한잔씩...
서울로 오는 버스에서 이런저런 생각들....
발동이 걸렸는지 동서울 터미널에서 내려서 다시 택시를 타고 ..... 한잔 더하기 위하여..
동서울 터미널에서 얄짜 없이 냉정하게 각자 가정 앞으로 !!!!! 햇어야 했는데.......
중학교때의 추억을 안주삼아 너도 한잔 나도 한잔 하다보니 거의가 다 떡이 되었다.
어느 광고처럼 "떡은 사람이 될수 없지만 사람은 떡이 될수 있다"
그날 우리 모두는 떡이 되었다.....
앞으로는 떡이 되더라도 쪼끔 떡이 될수 있기를...
초로의 염감탱이 들의 말씀!!!!!!!!!!!!!!!
첫댓글 하얀 반달에 하얀 막걸리 한 잔 하면 그 맛이 죽여 주겠지!!!
그럼. 그맛에 가는거지... 언제 한번 시간되면 한번 가자. 막걸리 한잔 하면서 니 시심도 한번보여주고......
제목이멋지고만. 좋은산행이 되었겠네.
감사... 남쪽지방은 눈이 많이 왔다고 하더구만..... 건강하고 새해에도 하는 사업 번창하고 복도 많이 받으시게나....
정권이 바뀌어서 장준하 선생의 넋이 좀 위로가 되기를 바랐는데....
고러게.... 나도 같은 생각이었는데...... 정말 뜻밖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