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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공비례?
아침 9시 10분에 도착한 생 장(Saint Jean Pied de Port)역.
카미노(Camino de Santiago) 덕에 작은 시골이 관광도시로 탈바꿈한 생 장.
길(카미노)을 묻지 않아도 되겠다.
배낭 멘 이들이 하나같이 가리비(海扇:shell) 표지 또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 한 길을
가고 있으니까.
어렵잖게 찾아간 순례자 사무소의 과공비례(過恭非禮)?
나이 지긋한 봉사자의 이 늙은이에 대한 지나친(?) 배려 말이다.
아무리 프랑스어에 백지라 해도 순례자여권(Credencial del Peregrino) 하나 받는
단순 과정에 통역이 왜 필요하겠는가.
"생 장에서 1박 하겠는가. 관광을 하겠는가. 그렇다면 좋은 숙소를 안내하겠다" 등을
묻고 답을 들으려니 영어 통역을 구하는 해프닝이 벌어질 수 밖에.
미국인 한 흑인녀가 자원봉사했다.
어쨌거나 최고 연장자(그가 그렇게 말했다)에 대한 특별한 배려일 것이니 고마움을
표하고 일어섰다.
"如意. 생 장에서 4月 4日 10時 출발. 카드(엽서) 발송 때문에 1시간 연발"
한국 서울의 집에 보낸 첫 엽서의 내용이다.
나는 집 떠날 때 약속한 대로 4~5일 간격으로 엽서를 쓸 것이다.
그러니까, 내 소식은 늘 1주일 정도 연착하게 될 것이다.
휴대폰 없는 세상의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을 이미 체험하였으므로 로밍이 된다 해도
나는 휴대폰을 소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표 사기 위해 우체국 찾아가느라 결국 11시에 카미노에 들어섰다.
아침에 열차에서 함께 내린 모두가 이미 떠나버렸고 시발점부터 나홀로가 되었다.
바욘에서 동행하다가 시야에서 사라졌던 니브강과 재회하게 된다.
우이천과 바꾸고 싶다 했던 바로 그 강이다.
고색(古色) 다리를 건너는데 여기가 해발165m로 가장 낮은 지점이란다.
그러니까 피레네 산맥을 넘으려면 1.300여m를 올라가야 한다.
오베르주 오리송(auberge Orisson)
첫날의 목적지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까지는 25km가 넘는데다 해발1.437m
피레네 산맥(Sierra Pyrenees)이 가로놓여 있는데 너무 늦게 출발했다.
게다가 12시간의 비행과 7시간의 대기, 9시간의 열차여정에 이은 이 강행은 아무리
산 마니아(mania)라 해도 무리임에 틀림 없다.
목장지대의 간이포장로를 걷기 얼마 되지 않아 된비알이 시작된다.
설상가상인가.
겨우 5km 남짓 걸었을 뿐인데 숙박시설이 있다는 운토(Huntto)에 다다를 무렵 부터
안개비(煙雨)에 시야가 사라져 갔다.
노란 화살표 찾기에 골몰하며 지도와 콤파스에 매달리는 내 꼴은 지팡이에 의존하는
시각장애인에 다름 아니겠다.
"나폴레옹 루트(Route de Napoleon)는 날씨가 좋을 때(in good weather) 택하라"
는 권고(안내)를 읽은 적이 있는데 어찌 한다?
해발793m 오베르주(auberge:refuge) 오리송(Orisson)이 희미하게 포착되었다.
그냥 지나쳐 17km나 남은 길을 강행하다가 포기하고 오리송으로 내려왔다.
링반데룽(ringwanderung:環狀彷徨)에 빠지기 십상이도록 더욱 악화돼가는 기상을
무릅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시도일 뿐 아니라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강행이야 말로
참으로 무의미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프랑스 땅에서 한 밤쯤 보내는 것이 무방하다고 자위도 했다.
그러나, 젊은 여주인이 아침에 생 장 순례자 사무소에서 나를 보았는데 '가장 멋쟁이
할아버지' 라고 알랑방귀 뀌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내게 오베르주 오리송의 이미지는
다음 날 아침까지 아주 나빴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지리적 여건을 기화로 순례자들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악덕
업자에 다름 아니라고.
2층 침대에 수준 이하의 저녁과 아침식사를 묶어 31유로나 받으면서도 온수 샤워는
5분용 토큰 하나다.
식사 분위기도 음식 만큼이나 그랬다.
한국인 4명(재미교포 2세청년,휴학하고 해외여행중이라는 P시의 여대생 둘과 나)과
십수명의 외국인을 식당주인은 자기 편하기 위해 한 데 모았을 뿐인데(공동식사) 웬
자기 소개?
각 나라의 대표적 촌녀들이 MT라도 온 줄로 착각했나.(십수명중 여인이 절대다수인
데다 실제로 시골뜨기들)
다시 만날 확률이 0%에 가까운 사람들이 서투른 영어하느라 이 무슨 고생?
그래도, 다시는 묵고 싶지 않은 집이지만 방명록에'Immanuel'(God with us)이라고
또박또박 썼다.
하늘과 열차와 땅에서 28시간여를 누워보지 못한채 오르막 걷기를 강행했는데도 몸
컨디션이 서울을 떠날 때보다 월등히 좋아졌으니까.
떠나기 전에 컨디션을 끌어올리려고 무진 애를 썼건만 별무효과였는데.
이후로, 8자로 된 이 단어는 내 전 여정을 나와 함께 한다.
(내 몸과 혼의 상태가 늘 좋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른 아침, 오베르주 오리송에 대한 나의 나쁜 감정은 말끔히 사라졌다.
떠오르는 해, 찬란한 아침 햇살이 몰아내버린 것이다.
어제 기상악화로 인해 여기서 한 밤을 묵은 덕에 피레네 산맥 중턱에서 일출을 보고
광대한 산맥을 완벽하게 감상하게 되었으니까.
해마다 설 전후에 해온 지리산 종주에서 해발1.915m 천왕봉의 맑은 날 보기가 하도
어려워 조상 3대의 적선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속설이 있다.
그런데 단 한 번의 시도에서 성취됐으니 오리송이 고맙지 않겠는가.
(나는 이 날의 Memo장에 '일생 일대의 행운'이라고 기록했다)
어쩌면 오리송은 필요악인지도 모르겠다.
없어져야 하지만 없어서도 안되는.
그러니까, 생 장에서 묵고 아침 일찍 출발해 산맥을 넘는 것이 현명하다 하겠다.
프랑스인의 표리부동한 동물사랑과 이중성
요즘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리비야 공습이라도?
남쪽으로 날아가는 제트전투기의 굉음이 푸르디 푸른 아침의 고요를 깨지만 그들이
남긴 하얀 비행운이 구름 한 점 없는 파아란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아 신선한 아침.
그러나, 양떼와 말들의 고원 목장 사이로 난 아스팔트 도로변에 나뒹구는 그들의 뼈,
두개골, 심지어 통째로 썩어가며 대머리 독수리들을 부르고 있는 시체, 이 서양인의
표리부동한 동물사랑에 내 신선한 아침은 여지없이 잡치고 말았다.
이곳 목장의 양들(얼굴이 까만 Manech)에게서 얻는 젖은 품질이 좋단다.
그 젖으로 만든 치즈 '오사우 이라티(ossau iraty)'는 특히 우수하단다.
이처럼 자기네 건강과 경제에 크게 공헌하는 양들인데도 그들은 쓰레기만도 못하게
취급하고 있다.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로 위 아래 목장들에서는 양과 말과 소와 염소들까지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열린 1988년 올림픽 때의 일이다.
개고기를 먹는 야만족이라며 보이콧(boycott) 운동에 앞장섰던 프랑스다.
극단적 동물보호주의자인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Brigitte Bardot)가 주동자다.
보신탕집의 상징인 붉은 깃발이 사라지고 보신탕은 사철탕, 영양탕, 보양탕 등으로
개명되는 등 온 나라가 요란 법석이었다.
한데, 2008년 중국 베이징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우리나라 이상으로 보신탕이 기호식인 중국에 대해 프랑스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약대 강, 강대 약(弱對强,强對弱)의 교활한 이중성이 역력하지 않은가.
인간에 대한 공헌도가 제한적임에도 단지 애완이라는 이유로 개는 보호되어야 하고
지대하게 공헌하고 있는 양은 방치해도 좋은 것이 동물보호주의 인가.
더구나 놀라운 역사적 사실은 "1870년대 프러시안-프랑스 전쟁 때 프랑스인이 개를
많이 잡아먹어 파리시내에는 개가 한 마리도 없었다. 또 당시 파리에서 개고기 요리
법이 책으로도 출간됐다"(충청대학교식품영양학부 안용근교수)는 것.
그들의 표리부동한 이중성이 역겨워 걸음을 재촉했다.
암봉인 1.078m 오리송 봉(峰:Pic d'Orisson)의 인자한 성모 마리아 앞에 섰다.
그 분의 위로 덕인가.
마음이 진정됨에 따라 시야가 넓어지는 듯 했다.
그리고 드넓은 피레네의 맑은 공기에 허파가 시리도록 시원한 느낌이 회복되었다.
어제 함께 묵은 재미교포 2세 청년이 뒤따라 왔다.
로마교황청 산하기관에서 일하고 있다는 청년은 우리식 인사성이 밝고 일부 난해한
단어 외에는 우리 말을 잘한다.
나의 치하를 필라델피아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부모에게 돌리는 것으로 미루어
그 부모의 뿌리를 지키려는 올곧은 조국애가 짚어지는 듯 했다.
완만하게 꿈틀대며 오르는 포장길이 멎는 곳에 의미를 알 수 없는 십자가가 서있다.
1.344m 레이자 아테카봉(Pic de Leizar Atheka)이 앞에서 손짓한다.
1.100여m까지 아스팔트길을 걷느라 지루했는데 드디어 산에 오르는 기분이다.
아스팔트 목장길을 따라 올라오는 차들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어 더욱 좋다.
프랑스를 제외하면 어떨까
곧, 국경(Frontera)이다.
가축탈출방지용 도랑이 바로 국경이란다.
국경이라는 느낌을 전혀 가질 수 없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이며 평화공존의 시대임을 실감하게 한다.
그러나 이 길은 일명 나폴레옹 루트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벌어졌던 반도전쟁(Peninsular War: 1808 ~14) 때 나폴레옹의
군대가 넘나들던 길이다.
불과 200년 전의 일이다.
중세기, 롤랑의 노래(Cancion de Roland)의 한 배경이다.
그러니까 말발굽 마다 선혈이 낭자했던 길이다.
또한 그 때, 순례자들이 숲속에 숨어있는 산적을 피해 걷던 길이기도 하단다.
그런데, 이 도랑 아니라도 국경임을 금방 알 수 있겠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카미노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니까.
카미노에 대한 애착의 온도차가 극명하다는 말이다.
스페인은 카미노에 갖가지 공을 들이고 있지만 프랑스는 두손 놓고 있다.
그럼에도 순례자들은 생 장에 가기 위해 프랑스에 돈을 뿌린다.
순례자여권도 산티아고에서 75센트 받는 것 외에는 스페인은 물론 포르투갈에서도
무료로 발행하지만 프랑스(생 장)에서는 2유로나 받는다.
카미노 프랑세스 800여km에서 프랑스 지분은 40분의 1도 못되는 겨우 17km인데도
피레네산맥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
그러니까 프랑스는 속말로 날로 먹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소위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만 노리는 식의 프랑스를 카미노에서 아예
제외하면 어떨까.(그러면 프랑스 길이라는 이름도 바꿔야 하겠지)
1993년 카미노 프랑세스를 걸은 미국인 '리 호이나키'에 의하면 당시에는 생 장에서
출발했을 뿐 순례자여권은 론세스바예스에서 받았단다.
생 장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 가는 길도 둘이다.
어차피 성 야고보가 걸었던 길도 아닌데 굳이 생 장에서 시작할 이유가 없잖은가.
야고보는 스페인의 수호신인데 아무 관련도 없는 프랑스에 퍼줄 게 뭔가.
12세기에 수도사 에메릭 피코(Aymeric Picaud)가 생 장 피드포르 옆 생 미셀(Saint
Michel)에서 산티아고까지 걸은 후 성 야고보의 서(書:Liber Sancti Jacobi)를 썼다.
그는 야고보와 아무 상관 없는 길을 걷고는 마치 야고보의 행적을 찾아 걸은 양 하여
야고보의 명성을 업고 카미노 프랑세스를 만든 것 아닌가.
이 때, 그가 프랑스인이라 프랑스를 끼워넣은 것 아닐까.
프랑스인들로부터 몰매맞을 부질없는 생각일까.
(그러나 이 추론은 앞으로 자주 말하게 될 것이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카나다와 미국에 걸쳐 있다.
절경은 카나다에 있는데 큰 돈은 미국이 벌고 있다며 카나다의 불만이 대단하단다.
미국 동부지역과 카나다 여행중에 들은 이야기다.
한데, 스페인은 이렇다 할 불만이 없나?
스페인지역 해발1.300m대에 있는'롱랑의 샘'물이 물을 즐겨 마시지 않는 내 입에도
꿀맛이었는데 롱랑과 어떤 관련이 있기에 그의 이름을 땄을까.
프랑스지역과 달리 울창한 너도밤나무숲의 호젓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4월인데도 눈이 아직 녹지 않은 곳이 있지만 걸음마다 행복이 춤추는 듯 했다.
관리인 없는 비상 알베르게(대피소)도 있다.
겨울의 불순한 날씨에 대피용으로 세운 집인데 땔감나무까지 비치되어 있다.
("쓰레기는 가지고 갈것, 실내를 깨끗이 할것, 문을 닫고 갈것" 스페인어, 바스크어,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의 방이 붙었는데도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순례자들도
우리나라의 등산객들처럼 문맹이 많은가?)
휴대폰 사용이 가능한 위치를 알리고 아프거나 길 잃으면 112에 전화하고(우리나라
에서는 119인데) 대피소에서 기다리라는 친절한 방도 붙어있다.
오르기를 계속하면 카미노 피레네 산맥에서 가장 높은 해발 1.437m 콜 데 레푀데르
(Collado de Lepoeder)다.
정상이라 하나 조망은 더 높은 봉들로 인해 제한적이다.
그래도 광대한 피레네에 압도되는 느낌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아기자기함과 아름다움은 우리 백두대간의 선자령에 비할 바 못된다.
이어지는 급경사 내리막은 웅장한 숲길이다.
유럽에 남아있는 가장 큰 너도밤나무숲중 하나라나.
지루한 내리막 길을 끝내고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Orreaga)에 도착했다.
<계속>
註
'오베르주(auberge)'는 albergue의 프랑스어.
'오레아가(Oreaga)'는 '론세스바예스'의 바스크어(Euskara).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부, 피레네 산맥 서쪽 기슭 바스크족의 언어란다)
생 장 피드포르역:바욘에서 타고 온 1량 전동차(위)와 생 장역을 나온 순례자들(아래:일본인 단체)
순례자여권(1. 2)과 내게 과공한 순례자 사무소의 자원봉사 영감(3)과 기념품 가게(4)
바욘에서 부터 함께 해온 니브강
오베르주 오리송 가는 길:1~5 (피레네 산맥이 본성을 드러내나. 돌연 안개비에 시야가 사라져 간다)
오베르주 오리송(위, 아래)
오베르주 오리송에서 맞는 일출과 제트전투기의 비행운
오리송 이후의 피레네 산맥 목장길 / 도처에 나뒹구는 양의 두개골과 썩어가는 시체들(3~5)
성모 마리아 상(1, 2)과 재미교포 2세 청년(3)
등산객들이 타고온 차량과 십자가(위 앞에 보이는 봉이 국경 직전의 1.344m 레이저 아테카)
국경이 시작된다(위, 아래)
롤랑의 샘(위)과 옛 국경 초소가 있던 곳(아래)
너도밤나무숲 길에는 아직도 눈이.
피레네 산맥의 유일한 비상(무인) 알베르게(위, 아래)
카미노 피레네 산맥의 정상 콜 데 레푀데르(해발 1.437m)
지루한 급경사 내리막인 너도밤나무숲(위)을 지나면 론세스바예스(아래)
첫댓글 지칠줄 모르는 그 열정, 그 관심, 새삼스런 일도 아닌데 왜 놀랄까. 다음글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