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톤즈란 다큐로 우리에게 진한 사랑과 깊은 감동을 주고가신 고 이태석 신부님~~!!
개인의 고통과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박완서 선생님과 우리시대의 대서사시 토지의 박경리 선생님~!!
세상에서 버림받고 상처투성이가 되어 삶을 살아온 한 여자 ~~!!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명 토크쇼의 명 MC로 인생은 여행과 같다고 하는 오프라 윈프리의 역경의 삶~~!!
피나는 노력과 열정적인 모습 우리시대의 대가수 조용필님~~!!
이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이분들의 삶에서 무언가 배워야 할 점이 있을듯하여 몇자 적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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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태석 신부님은 그리 길지않은 인생 ~~!!
48세의 나이로 지난해 1월 너무 아쉬운 삶을 마무리 했다. 1956년 독립직후 집권층의 소수 아랍계와 피지배층인 다수의 원주민 사이의 끝없는 내전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아프리카 수단의 조그만 마을 톤즈에서 이태석 신부님의 인간에 대한 박애정신과 무한봉사는 우리에게 삶의 진한감동과 인생의 의미를 깨우쳐 준 ~~??
지금도 그 감동의 파고가 내 가슴 깊은곳에 울렁거림을 느낄 수 있다. 오지여행가로 유명한 한비야씨도 근래 가본곳 중에서 삶의 환경이 최악이라고 한 톤즈에서 희망을 준 너무 큰 사람 이태석 신부님~!!
의사로서의 평탄한 삶을 포기하고 사제의 길을 선택한 ~~!!
평소 신부님은 내가 많은것이 부족하지만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 그 무언가를 하게 된다는 ~~??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곳에서 의술과 공부를 가르친 톤즈마을의 아버지 이태석 신부님 ~!!
전쟁과 가난에 찌든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한 35인조 브라더 밴드를 만들어 꿈과 희망을 전해주기도 ~~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로 시작하는 한국음악을~~~ 이태석 신부님이 생전에 가르쳐준 노래를 눈물 흘리면서 연주하는 모습도 참 감동적이었다.
꿈도 희망도 가질 수 없었던 이 아이들에게 브라더 밴드는 희망 그 자체인듯 싶었다. 한센인들에게 아픔을 같이하고 직접 고름을 짜주는 모습과 상처를 입은 환자들에게 직접 신발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손가락이 없어진 뭉퉁한 손가락으로 돌아가신 사진속 신부님의 얼굴을 쓰다듬고 입술형태도 거의 보이지 않는 입으로 입을 맞추고 비통해 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으며 아주 초라한 집 창가에 사진을 오려놓고 참으로 경건한 기도를 올리는 모습은 어느 종교에서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가슴 뭉클한 감동 그 자체이고 수단의 슈바이처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사랑과 박애 그리고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모습이 인간에게서 나오는 향기가 넘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마음에 오랫동안 신부님의 영혼과 사랑이 함께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인생의 질곡된 삶을 살다 가신 박완서 선생님은 여성동아에 장편소설 裸木(나목)으로 나이 마흔에 등단하였다. 선생님은 단순히 소설이 아니고 선생님 삶 자체에 대하여 진솔하게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특히, 현실의 삶에 좌절한 여성들에게 삶의 모델을 제시하였고 200여권을 헤아리는 작품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서전적인 소설은 우리들에게 삶의 의미를 돌이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항상 즐거운 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혼자서 감내하기가 어려운 일들이 많고 부부지간과 부모, 자식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일들이 종종 생기기도 한다. 선생님의 삶은 고통과 恨스러움 그 자체인듯 하다. 세 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얼굴조차 모르고 어린시절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에 자랐으며 6.25전쟁으로 오빠가 죽게 되는 비극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닥쳐오는 먹구름을 맞이하게 된다.
선생님의 어머니는 젊은 남자만 보면 왜 저사람은 살아 있는데 왜 하필 우리 아들만 죽었느냐? 며 애통해 하시는 모습을 보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선생님의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또 50대에 남편을 폐암으로 잃게되며 남편이 죽은 후 3개월이 지나 외아들이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 선생님이 그렇게도 사랑하는 아들 원태는 서울대 의과대 레지던트이자 연극 연출가이기도 했다. 아들의 죽음은 인생의 恨에 최고조에 달했으며 견디기 힘든 고통 그 자체였으리라.
아들이 죽고 난후 평소 천주교 신자인 선생님은부산의 어느 수녀원에서 도대체 하느님은 왜 이리 나에게 가혹한 삶을 주십니까? 라고 절규하면서 십자가를 내 던졌다고 한다. 선생님의 삶 ~!! 그 자체가 소설이고 문학이다. 선생님은 인생 후반부에 가서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고 했다. 인생은 늙는 것이야말로 예술이라고 했으며 자신의 삶을 잔잔히 되돌아보며수필집을 내 놓아 우리에게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메시지를 던져 주는듯하다.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하늘나라로 가시면서도 돈없는 문인들을 배려하기 위해 나를 조문하러 온 모든 사람들에게 부의금을 일체 받지 말라고 유언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세계적인 토크쇼 진행자로 우리에게 알려진 오프라 윈프리의 삶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을듯 하다. 윈프리는 빈민가의 딸로 가난한 흑인 사생아로 태어나 실로 어려운 환경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9살에 4촌 오빠에게 성폭행 당하고 14살에 미혼모가 되었으며 마약중독이었던 흑인여자 ~!!
세상에서 철저하게 버림받고 치유하기 어려울 정도의 상처를 가지고 삶을 살아온 한 흑인여자가 바로 오프라 윈프리다. 그는 오프라 윈프리쇼에서 삶의 진실을 솔직하게 살면 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달되고 다른 모든 것들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人生觀을 가지고 살아왔다고 하였다.
그녀는 본인의 쇼에서 가난함과 부유함도, 꿈도, 근심도 자신에게 부닥치는 모든 것을 사명으로 받아들였고 이 사명감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한다. 오프라 윈프리의 인생을 조금 더 낫게 하는 5가지 비밀이 의미심장하여 옮겨본다. 첫째, 인생은 여행과 같다. 천병상 시인은 그의 시 歸天에서 인생을 소풍과도 같다고 했던가 ? 둘째, 상처를 지혜로 만들어라. 실수는 모든 사람이 한다. 다만 그 실수는 당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신의 배려라고~~??
우리에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42.195km의 마라톤을 완주하면서 환호하게 되는 가슴 벅찬 설레임을 전해주신 토지의 박경리 선생님의 우여곡절 질곡된 삶도 만만치 않다. 선생님은 700여명 이상 등장하는 토지의 집필과정에서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한때 나는 악이 승리한다는 절망 속에서 밤을 지새며 글을 썼고, 가족과의 호구를 위해 밤을 밝혀야만 했고, 병고와 맞서 굴복 아니한다는 신념으로 글을 썼고, 정신의 살해자, 그 몰이꾼에 쫓기는 한 마리 사슴같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라고 외치며 글을 썼다고 한다. 현대소설의 대서사시인 토지는 1969년 "현대 문학"에 그 첫 연재를 시작하여 마지막 5부 집필이 1994년 8월에 완성되었으니 집필 기간만 하더라도 25년의 긴 세월이었다. 선생님의 소설이 완성되기까지는 인간의 한계를 넘나들었을 것이며 선생님이 순탄한 인생길을 걸었다면 가슴에서 나오는 글이 결코 나오지 않았으리라 감히 말해본다.
인생을 살다보면 기쁜 일, 즐거운 일,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 들을 겪으면서 살아가게 된다. 어려운 일, 고통스러운 일들을 겪으면서 얼마나 지혜롭게 개척해 가면서 살아가는지가 참 중요할 것 같다.
대가수 조용필님~~!!
나는 언제가부터 대가수 조용필님을 참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시대의 노래 내 이름은 구름이여 그리고 돌아가신 우리 이모부님이 참 좋아했던 친구여 ~!! 등 가수로서도 좋아했지만 그분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서 참 좋아하게 되었다. 구지 왜냐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그리고 열정적인 모습이다. 고추잠자리, 단발머리란 노래로 새로운 창법을 개발하면서 얼마나 몰입하여 노력했는지 목에서 피가 나오면서까지 온 힘을 다하는 모습을 접하면서 가슴뭉클 하기도 했다. 어느 산사음악회에 가수 조용필을 초청하여 소박한 음악회를 개최하게 되었는데 이상 기온으로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주최측에서는 행사진행을 어찌할지 노심초사하였다.
하지만 대가수 조용필님이 노래를 열창하면서 행사주최측의 노심초사도 기우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왜냐면 관객이 많지도 않은 차가운 산사음악회에서 얼마나 열정적으로 몰입하여 노래를 열창하는지 조용필의 이마에 작은 구슬땀이 맺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