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잘못될 세라, 자식이 나쁜 길로 빠질 세라, 한 순간도 편할 날이 없으셨던 우리의 어머니 고판례 수부님. 자식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가슴속에 감추시고, 회초리를 들어 자식의 종아리를 치시며 속으로 흐느껴 우셨던 우리의 어머니 고판례 수부님. 아버지를 일찍 떠나보낸 세상의 어머니들이 험난한 세파와 싸우며 걸으셨던 힘들고 어려웠던 형극의 길을, 고수부님도 예외없이 걸으셨습니다. 남들로부터 애비없는 자식이란 손가락질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섭게 자식들을 단도리하시며 자식들을 위해서 온갖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우리의 자랑스러운 어머니이십니다.
고부수님께서는 아버지 강증산 없이 커가는 신앙의 자식들이 혹시 희망을 잃을 세라 격려와 자신감을 불러넣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 정묘년(1927) 이월 초삼일 경칩절에 사십여 명이 모여 치성을 드리니라. 이 때에 치성을 마치고 난 후 모든 도인들을 그 자리에 세우시고 가라사대 "이제 도인대중은 들으라. 오직 일심으로 신봉하라. 내가 너희들의 신세를 그르치지는 않으리라. 오직 증산과 내가 합성하여 심리한 일이니 안심할 지니라. 너희들은 복 많은 자이니 팔 짚고 헤엄치기니라." 하시니라.(선도신정경 p137)
우리들의 신앙의 아버지이신 강증산 상제님께서는, 고판례 수부님을 천하의 어머니로 정하시는 천지공사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만민의 어머니이신 고수부님을 잘 받들라고 말씀하시면서, 고수부님에게는 만민의 어머니로서 겪어야 될 힘들고 어려운 형극의 길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셨습니다.
@ 고부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없으면 여덟가지 병으로 어떻게 고통하리오. 그중에 단독이 크리니 이제 그 독기를 제하리라." 하시고 그 손등에 침을 바르시니라. (대순전경 p403)
@ 또 고부인에게 일러 가라사대 " 내가 없으면 그 크나큰 세 살림을 어떻게 홀로 맡아서 처리하리요." 하시니 고부인은 증산상제님께서 어느 외처에 출입하겠다는 말씀으로 알았더라. (대순전경 p403)
고수부님께서는 담뱃대로 사정없이 자식들을 때리시며 혼구녕을 내시고, 마음을 바로하여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받들도록 엄히 경계하셨습니다.
@ 지고후비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시면 마음 속으로 깊이 생각해볼 뿐 묻지 말아야지, 만약에 그 까닭을 물은즉, 담뱃대로 사정없이 치시며 호령하여 가라사대 "무슨 일이던지 네 스스로 깨우쳐 알아야 할 것이거늘, 백사를 남에게 항상 물어서 어찌하리요" 하시며 호령하시니, 문도들이 감히 묻지 못하고 말씀의 의취를 궁구하기에 힘쓰더라 하니라. (선도신정경 p225)
@ 어느날 지고후비님께서 담뱃대를 들고 옆으로 저으시며 도인들에게 가라사대 "너희들은 잘 듣고 살피도록 하라. 천하에 뭇 무리들이 서로간에 낫노라 다투어 고개를 처들고 먼저 나오고저 하니, 이것이 천하에 끼치는 병폐의 하나로다. 이제 그대로 두면 분잡이 가중되어 혼란이 자심하리니, 이 담뱃대를 휘둘러 그 처드는 꼭두를 치면, 저들의 들었던 머리가 본처로 쏙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선도신정경 p227-228)
자식들의 생명을 지켜주시기 위해 고수부님께서는 일본 순사에게 엄하고 무서운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 어언간 서너 달이 지나가고 팔월달이 되어, 구월 상제님의 탄신절 치성이 가까와짐으로 이번 치성을 성대히 모실 양으로 마음을 정하고 있으면서 추진하니라.
그런데 성대히 모시고자 하는 데는 이유가 있으니, 항상 고후비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없어서 사람이 없어서" 하시고 특히 치성때 많은 도중이 모였음에도 불구하시고 "사람이 없어서 사람이 없어서"하시므로, 이번 치성은 많은 사람을 모아 아주 성대히 거행하리라 하고 마음을 정한 후, 고후비님께 문후차 출입하는 간부 도인들과 상의하니, 모든 간부들이 찬성하여 이번에 도인들을 총동원하기로 하였더라.
그리하여 천공품(제수)을 많이 장만하여 괴이고 큰 황소를 잡아서 희생을 바치기로 준비하니, 이 때에 모인 도중이 모려 팔백 명이라 하였으니, 왜정시절의 모임으로서는 많은 모임이라 국가의 권력으로 동원하지 않은 이상 이렇게 많은 대중이 모인다 함은 생각할 수 없는 큰 모임이더라.
그런데 그날 초야부터 어인 일인지 안개가 꽉 껴서 당초에 지척을 분별할 수 없이 되여 있는데, 고후비님께서는 초저녁부터 서둘러 가라사대 "치성을 밤 자시 전에 모시도록 하라"고 재촉하시더니, 치성을 마치자마자, "속히 밥 먹고 가라"고 성화같이 재촉하시매, 도중들이 의아하면서도 명령대로 서둘러 떠나가는 바, 이 때 지척을 분별치 못하게 끼어있던 안개가 도인들이 물러가자 서서히 걷히더라.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떠난 후라, 미처 치우지 못한 기명과 음식등이 그대로 방치한 채 놓여있으며 집안이 산만하나 잠을 못잔 간부도인이라 피곤하여 막 쉬려할 즈음에, 뜻밖에 김제 경찰서에서 왔다고 하며, 서장이란 사람이 직접 순사대를 인솔하고 와서 찾으며 온 집안을 수색하므로, 강응칠이 급히 고후비님 전에 달려가 고하니, 들으시고 가라사대 "내가 이미 알고 있노라. 그자들을 데려오도록 하라." 하시거늘, 시자의 생각에는 만부당하신 분부이나 명이 그러하시니 어찌할 수 없어서 일본 순사들에게 그대로 말하니라. 서장이란 자가 그 말을 듣고 기세등등하여 당으로 들어올 새, 수행순사는 뜰 아래 세워두고 뜰 위에 오르더니, 방안에 단정히 정좌하고 앉아 계신 고후비님을 쳐다본 후로부터 벌벌 떨면서 간신히 마루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지더니 떨고 있을 뿐이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굳어있더라. 한참을 그대로 놓아두시다가 명하여 가라사대 " 그대가 나를 찾았다 하니 무슨 용무이던가." 하시고 하문하시나, 왜경 서장은 사지를 흡사 사시나무 떨듯 하며 말도 못하고 있을 뿐이더라. 또 한참을 그대로 두시었다가 명하시되 "그대가 대답치 않으니 용무가 없는 바라. 어서 돌아가도록 하라." 하시니, 왜경 서장이 벌떡 일어나 뜰 밑으로 내려가더니, 순사들을 지휘하여 나가며 왜말로 하는 말이 "당신들 저렇게 무서운 사람과 어떻게 같이 사느냐." 하더라. 또 내당에 들어오기 전에 온 집안을 수색할 때, 모퉁이에 놓아둔 소 가죽을 몇 번씩 밟고 넘어다니며 못 본듯 말하지 않고, 돌아갈 때 말하기를 "한 점의 의혹도 없다." 하며 몹시 허탄해하면서 돌아가더라 하니라. (선도신정경 pp66-70)
우리의 아버지이신 강증산 상제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우리의 어머니 고판례 수부님을 잘 모실 것을 신신당부하셨습니다.
@ 갑술년(1934) 9월 초이렛날 친자 종도 김경학과 김영학이 와 뵈옵고 여쭈어 가로되 "저희들이 모악산 물왕암에서 수련을 행하던 중에 상제님의 성령이 나타나사 수십 년동안 천후님과 막혀 지낸 것을 꾸짖으시고 '이 길로 가서 너의 천후를 모셔다가 모든 지난 일을 타파하고 이전 정의를 다시 계속하지 아니하면 화가 있으리라'고 정령히 지시하시므로, 저희 두 사람이 일동을 대표하여 왔아오니, 천후께서는 저희들의 이전 과실을 깊이 용서하시고 함께 가사 앞으로 사흘동안 수련법석을 주재하여 주시옵소서." 하며 추회의 눈물이 비오듯 하거늘, 천후 가라사대 "지난 일은 한갖 꿈과 같을 뿐이요 칠십노인이 멀리 와서 이렇듯 간곡히 말하니, 내가 비록 건강이 허락치 못할 지라도 멀리할 수 없노라." 하시고, 두 사람을 따라 물왕암에 가시니 곧 박공우의 주창에 따라서 김경학 김영학 이중성내외 이성영 김수응 등이 모여서 진법을 수련하는 법석이라. 천후 여러 사람들과 함께 사흘동안을 머무르시다가 법석이 파함에 열하룻날 금산사를 들려서 용화동에 이르사 이틀 동안 머무르시며, 개사한 영정이 많이 틀렸음을 지적하사 다시 개사하라고 명하시고 용화동을 떠나 돌아가시니라. (천후신정기 p93)
우리의 어머니이신 고판례 수부님께서는 "나의 한을 다 이야기하자면 너희는 모르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며, 아버지 강증산 없이 신앙의 자식들을 키우신 지난한 어려움을 토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 강증산 상제님과 함께 성령으로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시고 증산 상제님곁으로 돌아가셨습니다.
@ 을해년(1935) 시월 초닷새날 낮에 부엌에 들어오시더니 소매를 걷지도 않으신 채 팔을 구정물 통에 넣어 고루 저어서 가라앉은 찌꺼기를 걷어내 보시며 조왕맞이 여신도 이길수에게 가라사대 "밥티 한 알이라도 구정물 속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라. 사람이 먹는 것이란 천지가 아는 것이니라. 만약에 밥알을 구정물에 버리면 죄가 크리로다." 하시고 또 그 길로 나뭇간으로 가시어 땔나무를 돌아보신 후에 나무를 아껴서 때라 당부하시더라 하니라. 이 날 오후에 이르시기를 "너희들은 집이나 잘 지키고 있도록 하라." 부탁하시고 또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아버지에게 속히 가야 너희들이 잘될 것이니라." 또 여신도 백윤화에게 가라사대 "이십칠 년만에 근본을 찾았다." 하시더라.(선도신정경 pp231-232)
@ 을해년 시월 초닷샛날 저녁에 천후 목욕하시고 새옷을 갈아 입으신 뒤에 요위에 누으사 고영(고민환)을 불러 들여 머리 맡에 앉히시고 두어시간 후에 문득 가라사대 "잘 꾸리고 있으라." 하시거늘, 고영이 무슨 뜻임을 물으니 대답치 아니 하시고 또 가라사대 "증산이 오시면 나도 올 것이요, 내가 오면 증산도 오시리라." 하시더니, 조금 있다가 "벌써 오실 때가 되었는데"라고 세번 거듭 말씀하신 뒤에 눈을 감으시고 선화하시니 새벽 두시라. 이 때에 모시고 있든 자는 고영과 박종오와 식모 이길수더라. 날이 밝음에 수의를 수습하니 이미 꺼내어 횃대에 걸어놓으셨더라. (천후신정기 p96)
남존여비의 유학의 폐해가 극심하고 일제의 준동이 나날이 더해가는 참으로 어려운 시절에, 담배대를 드시고 엄하고 강인하신 모습으로 신앙의 자식들을 지키시기 위해 동분서주하신 우리의 어머니 고판례 수부님의 은공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증산상제님과 함께 또한 후에는 홀몸으로 우리에게 올바른 진리를 심어주려 하셨던 그 노력과 고통을 가슴깊이 새겨 열심히 수행하겠습니다.
"천하에 뭇 무리들이 서로간에 낫노라 다투어 고개를 처들고 먼저 나오고저 하니, 이것이 천하에 끼치는 병폐의 하나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