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은 그림자처럼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다 - 세탁기의 손처럼 오븐의 발처럼 - 단호박 속에 벌 세 마리 자라고
송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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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二十四, 복과 지혜를 비교할 수 없다
『수보리야, 어떤 사람이 모든 삼천대천세계에서 제일 큰 산인 수미산왕만한 七보의 덩어리를 가지고 널리 보시한다 해도, 만일 또 다른 어떤 사람이 이 반야바라밀경에서 내지 네 글귀의 게송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남을 위해 연설해 주었다면, 앞의 복덕으로는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백천만억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 내지 숫자가 있는 대로 다 모아서 비교하더라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 금강반야바라밀경 / 요진 삼장법사 구마라집 역 / 선문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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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문장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는 장독 뚜껑 같은 것입니다. 그 장독 뚜껑(문장)을 비가 올 때 여느냐 (비도 여러 종류입니다) 눈이 올 때 여느냐 (눈도 여러 종류입니다) 해가 쨍쨍할 때 여느냐 바람이 불 때 여느냐 (바람도 여러 종류입니다) 별이 총총할 때 여느냐 (별도 여러 종류입니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논물 위로 찰랑찰랑 번질 때 여느냐 (개구리도 여러 종류입니다) 그런 걸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좋은 문장은 생각 할 틈도 없이 바로 흘러나오는 문장입니다. 좋은 문장이 흘러나오기 위해서는 나의 감각이 항상 깨어있도록 그러니까 편안히 잠은 자고 있지만 시의 감각이 깨어있고 필요한 밥을 먹고 있지만 시의 감각이 깨어있고 바쁘게 일은 하고 있지만 시의 감각이 깨어있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선을 베푼다는 생각 없이 선을 행하면 최고의 선이듯 좋은 문장을 써야지 하는 욕심 없이 자연스럽게 감각이 늘 이렇게 깨어있으면 좋은 문장, 좋은 시를 쓸 수 있습니다. 장독 안의 요정과 날개의 찰랑거림과 은하수와 초승달과 무당개구리와 습기와 물과 불과 숯과 빨간 고추를 들여다볼 수 있거나 장독 그 자체를 바로 만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장독이 되려고 하지 말고 원래 스스로가 좋은 장독임을 아셔야 합니다. 좋은 장독이라는 것도 그 이름이 좋은 장독일 뿐입니다.
나에게 갔을 때 나의 몸은 따듯했다 나의 따뜻한 몸을 누군가가 다가와 염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따듯해요..’ 나의 몸속에 있는 목소리가 몸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아직 따듯한 나는 탈지면을 먹어야 했고 굵은 천일염 소금을 먹어야 했고 손톱 발톱을 깎는 중이어야 했다 하얀 면장갑이 아직 따듯한 나의 손등을 덮고 하얀 버선이 아직 따듯한 나의 발등을 덮었다 ‘나는.. 아직... 따듯해요...’ 아직 따듯한 나는 기저귀를 차고 오렌지빛 한복을 입었다 아직 따듯한 나는 오렌지빛 한복을 좋아했다고 나의 나가 울먹이며 말했다 아직 따듯한 나의 목에 변성기 수술 자국이 반달무늬토기처럼 남아있었다 가족 친지 친구 모두 모이라고 한다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한다 그들은 아직 따듯한 나의 머리카락에 이마에 두 뺨에 코에 인중에 입술에 턱에 키스를 한다 아직 따듯한 나는 얼굴이 전부인 생이 아니었는데 어느새 얼굴이 전부인 생이 되어버렸다 고개 숙여 우는 사람들 등 뒤로 오전 8시 28분 시곗바늘이 아직 따듯한 나의 쌍꺼풀 없는 눈동자에 목테갈매기의 날갯짓처럼 멈춰 서 있다
송 진 _ <염을 하는 시간들>
위의 시 중에 ‘나’를 ‘그’라고 읽어봅니다. 그러면 느낌이 달라집니다. ‘나’라고 할 때와 ‘그’라고 할 때의 화자의 입장, 위치가 모두 달라집니다. 시는 이처럼 단어 하나에 뜻이 많이 달라집니다. 그러니 문장 하나 단어 하나 음절 하나 소홀함이 없도록 평소에도 늘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 우리 눈에 비치는 모든 것, 우리가 만지고 기대는 모든 것, 내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의 안팎에 대하여 적확한 언어를 쓰는 관심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뇌 속을 가슴속을 자주 열어보고 뒤척이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언어를 다룬다는 것은 영혼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1. 화자를 ‘나’로 시 한 편 쓰기
2. 위의 시의 화자를 ‘그’로 바꾸어 읽기
3, 자작시 감상 느낌 쓰기
시를 쓰거나 회사, 공장을 다니거나 알바를 하거나 집안일을 하는 것은 서로 혈액과 혈액이 통하고 있듯이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있듯이 다르나 같은 일입니다. 한 개의 동그란 원입니다. 먹는 것도 화장실 가는 것도, 자는 것도 깨는 것도,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다르나 같은 일입니다. 우리는 먹으면 화장실에 가서 배설을 해야 하고 시간이 흐르면 배가 고파 또다시 먹어야 합니다. 자면 일어나야하고 일어나서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자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이 몸이 시키는 대로 먹고 배설하고 자고 깨는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시를 쓰는데 이 몸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는데 지장 없을 정도로 음식을 먹으면 됩니다. 그러면 음식을 적게 하게 되고 그러면 시를 쓸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옷을 입습니다. 그러면 돈을 적게 벌어도 되고 옷에 신경을 적게 쓰게 되니 시간이 남습니다. 그러면 그 시간에 시를 씁니다. ‘항상 깨어있는 정신’은 내가 이 생生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게 해 줍니다. 우리는 잠시 이 지구에 태어나 이 몸, 즉 소라껍데기를 빌려 잠시 머물고 있습니다. 죽으면 버리고 갈 이 소라껍데기에 치장을 하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소라껍데기 속에 들어있는, 보이지는 않지만 원래 있는 영원한 참된 정신, 즉 ‘참나’를 깨닫는다면 시를 쓰고자 하는 이나 시를 쓰는 이는 언젠가는 버리고 갈 이 몸으로 최선을 다해 시를 쓰는 것이 세상 일 중에서 가장 큰 이익이 되는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몸의 감성적, 서정적 기운을 소중히 보살펴서 나에게 온 시를 온전히 있는 그대로 받아쓰면 우리의 정신은 영원한 자유를 얻어 언젠가 죽음이 다가와도 두려움 없이 소라껍데기를 버리고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갑자기 생겼다 갑자기 없어지는 저 구름처럼 머물고 떠나기를 반복합니다. 시를 쓰고자하는, 혹은 쓰는 ‘나’ 가 이 지구에 태어나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떠나는지를 두 눈 부릅뜨고 똑바로 뚫어지게 관觀하여야 합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구구일까요 구두일까요 산일까요 물일까요 한 조각 달콤한 치즈케이크 구름일까요 게릴라성 소나기처럼 퍼붓는 폭염 아래 둥근 테이블에 놓인 팥 없는 망고빙수일까요
딩동! 단호박떡이 배달되었습니다 뜨근뜨근 손이 가볍습니다 살랑살랑 폭염의 바람도 잠자리날개입니다 식혜와 오미자차는 멀리서 강아지 떼와 고양이 떼처럼 달려옵니다 그 모습이 아름다운 자줏빛 감자 같습니다 분홍빛 마고자 황금단추 같습니다 오, 어서들 오렴 꿀떡꿀떡 꿀떡입니다 설겅설겅 설익었습니다 뜬금없이 말복입니다 뜬금없이 가을입니다 오, 이 일을 어쩌지요 아직 옥상에는 병든 어머니가 빨랫줄에 널려있는데
송 진 _ <뜬그멉 씨와 말복 씨>
파도 소리를 들으며 모래사장에 누워 8월의 밤하늘에 시를 수놓습니다. 흔적도 없는 시들이 수놓아졌다 사라집니다. 원래 없었으니 없는 것조차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수놓아져 있으니 보이지 않으나 늘 있는 것입니다. 잠을 못자고 몸을 뒤척이면서 시를 고민하면 시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빛깔을 드러냅니다. 시간이 흐르는 사이 모래시계 속에 꽂아놓은 초가 다 닳았습니다. 똑똑, 또 한 개의 초가 노크합니다. 투명한 문을 열고 안 열고는 ‘나’를 관觀하는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 2023년 7월 7일은 소서小暑입니다. 소서에 보이는 모든 사물과 그 사물로 인해 생겨나는 생각들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적어봅니다.
(예문)
• 매미: 유리병 속에 갇힌 별매미
부당함에 항의하듯 뿜어대는 거센 울음소리
병뚜껑을 닫자 촛불 스러지듯 스러져 갑니다.
<직접 쓰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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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 보아요 무엇이든 지금 이 순간이면 더 좋겠어요.”
저는 날마다 한 편의 시와 시작노트 쓰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환경과 능력에 따라 날마다 문장 한 줄, 낱말 하나라도 쓴다면 감각이 유지되어 시가 쉽게 써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노트에 써도 되고 휴대폰이나 달력에 써도 됩니다. 시는 오묘한 세계입니다. 잘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고 날마다 꾸준히 열심히 정진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호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늘 건안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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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
1999년 김춘수, 이승훈 등 심사로 《다층》 제1회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지옥에 다녀오다』, 『나만 몰랐나봐』, 『시체 분류법』, 『미장센』, 『복숭앗빛 복숭아』, 『방금 육체를 마친 얼굴처럼』, 『플로깅』, 『럭키와 베토벤이 사라진 권총의 바닷가』(2023 아르코 문학나눔 선정)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