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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롯불 같은 더위에도
스님들이 가파른 계단을 오르신다.
선두이신 큰스님 뒤로 열 분도 넘는 스님들이 좁은 계단에 행렬을 만들면서 오르신다.
큰스님도, 뒤를 따라 오르시는 연세 많으신 스님들도 문수선원 5층까지를 한 걸음에 오르시지 못하고 두어 번 멈춰서서 허리를 펴고 숨을 크게 고르신다.
멈춰서 서로 눈길이 닿으면 빙그레 웃으신다.
큰스님은 상가입구에서 하늘을 보시며 “하늘에 구름 한 장이 있어서 오늘은 좀 낫나?”하셨다.
구름도 미안해서 얼굴 붉힐 것 같이 뜨거운 날, 손바닥을 쫙 펴면 모닥불 앞에 선 것처럼 따끈따끈하다. 한 발자국 물러서 피할 곳이 없다.
큰스님을 친견하신 스님들 중에서 태고종의 비구니스님들도 계셨다. 태고종 스님들이 인사오실 때마다 태고종 비구니스님들도 있다고 말씀하시고, 큰스님이 보고 싶어하시니까, 오늘 마침 보살님이 중간에서 ‘중매’역할을 하셔서 친견이 이루어졌는데, 스님들은 명함케이스며 가사를 집는 고리까지 벌써 선물로 준비하고 계셨다.
큰스님은 ‘아주 멋쟁이 스님이구나.’ 하고 선물들을 이리저리 살펴보시다가 ‘이런 선물들 모아서 전시해도 되겠다.’ 고 하셨다.
오늘 큰스님은 처음으로 반가사를 입고 오셨다. 빳빳하면서도 얇은 여름 장삼을 입으시고 간단하게 반가사를 입으신 모습이 멋이 있었다. 그런데 좀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다. ‘전문가’ 이신 스님들이 오시자 기다렸다고 하시면서 “괜찮아?” 하고 일어서서 가사 입으신 모습을 보여주셨다. 스님들이 우뚝 서서 짧지만 깊게 가사의 역사와 종류와 변천사까지 다 이야기 하시는 모습이 새로왔다.
“스님은 오히려 괜찮은데 정오스님이 무서워. 젊은 스님이 더 무섭지 뭐.”
큰스님은 반가사를 입고 걱정하시며 법회에 간 꿈까지 꾸셨다고 했다. 다행히 꿈속에서 똑같이 반가사를 입고 온 인례스님을 보시고는 무척 반가와서 안심하셨다며 웃으셨다.
“내가 이렇게 순진하다니까.”
“제가 반가사를 입고 와서 기대에 부합해 드릴 걸 그랬습니다. 스님 이거 간편하고 좋습니다.” 중앙에서도 반가사에 대한 정식 논의가 있었다고 했다.
“음 그런 논의가 있었구나.”하고 기분 좋아하셨다.
큰스님께서 문밖을 내다보다가 일부러 법명을 불러 스님을 찾으셨다.
“**! 이리와 봐. 더운데 기도 잘해?”
“작은 가운데 많이 와서 기도 하고 있습니다. 더욱 잘해야 하는데 제가 활발하지 못해서.”
삼배를 올리고 스님이 멋쩍게 웃으셨다.
“짧은 시간에 욕심부리지 말고 야무지게 천천히 해. 그래야지 안무너지고 좋아. 식물도 한꺼번에 확 자란 식물은 금방 쓰러지잖아. 절도 마찬가지고 사람이 하는 일도 다 그래. 한달에 한 사람정도 더 불었다 생각하면 그러면 훌륭한 거야.”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며 얼굴이 환하게 펴지신 젊은 스님은 조금 주저하면서도 자랑이 담긴 목소리로 학생들이 많이 오고 있다고 알려 드렸다.
“그래 그래 열심히 해.” 큰스님도 흐뭇해 하셨다.
화롯불같은 더위에도 속속 스님들이 법석을 메웠다. 모일수록 그 자리 시원해졌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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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날씨에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렇게 많은 스님들이 오셔서 법회에 성황을 이뤄주셔서 아주 대단히 고맙다. 말은 안 드렸지만 봉사하시는 신도님들도 이 더위에 십여 분이 이렇게 오셔서 주차관리도 하시고 스님들이 자실 음료수라든지 음식 같은 것을 준비하느라고 아주 대단히 고맙다. 녹음 하시는 거사님, 녹화 하시는 BBS 방송국 직원, 모두 더운 날 고생이 많다. 이것은 모두 불교를 위하는 일이고 부처님 법을 널리 홍보하자는 뜻에서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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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화엄경 제6강 유인물부터 살펴보도록 하겠다.
<유인물>
화엄십찰(華嚴十刹)(제6강 2010년 8월 2일)
義湘 스님과 10대 弟子에 의하여 전국에 설립.
10대 제자 - 悟眞 智通 表訓 眞定 眞藏 道融 良圓 相源 能仁 義寂
①중악 공산(公山)의 미리사(美理寺)
② 남악(南岳) 지리산의 화엄사(華嚴寺)
③ 북악의 浮石寺
④강주(康州) 가야산 해인사(海印寺)와 보광사(普光寺)
⑤웅주(熊州) 가야협(迦耶峽) 보원사(普願寺)
⑥계룡산(鷄龍山)의 갑사(岬寺)
⑦양주(良州) 금정산의 범어사(梵魚寺)
⑧비슬산(琵瑟山)의 옥천사(玉泉寺)
⑨ 전주 무산(毋山)의 국신사(國神寺)
⑩한주(漢州) 부아산(負兒山)의 청담사(淸淡寺)
*덕유산 안의 영각사
華嚴의 祖師
一, 5조설
1. 杜順 2, 至相 3, 賢首 4, 淸凉 5, 圭峰
二, 7조설
1, 馬鳴 2. 龍樹 3, 杜順 4,至相 5, 賢首 6, 淸凉 7, 圭峰
三, 10조설
1,. 文殊 2, 普賢 3, 馬鳴 4. 龍樹 5, 世親
6, 杜順 7,至相 8, 賢首 9, 淸凉 10, 圭峰
한국의 조사
1. 義湘은 法性偈와 法性圖 ,
2. 元曉는 華嚴經 序文 과 光明覺品 疏,
3. 審祥은 일본에 화엄경을 전파
4, 행기(行基 6680749)
5, 양변(良弁 689-773) 스님은 일본에 화엄 총본산인 동대사와 비로자나대불 건립의 계기를 만들었음.
6, 均如(923-973)는 (보현십원가)
7, 고려의 普照 스님(화엄론 절요, 원돈성불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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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시간에 언급한 것들이다. 자세하진 않지만, 스님들이 인연따라서 화엄경을 이야기 할 때 자료로 쓰실 수 있도록 화엄십찰이나 화엄의 여러 조사스님들에 대해서 상식선에서 정리하여 문서화했다.
전등록이나 승보전 등과 같은 역사적인 고증을 통해서 출처를 밝히고 철저히 조사하는 일은 다른 경우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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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지는 1700년 정도 되었지만 중요한 경전이 다 들어오고, 사상적으로 한국불교가 제대로 정립된 시기는 의상스님이 중국에 유학을 가서 화엄경을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나라에 널리 전파한 다음이다. 화엄경이 우리나라에 널리 전파되면서 비로소 한국불교의 정체성이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당시 의상스님과 십대 제자에 의해서 전국에 세워진 절들이 소위 화엄십찰이다. 삼국유사나 최고운 선생의 전기, 현장법사의 전기에 화엄십찰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그 명칭이 조금씩 다르다. 유인물에 올라져 있는 것은 신라 때 표기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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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악 공산(公山)의 미리사(美理寺)
남악(南岳) 화엄사(華嚴寺)
부석사(浮石寺), 부석사가 본산이다. 의상스님께서 중국에서 화엄학을 공부하고 와서 부석사에 먼저 짐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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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義湘)스님의 많은 제자중에 10대 제자로 꼽는 스님들은 다음과 같다.
오진(悟眞)스님 지통(智通)스님 표훈(表訓)스님 진정(眞定)스님 진장(眞藏)스님 도융(道融)스님 양원(良圓)스님 상원(相源)스님 능인(能仁)스님 의적(義寂)스님.
범어사와 같이 의상스님이 직접 건립한 사찰도 있지만 의상스님이 일일이 다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제자들이 의상스님의 이름을 빌어서 세운 사찰도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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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海印寺)와 보광사(普光寺) 보광사는 해인사 너머에 있었던 절인 것 같다.
보원사(普願寺) 갑사(岬寺)범어사(梵魚寺) 옥천사(玉泉寺) 국신사(國神寺) 청담사(淸淡寺)등이 기록에 나와 있는 10대 사찰이다.
그 밑에 내가 덕유산 영각사를 넣은 것은 조선말까지 영각사에 화엄경 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옛날 목판본 화엄경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영각사판을 제일로 쳤다. 6ㆍ25때 영각사가 소진되어 경판은 다 타버리고, 지금은 우리나라에 그 때 찍은 화엄경 몇 벌이 남아있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판본이 제일 좋다고 하는 영각사본 화엄경을 구하려고 상당히 노력한다.
내가 어느날 영각사를 지나다 보니 ‘화엄종찰’이라고 현판이 크게 세워져 있었다.
해인사도 ‘원종대가람’이라는 표현을 하지만, 크게 화엄경만을 숭상하는 것은 아니다. 부석사도 그렇다. 화엄사는 이름이 화엄사인데도 불구하고 화엄경을 숭상하거나 하지 않는다. 간판이나마 영각사는 ‘화엄종찰’이라고 걸어놓았기 때문에 이렇게 한 번 이름을 밝혀드린다. 이런 것들도 우리가 화엄경을 공부하면서 상식적으로 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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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조사는 고래로 5조설, 7조설, 10조설이 있다.
5조설 : 두순(杜順)스님, 지상(至相)스님, 현수(賢首)법장스님, 이 현수법장스님과 사형사제로서 우리나라 의상스님이 있다. 청량(淸凉)징관스님, 규봉(圭峰)종밀스님. 이렇게 5조설이 있다.
여기에 마명(馬鳴)과 용수(龍樹)를 합하면 7조가 된다.
또 여기에 문수(文殊) 보현(普賢) 세친(世親)보살까지 합하면 10조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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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조사 : 의상스님의 법성게, 법성도가 우리 염화실지에 늘 이렇게 나와 있다. 중국의 어떤 조사스님들도 이렇게 화엄사상을 빼어나게 정리 하지 못했다.
의상스님의 법성게는 최초로 우리나라에 화엄사상이 뿌리내릴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의상스님은 이 법성게, 법성도 하나만 가지고, 지금까지 화엄학자로서 추앙을 받는다. 많은 책을 쓴다고 해서 유명해 지는 것이 아니다. 한 편을 써도 만고에 귀감이 되고 영원히 남을 명문 한 편을 쓰면 이렇게 역사적으로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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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元曉)스님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의상스님과 유학을 가는 도중에 깨달은 바가 있어서 돌아온 스님이다. 원효스님의 저작으로 화엄경 서문(序文)과 광명각품소가 있다. 원효스님 역시 화엄학자로서 빼놓을 수가 없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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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審祥)스님은 일본에 화엄경을 전한 스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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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기(行基)스님, 양변(良弁)스님은 일본에 화엄 총본산인 동대사와 비로자나대불을 건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일본역사에도 기록이 있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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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 균여스님은 보현십원가를 지었다. 향가는 물론 신라시대의 문학형식이지만 신라직후인 고려시대에 지어진 향가인 보현십원가도 향가문학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다. 균여스님은 우리 문학사에 공헌이 크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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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국사(普照國師)는 선사이기도 하려니와, 일본 사람들은 보조스님을 선사라고 하지 않고, 화엄학자라고 한다. 선에 대한 저술도 물론 있지만 통현장자 ‘화엄합론’을 축약한 뛰어난 책인 ‘화엄론 절요’ 3권이 있고, ‘원돈 성불론’이라고 하는 저서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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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세밀하게 제대로 이야기 하려면 이것만을 가지고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간단히 상식선에서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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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方廣佛華嚴經 卷 第三
世主妙嚴品 第一之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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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방광불화엄경 권제3, 2권이 끝나고 3권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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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주묘엄품 일지삼(世主妙嚴品 一之三)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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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경전 공부를 이렇게 한다. 소위 불교경전, 8만 대장경 중에서 최고봉이라고 하는 화엄경을 공부한다. 설사 화엄경이 아니라 그 어떤 경전이나 어록을 공부하든 경전공부를 하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경전의 내용을 보다 깊게 명상하고, 시대에 따라서 그 뜻을 보다 더 확장하는 일이다.
늘 외우는 천수경 반야심경도 단순하게 글자 해석을 하는 것에 끝나지 않고, 이 시대 우리가 살아가는 상황에 맞게 뜻을 확장시켜야 한다.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가 있다.
근본적인 부처님 말씀이 담겨 있는 이 경전이 복잡다단한 우리들의 현상황에 심도있게 활용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살아있는 불교, 활불교가 된다. 경전이 역사와 더불어 진리로써 살아서 숨 쉴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과제이다.
그것을 늘 마음에 새기고 공부할 때 훨씬 소득이 크다.
중요한 것은 관심이다. 관심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관심만 가지고 있으면 방법이 얼마든지 나올 수가 있다. 관심만 가지고 있으면 ‘아 이것은 오늘 내가 누굴 만났는데 이것이 적용이 되겠다.’‘오늘 내가 어떤 일을 하는데 적용이 되겠다.’‘어떤 사람이, 어떤 신도가 나에게 와서 어떤 고민을 이야기하는데, 이것이 적합하게 활용이 될 내용이다.’ 이런 식으로 개인의 문제와 교화를 위한 방편으로 활용이 될 수 있다. 여러분들이 늘 그런 쪽으로 관심을 가져야 된다.
(3) 第八廻向의 乾闥婆王
가, 乾闥婆王衆의 得法
復次持國乾闥婆王은 得自在方便으로 攝一切衆生解脫門하고 樹光乾闥婆王은 得普見一切功德莊嚴解脫門하고 淨目乾闥婆王은 得永斷一切衆生憂苦하야 出生歡喜藏解脫門하고 華冠乾闥婆王은 得永斷一切衆生邪見惑解脫門하고 喜步普音乾闥婆王은 得如雲廣布하야 普蔭澤一切衆生解脫門하고 樂搖動美目乾闥婆王은 得現廣大妙好身하야 令一切獲安樂解脫門하고 妙音師子幢乾闥婆王은 得普散十方一切大名稱寶解脫門하고 普放寶光明乾闥婆王은 得現一切大歡喜光明淸淨身解脫門하고 金剛樹華幢乾闥婆王은 得普滋榮一切樹하야 令見者歡喜解脫門하고 普現莊嚴乾闥婆王은 得善入一切佛境界하야 與衆生安樂解脫門하시니라
또 다시 지국건달바(持國乾闥婆)왕은 자재한 방편으로 일체중생을 거두어 주는 해탈문을 얻었고, 수광(樹光)건달바왕은 모든 공덕 장엄을 널리 보는 해탈문을 얻었고,
정목(淨目)건달바왕은 모든 중생의 근심과 고통을 길이 끊어서 환희를 내는 창고의 해탈문을 얻었고, 화관(華冠)건달바왕은 모든 중생들의 삿된 소견과 미혹을 길이 끊는 해탈문을 얻었고,
희보보음(喜步普音)건달바왕은 구름이 널리 퍼지듯이 모든 중생을 널리 덮어 윤택케 하는 해탈문을 얻었고, 낙요동미목(樂搖動美目)건달바왕은 넓고 크며 미묘하고 훌륭한 몸을 나타내어 모든 이들에게 안락을 얻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고, 묘음사자당(妙音獅子幢)건달바왕은 시방의 온갖 큰 이름이 나 있는 보배를 널리 흩는 해탈문을 얻었고,
보방보광명(普放寶光明)건달바왕은 모든 이가 크게 환희하는 광명이 청정한 몸을 나타내는 해탈문을 얻었고,금강수화당(金剛樹華幢)건달바왕은 모든 수목을 무성하게 해서 보는 이가 다 환희케 하는 해탈문을 얻었고, 보현장엄(普現莊嚴)건달바왕은 모든 부처님의 경계에 잘 들어가서 중생에게 안락을 주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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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향을 표한 건달바왕이 찬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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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바왕과 그 대중들이 얻은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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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지국건달바왕(復次持國乾闥婆王)1은 : 또 다음에 지국건달바왕은, 우리가 알기로 흔히 건달바왕은 노래 잘하고 춤을 잘 춘다.
득자재방편(得自在方便)으로 : 자재방편으로, 노래를 불러야 할 경우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야 할 경우에는 춤을 춘다. 이것이 본래로 있는 것이다.
섭일체중생해탈문(攝一切衆生解脫門)하고: 일체중생을 포섭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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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광건달바왕(樹光乾闥婆王)2은
득보견일체공덕장엄해탈문(得普見一切功德莊嚴解脫門)하고 : 일체공덕장엄을 널리 보는 해탈문을 얻고. 일체공덕장엄, 이런 말을 보고도 ‘이것을 현대적으로 어떻게 활용할까? 남의 장점을 보자. 장점을 칭찬해주자, 하루에 칭찬을 한 두 세 번 해야 되는데, 무슨 장점을 찾아서 칭찬해줄까?’ 이런 생각도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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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건달바왕(淨目乾闥婆王)3은
득영단일체중생우고(得永斷一切衆生憂苦)하야 : 일체 중생의 근심과 걱정을 영원히 끊어서
출생환희장해탈문(出生歡喜藏解脫門)하고 : 기쁨을 끝없이 출생하는 해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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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관건달바왕(華冠乾闥婆王)4은
득영단일체중생사견혹해탈문(得永斷一切衆生邪見惑解脫門)하고 :일체중생들의 사견혹을 영원히 끊는 해탈문을 얻었다.
사견혹이 인생 최대의 문제이다. 뭐니뭐니 해도 바른 견해가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불교에는 사견(邪見)을 경계하는 가르침이 많다.
이렇게 밝은 세상에도 우리가 삿된 견해에 미혹이 된다. 며칠 전에도 어떤 사람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 누구 이름을 들먹거리면서 그 사람이 지금 강원도에서 크게 포교를 하는데 이 세상에서 자기가 곧 부처이고, 자기가 하는 불교만이 진실이며, 지금 현재 불교는 제대로 된 불교가 없다고 하면서 나의 이름을 판다는 것이었다.
자기가 봐도 순전히 삿된 소견인데 그 사람하고 어떤 관계가 있느냐고 물어왔다.
그사람은 불교 TV에도 나왔다가 잘 못되어서 이제 불교TV에서는 초청도 않고 방영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부산에도 지부가 있다고 하는데 스님들도 더러 소문을 들어서 알 것이다.
사견이 참 무서운 것이다. 인생 최대의 문제다. 소견만 바로 든다면 그 다음 문제는 다 해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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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보보음운건달바왕(喜步普音乾闥婆王)5은
득여운광포(得如雲廣布)하야 : 구름이 널리 퍼지는 것과 같이 일체 중생들을 널리 그늘지고 윤택하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불법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더운 날 일체중생들을 그늘지게 하고 윤택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법으로써 그렇게 하고 물질로도 음택을 내린다. 그것이 불교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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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요동미목건달바왕(樂搖動美目乾闥婆王)6은
득현광대묘호신(得現廣大妙好身)하야 : 넓고 크고 아름답고 좋은 몸을 나타내서
영일체획안락해탈문(令一切獲安樂解脫門)하고 : 일체중생들로 하여금 안락을 얻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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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음사자당건달바왕(妙音師子幢乾闥婆王)7은
득보산시방일체대명칭보해탈문(得普散十方一切大名稱寶解脫門)하고 : 시방일체 대명칭보를 시방에 널리 흩는, 알리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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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방보광명건달바왕(普放寶光明乾闥婆王)8은
득현일체대환희광명청정신해탈문(得現一切大歡喜光明淸淨身解脫門)하고 : 일체대환희 광명 청정심을 나타내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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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수화당건달바왕(金剛樹華幢乾闥婆王)9은
득보자영일체수(得普滋榮一切樹)하야 : 일체 나무들을 잘 키운다. 자영한다고 하는 것은 잘 키운다는 뜻이다.
영견자환희해탈문(令見者歡喜解脫門)하고 :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쁘게 해주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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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장엄건달바왕(普現莊嚴乾闥婆王)10은
득선입일체불경계(得善入一切佛境界)하야: 일체부처님 경계에 잘 들어가서
여중생안락해탈문(與衆生安樂解脫門)하시니라 : 중생들로 하여금 안락하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나, 偈頌讚歎
爾時에 持國乾闥婆王이 承佛威力하사普觀一切乾闥婆衆하고而說頌言하사대
諸佛境界無量門이여 一切衆生莫能入이어늘
善逝如空性淸淨하사 普爲世間開正道로다
如來一一毛孔中에 功德大海皆充滿하사
一切世間咸利樂하시니 此樹光王所能見이로다
世間廣大憂苦海를 佛能消竭悉無餘하시니
如來慈愍多方便이여 淨目於此能深解로다
十方刹海無有邊을 佛以智光咸照耀하사
普使滌除邪惡見하시니 此樹華王所入門이로다
佛於往昔無量劫에 修習大慈方便行하사
一切世間咸慰安하시니 此道普音能悟入이로다
佛身淸淨皆樂見이여 能生世間無盡樂과
解脫因果次第成하시니 美目於斯善開示로다
衆生迷惑常流轉하야 愚癡障蓋極堅密이어늘
如來爲說廣大法하시니 師子幢王能演暢이로다
如來普現妙色身하사대 無量差別等衆生하사
種種方便照世間하시니 普放寶光如是見이로다
大智方便無量門이여 佛爲群生普開闡하사
入勝菩提眞實行케하시니 此金剛幢善觀察이로다
一刹那中百千劫을 佛力能現無所動하사
等以安樂施群生하시니 此樂莊嚴之解脫이로다
그때에 건달바왕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모든 건달바 대중들을 두루 살피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모든 부처님의 경계 한량없는 문이여
일체 중생이 들어갈 수 없거늘
선서(善逝)는 허공과 같아서 성품이 청정하사
널리 세간을 위해서 바른 길을 보이시네
여래의 낱낱 털구멍 가운데
공덕의 큰 바다가 모두 충만하사
모든 세간이 다 이롭고 즐거우니
이것은 수광건달바왕이 능히 보았네
세간의 넓고 큰 고통의 바다를
부처님이 다 말려 남음이 없게 하시니
여래의 자비롭고 불쌍히 여기는 많은 방편이여
정목건달바왕이 여기에서 깊이 알았도다
끝없는 시방세계를
부처님이 지혜의 광명으로 다 비추사
널리 사악한 소견을 씻어 없애시니
이것은 수화건달바왕이 들어간 문이로다
부처님이 지난 옛적 한량없는 겁 동안
큰 자비의 방편행을 닦아 익히사
모든 세간을 다 위안하시니
이 도는 보음건달바왕이 깨달아 들어갔네
부처님의 몸은 청정해서 다 보기가 좋아함이여
세간에 다함없는 낙(樂)을 내시어
해탈하는 인과를 차례로 성취하시니
미목건달바왕이 여기에서 잘 열어보이시네
중생은 미혹해서 항상 유전하며
어리석은 업장의 뚜껑은 지극히 견고하거늘
여래가 중생을 위하여 광대한 법을 설하시니
사자당건달바왕이 능히 연설하도다
여래가 미묘한 몸을 널리 나타내어
한량없는 차별을 중생과 같이하사
갖가지 방편으로 세간을 비추시니
보방보광건달바왕이 이와 같이 보았네
큰 지혜 방편문이 한량없거늘
부처님이 중생 위해 널리 여시사
훌륭한 보리의 진실한 행에 들게 하시니
이것은 금강당건달바왕이 잘 관찰했도다
일 찰나 동안에 백천 겁을
부처님의 힘으로 나타내어 동하지 않으사
평등하게 안락으로써 중생에게 베푸시니
이것은 장엄건달바왕의 해탈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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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바왕의 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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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의 건달바왕의 득법에 대해 간단히 말한 다음 순서대로 게송으로써 찬탄한다. 부처님을 찬탄하는 것이 곧 자기의 불교에 대한 소견이고, 자기가 쌓은 수행이다. 그리고 자기의 안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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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지국건달바왕이 부처님의 위력을 받들어서 일체대중들을 널리 살피고 게송을 설해 말씀하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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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불경계무량문(諸佛境界無量門)이여 : 모든 부처님의 경계는 한량없는 문이여
일체중생막능입(一切衆生莫能入)이어늘 : 모든 중생들이 능히 들어가지를 못하거늘
선서여공성청정(善逝如空性淸淨) 하사 : 부처님은 허공과 같아서 그 성(性)이 청정하사. 선서는 부처님이다. 여기도 ‘청정’이 ‘비었다’는 뜻으로 쓰였다.
보위세간개정도(普爲世間開正道)로다 : 널리 세간을 위해서 정도를 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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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여러 가지 정견(正見)이 있지만, 모든 존재에 대한 공성(空性)이나 무아(無我)에 대한 이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정도이고 정견이다.
제불경계(諸佛境界)가 무량문(無量門)이라고 했는데 불교라고 하는 것은 다종다양하다. 어리석고 몽매한 중생에게 딱 맞는 낮은 가르침이 있는가 하면, 아주 고차원적인 가르침도 있다. 그렇게 한량없는 문중에 첫 번째는 모든 존재의 공성이다. 모든 존재는 연기로 되어 있고, 연기로 되었다고 하는 것은 그 바탕이 되는 근본이 비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첫 번째 게송에는 ‘불교는 이러한 공성으로써 정도를 삼는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2
불교의 가지가지 방편이 모두가 이로운 것이고 즐거운 것이다. 또 이로운 것이고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 불교는 목탁을 치든 기도를 하든 경을 공부하든 참선을 하든 이롭고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가 두 번째 게송에 포함되어 있다.
여래일일모공중(如來一一毛孔中)에 :부처님의 낱낱 모공, 불교 그 다종다양한 많고 많은 부분부분에
공덕대해개충만(功德大海皆充滿)하사: 덕의 큰 바다가 다 충만해 있다.
일체세간함이락(一切世間咸利樂)하시니: 불교라고 하는 그 어마어마한 바다에 들어가서 모두 다 이롭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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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절에서 내려오며 보니 개울이 좋고 숲이 좋고 바위가 참 좋았다. 더운 날씨에 바위 하나만 가지고 봐도 그 바위에 누워 낮잠을 즐기고 더위를 피할 수 있다. 이것이 모두 부처님의 그늘이다. 여래일일모공 해당한다.
사찰에 와서 물 한 병 떠가는 것도, 관세음보살 부르면 마음에 위로를 받는다고 해서 관세음보살 하나만 배워서 열심히 관세음보살만 부르는 것도 훌륭한 이로움이고 즐거움이다.
전 세계 곳곳에 불교라고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분야분야를 낱낱이 우리가 살펴보고 기록을 해보기로 하면 끝도 없을 것이다. 어느 구석구석 중생들에게 혜택 베풀지 아니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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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수광왕소능견(此樹光王所能見)이로다. :이것은 두 번째 수광건달바왕이 능히 본 바로다.
*3
세간광대우고해( 世間廣大憂苦海)를: 세상의 넓고 큰 근심과 고통의 바다를
불능소갈실무여(佛能消竭悉無餘)하시니 : 세상 고통이 아무리 바다처럼 넓고 크다한들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을 우리가 접하게 되면 거기에 다 녹여버릴 수가 있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없애버릴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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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고뇌를 불교로써 해결한다. 어떤 고뇌가 됐든지 해결 안되는 것은 없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불법안에서 다 해결된다.
바다와 같이 그렇게 드넓은 고통들을 부처님은 언제나 다 소멸해서 없애 버린다.
*
여래자민다방편(如來慈愍多方便)이여 : 여래가 자비로써 어여삐 여기는 많은 방편들이여
정목어차능심해(淨目於此能深解)로다 : 이 도리를 정목 건달바왕이 능히 깊이 이해했더라.
*4
시방찰해무유변(十方刹海無有邊)을 : 시방의 드넓은 세계, 그 가없는 것을
불이지광함조요(佛以智光咸照耀)하사 : 부처님은 지혜의 광명으로써 그 모든 세상사를 전부 환하게 비추신다.
보사척제사악견(普使滌除邪惡見)하시니 : 널리 하여금 사악한 소견들을 씻어서 제거하신다.
여기도 사견이 나왔다. 4번 화관건달바왕의 득법에서 역설했던 대목이다. 사악한 견해를 씻어서 제거하시니
차수화왕소입문(此樹華王所入門)이로다 : 이것은 수화건달바왕이 들어간 바 문이더라.
*5
불어왕석무량겁(佛於往昔無量劫)에: 부처님은 지난 옛날 한량없는 겁에
수습대자방편행(修習大慈方便行)하사 : 큰 자비의 방편행을 수습하시사.
‘불교는 자비다.’‘불교는 지혜와 자비다’라는 말을 우리가 많이 한다. 사실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는 것은 지혜보다는 오히려 자비이다. 훨씬 피부에 잘 와닿는다. 그래서 큰 자비의 방편행을 수습한다고 하셨다.
일체세간함위안(一切世間咸慰安)하시니 : 일체세간을 다 위로하고 편안하게 하셨다.
부처님은 한량없는 세월 속에서 자비방편행을 수행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차도보음능오입(此道普音能悟入)이로다:보음건달바왕이 능히 깨달아 들어갔더라.
*6
불신청정개낙견(佛身淸淨皆樂見)이여 : 부처님의 몸 아주 훌륭하고 빼어나서 다 즐겨 바라봄이여.
능생세간무진락(能生世間無盡樂)과 : 능히 세상의 한량없는 즐거움도, 부처님을 바라보면 거기에서 다 즐거움이 생기고
해탈인과차제성(解脫因果次第成)하시니 : 해탈의 문제도 또 말할 것이 없다. 불교수행의 최고목표가 해탈이다. 또 세상을 살아가는데 인과의 원리. 그것까지도 다 만들어 낸다. 능생(能生) 할 때 생(生)자를 거기까지 해석한다.
세간의 즐거움이면 세간의 즐거움, 해탈이면 해탈, 인과의 원리면 인과의 원리 이 모든 것을 전부 거기에서 생산해 내되 차제성(次第成)이라. 낱낱이 자기 인연, 자기 좋아하는 것, 자기수준에 따라서 다 성취하게 하시니
미목어사선개시(美目於斯善開示)로다 : 미목건달바왕이 여기에서 잘 개시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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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이라는 말은 우리가 익숙하게 잘 쓰는 말이다. 이런 말도 언제 있을지도 모를 아득한 생사해탈만 생각하고 쓸 것이 아니다. 생사해탈을 언제할지 누가 아는가? 그러니까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서두에서 말씀 드렸듯이 이러한 뜻도 현대적으로 무한히 확장 시킬 수 있다.
가령 오늘 여기에서 누군가를 만나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로 약속했는데 때가 되어도 안 온다. 어차피 그 사람은 못 오는데 나는 속이 끓는다.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이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해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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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너무나 잘 아는 인과의 원리로 해탈할 수 있다.
누군가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내가 언제 그 사람하고 약속을 못 지킨 적이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인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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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잘 안되면 근래 내가 자주 이야기 하는 신삼법인(新三法印)이 있다. ‘나지사 관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도 사실은 경전에 있는 말을 현대적으로 풀어서 해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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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서 누가 안온다면 ‘오늘은 안오는구나’ 하고 그냥 그대로 봐주는 것이다.
이것이 ‘구나 관법’이다. ‘구나 보살’이라고 해도 좋다. 그럴 때는 관세음보살보다도 구나보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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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마음이 안 풀리면 다음에 제2법인이 있다.
‘겠지 보살’이다. ‘이유가 있겠지’ 분명히 그 사람 교통문제가 걸렸거나 아니면 사찰에 아주 중대한 일이 있거나 ‘뭔가 이유가 있겠지’하면 한 생각이 탁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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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제3탄이 ‘감사보살’이다.
‘그 사람이 오늘은 나를 속끓어 오르게 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그동안 나에게 한 것만으로도 아주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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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나 -겠지 -감사하다.’ 이것을 하나하나 훈련으로 쌓고 발전해나가면 구체적인 삼법인이 되고, 내 마음을 해탈하는데 이 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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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涅槃寂靜)만이 삼법인이 아니다.
‘-구나 -겠지 -감사하다.’ 염불로 해도 좋고 관법을 해도 좋다. 이것으로 참선을 해도 좋고 명상의 소재로 삼아도 좋고 주문으로 삼아도 좋다. ‘구나보살,겠지보살,감사보살’ ‘나지사 관법’을 꾸준히 하면 일상의 작은 문제로부터 해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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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식으로 한다. 불교가 구태의연한 용어해석에 끝날 것이 아니라, 현대적으로 확장 되어야 한다. 말이 현대식이지 그 내용은 경전 속에 이미 다 있어왔다. 이러한 모든 것이 불교 안에서 가능하다. 게송 하나하나를 미세하게 곱씹고 곱씹으면 오묘한 내용들이 다 구석구석이 스며있다. 자세히 마음을 가다듬어 읽어보면 보통 바위인줄 알았는데 그 바위구멍 구멍에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다.
7
중생미혹상유전(衆生迷惑常流轉)하야 : 중생들이 미혹으로 항상 흘러다녀서
우치장개극견밀(愚癡障蓋極堅密)이어늘 : 어리석음이 장애가 되고 짓누르는 덮개가 되는데 그것이 지극히 견고하고 밀밀해서 도대체 벗어날 길이 없다.
그야말로 땅에 싹이 하나 있는데 시멘트와 돌로 짓누른 것과 같다. 깨달은 분들, 눈이 밝은 분들이 보면 우리들의 어리석음과 번뇌가 지극히 견고하고 밀밀하다는 것이다.
여래위설 광대법(如來爲說廣大法) 하시니 : 중생들이 미혹으로 항상 유전해 다니니까 부처님 말씀이 많을 수밖에 없다. 여래는 자비가 넘치는 분이다. 아무리 못나고 둔하고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배제하고 외면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이해시키고 설득시키고 깨우쳐 주려고 광대한 법을 설한다. 그리고 무조건 감싼다. 여래는 척박한 돌자갈이나 심지어 바위위에도 씨를 뿌린다. 언젠가 그 바위에 먼지가 끼고 비가 와서 습기가 차서 씨앗이 싹을 틀 것이라고 믿는 깊은 자비가 부처님의 마음이고 불교의 마음이다. 여래위설광대법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뜻이다.
사자당왕능연창(師子幢王能演暢)이로다 :사자당건달바왕이 능히 연설했더라.
*8
여래보현묘색신(如來普現妙色身)하사대 : 여래께서 아름다운 색신을 널리 나타내시되
무량차별등중생(無量差別等衆生)하사 : 한량없이 차별하는데 중생과 같으사. 등(等)자는 그 중생하고 똑같다는 것이다.
불교는 ‘부처님이 누구냐, 어떤 분이냐’ 물으면 여기 200명 대중이면 200명 대중이 다 다르게 대답한다.
신도들에게 물어도 전부 다 자기감량대로 다르게 대답한다. 그 다르게 대답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무량차별이 중생수와 똑같다.
부처님은 너무나도 위대하고 광대해서 그 그릇, 그 사람에 비친 것에 따라서 다 다르다. 중생들이 각각 다르듯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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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 천주교 교리문답을 외웠다. 세례를 받으려면 교리문답 50조항인가 100조항인가를 외워서 시험을 쳐야 했다. 그 첫 구절에 ‘하느님은 누구시냐?’ 이런 질문이 나온다. 답은 천편일률적으로 하나다. 그것을 그대로 외워서 그대로 대답하는데 그 대답은 한국 사람이나 미국 사람이나 어느 나라 사람이나 다 똑같다.
불교는 예를 들어서 100명모임에 200답 300답이 나온다. 한사람이 금방 대답해 놓고도 조금 생각해 보고 또 다른 답을 내는 것이다.그런 것이 불교다.
이런 것이 견불(見佛)의 천차만별이다. 부처님에 대한 이해가 천차만별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좋은 것이다. 틀린 것이 아니다. 간단한 예지만, 불교의 우수성 같은 것을 그런 데서도 잘 생각해서 우리의 신심을 더욱더 다져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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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방편조세간(種種方便照世間)하시니 : 가지가지 방편으로 세간을 비추시니
보방보광여시견(普放寶光如是見)이로다: 보방보광건달바왕이 이와같이 보았더라.
* 9
대지방편무량문(大智方便無量門)이여 : 큰 지혜의 방편이 한량없는 문이여
불위군생보개천(佛爲群生普開闡)하사 : 부처님이 여러 중생들을 위해서 널리 여시사
무량문(無量門)인데 문문가입(門門可入)이다. 꼭 무엇이라야 된다는 법이 없다. 염불이라야 된다, 경전이라야 된다, 참선이라야 된다, 기도라야 된다는 법이 없는 것이다.
제대로 된 사찰에 가면 법당이 얼마나 많은가. 안 되면 한 법당에 탱화를 세 가지 네 가지 막 붙여놓는다. 이것은 부처님이 군생을 위해서 널리 열고 열어놨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정신없다, 혼란하다’고 볼 수 있지만, 세상의 많고 많은 종교 중에 오로지 불교만이 그렇게 법당이 많다. 각자 인연 따라서 거기에 가서 엎어져 절하고 기도를 한다. 그것은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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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 존자는 서양사람들과 타종교에 관한 대담을 많이 했다. 프랑스 신부들이 달라이라마에게 성경을 숙제로 주어서 ‘3일간 산상수훈에 대해 강의해 주십시오. 불교에서 본 성경. 달라이라마께서 보신 성경의 내용을 우리에게 한번 들려주십시오.’ 해서 강의를 한 기록은 우리나라에 책으로도 번역되어 나와있다.
그중에 의미심장한 질문이 있었는데 ‘세상에 종교가 이렇게 많은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사실은 종교가 더 있어야 된다. 인류는 60억인데 종교는 1억도 안 되지 않느냐?’ 이것이 달라이라마의 대답이었다.
그러한 안목이다. 중생들의 소견이 각각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불교소견이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획일적인 사고를 가진 종교에서는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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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승보리진생행(入勝菩提眞實行)케하시니 : 수승한 보리, 최고가는 보리, 깨달음, 지혜와 자비의 진실행에 들어가게 하시니
차금강당선관찰(此金剛幢善觀察)이로다 : 이것은 금강당건달바왕이 잘 관찰했더라.
*10
일찰라중백천겁(一刹那中百千劫)을 :일찰라 가운데 백 천 겁.
이것은 글이 달라서 그렇지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과 똑같다. 한순간에 영원이 걸려있다.
우리의 오늘 이 한 시간 또는 한 순간에는, 영원한 과거, 영원한 미래가 다 포함 되어있다. 한 방울의 물을 마셔서 지금 우리 생명을 유지한다고 하자. 그 한 방울의 물의 역사가 얼마인가? 그 물은 언제 생겼는가? 무한한 과거로부터 있었다. 비록 내가 지금 마셔서 몸속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무한한 미래로 흘러간다. 한순간은 그래서 영원한 과거와 영원한 미래가 그 속에 포함된다. 열려있는 눈으로 보면 이런 말이 아주 쉽게 나온다.
불력능현무소동(佛力能現無所動)하사 : 부처님의 힘으로 능히 나타내지만 동하는 바가 없다. 여여한 본래의 모습 그대로다.
등이안락시군생(等以安樂施群生)하시니 : 평등하게 안락으로써 군생에게 베푸시니.
결국 어떤 진리도 진리로만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것이 중생들에게 이로움을 줘야 된다.
차락장엄지해탈(此樂莊嚴之解脫)이로다 : 이것은 보현장엄건달바왕이 해탈한 바다.
(4) 第七廻向의 鳩槃茶王
가, 鳩槃茶王衆의 得法
復次增長鳩槃茶王은 得滅一切怨害力解脫門하고 龍主鳩槃茶王은 得修習無邊行門海解脫門하고 莊嚴幢鳩槃茶王은 得知一切衆生心所樂解脫門하고 饒益行鳩槃茶王은 得普成就淸淨大光明所作業解脫門하고 可怖畏鳩槃茶王은 得開示一切衆生安隱無畏道解脫門하고 妙莊嚴鳩槃茶王은 得消竭一切衆生愛欲海解脫門하고 高峰慧鳩槃茶王은 得普現諸趣光明雲解脫門하고 勇健臂鳩槃茶王은 得普放光明하야 滅如山重障解脫門하고 無邊淨華眼鳩槃茶王은 得開示不退轉大悲藏解脫門하고 廣大面鳩槃茶王은 得普現諸趣流轉身解脫門하시니라
또한 증장구반다(增長鳩槃茶)왕은 모든 원망과 해침을 소멸하는 힘의 해탈문을 얻었고,용주(龍主)구반다왕은 끝없는 행문(行門)을 닦아 익히는 해탈문을 얻었고, 장엄당(莊嚴幢)구반다왕은 모든 중생의 마음에 즐기는 바를 아는 해탈문을 얻었고, 요익행(饒益行)구반다왕은 청정대광명으로써 짓는 업을 널리 성취하는 해탈문을 얻었고,
가포외(可怖畏)구반다왕은 모든 중생에게 편안하여 두려움이 없는 길을 열어보이는 해탈문을 얻었고, 묘장엄(妙莊嚴)구반다왕은 모든 중생의 애욕과 바다를 녹여 다하는 해탈문을 얻었고,고봉혜(高峰慧)구반다왕은 여러 갈래에 광명구름을 널리 나타내는 해탈문을 얻었고,
용건비(勇健臂)구반다왕은 널리 광명을 놓아서 산과 같이 무거운 업장을 소멸하는 해탈문을 얻었고, 무변정화안(無邊淨華眼)구반다왕은 물러섬이 없는 큰 자비의 창고를 열어보이는 해탈문을 얻었고,광대면(廣大面)구반다왕은 여러 갈래에 유전하는 몸을 널리 나타내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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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향을 표한 구반다왕이 찬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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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반다왕과 그 대중들이 얻은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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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증장구반다왕(復次增長鳩槃茶王)1은 : 구반다왕 이야기다.
득멸일체원해력해탈문(得滅一切怨害力解脫門)하고 ::일체 원망과 한탄, 미움 원수 이런 것들을 소멸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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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구반다왕(龍主鳩槃茶王)2은
득수습무변행문해해탈문(得修習無邊行門海解脫門)하고 : 무변행문해를 수습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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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당구반다왕(莊嚴幢鳩槃茶王)3은
득지일체중생심소락해탈문(得知一切衆生心所樂解脫門)하고 : 일체중생심의 즐겨하는 바를 잘 아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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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익행구반다왕(饒益行鳩槃茶王)4은
득보성취청정대광명소작업해탈문(得普成就淸淨大光明所作業解脫門)하고: 청정대광명으로 지을 바 업을 모두 다 성취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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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포외구반다왕(可怖畏鳩槃茶王)5은
득개시일체중생안온무외도해탈문(得開示一切衆生安隱無畏道解脫門)하고 : 일체중생에게 안온하고 두려움 없는 길을 개시해 주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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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장엄구반다왕(妙莊嚴鳩槃茶王)6은
득소갈일체중생애욕해해탈문(得消竭一切衆生愛欲海解脫門)하고 : 일체 중생의 애욕의 바다를 말려버리는[消竭]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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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혜구반다왕(高峰慧鳩槃茶王)7은
득보현제취광명운해탈문(得普現諸趣光明雲解脫門)하고 : 제취에 광명운을 보현하는 해탈문을 얻고. 제취(諸趣), 제유(諸有) 이런 말이 자주 나온다. 사전적인 해석은 3계25유(三界二十五有)이지만 모든 삶의 현장을 말한다.
제취는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 등등 중생들의 갈래, 사는 세계를 말한다.
제취나 제유라는 말 속에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일들이 다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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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건비구반다왕(勇健臂鳩槃茶王)8은
득보방광명(得普放光明)하야 : 널리 광명을 놓아서
멸여산중장해탈문(滅如山重障解脫門)하고 : 산과 같은 무거운 장애를 소멸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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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변정화안구반다왕(無邊淨華眼鳩槃茶王)9은
득개시불퇴전대비장해탈문(得開示不退轉大悲藏解脫門)하고 : 불퇴전대비장을 개시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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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면구반다왕(廣大面鳩槃茶王)10은
득보현제취유전신해탈문(得普現諸趣流轉身解脫門)하시니라 :여기도 제취가 또 나왔다. 제취에 유전하는 몸을 널리 다 나타내는 해탈문을 얻으시니라.
나, 偈頌讚歎
爾時에 增長鳩槃茶王이 承佛威力하사普觀一切鳩槃茶衆하고而說頌言하사대
成就忍力世導師여 爲物修行無量劫하사
永離世間憍慢惑일새 是故其身最嚴淨이로다
佛昔普修諸行海하사 敎化十方無量衆하사대
種種方便利群生하시니 此解脫門龍主得이로다
佛以大智救衆生하사대 莫不明了知其心하사
種種自在而調伏하시니 嚴幢見此生歡喜로다
神通應現如光影이요 法輪眞實同虛空이여
如是處世無央劫하시니 此饒益王之所證이로다
衆生癡翳常蒙惑이어늘 佛光照現安隱道하사
爲作救護令除苦하시니 可畏能觀此法門이로다
欲海漂淪具衆苦어늘 智光普照滅無餘하사
旣除苦已爲說法하시니 此妙莊嚴之所悟로다
佛身普應無不見하사 種種方便化群生이여
音如雷震雨法雨하시니 如是法門高慧入이로다
淸淨光明不唐發이여 若遇必令消重障하야
演佛功德無有邊하시니 勇臂能明此深理로다
爲欲安樂諸衆生하야 修習大悲無量劫하사
種種方便除衆苦하시니 如是淨華之所見이로다
神通自在不思議여 其身普現遍十方하사대
而於一切無來去하시니 此廣面王心所了로다
그때에 증장구반다왕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모든 구반다 대중들을 두루 살피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참는 힘을 성취하신 세간의 도사시여
중생을 위해서 한량없는 겁 동안 수행하사
세간의 교만과 미혹을 길이 떠나시니
그러므로 그 몸이 가장 엄정하시네
부처님은 옛적에 모든 수행을 널리 닦으사
시방의 한량없는 중생들을 교화시키고
갖가지 방편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시니
이 해탈문은 용주구반다왕이 얻었네
부처님이 큰 지혜로 중생들을 구제하시되
그들의 마음을 환히 아시고
갖가지로 자재하게 조복하시니
엄당구반다왕이 이것을 보고 환희심을 내도다
신통을 나타내는 것은 그림자 같고
법륜의 진실함은 허공 같음이여
이와 같이 세상에 있기를 한량없는 겁 동안 하시니
이것은 요익구반다왕의 증득한 바로다
중생이 어리석어 항상 미혹하거늘
부처님이 광명으로 편안한 길을 나타내사
구호하여 고통을 제거하시니
가외구반다왕이 이 법문을 보았네
애욕의 바다에 빠져서 온갖 고통을 받거늘
지혜의 광명으로 널리 비추어 남김없이 멸하사
고통을 없애고 나서 법을 설하시니
이것은 묘장엄구반다왕이 깨달았네
부처님의 몸은 널리 응하여 못 보는 이가 없으사
갖가지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함이여
우뢰와 같은 음성으로 진리[法]를 내리시니
이러한 법문은 고혜구반다왕이 들어갔네
청정한 광명 헛되게 발하지 않음이여
만나기만 하면 반드시 무거운 업장을 소멸해서
부처님의 공덕을 끝없이 연설하시니
용비구반다왕이 이 깊은 이치를 잘 밝혔도다
모든 중생들을 안락하게 하려고
한량없는 겁 동안 큰 자비를 닦으사
갖가지 방편으로 온갖 고통을 제거하시니
이것은 정화구반다왕이 보았네
신통의 자재함이 부사의함이여
그 몸을 널리 나타내 시방에 두루하사
모든 것에 가고 옴이 없으시니
이것은 광명구반다왕의 마음으로 깨달은 바로다
*
구반다왕의 찬탄
*
그 때에 증장구반다왕(增長鳩槃茶王)이 부처님의 위력을 받들어서 일체구반다 대중들을 널리 살피고 게송을 설해 말씀하사대
*1
성취인력세도사(成就忍力世導師)여 : 인력을 성취하신 세상의 도사여. 부처님을 때로는 ‘인욕보살’로도 표현한다.
인욕의 힘을 성취하신 세상의 도사여.
위물수행무량겁(爲物修行無量劫)하사 : 물(物)은 중생이라는 뜻이다. 이런 구절에서는 언제나 중생을 뜻하지 물질을 뜻할 때가 한 번도 없다. 중생들을 위해서 무량겁을 수행하시되
영리세간교만혹(永離世間憍慢惑) 일새 : 영원히 세상의 교만혹을 떠나게 하여서
시고기신최엄정(是故其身最嚴淨)이로다: 장엄하고 청정하게 되었다.
인욕을 잘 닦은 도사가 교만을 영원히 떠났다. 그래서 그 몸은 아주 장엄되고 청정해 보인다. 그것은 인욕을 성취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동안 인욕을 성취했기 때문에 인욕이 몸에 배었다. 정말 제대로 참을 줄 아는 사람은 겸손하고 하심하고 어디가나 사양한다. 잘난척 하지 않는 사람은 인격자이고 그 사람이 진짜 잘난 사람이다. 빈양철이 시끄럽다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잘난척하고 떠드는 것이다.
인욕을 제대로 성취한 사람을 누구나 다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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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우리 어릴 때 해인사 지월스님이라고 큰 스님이 계셨다. 그 스님에 대해 ‘인욕보살 인욕보살’ 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스님은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다.
스님께 전해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6.25 직후에 강원도에서 걸망을 지고 내려오다가 순경들한테 잡혀서 실컷 얻어맞고 돌아와 일주일간이나 용맹정진을 아무말없이 따라했던 이야기다. 증명이 없는데도 증명을 내놓으라고 순경들한테 실컷 얻어맞고 밤늦게사 풀려났는데 그 힘든 용맹정진을 일주일간 내색없이 다 따라했다는 것이다. 나중에사 그 얘기를 하며 몸을 보였는데 온 몸에 피멍이 들었다고 했다. 스님한테는 그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왕 이야기 난 김에 좀 더 하면, 스님은 해인사에서 유나로 오랫동안 계셨는데 낮에 마지 올릴 때 축원만큼은 꼭 당신이 했다. 그렇게 큰스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축원을 빼놓지 않고 하셨는데 그 염불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도 그렇게 좋은 염불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안타깝게도 그 때는 녹음기도 없고, 녹음의 중요성도 몰라서 스님의 염불을 녹음해놓지 못했다.
스님의 축원문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딴 세계에 가는 것 같았다. 염불도 잘 하면 한 순간에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킨다.
물론 뜻도 뜻이지만 정성과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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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욕을 잘 닦아서 교만이 없는 사람은 그 사람이 아름답게 보이고 훌륭해 보인다. 결코 얼굴이 잘나서 잘나 보이는 것이 아니다. 첫 번째 게송의 중요한 교훈이다.
아무리 예쁜 사람도 화를 버럭 내고 있으면 그 사람 옆에 가고 싶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 화내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이 세상 아무도 없다. 그가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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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석보수제행해(佛昔普修諸行海)하사:: 부처님께서 옛날부터 여러 가지 수행의 바다를 수행을 널리 닦으사
교화시방무량중(敎化十方無量衆)하사대: 시방의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사대
종종방편이군생(種種方便利群生)하시니 : 가지가지 방편으로써 군생들을 이롭게 하시니
차해탈문용주득(此解脫門龍主得)이로다: 이 해탈문은 용주구반다왕이 얻었더라. 방편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3
불이대지구중생(佛以大智救衆生)하사대 : 부처님께서 큰 지혜로써 중생을 구제하사대
막불명료지기심(莫不明了知其心)하사 : 그 마음을 명료하게 요지하지 않음이 없으시다. 다 그 마음을 안다. 중생의 마음을 알고 중생의 근기를 알고 중생의 수준을 안다는 것이다. 현실에 있어서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특히 사찰을 운영하고 포교하는 데 있어서 그 어떤 수준과 근기를 알아서 거기에 맞게 이야기를 해야지, 최상승 법문이라고 해서 다 통하는 것이 아니다.
종종자재이조복(種種自在而調伏)하시니 : 가지가지로 자재하게 조복하시니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야 제대로 교화한다는 뜻이다.
엄당견차생환희(嚴幢見此生歡喜)로다 : 엄당이 이 도리를 보아서 환희심을 내더라.
*4
신통응현여광영(神通應現如光影)이요 :신통으로 응해서 나타내는 것이 마치 빛과 그림자 같고, 신통이니까 방편이다. 진실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뭔가 있는 것처럼, 실재하는 것과 같은 것은 거의가 가짜다. 허망한 그림자이다.
법륜진실동허공(法輪眞實同虛空)이여 : 진리의 가르침은 허공과 같다. 허공은 실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진실한 법은 그래야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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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아주 중요한 구절이다.
부처님은 세상에 처하기를 때로 빛과 그림자처럼 방편으로 할 때가 있고, 허공처럼 진실한 법으로 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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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시처세무앙겁( 如是處世無央劫)하시니 : 이와같이 세상에 처하기를 무앙겁(無央劫)하시니, 무앙겁도 무수겁이라는 뜻과 똑같다.
차요익왕지소증(此饒益王之所證)이로다 : 이것은 요익구반다왕이 증득한 바더라.
*5
중생치예상몽혹(衆生癡翳常蒙惑)이어늘 :이것도 역시 어리석음과 지혜의 관계이다.
중생들이 어리석음에 가려서 항상 미혹을 입고 있다. 어리석으면 가린다, 그래서 가릴 예(翳)자를 썼다.
어디가서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은 전부 어리석어서 그렇다. 예를들어 뜻밖의 횡재를 노린다든지 하는 것도 다 어리석기 때문이다. 어리석으면 미혹을 입는다. 횡재를 노려봤자, 으레 좋지 않은 결과를 당하게 되어 있다.
불광조현안은도(佛光照現安隱道)하사 : 부처님은,불교는, 진실한 불교는 그것을 잘 밝혀낸다. 그래서 편안한 길을 비춰서 나타낸다.
바른 길이 편안한 길이고 편안한 길은 바른 길이다.
위작구호영제고(爲作救護令除苦)하시니 : 구호를 지어서 중생들을 구제하고 보호해서 고통을 제거케 하시니
가외능현차법문(可畏能觀此法門)이로다 : 가외구반다왕이 이 법문을 관찰했더라.
*6
욕해표륜구중고(欲海漂淪具衆苦)어늘 : 욕심의 바다에 떠다니고 빠져서 온갖 고통을 갖추게 된다. 우리가 늘 욕심의 바다에 떴다 가라앉았다를 하고 있다보니 온갖 고통을 갖추게 되었다.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지광보조멸무여(智光普照滅無餘)하사: 지혜의 광명으로 널리 비춰서 남음이 없게한다.
고통은 지혜만이 치유할 수 있다. 불교는, 이 화엄경은 끝임없이 고통과 이고득락(離苦得樂)을 이야기 한다.
이고득락하는 길은 지혜뿐이다.
기제고이위설법(旣除苦已爲說法)하시니 :이미 고통을 제거하고 난 뒤에 위하여 설법하시니
차묘장엄지소오(此妙莊嚴之所悟)로다 : 이것은 묘장엄구반다왕이 깨달은 바로다.
지혜를 드러내는 데는 설법밖에 없다. 달리 다른 것은 없다. 그러니까 부처님도 당신이 증득하신 지혜를 설법으로써 표현했던 것이다. 말 뿐이라 하든지, 입만 가지고 산다고 하든지, 뭐라고 하든지 이것은 어쩔 수가 없다.
교도소에 위문을 갔는데 ‘스님들은 공수래공수거, 입만 가지고 온다’고, 다른 종교에서는 빵도 가져오고 뭐도 가져오고 하는데 스님들은 입만 가지고 와서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고 핀잔받았던 때도 있었다.
요즘은 불교에서도 먹을 것들을 많이 가져가지만, 근본적으로 설법밖에 지혜를 드러낼 수 없음은 어쩔 수 없다.
우리 큰스승 부처님께서도 평생 입으로 지혜를 전파하셨다.
*7
불신보응무불견( 佛身普應無不見) 하사 :부처님의 몸은 모든 사람들에게 널리 응해서 보지 못한 이가 없으사
종종방편화군생(種種方便化群生)이여 : 가지가지 방편으로 군생을 교화함이여
음여뇌진우법우(音如雷震雨法雨)하시니 : 그 설법의 소리는 우레와 같다. 그래서 법의 비를 비내린다. 앞의 비 우(雨)자는 ‘비를 내린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여시법문고혜입(如是法門高慧入)이로다 : 고혜구반다왕이 들어갔더라.
*8
청정광명불당발(淸淨光明不唐發)이여 :청정한 광명이 헛되게 놓지 아니함이여, 헛되게 바라지 아니함이여. 이때 당(唐)자는 헛되다라는 뜻이다.
부처님의 광명이, 헛되게 광명을 놓는 것이 아니다.
약우필령소중장(若遇必令消重障)하야 : 만약에 그 광명을 만나기만 하면 반드시 여러 가지 무거운 장애를 소멸하게 해준다. 청정광명이라고 했지만 이것을 불교라고 볼 수 있다.
불교라고 하는 것이 헛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대로 만나기만 하면 소득이 많다. 꼭 갖다바쳐야만 소득을 얻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의 광명을 제대로 만난다면 자기의 무거운 장애를 다 소멸할 수 있는 길이 그 속에 다 있다. 그야말로 불당발(不唐發)이다. 헛되게 불교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연불공덕무유변(演佛功德無有邊)하시니: 부처님의 공덕을 연설함에 끝이 없으시니.
불교가 참 많다. 얼마나 다종다양하고 많은가.
용비능명차심리(勇臂能明此深理)로다: 용비구반다왕이 능히 이 깊은 도리를 밝혔더라.
*9
위욕안락제중생(爲欲安樂諸衆生)하야 : 모든 중생을 안락케 하고자 하사
수습대비무량겁(修習大悲無量劫)하사 : 대비를 수습하야 한량없는 겁을 하셨으니.
중생에 대한 연민심이다. 비(悲)자는 연민심, 자(慈)자는 사랑하는 마음, 무턱대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종종방편제중고( 種種方便除衆苦)하시니 : 가지가지 방편으로 여러가지 고통을 제거하시니
여시정화지소견(如是淨華之所見)이로다 : 이와같은 이치는 정화구반다왕이 본 바로다.
*10
신통자재부사의(神通自在不思議)여 : 신통이 자재함이 불가사의함이여. 신통은 어떤 마술적인 성격을 띄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하는 사람을 보지도 못했고 과거에 있었다는 말만 들었다. 간혹 정법을 닦다가 보면 다른 능력도 부수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경우다.
기신보현변시방(其身普現遍十方)하사대 : 그 몸이 온 시방에 널리 나타나사대
이어일체무래거(而於一切無來去)하시니 :오고 감이 없다. 그대로다.
차광면왕심소료(此廣面王心所了)로다: 이것은 광면구반다왕이 마음에 깨달은 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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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감사보살 감사보살 감사보살마하살
得永斷一切衆生憂苦하야 出生歡喜藏解脫門하시니...혜명화님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
神通應現如光影(신통응현여광영)이요 法輪眞實同虛空(법륜진실동허공)이여...부처님은 세상에 처하기를 때론 빛과 그림자처럼 방편으로 할 때가 있고, 허공처럼 진실한 법으로 할 때가 있다. 慧明華보살님! 더운 날씨에 수고 많으셨습니다._()()()_
위욕안락제중생(爲欲安樂諸衆生)하야 : 모든 중생을 안락케 하고자 하사
수습대비무량겁(修習大悲無量劫)하사 : 대비를 수습하야 한량없는 겁을 하셨으니.
중생에 대한 연민심이다. 비(悲)자는 연민심, 자(慈)자는 사랑하는 마음, 무턱대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_()()()_
깊은 바다는 큰 요동이 없고, 태산. 그리고 숲, 깊은 슬픔과 기쁨에도 말을 할 수가 없이 그냥 같이 흐르듯, 화엄경 성찬을 받으면 늘 감동입니다. 늘 바다가 되게 하시는 큰스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혜명화 님, 더운 날씨에 고맙습니다._()()()_
혜명화님! 날도 더운데 수고많이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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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來一一毛孔中에 功德大海皆充滿하사...여래는 광대해서 법계에 두루하사 모든 중생에게 평등하시다..혜명화 님! 너무 더웠지요?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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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間廣大憂苦海 佛能消竭悉無餘....혜명화님 땀 흘리며 수고 많으셨어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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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方刹海無有邊을 佛以智光咸照耀하사...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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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久月深..요즈음 처음으로 그 글과 뜻을실하게 알았습니다. 날이 오래되고 이 깊어질수록...로 깊어집니다.
혜명화님, 천리길도 멀다않고 찾아 오셔서 '화엄의 바다'를 스케치해주시니 그 장엄이 날로
種種自在而調伏......혜명화님,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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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間廣大憂苦海 佛能消竭悉無餘....十方刹海無有邊을 佛以智光咸照耀하사....._()()()_고맙습니다.
어른스님 반가사....잘 어울려요멋져요
스님들 여름승복은 반가사로 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무더운 여름날에
긴 가사 수하신 모습보다 산뜻하니 좋아보여요.
염화실 덕분에 공부 많이 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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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 해도 바른 견해가 제일 중요하다...강원도 그 곳의 열혈신도가 돼 버린 사촌동생을 보면서,비록 깊이있는 공부는 못하고 있지만 염화실에서의 내공이야말로^^ 큰 영험인 것을 알았어요.몇 년 전의 저였다면 충분히 현혹되고도 남았을 거예요...큰스님,법우님들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
世間廣大憂苦海)를: 세상의 넓고 큰 근심과 고통의 바다를
佛能消竭悉無餘하시니 세상 고통이 아무리 바다처럼 넓고 크다한들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을
우리가 접하게 되면 거기에 다 녹여버릴 수가 있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없애버릴 수가 있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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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方廣佛華嚴經 - 6-1. 世主妙嚴品 第1의3. 大衆의 得法과 讚佛(十回向位衆 第8廻向-第7廻向, 油印物-華嚴祖師, 華嚴十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