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봉암은 지금부터 1,200여년전 지금의 요사채 대 중방 자리에 사찰이 있었으나, 큰 수해로 파손 되어 수백년동안 지나 왔습니다. 그러다가 합천 해인사 여신도이신 청송심씨 부인이 약 170여년전 지관(풍수)을 대동하여 암자 자리를 잡기 위해 삼봉산 전경을 두루 탐험한지 십여일만에 지금의 현 위치인 금봉암 자리에 터를 잡아 절을 창건하겠다는 서원을 세워. 초목은 우거지고 보이는 것은 하늘의 별뿐이요, 험한 이 곳에 산신께 백일 기도를 하던중 쌀 3되를 가지고 와서 일주일에 한번씩 산신께 미지공양 을 올리면서 거의 단식을 하다시피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기력이 떨어지고 정신이 혼미하여 기진맥진 하던중 산신령이 동자를 시켜서 삼봉산 정상 용굴 아래 쇠 소두방뚜껑을 열고 약수를 떠다 먹이니 이상하게도 힘이 솟고 정신이 맑아 져서 백일기도를 무사히 마치고 마을로 내려 가려고 하는데, 찬란한 아침 태양이 삼봉산 봉우리 위에 비쳐지는 그 순간을 이름 모르는 금새 한마리가 날아와 기도소에 앉았다가 다시 산봉우리 로 올라갔다 내려 오기를 3번이나 반복하였다.
하도 기이하여 청송심씨 부인은 회 향을 마치고 내려가지 못하고 하룻밤을 꼬박 새우게 되었 습니다. 밤에 잠을 자던 중 산신령이 나타나서 "여봐라 청심여야 ! 무엇을 망설 이는가 ? 그 옛날 이 곳에 절이 있었느니라 현재 기도자리는 수해로 산이 무너져 내린 자리니라, 이 자리에다가 절을 창건하게 되면 제2의 창건주요, 후대에 가면 중생들이 하늘의 구름처럼 이 곳을 찾을것이며, 이 도량은 나한도량이라 중생들의 소원을 성취하리라".며 말하고 어디론지 사라지고 없더랍니다.
해서 여자의 몸으로 도저히 계획이 서지않아 관내 면장님을 찾아가 도움을 청원한바 고제면 각 마을 주민이 절 창건에 몸 시주를 하여서 조그마한 토굴암자를 창건하였다 합니다. 절이 창건된 연도가 1,800년 4월에 금빛새가 세번 상봉에 왕복을하였다 하여 석삼자(三), 봉우리 봉자(峰), 삼봉산이요. 금빛새라하여 쇠금자(金), 새봉자(鳳), 금봉암이라 이름하였다 합니다.
수십여년 종단 가입없이 있다가 1967년 김덕봉스님이 조계종 해인사에 등록을하여 종단의 말사로 행사 하였다 합니다. 교통도 불편하고 너무 깊숙이 선사가 자리잡고있어 여러스님께서 이곳 금봉암 주지로 오시었지만 사찰이 빛은 못보고 한때 여러번 절이 비어 있었다 합니다.
그러던 중 현 지주인 청우스님이 1979년 5월에 금봉암에 입사하여 15년간 길을 닦고 대웅전을 중창하여 신도대중이 혼합일체가 되어 온갖 고난과 어려움을 감내하면서 불사를 하던중 본면 출신인 재일교포이신 신해성 사장님께서 많은 보시를 하여 불사에 큰힘이 되었다 합니다.
부처님의 가피력과 원력없이 어찌 금봉암 불사가 이루워졌겠습니까? 특히 현 주지인 청우스님께서 불사를 하던중 우여곡절과 파란도 많아 고통과 시련에 빠져있는 때에는 어김없이 꿈에 나한님들이 나타나서 모든 불사에 힘과 원력을 주었습니다. 또한 모든 불사를 지시하여 어려움이 풀리곤하여 나한님의 고마움에 오백 나한불사를 하였다 합니다.
금봉암은 누구든지 극한 정성으로 발원하면 소원은 성취한다 합니다. 금봉암을 찾는 대중이시여 ! 고달프다 안된다 하지말고 마음을 비우고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발원하여 보소서. 다같이 소원성취 성불의 대비 범비에 젖을 것입니다.
- 삼봉산 금봉암 주지 청 우 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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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행의 참맛 원문보기 글쓴이: 새순女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