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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박산 '어심내기' 옛길. 걸을수록 끌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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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양서 찾아나선 장구만디(배내고개)
- 목적지로 인도할 옛길엔 노루궁댕이·잣방골·물팍등 등 산 형세 빗댄 우리말 지명 많아
- 유유자적 걷게하는 '어심내기' 매력
- 호랑이·늑대보다 무서운 종교탄압에 천주교인 숨어 모여살던 '살티'
- 순교보다 호랑이밥 되는 경우 많아
■길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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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티는 천주교 성지이자, 호랑이가 득실거리던 산간오지였다. |
영남알프스 베이스캠프인 언양 고을에서 일명 '장구만디'(배내고개)라 불리는 하늘길을 찾아 나선 것은 삼월 춘분. 떠돌이 시인은 언양 고을에서 15리 떨어진 울주군 상북면 양등리 '찬물내기'에서부터 떠돌기 시작했다. 배내골행 버스를 타고 손쉽게 이동할 수 있지만, 선인들의 발자취가 담긴 옛길을 직접 걸어 볼 요량이었다. 상북 들녘의 고래 논을 지나 양등마을에 들어서면 족히 사오십 구랑은 되어 보이는 논들이 펼쳐진다. 밀봉암으로 오르는 실뱀 길에는 아낙들이 쑥을 캐고, 개울가에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요란스럽다. 멀리 고산 준봉 지붕에 잔설(殘雪)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건만, 산 아래에 올망졸망 모인 마을에는 봄기운이 완연하다.
양등마을에서 만난 전옥수(88세) 노인은 고령으로 병고에 시달리는 까마귀 정신이었다. 그러나 '장구만디'에서 천황산 사자평으로 가는 옛길을 묻자, 오락가락하던 기억은 신통하게 되살아났다. "집이라고는 소막 한 채뿐이었던 허허벌판 사자평에서 쌔(억새)를 베어 날랐더랬다." 사자평 억새는 지붕을 잇거나 생활용품을 만드는데 요긴하게 쓰였다.
■엿장수 마음대로 생긴 울창한 그늘 길
오두산 북능 끝자락인 '참새미' 골짝에서 쑥을 캐는 할머니에게 옛길을 물었다. 할머니는 쑥 향내 묻은 손가락으로 뒷산의 잘록한 고갯마루를 가리키며 "소 몰고 다니던 쪽박산 소래길이 있기는 한데, 사람이 오래 다니지 않아 묻혔을 것"이라 했다. 택호가 수전댁이라 밝힌 할머니는 동네에서는 '배내재' 오르는 길을 '어심내기' 또는 '버지매기'라 부른다며, 도라지와 참나물을 캐러 다니던 열두 고갯길이라는 귀띔도 해주었다. 수전댁이 말한 '어심내기'는 내(川)와 이어진 길, '버지매기'는 버드나무가 번성하여 유래한 양등(楊等) 뫼(山)로 이어진 길이었다. 쪽박산은 '족발산'의 센소리로, 산의 형세가 사람 발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여겨졌다. 이처럼 배내재 주변에는 산 형세를 딴 지명이 많았다. 노루 엉덩이처럼 생겼다 하여 '노루궁댕이', 송곳처럼 뾰족하여 '송곳산', 산이 자빠진 형세를 띤 '잣방골', 사람 무르팍 같이 생긴 '물팍등'이다.
벌 모양으로 생긴 산봉우리 아래에 자리 잡은 밀봉암을 지나면서부터는 그늘 길이 이어졌다. 천 리 길을 걸어온 떠돌이 시인은 그늘 길이 옛길임을 단숨에 알아차렸다. 엿장수 마음대로 생겼어도 나름대로 자연미가 있는 길이었다. 폭이 1m를 넘지 않았고, 땔감을 진 질매소가 지나다닐 수 있었다. 직선화된 등산로와는 다르게 사람 짚신과 소발이 창조한 우리 옛길은 대개가 꼬불꼬불한 아리랑 고갯길이다. 소를 앞세운 사람은 느리더라도 이대로 족했고, 보따리를 인 아낙은 숨이 덜 가빴다.
■걸을수록 끌려들어가는 '어심내기'
쪽박산(금산)과 매봉지를 잇는 '양등재'를 넘어서자 청수골로 향하는 '어심내기' 옛길이 나왔다. 어심내기는 겨우 한 사람이 다닐 정도로 폭이 좁았다. 중간중간 오솔길이 무너지고 유실되어 아슬아슬한 구간도 있었다. 과거에는 자연재해로 지반이 약해지거나 유실되면 마을 사람들이 길 닦는 부역을 했으나, 고령화로 부역을 할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배내재를 오르는 길은 양등에서 시작하는 '어심내기'와 석남사에서 오르는 '장구만디 산판길'이 있었다. '어심내기'는 청수골 좌측으로 난 작은 소박길이고, '장구만디 산판길'은 석남사 입구에서 덕현천을 따라 청수골 좌측 계곡으로 난 큰 길이다. 해방 후 벌목한 목재와 숯을 실어 나르던 숯차(일명 지에무시)가 헤집고 다니면서부터 '장구만디 산판길'은 차츰 넓어졌으나, 산기슭에 있는 '어심내기'는 다행히 옛길이 남아 있다.
'어심내기'는 걸을수록 끌림이 있는 열두 고갯길이었다. 여름이면 땀띠를 죽이고, 저잣거리에서 찌든 몸을 청산에 옮겨 유유자적 걷기에 좋았다. 산기슭에 걸린 열두 고개를 모두 끼고 돌아 산에 에워싸인 청수골 계곡에 도착했다. '어심내기'와 '장구만디 산판 길'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개설된 '장구만디 산판길'은 자연재해로 유실되어 더는 걷기가 어려웠다. 할 수 없이 계곡을 건너 국도 69호(울밀선)로 올라갔다. 이 일대는 천주교 성지인 '살티'가 가깝다.
■호랑이 숲이었던 천주교 교우촌 '살티'
살티는 임진왜란 당시 단조성과 운문령을 지키던 의병들이 화살을 만든 곳이라는 설이 있다. 조선 말기에는 교인들이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은둔한 교우촌이었다. 천주교 교우들이 은밀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도자기를 굽고 감자를 심었던 생활 터였었다. 살티공소 김명관(90세) 회장은 "장구만디를 생각하면 배고팠던 시절이 떠오른다. 송진과 칡뿌리를 벗겨 먹으며 고생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며 핍박받던 선인(先人)들이 걸어온 옛길을 떠올렸다. 김 회장의 증조부는 순교자 김영제(베드로)이고, 맏아들은 부산 해운대 성가정성당 주임신부로 있다.
과거 이 일대에는 호랑이, 표범, 늑대 같은 맹수들이 득실거렸다. 김 회장은 1930년대에 눈에 불을 켠 호랑이를 직접 목격하였다 한다. 일본인 사냥꾼이 들어오기 전인 조선 말까지만 해도 포졸에게 체포되어 순교한 천주교인보다 호랑이에게 목숨을 잃는 천주교인들이 더 많았다고 전한다. 천주교 교우들은 호랑이에게 잡혀먹힌 교우의 시신 머리와 뼈를 수습하여 장례를 치렀다.
■부평초 인생 '떠돌이 장꾼'들의 통로 배내재
천신만고 끝에 상북면 이천리 산 1번지 '장구만디(배내고개)'에 도착하였다. 이천오령(梨川五嶺) 중의 하나인 이곳은 해발 1000m가 넘는 천하 명산의 산군들을 연결한 고리로, 예로부터 '하늘길' 소리를 들었다. 최근에 영남알프스의 새로운 로드명인 '하늘억새길'의 관문으로서 빛을 발하는 곳이기도 하다. 산천지세를 영검시하는 상북 사람들은 오동나무 장구통 모양의 '장구만디'를 오래전부터 하늘길의 연장으로 여겼다.
배내재는 기러기처럼 떠도는 장꾼들이 넘나들던 통로였다. 떠돌이 장꾼들은 사람 왕래가 뜸하고 지름길인 산악 길로 흘러갔다. 이녁들이 가지고 들어가는 물목은 건어물, 면포, 그릇 따위의 생활용품이었고, 가지고 나오는 물목으로는 목기, 삼베, 산채, 버섯, 약초 등이었다. 1980년에 배내재를 방문했던 백무산 시인은 누른 무명옷 차림에 등짐을 진 '떠돌이 장꾼'들이 무리를 지어 걸어가던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장꾼들은 천황산 사자평을 지나 밀양 단장면으로 흘러가거나, 능동산에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얼음골을 질러가기를 했다. 얼음골을 질러가는 길은 층층 절벽을 타는 험로로, 맹수의 밥이 되기도 하였다.
첫댓글 영남알프스에 맹수들이 그렇게 많았는데 남.포획으로 멸종되었어니 앞으로는 잘보존시켜야 겠습니다.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