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회사가 신제품을 개발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제 겨우 제품 도면이 나오고 공장터를 잡았습니다. 앞으로 공장을 세우고 제품을 만들어 잘 팔아야 돈을 벌 수 있겠죠. 그런데 이 회사 임원들이 공장터를 당초 예상보다 싸게 샀고 생산 기계도 협상을 잘해서 저렴하게 도입하기로 해 수백억원을 아꼈다면서 수십억원의 성과급부터 받겠다고 나섭니다.
여러분이 이 회사 주주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이런 정신 나간 임원들을 다 자르라고 회사에 요구하겠죠?
하물며 이윤 추구가 지상목표인 민간회사도 이런데 주민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한다는 공익적 성격이 강한 재개발 조합에서 앞서 말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서울 아현 뉴타운 지역내 아현 3구역 재개발조합 임원들이 각종 사업비를 아껴 수백억원을 절감했다며 74억 원의 성과급을 챙겼습니다. 재개발 사업은 이제 겨우 주민들의 이주를 마치고 철거를 90%쯤 한 수준의 진도밖에 나가지 못했는데 말이죠. 앞으로 아파트를 새로 짓고 공공시설을 건립하고 분양을 하는 등 가야할 길이 한참 남은 상황에서요.
아현 뉴타운 조합 임원들, 성과급 74억원 챙겨
재개발 조합 임원들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이주를 당초 12개월에 걸쳐 진행하기로 계획했는데 이 기간을 4개월 줄임으로써 128억원의 사업비를 아꼈다는 것입니다. 또 이 지역의 세입자로 당초 3,350명이 잡혀 있었는데 이주비를 노린 엉터리 세입자를 철저히 걸러내 2,200명으로 천명 넘게 줄임으로써 이주비를 120억원을 절약했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228억원의 사업비를 절감했으니 그 3분의 1인 74억원 정도를 자신들 임원 15명과 이주 관리용역직에게 보상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애초에 재개발 임원들은 무려 185억원의 성과급을 받으려 했습니다. 국공유지를 무상으로 취득해 1000억원을 절감했다는 내용도 포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곧 거짓말임이 탄로 났습니다. 승인권자인 마포구청이 확인한 결과 이 국공유지는 관계법령상 원래부터 무상으로 받아 도로나 공원 등을 지어 기부채납하도록 돼있었습니다. 그러자 이 항목만 슬그머니 빼고 앞서 설명한대로 74억원을 요구했습니다.
주민들 "일종의 사기"…조합측 "정상적 걸차 거쳤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지난달 31일 열린 재개발조합 총회에서 이런 내용의 성과급 안건이 찬성 가결됐습니다. 재개발조합원들이 임원들에게 74억원을 성과급으로 주기로 의결한 것입니다. 주민들은 이에대해 일종의 사기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조합측이 총회가 있기 훨씬 전부터 용역직원들을 시켜서 조합원들의 서면결의서를 받아왔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서면결의서에는 성과급 지급 액수나 내용은 나오지 않고 간단하게 '임원 및 이주관리직원 성과급 지급건'이란 항목만 기재된 채 찬성과 반대를 표기하도록 돼있습니다.
주민들은 이 항목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주지도 않고 물정을 잘 모르는 나이든 노령 주민들에게 집중적으로 동의를 얻어 서면으로 과반 이상의 찬성표를 확보했다는 주장입니다. 실제 어제 총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성과급 항목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사실상 게임은 끝나 있는 상태였습니다. 조합측은 서면결의서를 받으면서 조합원들에게 해당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등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찬성을 받았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어떻든 현재 외양상으로 조합 총회의 동의를 얻은 만큼 74억원을 임원들이 가져가는 것에 법적인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주민들이 아낀 사업비를 통해 자신들의 분담금을 줄이는 대신 수십억원의 성과급을 임원들에게 주겠다고 자진해서 찬성했다는 주장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전문가들 "성과급부터 챙긴다는 건 듣도 보도 못해"
대부분 전문가들의 반응도 어이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성과급을 받는 시점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았습니다. 상술했듯이 아현동 뉴타운 재개발 사업은 초기 단계입니다. 실제 건축 공사를 시작하고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다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비용이 발생할 수 있고 분양에 문제가 생겨 금융비용 부담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이를 위해 재개발 조합들은 예비비를 마련해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비비 수준을 뛰어넘는 성과급부터 챙긴다는 발상 자체가 이제까지 듣도 보도 못한 일이라는 지적입니다. 설사 성과급을 받더라도 사업을 모두 마치고 정산을 하는 과정에 철저한 계산을 거쳐 책정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재개발 조합 임원들이 주장한 '성과'라는 것이 과연 적절하냐는데 대한 의문도 나왔습니다. 재개발 조합 임원들은 급여를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업비를 철저하게 집행하고 최대한 절감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입니다. 특히 세입자 이주비는 '절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나가야 할 이주비는 지급돼야 마땅하고 주어지면 안되는 이주비는 가려내 안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설명입니다. 가짜 세입자를 가려내는 일은 재개발 조합 임원의 당연한 업무일 뿐이고 혹시 줘야 할 이주비를 억지를 부려 지급하지 않았다면 불법적인 행위인 만큼 나중에 소송을 당해서 토해낼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재개발 사업의 공익적 성격을 고려할 때 '성과급'은 부적절하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74억원이나 되는 성과급을 임원들이 챙겨가면 그 돈은 재개발 조합원들의 분담금이나 일반분양에서의 분양가로 메워야 합니다. 알다시피 대부분의 뉴타운 개발 지역은 영세한 주민들이 많은 곳입니다. 분담금을 다만 몇백만원이라도 줄여주면 어려운 생계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계층입니다. 그런데 이런 영세 주민들에게 사업비 절감의 혜택을 돌려주는 대신 소수의 임원들에게 수억원씩 챙겨주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설사 조합원들에게 부담을 전가하지 않더라도 일반 분양가가 높아질 수 밖에 없는데요, 실제 이 지역 아파트의 일반 분양 예정가는 조합 분양가의 두배에 가까워 '너무한 것 아니냐'는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집을 구하려는 시민들에게 바가지를 씌워 재개발 조합 임원들의 주머니를 불린다'는 것도 마땅치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재개발 조합은 민간단체라 '제재 수단' 없어
서울시나 관할 구청도 이번 일에 대해 대단히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자칫 뉴타운 사업이 일부 조합 임원들의 배만 불리는 부동산 장사라는 비난을 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별다른 제재 수단이 없다는 점입니다. 재개발 조합은 순수하게 민간 단체일 뿐이고 조합 총회라는 적법한 절차를 제대로만 거쳤다면 이런 비난받아 마땅한 일을 벌이더라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다만 주민들 주장대로 총회에서 찬성 동의를 받는 과정에 안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거나 거짓말로 호도했다면 민사소송을 통해서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용산 참사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의 재개발 방식은 지나치게 상업적 이해로 추진되고 정작 그 지역 거주자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은 전혀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이런 일이 벌어지니 더욱 가슴이 답답합니다.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쥐꼬리만한 이주비로 갈 곳을 찾기 어려워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돈을 절약해 재개발 임원들의 주머니를 수억원씩 불려준다는 게 법이나 제도를 떠나 도대체 말이 되는 얘기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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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 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에서 서울시청 출입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생활과 밀접한 시정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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