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단편들이 모여 있는 동화집, 문제아.
이 책을 읽으며 무엇보다 작가가 우리에게 건네는 말은 ‘보여지는 것만 보고서 쉽게 판단하지 마라’는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분명히 ‘원인’도 있다.
‘문제’를 발견했을 때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이다.
먼저 원인을 찾은 뒤에 문제의 결과를 생각해야 한다.
문제의 결과만을 두고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행동이다.
박기범 작가는 특별한 자격이 없이 이라크에 들어가 전선을 누비며 어린이들을 도왔던 사람으로 유명하다.
박기범의 동화는 80년대를 지나온 어른들에게 낯익은 사회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신기할 정도로 새롭다.
시대의 실감을 잃어가던 사회문제들이 그의 눈과 입을 거치면 갓 태어난 듯이 생생한 것이다.
모두 10편의 단편이 실린 이번 첫 동화집의 소재는
소떼 방북, 결손가정 문제, 아빠의 손가락 무덤, 정리해고 같은 것들로,
하나같이 기성 어린이문학 작가들이 다루기 꺼려하고 피해 갔던 것들이다.
그러나 박기범은 이러한 사회적인 주제와 소재를 주로 다루면서도
어린이 눈높이에서 대상과 공감을 나눌 수 있도록 어눌한 듯 눙치는 화법을 잘 구사하고 있으며,
어린이 발화자로 쓰여진 일기체 형식의 작품들이 무척 진솔한 느낌을 주고 있다.
박기범은 실제 자신이 직접 주인공 인물 속으로 뛰어들어 행동하고, 말하고, 느낀다.
아이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실의 이면을 항상 신경 써야 하는 동화작가의 딜레머를 박기범은 잘 극복하고 있으며,
이러한 미덕이 작품 전체에서 골고루 빛을 발하고 있다.
불량배들과 싸움을 벌이다 얼떨결에 문제아로 낙인 찍혀 버린 아이,
집에는 읽을 책이 하나도 없어, 자기 마음대로 이야기를 지어내 독후감 숙제를 하는 아이,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선생님들의 편견에 마음 아파하는 아이 등
이 작품의 주인공들은 실제 학교와 사회에서 애정을 받지 못하고 소외된 아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주위 환경에 대해 불만에 가득차 있거나 파괴적인 행동으로 반항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을 헤아리지 못하는 어른들의 허물과 고민을 넉넉한 동심으로 껴안음으로써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들곤 한다.
어쨌든 이들이 동화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함으로써, 채인선이나 위기철 등의
작가가 보여주었던 중산층 아이들의 90년대적 욕망뿐 아니라,
알게 모르게 소외되고 있는 아이들의 꿈 또한 동화에서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린이는 세상의 아픔과 그늘을 모르고 자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부 어른들에게도 이 작품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줄 것이다.
동심의 눈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훨씬 예리하고 사려 깊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이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어린이들에게 숨기려고 해도
결국 그들의 맑은 눈에 비치지 않을 리가 없다는 것을 이 동화집은 호소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난 이 책을 우리 어른들이 꼭 읽어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