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인생수업, 논어
과목명 : 중국문화입문
작성일 : 10.12
학과 및 학번 : 중국언어와문화학과 170218
이름 : 이아림
1. 내용 정리
논어는 공자가 제자들 및 당시 인사들과 응답하고, 제자들이 서로 이야기하고 또 공대부로부터 들은 말이다. 당시 제자들이 각기 기록해 둔 것이 있었는데, 공부자가 세상을 떠나게 되자 그들이 서로 기록들을 모아 가지고 논찬하였기 때문에 논어라고 하는 것이다. '논'은 따져서 사정을 가려내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공자와 그 제자의 언행은 제자서에도 많이 나오는 논찬을 겪지 않은 것이므로 허황한 것이 많이 들어 있다. 논어는 결국 제자들의 기록을 정리하여 편찬한 책이다. 논어는 학이편에서 요왈편까지 모두 20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편의 제목은 각 편의 첫머리에 나오는 첫 글자나 중요한 글자를 따서 붙이고 있다. 1편에서 10편과 후의 10편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전의 10편은 후의 10편보다 오래전에 편찬된 내용으로 공자의 학문이나 사상, 언행 등 그의 인격적 품위를 느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기술되어 있다. 후의 10편 역시 공자의 언행과 제자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총 20편의 논어에서 공자는 예의 정신을 제기하였고 그것을 단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인'이란 논어에서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는 개념이고, 공자의 사상을 이야기 할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개념이다.
이 책은 논어의 1편부터 20편 모든 부분이 다루어져 있다. 따라서 각 편목의 키워드를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학이>는 배우는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근본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위정>은 주로 올바르게 정치하는 방법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팔일>은 주나라 천자가 제사를 지내면서 추도록 하는 천자의 무악으로 한 줄에 8명이 8줄로 서서 추는 것이다. 이 춤을 노나라의 일개 대부인 계손씨가 자기 집안 제사에서 추게 하는 것을 보고 공자가 예절이 무너지고 법도가 무너지는 춘추시대 말기의 사회상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인>은 선비가 살아가면서 처신해야 할 몸가짐을 설명했다. <공야장>은 공야장이 공자의 제자이자 사위가 되는 인물이다. 옛날과 당시의 유명 인사들에 대한 평가가 주로 실려 있다. 주자는 이 편을 자공의 제자들이 지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옹야>는 전반부는 인물평가가 실려 있고, 후반부에는 주로 올바로 아는 것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술이>는 공자가 남을 가르치는 내용과 평소 행실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다. 편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구절인 '술이부작'은 이후 동양 역사학에서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태백>은 공자가 구상한 이상적인 정치상을 설명한다. <자한>은 공자의 용모와 태도, 학문, 공자의 격언을 담고 있다. <향당>은 공자의 공사생활에서 드러난 행동거지에 대하여 기록한 편으로 공자가 말한 것보다는 공자의 평소 행실에 대한 언급이 더 많은 편이다. <선진>은 공자가 자신의 제자들의 장단점을 평가한 편이다. <안연>은 공자의 수제자인 안연이 첫머리에 등장한다. 주로 공자와 제자들의 문답이 나온다. <자로>는 열혈 제자인 자로가 첫머리에 등장한다. <헌문>은 공자와 제자의 문답, 공자의 격언, 고금의 정치와 정치가에 대한 공자의 비평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위영공>은 덕, 부의, 공자와 제자와의 대화, 군자의 덕성, <계씨>는 흥망성쇠, 익자삼우, 군자 삼건·삼계·삼외, <양화>는 양화가 부름, 공산불요가 부름, 필힐이 부름, 공자의 개탄에 대해 나와다. <미자>는 성현들의 벼슬살이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자장>은 공자의 말이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편이다. 공자의 제자들이 한 말을 집중적으로 기록한 편인데, 이 중에서 자하와 자공의 말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요왈>은 고문의 어구들, 전체 내용의 요약, 군자 개인의 내면적 덕성을 요약했다.
이렇게 총 20편으로 이루어진 논어 중 <학이>편과 <위정>편은 학업과 효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학생 신분으로서 가장 크게 와닿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학이>편은 배우는 사람이 먼저 힘써 해야 할 기본이 되는 일이 많이 다루어져 있다. 그 중 1장은 논어의 명구라고 할 수 있다. '배우고 제때에 그것을 복습하는 것은 또한 기쁘지 아니하냐. 벗들이 먼 곳에서 오는 것은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 남이 자기의 실력을 알아주지 아니하여도 노여워하지 않는 것은 또한 군자답지 아니하냐.' 먼저 깨달은 사람으로부터 배워, 되풀이 익히는 동안에 철저히 알게되어, 그것이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될 때에는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는 희열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배우는 사람 하나하나의 경우를 말한 것이다. '벗'이라 함은 여기서는 한 스승 밑에서 공부하는 사람. 자기가 받드는 스승의 명망이 높아서 먼 곳으로부터 그에게 배우러 찾아드는 사람들과 학문 성취에 뜻을 두고, 같이 공부하게 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것은 배우기 위하여 한곳에 모여든 여러 사람의 경우를 말한 것이다. 배우는 것은 자기 향상을 위한 것이므로 자기의 실력을 남이 알아주는가의 여부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부터가 자기의 향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군자의 풍도를 엿보게 한다. '선생님'은 공자를 가리킨 말이고, '군자'는 인격이 갖추어져 행위가 올바른 사람, 그 반대어는 '소인'이다. '또한'은 그 밖에도 기쁨·즐거움·군자다움의 조건이 많을 것이나, 여기에 말한 것 역시 그러하다는 주의를 환기시키는 뜻으로 쓴 것이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쁜 일이다. 거기다가 그 지식을 내 나름대로 소화해내서 내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에 적용시킨다. 이것도 기분 좋은 일이라 할 수 있다. 배우고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기쁜 거다. 공부라는게 꼭 책이 들어가는 학교 공부가 아니더라도 자기가 알고 싶었던 모든 것이 다 공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위정>11장을 살펴보면 '이미 배운 것을 익숙하도록 복습하여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남의 스승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옛것을 찾고 또 새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풀이하는 학자도 있다. 이것은 반드시 구시대와 신시대를 대조시킨 것이라고는 보기 힘들고, 배운 것과 안 배운 것을 대조시킨 것으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 이미 배운 것이 시간적으로 뒤의 일이고, 그것을 토대로 하여 배우지 않았던 그 이전의 일을, 즉 그 사람에게는 새로운 일을 알기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의 뜻은 많이 외워 알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선현의 가르침을 익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스스로 자기 나름으로의 새로운 해석과 깨달음으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스승 된 자는 스스로 배움에 실증을 느끼지 않고 가르치는데도 지치지 않아야 한다.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늘 함께 하는 것이며,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은 서로 보완하면서 함께 성장·발달해 간다는 것이다.
<위정>15장 '배우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종잡을 데가 없어지고, 생각하고 배우지 아니하면 위태롭다.' 배우고 그 뜻을 생각하여 찾아내지 아니하면 종잡을 데가 없어 얻는 바가 없다. 자기 마음으로부터 배운 것의 의의를 철저히 이해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그렇다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스스로 해결을 얻었다고 여기기에 이르렀다 해도 허황한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 보통이다. 배우고 생각하는 것이 늘 병행해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2. 소회 및 자기평가
살면서 고전을 찾아서 읽어본 일은 처음인 것 같다. '논어', 어디선가 들어는 봤고, 보기만 해도 괜히 어려울 것 같고, 한자만 가득할 것 같고, 이런 저런 핑계로 논어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아마도 논어는 고등학교 시절 윤리시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다 인듯 하다. 도서관에 가면 책장에 꽂혀진 수많은 논어들을 선뜻 읽어볼 엄두도 나지 않는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해석이 되어있는) 논어는 공자와 그의 문인들의 언행에 관한 단편적인 기록을 정리한 것이고, 또 인간적인 문제만을 다룬 글들이므로 읽는 데 별로 큰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또 읽으면서 자기 및 자기가 처해 있는 사회와 대조하여 거기에 담겨진 지혜에 찬 깊은 뜻을 터득할 수 있게 되므로, 유난히 바쁘고 성급한 우리 현대인에게는 아주 적합한 읽을거리라고 할 수 있다. 나날이 '우리'가 아닌 '나'가 되어 개인주의화 되어가고 있는 요즘, 어쩌면 이 책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우리의 마음가짐, 행동하나, 말 하나 까지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옛 성인들의 가르침은 언제나 틀리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웬만한 사상가나 종교의 교조는 스스로 책을 쓰는 일이 없다. 쿠란도 무하마드가 한 말을 후세에 정리한 것이고,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담은 성경은 말할 것도 없고, 석가모니의 불경도 그렇다. 그렇기에 후세에 제자들에 의해 스승의 주장이 재단당할 확률도 없지 않게 있고, 그래서 욕도 먹는게 사실이다.
논어는 평이하고 당연하면서도 무한한 힘을 가지고 깊이 파고드는 말들인 것 같다. 본래 번역본이 이해하기 쉽고 명확한 번역을 시도한 것이기는 하나 그래도 되풀이 읽어서 음미하면 참뜻을 파악하게 될 대목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독으로 몇 차례 되풀이를 할 수 있다면, 비록 번역을 통해서라 할지라도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고르면서 알 수 있었던 것은 논어는 한자로 되어 있기에 해석의 다양성을 두고 누가 이 책을 읽고 어떻게 풀이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나 감동이 달라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 논어와 비슷한 다른 책들을 읽을 때는 옮긴이가 누구인지를 살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곳에서 많이 본 명언들이 사실 논어에서 나오고 비롯된 말들이라는 것을 보고 듣고 하여서 익숙하였다. 그러나 그 뜻을 다시 한번 더 깨우친 후 정확히 의미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논어에는 살아가며 도움이 되고 실생활에 용이한 명언들이 많이 등장하며 읽는 이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구절도 많아 옛 선조들이 그저 정독하는 것이 아닌 학문의 가치를 가지고 나라를 이끌어가고 후손들을 양성할 교재로 사용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논어는 한 번 읽고 덮어두는 책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혹은 습관처럼 펼쳐서 읽고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하는 말들이라 생각이 들었다.
공자는 인의를 중시하며 예의 바르고, 지혜롭고, 믿음직한 삶을 사는 것을 강조한다. 성실해야 하고, 윗사람들을 잘 대하며 예를 갖춰야 하고, 효도를 해야 하며, 부끄럽지 않도록 덕을 쌓아야 하고, 청렴하고 지조 있게 살아가며 배움에 즐거움을 느끼는 이러한 멋진 사람이 돼야 한다는 느낌이 가장 크지 않았나 싶다. 공자의 분명한 가르침에 머리 속에 묵혀있던 고민이 비워지는 것 같아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는 인간이기에, 인간의 삶이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옛 선조들의 말씀을 토대로 생각하고 행동·실천하고 더 나아가 진보적인 마음가짐으로 삶에 적용시키면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배울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날 때부터 아는 사람은 없다는 공자의 말처럼 늘 겸손하며 배움에 있어 정성된 마음으로 앞으로의 학업과 지식을 쌓는데 있어 최선을 다해야 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첫댓글 내용 요약과 소회 정리를 잘 했다. 이 글의 제목을 달아보자. 단순한 [...를 읽고]가 아니라, 자신 글의 주제를 문장으로 표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