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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마라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니다.
요즘 핀란드 출신의 심포니 록 밴드인 '나이트위시'의 노래를 자주 듣는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몽환적인 감상과 함께 그 세계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다. 가끔 볼륨을 높여 들을 때면 소름이 돋기도 하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경험하기도 한다. 음악이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음을 그들의 노래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렇게 음악의 감동을 느낄 때면 인생도 이런 감동의 느낌으로 충만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가슴 벅차고 행복한 느낌으로 살아 갈 수 있다면 그보다 나은 삶도 없을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돈이나 명예 같은 사회적 욕망들이 모두 사라지고 오직 순수한 감동만이 존재한다. 길지 않은 순간이라 해도 그 순간만큼 소중한 시간은 없다. 우리 삶 모든 하루하루가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요즘 사람들은 마치 감동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처럼 무감하게 살아간다. 감동의 환희를 느낀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다. 일은 바쁘고 만나는 사람은 비즈니스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늘 쫓기듯 살다보니 순수한 감동에 젖을 겨를이 없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느끼며 사세요."라고 말하면, 십중팔구 먹고 살기도 바쁜데 그럴 시간이 어디 있냐는 대답이 돌이올 것 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삶이란 먹고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충족감이 없다면 그 삶은 옹색하고 초라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 아이들의 웃음에서 느끼는 순수, 예술작품들이 안겨주는 아름다움, 역사와 철학으로부터 얻는 지혜… 이러한 영혼의 양식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먹고사는 것보다 덜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먹고 살만해졌다고 해서 감동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람들은 여유가 생길수록 더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더 바쁘게 뛰어다닌다. 그럴수록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영혼의 양식에 인색해진 이 순간이야말로 최대한 감동을 맛볼 수 있는 순간이다. 감동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 소명과 일치하는 것, 그리고 재미와 재능이 연결된 곳, 노력과 영감이 공존하는 곳에 존재한다. 정신적인 갈증을 느낀다면 잠시 현실의 스위치를 끄고 자신에게 필요한 무형의 안식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은 일을 처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소모하는 구조이다. 하나의 일이 끝나면 다음일이 기다린다. 그 일을 끝내면 또 다른 일이 기다린다. 그렇게 하루를, 일 년을, 십 년을 이어간다. 연속되는 일의 사이에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사랑을 하는 형편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삶은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의무'가 된다. 의무적인 생활은 삶의 감동을 안겨주지 못한다.
늘 쫓기며 살기 때문에 일과 삶에 대한 두려움만 키울 뿐이다. 따라서 자기의 감성에 물을 주는 감동이란 다른 세상의 일이 된다.
그렇다면 일의 방식을 바꿔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더 많이 일하기보다는 더 천천히 일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일을 많이 하려는 이유는 여유시간을 좀 더 갖기 위해서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빨리 끝냄으로써 더 많은 수입을 얻음으로써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누리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 관계가 전도되어, 현실의 생활이 우리가 가져야 할 여유를 가로채버린다.
그러니 이제 일의 속도를 늦추고 일의 양도 줄여보자. 그리고 원래 가져야 했던 여유를 되찾아 영혼의 안식을 즐겨보는 것이다.
그로 인해 생활은 더 안정적이고, 일의 효율과 현실의 만족감도 높아질 것이다.
감동을 받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세상이 좋아진다. 불만도 사라지고 이해심도 커지고 스트레스도 줄어든다. 감동적인 음악과 영화를 즐기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듣고 난 직후에는 악질상사에게도 웃으면서 기분 좋은 인사말을 건넬 수 있다. 감동의 경험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삶의 최고점에 이르도록 돕는다. 그런 의미에서 감동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감정이다. 감동은 가능성을 타진해 주기도 한다. 음악에 감동했다는 것은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신호라고 한다. 그림에 감동받는 것은 자신의 유전자에 그림에 대한 강한 잠재력이 있다는 암시일 수 있다. 지금까지 모든 음악가, 미술가, 작가들은 감동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감동을 통해 그 문을 열었으며 감동을 통해 자신의 길을 만들어왔다.
물론 모든 감동이 잠재력의 실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이트위시'의 음악에 감동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들처럼 기타를 잡거나 노래를 잘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충분한 감상만으로도 자신의 음악성은 고양되는 것이며, 그런 시간을 많이 가질수록 음악적 소양 또한 높아진다. 그것이 쌓이면 자신의 잠재력을 자극하여 구체적인 도전까지 가능케 한다.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읽고 또 읽고 또 읽으면서 살아왔다. 대학 생활 중에는 늘 책을 끼고 다녔고 취업 준비에 쫓길 때도 틈틈이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읽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아예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곳으로 보직을 바꾸기도 했다. 뒤돌아보면 내가 책과 가까이 하는 삶을 살게 된 것은 순전히 책으로부터의 감동 때문이었다.
우연히 읽은 한 문장이 안겨주는 감동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책을 읽어본 사람만이 안다. 그리고 그런 문장들을 자주 만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문장에 중독되고 만다. 책 중독자는 좋은 문장. 감동적인 스토리에 자신도 모르게 중독된 사람들이다. 문장을 읽으면 감동을 느낀다. 그런 감동을 느끼고 싶어서 더 읽을 만한 것을 찾아다닌다.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고 그 작가들의 책을 찾아 읽고 좋은 구절에 밑줄을 긋고 외우고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일기장에 필사한다.
한 작가를 섭렵한 후에는 그에게 영항을 준 다른 작가들을 쫓아간다. 좋아하는 분야도 생겨서 그 분야의 신간이 나오면 즉시 구입한다. 그러다 보니 서점 주인과 친해지고 책 읽는 모임도 참석하게 되면서 사람들과 어울린다. 일을 할 때도 읽었던 것에서 도움을 받고 도움을 받게 되니 더 많이 읽어서 일을 잘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이 책을 만나 일을 만들고 그 일을 통해서 자신을 증명한다. 그러다 일을 접고 읽고 쓰는 일로 자신의 소명이 결정된다. 그렇게 한 명의 작가가 만들어진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지금의 일을 끝내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매번 바쁜 일을 계속되고, 우리는 행복을 미루며 사는 데 익숙해졌다. 감동은 미룰 필요가 없다. 오히려 더 앞당겨야 하고,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감동이 없는 삶은 일상을 메마르게 하고 세상을 복마전으로 여기게 하고 치열한 전쟁을 치르게 만든다. 일상에 감동이 있을 때 일에 여유가 생기고 관계에 사랑의 강물이 흐르며 삶의 두려움도 사라진다. 지금 서있는 자리에서 감동을 찾아내고 경험해 보자.
필요한 시간은 만들면 된다.
책읽기를 즐기던 습관 덕에 책과 관련된 일을 하며 살게 되었다. 대학교 때 책으로 인해 삶의 경로를 바꾸게 되었고, 지금은 글 쓰고 강의하는 일로 밥벌이를 하며 살고 있다. 책읽기와 관련된 책 을 몇 권 내고 나니 유독 독서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주로 어떤 책을 읽느냐, 어떻게 고르느냐 하는 질문인데, 얼마 전에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작가님은 언제 책을 읽으세요? 저는 책 읽을 시간이 별로 없거든요. 읽어야 한다는 건 알지만 읽을 시간이 없어요. 책 읽는 시간 을 만드는 방법은 알려주세요." 자신을 30대 직장인이라고 밝힌 그는 요즘 직장생활의 현실들을 풀어놓으며 시간관리 기술이라도 배워야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대답이 별로 없었다. 책을 읽을 시간이란 원래 없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 중에도 책을 읽도록 정해진 시간은 없었다. 단지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니 시간이 만들어졌을 뿐이다. 그래서 이런 대답을 해주었다. “그냥 읽으세요. 바쁠수록 책 읽는 시간은 만들어집니다. 마음만 있다면요."
시간에 대한 불편하고도 중요한 진실이 하나 있다. 시간은 사용하면 할수록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사용하면 할수록 늘어난다는 것이다. 할 일이 없을 때는 시간이 남아돌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할 일이 없으면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바빠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자기 스스로 일을 찾아다니게 되고 바쁜 것처럼 생각하려 한다. 실제로 바빠서 바쁜 것이 아니라 생각만 바쁜 것이다. 반면 시간이 부족하고 해야 할 일들이 많은 경우는 진짜 바쁜 경우다. 그런데 바쁘게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덧 시간이 만들어진다.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어서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사용하는 시간이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바쁜 사람은 바쁘기 때문에 또 다른 일을 할 시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좁은 일상을 비집고 들어가 작은 시간이라도 활용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필요한 사람은 스스로 시간을 만들어낸다.
바쁜 사람들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도 책을 읽고 점심시간에도 책을 읽을 수 있다. 반면 한가한 사람들은 시간이 주어져도 그 시간을 이용할 줄 모른다. 그러면서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시간을 이용해야겠다는 마음이다. 바쁜 사람들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안다. 소중함을 알기에 잘 이용하려 하고, 그러다 보니 없는 시간도 만들게 된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대부분의 경우는 대개 마음만 바쁠 뿐 실제로는 바쁘게 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시간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다.
친구도 마찬가지다. 친구가 많으면 더 많은 친구들이 생긴다. 친구의 소중함을 알기에 그들과 지주 소통하다 보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나의 소중한 친구들이니까 잘해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대하면 그들도 나를 좋아하게 되고, 그런 친구들이 또 다른 친구들을 소개시켜 주기도 한다. 반면 친구가 없는 사람은 친구의 소중함을 모르거나 스스로 '친구'라는 개념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니 친구를 만날 필요도 없고 만나고 싶지도 않으며, 더구나 새로운 친구를 만날 기회도 생기지 않는다. 이것이 친구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다.
일 또한 그렇다. 일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어떤 일을 하게 되면 그 일이 새로운 일을 불러들이게 된다. 새로운 것을 하면 또 다른 새로운 일이 생겨난다. 그런데 일이 없는 사람들은 당장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일과 연결되기 어렵다. 일이 연결되지 않으니 새로운 일도 없다. 일이 없으니 노력할 일도 없다.
강의를 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너무도 잘 안다. 강의는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기능하다. 그러니 강사의 운명은 들어주는 사람, 자신을 불러주는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불러주지 않으면 쓸모없고 생계유지도 할 수 없는 강사가 된다. 그러니 늘 불안하다.
이런 경우의 해법은 간단하다. 일을 만드는 것이다. 요즘은 스스로 강의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하다. 백화점 문화센터도 있고, 대학의 평생교육원도 있으며 인터넷의 다양한 커뮤니티 모임들 등에 자신의 강의를 개설하면 된다. 물론 사람을 만나고, 제안서를 만들고, 자기소개서도 제출해야 한다. 이런 작업들은 기본이다. 그런 과정에서 일이 만들어지며 일을 하다 보며 다른 곳까지 연결된다.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일자리가 없는 이유는 지금 일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일자리를 얻고 싶다면 지금 일을 하면 된다.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하지 말고 지금 바로 일을 시작해야 한다. 아르바이트라도 좋고 3D업종의 일이라도 좋다. 일단 시작하라. 시작하면 다른 일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일에 대한 두려움은 생계에 대한 두려움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걱정이 삶의 두려움을 만든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쓸모없는 것이며 두려움만 커지게 만들어 사람의 가능성을 제약한다. 두려움이란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것이므로 지금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두려움은 스스로 두려워하는 현실을 불러들일 뿐이다. 일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면 지금 실천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해 보기를 권한다. 그 일이 무엇이든 간에 집중하여 활동할 때 시간을 활용할 줄 알게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꾀할 수 있게 된다. 그 아이디어가 사람을 연결시키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고, 그 가능성은 점점 현실화 된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내일은 어떻게 먹고 사나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면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얼마나 집중하고 있는지.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이 집중할 수 있는 분야를 놓아선 안 된다. 독서라도 좋고 청소나 취미생활이라도 상관없다. 집중할 수 있다면 그 속에서 새로운 씨앗을 발견할 수 있다.
인생 후반기를 이끌어 갈 삶의 철학은 있는가?
좋은 내용을 읽거나 듣고 그렇게 실아 야겠다고 생각만 하는 것은 '느끼는 것'에 그치는 것이다. 느끼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 백 번을 느껴도 생활 속에서 실현하지 못하면 무의미하다. 결국 삶이 바뀔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는 실천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한다.
인생의 후반부는 자신의 본성과 타고난 재능들을 발견하고 그에 따라 자기 삶의 중심을 자신에게 되가져오는 시간이다. 이제는 더 깊어지고 진솔해지고 나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수 있을 때 세상에 나가는 발걸음이 당당하고 힘찰 수 있다. 나이 들어 편협한 속물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그 누구보다 자신에게 부끄러운 짓이다. 자기만의 철학을 발견하고 삶의 큰 길을 걸을 수 있다면 마흔 너머의 발걸음도 춤출 수 있으리라.
이럴 때는 무리한 욕심들을 버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따라 가겠다는 마음을 가져보는 것이 좋다. 가슴이 이끄는 길을 가면 마음이 편하다. 마음이 편하니 걱정거리가 없고 세상이 밝아 보인다. 사는 것이 힘들지 않게 된다.
물론 가슴이 이끌어주는 대로 살려면 약간의 노력과 고통이 뒤따른다. 다른 사람들이 가자고 하는 길을 가지 않을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고, 다수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욕망을 포기 할 줄도 알아야 한다. 좀 더 가지면 더 행복할 것이라는 유혹도 뿌리칠 수 있어야 한다. 어차피 인생은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고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 유한한 인간이 끝이 없는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다. 이것을 알 때 포기할 수 있는 힘도 생긴다.
장자가 낚시를 하고 있는데 초나라 임금이 사람을 보내서 자신의 뜻을 전했다. '번거롭지만 나라의 정치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정치를 부탁한다는 말은 재상으로서 중임을 맡아달라는 뜻이었다. 장자는 태연히 낚시를 하며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듣자하니 초나라에는 신령스런 거북이 있는데 죽은 지 300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임금은 그것을 비단을 싸서 상자에 넣고 묘 당 위에 잘 보관하고 있다더군요. 만약 당신이 그 거북이라면, 죽어서 뼈만 남긴 채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좋겠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는 것이 좋겠소?
사신이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는 것이 좋겠지요.”
장자가 말했다.
“돌아가시오. 나는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고 다니며 살겠소."
인생의 길을 달릴 때, 다른 사람들은 전력을 다해 달려가는데 “나는 좀 천천히 갈게요. 먼저 가세요.”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는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도, 남들과 비슷한 정도의 수준은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도 욕심도 사라진다.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 갈 때 삶은 두렵지 않다.
삶의 힘겨움에 대해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정말 합리적인 대안을 던져준다. “이 세상의 사실들이 정말로 분명하지 않을 때는 현재 가장 최선 이라고 생각하는 철학을 선택하면 된다."
그의 말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가장 큰 원칙 하나를 알려준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때 ,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모를 때, 모든 결정과 행동들이 두려울 때, 그 때는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는 것이다.
생활의 여유가 생겼을 때 새로운 일을 벌이지 말고 내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가구를 바꾸거나 보험을 새로 가입하거나, 큰 차로 바꾸는 식으로는 삶이 풍요로워지지 않는다. 대신 여행을 한다거나, 취미생활을 해본다거나, 미루어두었던 책을 읽는다거나, 가족이나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열어보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을 충실하게 하고 사람들과 돈독한 관계에 신경을 쓰는 방식이 스스로의 삶을 유익하게 해준다.
오늘도 가슴에 따라 살자
오늘이 내 생에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일을 할 것 인가?'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대학교의 졸업생 축사에서 했던 말이다. 그가 17세에 우연히 “매일 인생을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의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라는 구절을 접한 이후, 33년간 매일 아침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이었다. 그리고 매일 '아니오' 라는 대답을 얻을 때마다 변화가 필요함을 느꼈다고 한다. 축사를 하는 그의 태도에서 진정성이 엿보였다. 그가 던졌던 이 질문은 생명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게 해준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 곧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은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준다. 인간의 평균수명은 80세에 불과하다. 질병이나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면 이마저도 누릴 수 없다. 삶의 끝이 언제일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자각한다면 우리는 용기가 필요할 때 그것을 발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들은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뭔가를 움켜쥐고 놓지 않는다. 그들이 움켜쥐고 있는 것은 재산일 수도 있고 지식일 수도 있으며 자존심일 수도 있다. 수집가라면 우표이거나 피규어이거나 미술품이 그 대상일 것이다. 대상에 대한 애착이 강하면 강할수록 이들은 세계에 대한 균형적인 판단을 상실하고 아집스럽게 살아간다. 자기만의 방에 갇혀 조금이라도 해를 당할까 칼날 같은 눈빛으로 불침번을 선다.
이처럼 인생을 오랫동안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챙기려 하고 세상에 대해 방어적인 자세를 지닌다. 먼 길을 오랫동안 가야 한다고 생각할 때 대개는 안전하게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지금 가진 것을 잘 지켜야 무사히 건너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생각들은 당연히 삶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 장애로 작용한다. 따라서 새로운 도전이라든가 자기와의 진실한 만남으로부터 점점 멀어질 뿐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니까 대충 살자는 주의를 표방한다. 말하자면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가 그들의 주제곡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루를 건설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소비와 향락으로 인생을 탕진하거나 염세적으로 흐른다. 이 또한 애착이 강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 수 없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생을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자세로서, 내일 죽을지도 모르니까 오늘은 제대로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현재에 집중해 보는 경험이다.
앞으로 1년 혹은 2년밖에 살지 못한다면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는 것은 삶의 진실에 접근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용기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제약된 시간이야말로 우리를 겸허한 자세로 이끌어 자존심, 명예욕, 권력욕, 허영, 두려움들을 날려버리게 한다. 말하자면 생명의 유한성을 인식 할 수 있는 질문으로써 자기가 진정 원하는 인생을 선택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사회적 인간은 항상 자신을 벗어나서 산다. 그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맞춰 사는 방법만 안다. 그리하여 자신의 존재감을 타인의 평가에서만 찾는다.”
“인간이 자신을 되찾기 위해 가져야 할 근본적인 자세는 바로 이런 것이다. 복잡한 세상에서 물러나와 고독을 즐기고, 명상과 사색을 사랑하며, 항상 자기성찰과 내면 탐구를 습관적으로 하는 삶, 이런 삶을 조용한 열정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장자크 루소의 이런 통찰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울림을 준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하루살이 같은 존재가 사회의 이목에 신경을 쓰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에 집중하느라 여념이 없다. 타인의 의견이 곧 자신의 삶을 좌우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자기다운 생각, 자기다운 삶을 찾을 생각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지닌 보편적인 생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루소가 고독을 즐기고 명상과 사색을 사랑하라고 주문하는 이유는 바로 “조용한 열정"으로써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기성찰과 내면 탐구는 결국 삶의 유한성을 인식하는 길로 인도한다. 자신의 죽음을 생각할 때 현재 자신이 가진 것들의 의미를 냉정히 판단하게 되고 과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으며, 그 토대 위에 결정한 삶을 용기 있게 살아가게 한다. 매일 아침 33년 동안 해왔다는 스티브 잡스의 질문이 가치 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죽음과 진정한 삶에 대한 역설을 그는 이런 말로 마무리한다. 여러분은 곧 죽을 목숨입니다. 그러므로 가슴에 따라서 사세요.
얼마 전부터 아침마다 이런 주문이 아닌 주문을 던지게 되었다.
“오늘도 가슴에 따라 살자." 가슴 아픈 것도 괜찮은 일이다.
누구나 나약한 부분은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나약함을 약점으로 생각하고 감추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곤 하는 데, 생각해 보면 우리의 약점과 그로 인한 실수만큼 소중한 것도 없다. 특히 앓아누워 궁상을 떨다 보면 지난날들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지고 지신의 나약함으로 인해 빚어졌던 실수의 순간이 애틋한 추억으로 남겨진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실수나 약점의 순간들이 없다면 추억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가끔은 약점을 의도적으로 흘려보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완벽한척 하지 말고, 다 아는 척하지 말고, 안다고 해도 모르는 척, 잘 하는 것도 못하는 척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경험의 교훈이 주는 잔꾀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생활에서는 유용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자신을 낮추고 허점을 보여주면 상대방은 방어벽을 낮춘다. 저 사람도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진다. 쉽게 친해진다.
약점은 감춘다고 감추어지는 것이 아니다. 약점을 감추면 오히려 상대방과의 괴리감만 커진다. 약점을 들춰내고 알리고 자연스럽게 나누면 그것이 연결고리가 될 것이다. 서로 편안해지고 웃을 수 있는 사이가 된다.
인생 이란 하루하루 훈련을 쌓아가는 것이다.
인생이란 나 자신을 갈고 닦는 훈련의 장이고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훈련의 장이며 삶의 감동을 맛볼 수 있는 훈련의 장이다. 지금의 이 행복을 행복으로 여기지 못한다면 언제 어디서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겠는가?
이 행운을 발판 삼아 있는 힘을 다해 나아가자.
나 자신의 미래는 바로 이 순간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지금 당장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노력은 언제 할 것인가? 인생은 항상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하지 않는다면 아마 영원히 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은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미래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늘 새롭게 시작된다. 지금 이 책을 읽는 순간이 새로운 미래의 시작이고, 책을 넘기는 순간순간이 또 다른 미래의 시작점이다. 미래는 지금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매번 달라지고 변한다. 그래서 더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지금 이 순간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인생은 변하고 과거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인생에는 하나의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천수만 가지의 길이 있으며, 그 길은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미래는 늘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고 또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가 조금만 집착을 버리고 눈을 돌려보면 그 길이 환히 보일 것이다. 그러니 삶의 문이 닫히는 것을 느꼈다면 고개를 돌려 새로운 길을 보자. 그리고 과거의 문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고 당당히 새로운 문으로 들어가자. 그 순간 우리의 미래는 새롭게 만들어진다.
글쓰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일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살아가는 일에서 무거움과 가벼움의 줄타기 기술은 더 많이 요구된다.
무겁게 산다는 것은 어떤 방식일까? 일단 과묵한 것, 수다스럽지 않고 소리 내어 웃지도 않는 것, 행동은 신중하고 느릿느릿한 것,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는 것, 남에게 먼저 연락하거나 찾아가지 않는 것…. 이런 모습들이 떠오른다. 이런 방식은 아무리 생각해도 재미가 없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가볍게 사는 게 낫겠다 싶어진다.
가볍게 산다는 것은 어떤 방식일까? 잘 웃고 우는 것, 수다스러운 것, 정보 수집과 전파에 적극적인 것, 행동은 잽싸고 빠른 것,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여 늘 분위기 메이커가 되는 것…. 이런 방식은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도통 체면이 서지 않는다. 의미 없는 삶을 의미 없이 소비하는 것 같다 .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아침에 일어나면 대체로 몸도 마음도 무겁다. 이럴 때는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시도를 통해서 재빨리 '사이'로 돌아오는 것이 좋다.
어찌 보면 삶이란 무거워질 때와 가벼워질 때를 아는 일인지도 모른다. 무거워져야 할 때 무거워지고 가벼워져야 할 때 가벼워지는 것, 그리고 다시 '사이' 로 돌아오는 것이야말로 삶의 중요한 감각일 수 있다. 삶에서 감각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삶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무거운 사람 : “내 삶의 의미는 실존의 행복을 제대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가벼운 사람 : “뭘 그런걸. 물어요. 우울하게. 그냥 신나게 살자고요." '사이 '의 사람 •• “살아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죠."
자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무거운 사람 : “쓸모없는 인간이죠."
가벼운 사람 : “나도 나를 몰라요. 그게 중요한가요?"
'사이'의 사람 : “자기를 아는 건 중요하조. 하지만 쉽지는 않아요. 그래도 언젠간 알게 되겠죠. "
두려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무거운 사람 : “영원히 그것에서 벗어날 수 없겠죠. 인생은 너무 부조리해요.”
가벼운 사람 : “어떻게 되겠죠 뭐 "
'사이'의 사람 : “두려움이 있으니 용기도 생기는 것일 테죠. 잘 할 수 있을 겁니다.”
실행하는 삶이 특별한 삶이다. 삶의 묘한 이치 중의 하나는 걱정하면 그 걱정의 대상을 맞닥뜨린다는 것이다. 두렵고 걱정되는 일은 결국 찾아오게 되어 있다. 발표할 때 떨릴 것을 걱정하면 반드시 떨게 되고, 만나기 싫은 사람은 꼭 만나게 되고, 시험에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문제는 나오기 마련이다. 마치 나의 두려움이 그런 상황을 불러온 것처럼 느껴질 만큼 절묘하다.
어떤 걱정이나 두려움이 생길 때는 아예 반대로 생각해 버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공부든 일이든 정말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길 때면 아예 일을 젖혀놓고 쉬기로 마음먹는 것이다. 푹 쉬고 나면 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다. 또는 쉬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아서 차라리 일하는 게 낫겠다 싶어질 수도 있다. 그러면 일에 대한 부담감 없이 그 일에 집중할 수 있다. 혹은 세상이 두려워지거나 사는 것에 걱정이 많을 때, 아예 두려워하고 걱정하자고 생각해 버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실컷 걱정하고 크게 두려워해 보면 걱정할 만한 것도 두려워할 만한 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세상에는 그렇게 걱정할 일이나 두려워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때 '지금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이 나한테 정말 중요한 일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실제로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우스운 결과를 얻을 때가 많다.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들 중에서 정말 나한테 중요한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일들이 모두 현실로 일어나는 일은 별로 없다. 그것이 현실로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우리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설사 그런 변화가 일어난다고 해도 그에 맞게 맞추어가며 살면 된다. 어차피 인생은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길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편하게 마음먹고 걱정을 받아들이는 편이 오히려 걱정을 없애는 길이 될 수 있다.
이런 경우 오히려 생각할 시간이 없는 것이 훨씬 낫다. 사람이 두렵다고 느끼는 것은 두렵다는 생각을 할 틈이 있음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예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도록 열심히 땀 흘리며 뭔가를 하는 것은 두려움을 원천봉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두려워 할 틈이 없도록 늘 바쁘게 사는 것이다. 생각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좋은 사람이 있고, 생각하는 시간보다는 밖으로 뛰어다니며 행동하는 것이 나은 사람이 있다. 생각을 통해서 일을 구체화하고 문제를 풀어내는 사람들은 생각할 기회를 많이 가지는 것이 좋고, 생각만 하면 걱정이 앞서거나 부정적인 생각들에 휩싸이는 경우라면 그 시간에 작은 행동으로 문제에 부딪히는 것이 현명하다. 어떤 경우든 자신을 잘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자신이 생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지, 행동을 통해 부딪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지 생각해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인생을 도전이라고 생각하며 행동으로 승부를 거는 사람들은 한 결 같이 말한다. 행동에는 이상한 마법이 있어서 머뭇거리지 않고 실행을 하다 보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행동하는 것 자체가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오늘은 어제 우리가 걱정하던 내일이다.1850년을 전후해서 미국은 골드러시 시대를 맞이했다. 미국 서부에서 대량의 금광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금광사업에 뛰어들어 돈을 벌려는 미국인들이 너도 나도 서부로 몰려들었다. 이들의 대부분은 젊은이들이었고 가난했으며 황금으로 한몫 잡으려는 부푼 꿈을 안고 있었다. 그들 중 20대의 청년 한 명이 끼어 있었다. 그는 엄청난 황금을 발굴하여 부자가 되는 꿈을 안고 왔지만 도착하자마자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 눈으로 직접 확인한 현실이 상상한 것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모래밭 천지였으며 부자들은 하나도 없고 가난한 노동자들만 몰려들어 궁색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할 수 없이 자신도 천막을 치고 황금을 찾아 돌을 깨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이 가능성 없는 하찮은 일에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금을 개러 달려든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이 너무 늦게 왔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다 문득 저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금을 캐려면 옷과 음식과 숙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생각으로 그들의 생활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그는 곧 광부들에게 필요한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품목을 종이에 적었다. 그리고 남은 돈을 모두 털어 그곳에 작은 상점을 짓고는 광부들에게 생활필수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해서 장사는 나날이 번창했다. 그가 판매하는 제품 중에는 천막이 있었다. 이 천막은 하도 튼튼해서 한 번 사간 사람들은 다시 제품을 사러 오는 일이 드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광부가 가게에 와서 상품을 고르다가 이 천막을 보더니 “저걸로 옷을 만들어 입으면 튼튼할 것 같다.”는 말을 던졌다. 그의 말에 청년은 탄성을 질렀다. 광부들은 매일 험한 일을 하기 때문에 옷이 잘 찢어진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잘 찢어지지 않는 텐트용 천으로 옷을 만들면 쉽게 닳지도 않고 찢어지지도 않아 매우 유용하리라 판단했다. 청년은 곧 텐트용 천으로 바지를 만들어 그 광부에게 선물로 주면서, 자신이 찢어지지 않는 바지를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줄 것을 광부에게 부탁했다.
그 후 광부들의 작업복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아예 의류회사를 차려 광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판매할 수 있는 질 좋은 바지를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블루진', 즉 청바지다. 그리고 이 청바지를 유행시킨 청년이 바로 청바지 브랜드로 유명한 '리바이스'의 창업자 리바이스 스트라우스다.
리바이스는 금을 캐러 나섰지만 이미 금을 캘 수 있는 시기가 지났음을 깨닫고 포기하려 했다. 다행히 그는 빈손으로 돌아가는 대신 그곳의 경험을 활용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주변의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금을 개는 일을 할 때 가장 불편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여 드디어 황금보다 값진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보통 사람들과 달리 그는 시야를 넓혔고 무에서 유를 찾아냈다. 청바지라는 발견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계기가 되었다.
우리 일상도 희망 없이 반복되는 생활이라는 점에서 리바이스가 처음 경험한 서부와 같지 않을까 싶다. 눈을 좀 더 크게 뜨고 바라 볼 때 우리는 그에게서 두 가지 관점을 얻을 수 있다. 하나는 리바이스처럼 경험을 다르게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모든 경험은 쓸모가 있다. 쓸모없어 보이는 경험조차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나에게 생기는 모든 일들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모든 경험은 필요가 있고 용도가 있다. 리바이스는 자신의 경험을 다르게 활용함으로써 성공했다.
다른 하나는 현재의 자리에서 한발 물러나서 자기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다. 조금 물러나서 보면 객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고 넓은 시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걱정이나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 직선을 하나 그어보자. 그리고 가운데 점을 찍고 그것이 오늘이라고 해보자. 오늘의 앞에 작은 점을 찍고 어제라고 해두고, 오늘의 다음에 점을 찍고 내일이라고 해두자. 이런 식으로 여러 개의 점들이 하나 둘씩 모인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오늘은 어제 그렇게 많은 걱정을 했던 내일이다. 오늘은 또 내일을 걱정하겠지만 그 내일은 곧 오늘이 될 것이다. 이렇게 직선을 연결하듯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면 선이 끝나는 날 우리 삶은 마감될 것이다.
그러니 오늘을 그냥 살자. 오늘을 살면 내일이 올 것이고 내일은 또 살아가면 된다. 이렇게 인생의 하루하루를 하나의 점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오늘 점을 찍었으니 내일 또 찍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일상의 경험에서 인생을 배우려면 두 가지 눈을 가지면 도움이 될 듯하다. 하나는 일상의 경험을 평소와는 다른 눈으로 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발 물러나서 보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 두 가지는 서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물러나서 보면 다르게 볼 수 있다.
계획대로 안 되어도 괜찮아
돈을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잘할 수 있는 방법들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더 당당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삶의 방향에 맞으면 하기로 결정을 하고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하면 잘할까를 고민하면 된다. 그리고 잘하는 방식으로 일을 해나가면 된다. 그 방법이 별로 효과가 없으면 다른 방법에 도전하면 된다. 이렇게 일을 한 결과가 나오면 그와 연결되는 일을 찾아 시작한다. 이때 역시 어떻게 하면 일을 잘할 것인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성공의 여부는 제쳐둔다. 그러다 보면 일에 재미가 생긴다. 안 되는 일도 자꾸 하다 보면 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기 마련이다. 잘하게 되고 결과 좋아진다.
정신은 나은 사람, 물질은 못한 사람과 비교하라
'먹고 살기 힘들다." 요즘 부쩍 자주 듣는 말이다. 이 말에는 서민들의 애환이 담겨 있어서 짠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기본적인 생활 유지가 안 되는 삶을 살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힘겨운 삶 앞에 숙연해지기 마련이다. "먹고 살기 힘들다."라는 말속에 인심이 넉넉하지 못하고 서로 나눌 수 있는 것도 꽉 움켜쥐고 지키려는 세태가 반영된 것 같아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런데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이 말의 의미는 조금 다르게 들리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한국사회의 20% 가까이는 정말 먹고 살기 힘든 저소득층에 해당한다. 저소득층에서 먹고 살기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납득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실제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13평짜리 아파트관리비를 내지 못해 여러 달 밀려 있다면 이건 정말 먹고 살기 힘들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그런데 최근에 이런 경우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이들은 정말 먹고 살기 힘들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잘 먹고 살기 힘들어서 하는 말'이라는 느낌을 지을 수 없다. 실제로 먹고 살기 힘든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것은 남들보다 더 잘 먹고 잘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상대적인 박탈감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간사한 마음으로 세상의 잣대를 삼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런 방식은 객관적이거나 공정하지 못하고 상황에 따라 기준이 변한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삶이다, 중형차를 소유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소형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볼 때면 기분이 우쭐해져서 자신의 차에 만족해하다가도 대형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볼 때면 갑자기 차에 불만이 생기고 초라해진다. 자기 상황은 변한 게 없는데 주변의 상황에 따라 마음이 우쭐해지기도 하고 초라해지기도 하는 것은 잘못된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에 갈망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이런 심리 때문이다. 더 좋은 것을 갖고 싶고 더 멋지게 살고 싶은데 현실은 받쳐주지 않고, 그렇다고 욕심을 버릴 수도 없으니 아등바등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렇듯 무엇을 가지면 좀 더 가지고 싶고, 한 칸 높아지면 더 높아지고 싶은 마음으로는 만족이 없고 늘 갈망만 가득하다
남과 비교하는 마음은 오랜 습관이기 때문에 노력해도 잘 다스려지지 않는다. 불경을 공부하는 스님들은 평생 이런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그 연습 자체가 삶이 된다. 세속을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생활 속에서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은 필요할 듯하다. 물론 그것이 쉽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도 않는다. 이럴 때는 좀 더 수월한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마음이 비교를 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면 비교하는 방향을 조절해 보는 것이다. 비교를 안 하는 것은 힘들지만 비교하는 방향을 조절하는 것은 그것보다 수월하다. 기왕 비교를 할 바에야 행복과 발전 모두를 가져다주는 방향으로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물질적인 것은 자신과 못한 사람과 비교하고 정신적인 것은 자신과 나은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다. 주택 , 연봉, 자동차, 재산 등의 불만은 나보다 못 가진 대상과 비교하고 습관, 생활태도, 도덕성, 양심, 인내심 등의 불만은 나보다 더 나은 대상과 비교해 보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면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지 그리고 어떤 정신이 부족한지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특히 자신보다 나은 마음자세를 지닌 사람과 비교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의 노력하는 태도와 일하는 자세를 통해 자극을 받게 되면 나도 한번 해보자는 적극적인 마음이 들고 더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실천만 할 수 있다면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비교도 잘 하면 삶에 큰 도움이 된다. 비교 자체가 문제가 아니 라 어떻게 비교하느냐가 문제다.
『인간관계론』으로 유명한 데일 카네기는 한때 힘들고 우울한 감정에 빠져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습관 때문에 불평과 불만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불평과 불만은 자신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발전에 방해만 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 위해 작은 실천을 하기로 했다. 그것은 화장실 거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붙여놓고 우울한 생각이 들지 않도록 매일 면도를 할 때마다 그 문장을 읽는 것이었다.
"나는 신고 다닐 신발이 없어서 우울했었다. 길거리에서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신발이 없다면 누구나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을 보면 생각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 순간을 매일 기억할 수 있도록 거울에 붙여둠으로써 부정적인 감정대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행복한 생각을 하도록 노력했다. 하루를 그렇게 시작할 수 있다면 늘 웃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비교하지 않고 살아가기는 힘든 세상이다. 하지만 비교를 하되 정신적인 면은 자신보다 나은 사람과, 물질적인 면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는 것은 가능하다. 기왕 비교할 바에는 자신이 더 행복해지고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많이 힘든 일은 아니다. 비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의도적으로 방향만 조절해 주면 되기 때문이다.
복잡한 삶, 버리고 정리하기는 이론으로, 환경정비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론이었다. 경찰 대신 청소부들이 동원되었고, 낙서 대신 미술작품이 설치되어있다. 요괴는 90일 만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범죄가 줄어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2년 후에는 50%의 범죄가 줄어들었으며 3년 후에는 80%가 줄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하루 500만 명의 사람들이 안전하게 이용하는 교통수단으로 사랑받고 있다. 공간이 지저분하고 더러워지면 애착이 생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함부로 다루게 된다. 쓰레기는 그대로 방치되고 쓰레기 위에 다시 쓰레기가 버려진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면 결국 정리하거나 청소 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그 결과 공간 그 자체를 위함과 동시에 자신의 삶조차 방관하는 자세로 임하게 된다. 생각 또한 마찬 가지다. 공간이 정리되어 있지 않고 복잡하면 생각도 혼란스럽고 집중이 잘되지 않아 생산성이 떨어진다, 없는 정보와 욕망이다. 자기 삶의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먼저 자 신에게 쓸모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한다. 필요도 없는 지식과 정보, 도움도 되지 않는 자격증 공부, 인터넷으로 얻는 잡다한 소식들, 혼란한 생각들이 그런 것들이다. 대개 사람들은 버리는 데 익숙하지 않다.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언젠가 필요할 거야. 세상 모든 것은 쓸모가 있으니까 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합리화한다. 더욱 이 예전의 아쉬웠던 경험이 있다면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까지 더해진다. 그러니 버리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물론 돌아가신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입었던 옷…이런 식으로 하면 사연 없고 가치 없는 게 없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수십 가지라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또 아이들이 어릴 때 입던 옷을 모두 간직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다음에 한꺼번에 정리하겠다며 내버려두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다음이 언제인지 기약이 없으므로 과감히 생각을 바꿔야 한다. 다음에 필요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때 필요하면 다시 구하면 된다. 버리는 행동은 나쁜 짓이 아니다, 버리지 못하는 것이 더 나쁠 수 있다. 다음에 버리는 것보다는 지금 버리는 것이 생산적이다. 그럼 정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리를 하려면 우선순위를 정해 야 한다. 순위를 정하는 일에는 삶의 목적의식이 필요하다. 삶의 방향이 정해져 있다면 크게 어렵지 않다. 때문에 먼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을 중심으로 순서를 정해 두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것들이 제거되면 갈등이 해소되고 의사결정이 쉬워지며 행동에 속도가 붙는다. 우리는 쓸데없는 것을 너무 많이 가지고 산다. 인터넷과 TV는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고 그것들은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 떠돈다. 불필요한 정보는 아예 접근을 차단하는 것이 좋다. 그래서 TV는 보지 않는 것이 가장 좋고, 인터넷은 이메일 정보만 확인하는 것이 최선이다. 가끔 필요한 내용을 검색하는 용도면 충분하다. 책도 잡다한 베스트셀러가 아닌 자신의 목적과 삶의 방향과 맞는 책을 직접 골라서 의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때 삶은 단순해지고 질서가 잡힌다. 버릴 것은 버리고 남은 것은 우선순위를 정해 정리해 두는 것, 그 것이 생산적인 삶의 기초다.
'내일을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마라.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해. 잘 될 거야." 우리의 조상들이 살던 시대는 그렇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터로 나갔다가 해질 녘이면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비가 오는 날은 쉬었으며 추운 농한기에는 일손을 놓고 겨울잠을 자듯 긴 휴식을 취했다. 내일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 미래는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걱정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걱정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거니와 무엇보다 내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에 비해 우리의 내일은 너무 심각하다. 넉넉해야 하고 안전해야 하며 행복해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오늘에 충실할 수가 없다. 미래의 삶을 위해 오늘의 삶을 희생하는 식이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처럼 변화라는 것, 미래라는 것은 심각하지 않다. 오늘과 같은 어떤 날 일뿐이다. 내일을 가볍게 여기라는 말이 아니라 내일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내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듯 내일도 잘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믿고 발길이 닿는 곳으로 가자. 나의 날들은 나만의 것이고 그것은 곧 하나의 신화,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면, 기장 낮게 나는 새는 가장 자세히 본다." 갈매기 조나단은 이러한 갈등이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 조나단은 높이 나는 훈련을 하며 자신의 꿈을 단련시키고 훈련한다. 그리고 결국 세상에서 가장 빨리 나는 새가 된다. 꿈을 실현한 것이다. 한 번 뿐인 생을 멋지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실현한 갈매기는 행복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조나단도 가끔은 저공비행을 했을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낮게 날며 물고기를 잡았을 것이다. 고공비행은 세상이 얼마나 넓은 지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알려준다. 저공비행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해주고 주린 배를 채워 준다. 저공비행을 하며 물고기를 잡을 때마다 높은 하늘과 자유로운 바람이 그리울 것이다. 하지만 먹지 않으면 하늘에 오를 수도, 구름 속을 날아다닐 수도 없다. 먹는 것과 나는 것은 연결되어 있다.
됩니다, 안 됩니다!
어떤 때는 서고 어떤 때는 눕는 돌이란 무엇일까? 이것은 인간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나 자신만 돌아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오늘 마음과 내일 마음이 달라지는 것, 그것이 어떤 때는 서고 어떤 때는 눕는 돌 아니던가!
이런 물음에 대해 남전은 대답한다. 인간도 부처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부처도 처음에는 우리와 같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을 가진 존재였다고. 그러니 모든 인간은 부처가 될 수 있음이다. 그러자 의심스러운 마음이 든 대부가 묻는다. 혹시 안 되는 경우도 있지 않느냐고. 그러자 남전이 답한다. 당신이 안 된다고 생각 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남전의 대답은 되고 안 되는 문제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음을 전한다.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이요,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닌 것이다 자신이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든 것이요, 견딜 만 하다고 생각하면 힘들지 않은 것이다. 밉다고 생각하면 미운 것이고, 예쁘다고 생각하면 예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세상을 규정짓고 결국 삶의 모양을 결정한다. 그러니 자신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모든 것이 허상이면서 모든 것이 실재다. 삶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삶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매번 불안과 걱정,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게 된다. 스스로 고통 받고 삶을 힘겹게 한다. 삶을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니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무겁고 과중하지 않겠는가?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나이 들어서 더 잘할 수 있다
세상살이가 힘겨운 것은 현재의 삶에 집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족, 직업, 명예, 우정, 사랑이 모든 게 집착의 바탕이다. 그 중에서도 직업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존본능과 직결되는 부분이므로 더욱 강하게 집착할 수밖에 없다. TV에서는 연일 실직과 실패에 대한 위협적인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우리는 그럴 때마다 내일 출근할 회사가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 스트레스를 주는 회사라도 '월급을 받을 수 있으니 다행' 이라는 마음으로 위로한다. 특히 마흔이 넘어가면 직장과 직업에 대한 애착이 강해져서 일의 터전을 바꾸는 일 자체에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아이들을 먹이고 교육시키려면 점점 더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신의 새로운 인생에 대한 꿈을 짓눌러버린다. 더욱이 새로 시작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에 도전을 머뭇거리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나이'가 아니다. 그것은 핑계에 불과할 뿐이며 사실은 낯선 세계에 도전하는 것 이 귀찮고 불편하고 부끄럽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나이에 무 슨……."이라는 말은 “이제 귀찮은 일은 하기 싫어.”라는 뜻이며 “이제 골치 아픈 일은 접고 편하게 살고 싶다.”라는 표현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스스로 자기 삶에 안주하게 되고 그럴수록 자기 영역이나 노하우에 대한 애착은 점점 강해진다. 나이가 들면 적응력도 떨어지고 뭔가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해 버린다.
두려움이란 마음에서 벌어지는 일일 뿐이며 실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힘들다는 것 또한 두려움이 불러들인 고정관념일 뿐이다. 오히려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에 더 유리할 수 있다. 인생의 연륜이 새로운 분야에 대한 빠른 습득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희망을 세일즈 한다.』라는 책은「입영열차 안에서」라는 노래로 유명한 기수 김민우가 쓴 책이다. 그는 한참 잘나가던 시절에 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 2집과 3집을 연달아 발표했지만 대중의 관심을 얻지 못했다. 연예계에서 자주 있는 일이듯 그는 한순간에 잊혀졌다. 노래에 대한 열정 때문에 그는 밴드를 조직해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꿈꾸었다. 하지만 불의의 가스 폭발로 작업실 이 불에 타버렸고 그 후로 그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했던 그는 자동차 세일즈 일을 택했다. 내 성적인 그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일을 시켜주지 않는 상사를 따라다니며 매달렸다. 그 과정에서 인기가수라는 영광과 자존심을 모두 지워야 했다. 누구보다도 일찍 출근했고, 고객의 전화는 일어서서 받았으며, 자신을 부르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갔다. 그 결과 그는 벤츠 판매왕의 자리에 올랐다.
몰락과 좌절, 성공을 밟은 그는 말한다. 벼랑 끝에 서있는 각오로 살면 못할 것이 없다고. 그런 자세만 있다면 삶은 별것 아니라고.
나이가 마흔이 넘고 인생의 후반기가 도래하면 새로운 자극과 결심이 필요해진다. 그것은 삶에 생기를 불어 넣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기왕이면 기존의 일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한 1년 정도는 일에서 손을 떼고 꿈을 준비해 보는 것도 괜찮다. 가족의 이해를 구할 수 있다면 더 좋고, 돈을 조금 모아두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안전하게 살다가 안전하게 죽는 것보다 새로운 도전으로써 '나는 이렇게 살았다' 고 말할 수 있는 삶이 더 낫지 않을까?
[세상이 학교다, 여행이 공부다]
옥 패밀리의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들은 피상적으로 '대단하군.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하는 반응을 보이며 , 용기 있는 가족이라고 감탄한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게 그러한 결단은 아주 절박한 현실적 요구였다. 그들의 여행은 '낭만'이 아니라 와해되어가는 가정을 살려내기 위한 돌파구였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쩔 수없는 상황이 되면 몸과 마음이 움직인다. 도저히 다른 수가 없는 지경에 닥치면 굳건히 닫혀 있던 미음이 열리고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따라서 고민과 갈등이 발생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변화의 계기를 알려주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옥 패밀리의 경우 딸의 성적표가 그 단초가 되어 지금까지 안심하고 있었던 생활에 의문을 던지게 하였고, 다시 새로운 삶에 대한 가능성을 고민하게 해주었다. 만약 아이들이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면 부부 교시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제법 유명해진 옥 패밀리에게 많은 질문들이 쏟아진다. 가장 많은 질문은 '아이들 대학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패밀리의 답은 단순하다. “대학 진학보다는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는 것이다. 스스로 독립하고자 할 때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고, 대학을 갈 녀석들은 알아서 준비할 것이라는 말이다.
당연히 지금 아이들은 자신만의 삶을 향해서 열심히 매진 중이다. 각기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독학으로 합격했고, 여러 개의 자격증을 갖고 있기도 하고, 세무사 사무실에 전문 세무공부를 위한 대학 준비도 하고 있다. 부모들이 어느 대학 무슨 과를 가라는 식으로 정해주는 일반적인 가정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언젠가 그 중의 한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를 둘러보니 학벌보다는 실력, 학력보다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제 저희 스스로 해볼게요."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그들의 교육방식을 점검한 것을 토대로 하여 '가정과 교육 세움터'라는 배움터를 세웠다. 특히 유대인들의 교육철학을 많이 반영함으로써 교과서 중심의 딱딱한 교단이 아니라 생생한 삶이 흘러넘치는 산교육을 해보겠다는 의욕을 담고 있다.
세상이란 바라보는 사람이 어떤 크기의 창문을 지녔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좁은 창문으로 보면 세상은 시시하고 하찮다. 하지만 넓은 창문으로 보면 눈앞에 신기하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삶에서 갈등과 난관은 무수히 찾아온다. 그때마다 자기 삶의 방식에 대한 성찰의 기회로 생각해 보자. 조금만 용기를 내면 가능한 일이다. 힘든 삶의 방식을 반복하기보다는 조금 괴롭더라도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다. 어떤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순간까지 기다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고 자신과 세상에 대한 믿음도 강해야 한다. 언젠가 진실은 밝혀진다는 믿음으로, 세상의 일은 사람이 아니라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상황으로부터 조금 물러나서 바라보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의 지침을 잘 모아서 정리한『보왕삼매론』의 마지막 구절에 이런 내용이 있다,
억울함을 당할지라도 굳이 변명하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변명하다 보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된다.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기를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의 문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작가의 직업만족도가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글이 일상의 작은 소중한 가치를 찾아내는 작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임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 내고, 그 평범해 보이는 삶의 새로운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들이 무심코 여기는 부분으로부터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그것을 섬세한 감각으로 표현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각자 몸담고 있는 공간, 만나는 사람, 경험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돕게 한다.
자신의 삶에 만족히는 사람들은 일상 속의 아름다운 가치를 찾아내는 일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일이란 단순한 일이 아니라 생활이며, 그런 생활 속에서 발견한 소중함은 생명력 넘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반면 자신의 일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가치관이나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는 일상을 살기 때문에 부정적이고 우울한 상황과 대면하게 된다.
선생님도 모르는 것이 있네요.
잘생기고 인기 있는 사람들은 늘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그들은 체면을 차리느라 자기감정에 충실하기도 어렵고 소신껏 주장하기도 쉽지 않다. 이것은 행복한 삶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길들여진 사육된 삶일 뿐이다. 반면 남들보다 외모가 부족한 편이라면 외모 이외의 부분에서 자신만의 장점을 찾아야 한다. 혹은 외모를 역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우니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마음껏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편안한 차림으로 생활해도 남의 주목을 받을 리 없고,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 해도 주변의 기대치가 적은 만큼 부담이 없다. 이럴 때만큼은 남들의 포기가 고마운 일이다. 물론 자신의 미미한 존재감으로 인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과 행복은 생각의 차이에 있다. 어떤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본인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면 그만인 것이다. 의외로 해답은 간단할 수 있다.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외모든 성격이든 자신의 약점을 진심으로 인정한다면 그로 인한 더 이상의 아픔은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마음속 두려움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면 그 자체를 인정하자. 그 두려움이 자신을 지배하는 것은 본인이 그것에게 힘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실패와 나약함, 부족함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면 본인이 그것을 거부하거나 회피해 왔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밖으로 드러낸다면 나를 변화시키는 긍정적인 힘이 될 수 있다.
얼굴이 못났으니 다른 것에서 결실을 맺기 위해 노력하자. 건강이 안 좋으니 음주를 자제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자. 집안이 가난하니 누구도 꺾을 수 없는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하자. 이런 마음이라면 조건이 유리한 사람들과 어깨를 견줄 수 있다. 이 순간의 장애와 부족함은 우리를 묶어두는 한계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극복하게 하는 구름판이 된다. 인생은 자기극복의 역사다. 결핍과 부족은 극적인 승리를 이끌어 주는 소중한 재산이다.
때로는 방랑 그 자체가 목표다
문제는 일찌감치 취업 준비를 하거나 스펙을 늘리는 것이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가 하는 점이다. 내가 확인한 바로는 오히려 늦게 시작한 공부가 효과를 거두는 경우가 더 많았다. 공부란 오래하면 할수록 지치게 마련이다. 어떠한 계기가 주어졌을 때 전력을 다해 노력하는 경우에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 게다가 방황을 해보지 않으면 오랫동안 전력을 다할 수 있는 근거가 약해진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인간은 무엇인지, 사랑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나아가 단순히 생각에 그치기보다는 현실 속에서 불안정한 자아를 느끼며 흔들려봐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알 수 있고 세상을 느낄 수 있다. 그 과정이 비록 모든 것이 와해되는 듯한 고통과 방황을 불러온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방황의 길 위에서는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감도 벗어던질 수 있다. 해야 하는 수많은 일과와 목표를 내려놓으면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관찰할 수 있는 시선이 생겨난다. 그 순간만큼은 삶의 목표가 없어도 무방하다. 목표 없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 몸소 체험해 봐야 그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혹은 무의미 한지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방황은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먼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자유, 방안에 들어박혀 공상할 수 있는 자유, 여러 유형의 사람들과 어울려 사회를 배울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함으로써 자유사용법을 터득할 수 있다.
물론 세상은 우리를 가만히 놔두려고 하지 않는다. 급변하는 현실을 실시간으로 공개하며 우리로 하여금 '이렇게 살다가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심어준다. 이러한 공갈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방황 한번 못해본 채 쳇바퀴 굴리듯 사는 이들이 오히려 쓸모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떨리면 떨리는 대로, 두려우면 두려운 대로
“미래를 알게 되면 미래는 없는 거야. 고통과 행복 모두를 빼앗아버리는 거야.” 이처럼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미래인 것이다.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알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미래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과거에 가깝다. 고정되고 정해진, 완전히 결정된 미래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미래의 가치는 바로 1초 후에 벌어질 상황을 예기치 못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기대 할 수 있고 가슴 떨리는 흥분을 느낄 수 있다. 다음 순간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미래가 소중한 이유다. '미래'라는 단어를 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은 무엇인가? '두려움'을 먼저 느끼는 이도 있겠지만 대개는 '기대' 또는 '설렘' 등의 감정이 먼저 반응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인생은 재미있다.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도 결말을 알고 보면 시시해지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결말이 정해져 있고 그 과정까지 짜여 있다면 지루한 삶을 어떻게 견딜까. 미래가 두렵긴 하지만 결정된 것이 없기 때문에 인생이 살만한 것이다.
세상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쉬어 보자
“사람들은 칭찬받기를 좋아하고 자신이 한 일을 인정받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인정하든 안 하든 그런 것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비워두는 것이 더 낫다. 마음을 비우면 걱정할 일이 없어진다. 만약 당신에게 누군가가 칭찬을 하더라도 그 일은 당신 혼자서 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일이란 상황과 조건이 맞으면 저절로 일어나는 법이다. 당신의 행위는 하나의 조건으로 작용했을 뿐 그대가 그 일을 해낸 주인공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자기 스스로 성취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노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일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서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궁핍을 두려워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든 남보다 재물을 더 얻으려고 인생의 대부분을 소모한다. 하지만 가난과 결핍은 인간에게 불굴의 의지와 힘을 준다. 반면에 과잉과 낭비는 인간을 허약과 자멸로 이끈다. 무엇인가를 두려워하는 데는 이유나 원인이 있는 법이다. 이때 그 이유와 원인을 잘 찾아내지 못하면 늘 두려움에 짓눌려 살아야 한다. 모든 일에서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일을 해결하는 첫 단추다.
두려움이 우리 삶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은 두려움 자체가 위험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이 현실적이며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케팔로스 처럼 단순한 그림자에 놀라서 그 그림자가 자신에게 위협이 된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두려움으로 삶이 위험해진다. 해가 없는 날에만 다닐 수 있는 삶은 부자유스럽고 위험하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자유를 추구하는 과정은 주어진 장애를 극복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람은 자유를 추구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자신을 가로막는 것을 극복하려 한다. 그 과정이 곧 인생이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그 과정 속에서 부정적인 경험과 도덕과 법의 테두리 내에 있지 않은 생각들은 의식의 저편으로 밀려난다. 어른들이 '안 돼'라고 말하는 것들 속에는 많은 금지된 욕망들이 도사리고 있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이것을 '그림자' 라는 이름으로 설명했다. 그에 의하면 그림자는 삶의 중요한 원천이기도 하지만 삶을 위험하게 할 수도 있다. 사회화 과정에서 탈락한 깊은 어둠은 그림자가 되어 우리 마음속에 숨겨지고, 이것이 쌓이면 분노와 질병 같은 이상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우리가 외면하고 피하며 숨겨온 것들이 우리를 공격한다. 내가 나를 소외 시켰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너무 아쉽고, 열심히 붙잡고 살기에는 너무나 많은 노력과 고통이 따른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삶을 관망하는 태도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지금의 상황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이 바라는 새로운 곳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이것이 미음의 커튼으로 가려진 삶에 대한 우리의 진짜 태도이다. 이런 마음은 일에 대한 태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일이 없으면 먹고 살지 못할까 두렵고, 일이 생기면 잘 할 수 있을까 두렵다.
욕망을 가지기에는 귀찮고, 욕망 없이 살기에는 무미건조하다. 욕심을 부리고 목표를 세우려고 하면 달성하지 못할 것 같아 두렵고, 그 목적을 위해 해야만 하는 무수한 노력들이 귀찮다. 목적도 없이 살자니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고 뭔가 인생에서 얻는 것도 없는 것 같아 허무하다. 일에서도 이런저런 갈등과 혼란의 반복이다. 적당한 의무감과 책임의식은 자신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자신을 짓누른다고만 느낀 것들이 사실은 지탱시켜 주기도 하는 것이다. 너무 무겁거나`감당할 수 없을 정도만 아니라면 적당한 의무와 책임은 괜찮다. 우리 어머니들이 험난한 삶의 여정 에서도 자식에 대한 사랑과 잘 키워보겠다는 강한 의무감으로 삶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 가능했다. 먹고 살만하게 되니 가더라.” 는 안타까운 표현이 그것을 잘 말해준다.
인생을 열심히 살기에는 두렵고 그냥 지켜보기에는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삶을 지탱시켜 주던 의무감과 책임감들을 살펴보자. 그것이 무너지면 삶도 함께 무너진다. 그렇다고 너무 무거운 짐들을 질 필요는 없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짐이면 된다. 적당한 짐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는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고 그 이상은 어렵다는 감각은 삶의 현장에서 찾아진다. 그때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내려놓고 자신이 질 수 있는 정도만 질 때 삶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
삶의 현장에 뛰어들 것인가 아니면 물러나 관조할 것인가의 갈등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살아 있는 동안은 계속 나타나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하지만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때마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도의 책임과 질 수 있는 짐만 지고 나머지는 내려놓으면 된다.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는 것. 그것이 인생의 균형을 잡고 튼튼히 가는 현명한 방법이다.
세상을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혼자 무거운 짐을 지고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이 앞서고 잘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자신감이 약해지고 세상이 점점 커 보인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아무것도 할 수없는 존재가 되어버릴 것이다.
이런 경우 두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는 나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자주 연락하고 만나는 것이다. 둘 다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고 하나를 하게 되면 다른 하나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세상살이가 힘겨운 것은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적으로 힘겨운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본인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때 필요한 것은 어려움을 극복해낸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주변 사람들과의 나눔이다. 자신의 나약함,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면 된다. 자신의 상황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여보, 나 오늘 좀 힘들어 ."라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함께 할수록 세상을 쉽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삶이 무겁다거나 두렵다고 느낀다면 이야기를 나누어보자. 곁에 있는 사람에게 무겁다, 두렵다고 털어놓아 보자. 마음이 통하는 선배를 찾아가자. 자신의 삶을 풀어놓자. 삶은 가벼워지고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다. 나누는 만큼 가벼워지는 것이 인생이다. 세상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할 수 없는 것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하되 안 되면 그것으로 괜찮다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사실 그것보다 나은 삶의 방식을 나는 알지 못한 다. 내 힘으로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 그것이 의미다. 언제나 그렇듯이 두려움과 걱정은 늘 우리를 따라다닌다.
무엇인가를 느끼고 싶다면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삶은 듣거나 보거나 만지작거리는 대상이 아니다. 삶은 살아가야만 하는 무엇이다. 자신의 몸으로 생생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삶이다.
때로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갈 것인지 다른 사람들이 가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길을 갈 것인지 갈등하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중요한 것처럼 들린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일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강요하는 일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 상황 탓을 하기도 하고, 의무 탓을 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세상의 요구에 굴복했다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안다. 의미 있는 일보다 돈이 되는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상에서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금인형은 바다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바다로 들어갔다. 바다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바다로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다. 밖에서는 겉모양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바다의 모양일 뿐 바다 그 자체는 아니다. 바다는 그 속에서 그것과 하나가 될 때만 알 수 있는 무엇이다. 그렇게 바다와 하나가 되면서 내가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알게 된다.
“실패는 나의 삶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 주었다. 나는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을 그만두고 내 모든 에너지를 가장 중요한 일에 쏟기 시작했다"
“삶을 바꾸는 데는 기적이 필요하지 않다. 단지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는 눈이 필요하다."
“ 책을 최대한 많이 읽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글을 써야 한다. 좋은 글을 쓰게 될 때까지 계속해서 쓰고 예전의 글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에 대해서 계속 쓰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면이 단순해져야 한다. 단순해지면 책을 많이 읽을 수 있고 글도 많이 쓸 수 있다. 생활이 단순해지면 생각이 정돈되고, 세상을 보기가 한결 수월해지면 자기 마음의 결을 따라 살아갈 수 있다. 자신이 어릴 적에 꿈꾸었던 것, 가장 가슴을 설레게 했던 것을 찾아 마음이 시키는 대로 몸을 맡겨도 좋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상황이 달라진다. 지금 가진 것에 집중할 수 있다. 하나의 가치를 알고 그것을 소중히 여길 수 있다. 법정 스님은 말한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그 하나마저 잃게 됩니다.” 자신이 필요한 하나를 가져야 행복할 수 있다. 둘을 가지면 혼란스럽고 둘을 즐겨야 한다는 압박감에 행복은 멀어진다.
많이 가지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하나를 잘 사용하는 것이 행복이다. 많이 가지려 하지 말고 가진 하나를 잘 이용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그 순간 세상의 두려움은 사라진다. 지금 가진 하나에 만족하며 살 수 있기에 둘을 가지지 못한 불만과 불안에 시달릴 필요가 없어진다.
삶을 단순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여럿을 가지지 않고 꼭 필요한 하나를 갖는 것은 그 좋은 방법이다. 이때 실패는 불필요한 것들을 강제로 제거해 주기 때문에 생활을 단순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뭔가 갖고 싶다면 그것이 헛된 욕망인지, 내면의 절실함인지 자신을 살펴 구분해 보자. 내면의 요구에 집중할 때 세상은 두렵지 않다.
5년 동안 책만 읽어도 괜찮아
신화학자 조셉 캠벨이 젊었을 때 박사학위를 신청하고 유럽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에 박사학위만 받으면 안정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서 그는 박사학위를 받는 것보다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박사학위를 준비하느라 자신의 뜻대로 살아갈 수 없음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 기간 동안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도 없고, 관심이 있는 분야에 깊이 빠져들 수도 없었다. 그저 교수가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의무를 수행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런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 그리하여 어느 날 그는 훌쩍 떠났다.
그는 뉴욕으로 건너가 우드스톡의 작은 오두막을 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책만 파고들었다. 무려 5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책만 읽었다. 그저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필기를 했다. 돈이 라고는 한 푼도 없었다. 책값을 지불할 수 없어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생활은 빈곤했다. 하지만 정신만은 풍요로웠다. 한번은 작은 서랍장의 맨 위 서랍에 1달러짜리 지폐를 한 장 넣어두고는 그 돈이 남아 있는 한 빈털터리는 아니라며 자위하기도 했다. 그 생활은 아무런 의무도 책임도 없었다. 그저 좋아하는 책을 읽고 또 읽으며 그들의 생각과 사상의 원천을 찾아다녔다. 정말 재미있고 놀라웠다. 책을 읽을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기에 행복했고, 아무런 직업도 없이 5년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런 생활을 마감해야 한다고 느낄 때쯤 그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찾아오는 모든 일은 그것이 일어나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면 만사가 여러분에게 자연스레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것이 여러분 자신의 길이고, 어느 누구도 그 길을 앞서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전례도 없는 것은 당연하고, 따라서 모든 것이 그야말로 뜻밖이며, 그야말로 적시인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은 여러분에게 강요할 갖가지 계획을 갖고 있다. 여러분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길 원하는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그들은 여러분이 여행을 떠나길 원하지만. 여러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나도 그랬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일어나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찾아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어떤 선택도 두려움 없이 용기 있게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