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9년 5월 2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세상을 떠났다. 《두산백과》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천재적 미술가·과학자·기술자·사상가”로 소개되어 있다. 그만큼 레오나르도는 르네상스 대표 석학polymath이었다. 그렇게 보면, 요즘 우리나라 대학들이 즐겨 사용하는 ‘석좌 교수’라는 어휘는 폐기되어 마땅하다.
1869년 창간 과학전문지 《네이처Nature》가 2007년 11월에 선정한 ‘인류역사를 바꾼 10명의 천재 중 가장 창의적인 인물 1위’에 레오나르도가 등극했다. 2위는 셰익스피어였다. 그 외 9위까지는 괴테, 미켈란젤로, 알렉산더 대왕, 뉴턴, 아테나 여신상의 건축가 피디아스, 미국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이 이름을 올렸다. 마지막 10위는 아인슈타인이 차지했다.
레오나르도가 남긴 그림에는 〈암굴의 성모〉,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등이 유명하다. 31세이던 1483년 작품 〈암굴의 성모〉에서 레오나르도는 특유의 스푸마토Sfumato 화법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스푸마토는 색과 색 사이 경계선 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않고 부드럽게 처리하는 기술적 방법이다.
레오나르도는 스푸마토 화법의 완성을 보여주는 〈모나리자〉를 49세이던 1500년부터 52세이던 1503년까지 3년에 걸쳐 그렸다. 〈최후의 만찬〉은 〈모나리자〉보다 약 5년 전에 제작되었다. 레오나르도는 460×880cm나 되는 이 대작을 44세이던 1495년부터 47세이던 1498년까지 4년에 걸쳐 창작했다.
‘최후의 만찬’을 주제로 한 그림은 레오나르도 이전에도 많이 그려졌다. 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유다를 식탁 건너편에 혼자 배치시킴으로서 ‘배신’의 플롯을 강조하는 틀에 머물렀다. 레오나르도는 유다를 열두 제자 속에 포함시켜 화면의 수학적 조형성을 중시하는 독창적 면모를 보여주었다.
‘최후의 만찬’, 유일신 창조주, 선과 악의 대결, 천국과 지옥 등은 기원전 550년∼기원전 330년 시대를 휩쓸었던 ‘최초의 세계제국’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교리였다. 흙으로 인간을 빚고 대홍수 때 현인이 살아남는 이야기는 기원전 8000년에 인류 최초의 문명을 낳은 수메르인들의 전승 신화였다.
신석기혁명 이래 인간이 낳은 종교사상은 예술 태동의 기본 토대였다. 하지만 종교는 수많은 전쟁도 일으켰다. 종교인과 신자들은 훗날 언젠가 참석하게 될 ‘최후의 만찬’을 까마득히 잊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