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답
예로부터 의술은 인술이라 했다. 의사는 단순히 병이나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그걸 뛰어넘어 환자의 고통까지도 보듬어 안아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이따금 고개를 갸우뚱 하게 하는 이들이 있어 입맛이 쓰다.
지난여름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 턱이 아파 입을 열 수가 없다. 음식을 씹을 수도 없고, 말을 하기조차 힘이 든다. 동네 치과엘 갔더니, 일반치료만 하고 턱관절은 보지 않는 다며, 양산에 있는 부산대학 병원으로 가보라 한다.
명색이 우리나라 제2의 도시라면서 치과대학병원 하나 없는 부산의 현실이 안타깝다. 고통은 자꾸 심해지는데 가는 치과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양산으로 가 보라고만 한다.
양산까지 가려면 족히 두어 시간은 걸릴 터이고, 그렇게 간다고 해도 차례를 기다리며 또 기약 없는 시간을 죽여야 할 터이니, 그럴 바에야 차라리 서울로 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KTX로 가면 2시간 반이면 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원할 병도 아닌데 서울까지 다니면서 통원치료를 받기도 힘들 것 같고, 해서 양산행이고 서울행이고 모두 포기하고, 우선 PC에서 턱관절 전문치과를 검색해보기로 했다.
수많은 동네 치과들이 올라와 있다. 그 중에서 한 곳을 골라 찾아갔다. 입구에 일반치과진료는 안 하고 턱관절장애만 본다고 적혀 있다. 제대로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제 이 지긋지긋한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X-ray 촬영을 해보더니 뼈에는 이상이 없고 근육통이라며 스플린트를 하라고 권한다. 스플린트란 권투 선수들이 시합 때 치아 보호를 위해 끼는 것과 비슷한 것이란다. 그런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100만원이란다. 스프린트를 하면 나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나을 수도 있고 낫지 않을 수도 있단다. 나을 수도 있고, 낫지 않을 수도 있는 고가의 스프린트를 권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턱관절 통증은 잘 낫는 게 아니라는 대답이다. 무슨 선문답하는 것도 아니고 어이가 없다. 스프린트는 조금 더 생각해 보기로 하고 우선 치료부터 해 달라고 했더니, 치료방법을 일러주는데 이 또한 어이가 없다.
집에서 매일 소염진통제 연고를 바르고, 수시로 온습포 찜질을 하란다. 그리고 1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와서 물리치료를 받으라고 한다. 그래서 물리치료를 매일 받도록 해 달라고 했더니, 그건 안 된다고 한다. 물리치료는 매일 하는 게 아니란다. 어느 것 하나 이해와 납득이 가는 게 없다. 그러나 어이하랴, 일반치과에서는 턱관절은 안 본다 하고, 양산이나 서울로 가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 여기서라도 치료를 받을 수밖에.
2주일을 그 치과에 다녔다. 2주일이래야 말이 2주일이지 치과에서 치료를 받은 것은 1주일에 한 번씩 모두 2번뿐이었다. 도무지 무얼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상식을 뛰어넘는 치과였다. 통증만 더 심해지고, 효과는 전연 없다. 묵시적으로 그 고가의 스프린트를 권하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다. 그만 두고 말았다. 질병의 고통을 담보로 돈을 버는 장사꾼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뒤 통증을 견디다 못해 턱관절을 잘 본다는 정형외과에도 들러 일주일이나 치료를 받았으나 그 또한 별무효과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치과를 한군데 소개받았다. X-ray를 찍어보더니, 역시 뼈에는 이상이 없고 단순한 근육통이란다. 소염진통제와 근육이완제를 처방해 주고, 수시로 온습포 찜질을 하면 서서히 좋아질 것이란다. 예의 그 턱관절 전문치과에서 하던 말이 생각나서, 스프린트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궁극적으로 턱관절장애를 해소하는 데는 다소 도움이 되겠지만, 당장 턱관절 통증을 없애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란다. 입안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잇몸도 튼튼하고 충치나 풍치가 하나도 없어 좋다. 다만 치아의 마모가 심하고, 마치 칼끝처럼 날카로운 치아가 여럿 있다. 그런 것들 때문에 혀며 입안 여기저기에 상처가 많이 나 있다. 이런 것들이 턱관절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단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치아는 보철을 하고, 치료가 필요한 치아는 깨끗이 치료를 했다. 그렇게 하는 동안에 처방해 준 소염진통제와 근육이완제를 먹으면서 온습포 찜질을 계속했더니, 턱관절 통증이 서서히 사라졌다. 2개월 만에 그 지긋지긋하던 턱관절 통증에서 벗어났다.
턱관절 통증이 사라지자, 스프린트를 장착하면, 궁극적으로는 턱관절 장애에도 유용할 것이라던 말이 생각이 나서, 이번에는 내 쪽에서 스프린트 제작을 부탁했다. 두 번 다시 턱관절 통증을 경험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은 통증이 다 나았는데 스프린트를 왜 하려 하느냐며 만류 하는 바람에 거듭 부탁을 해가지고 겨우 스프린트를 하게 되었다. 가격도 예의 선문답을 주고받았던 치과의 절반도 안 되는 금액이었다. 물론 소개해준 지인의 도움도 작용했겠지만, 얼마나 놀랐던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아파서가 아니라 놀라서였다.
스프린트는 본을 떠서 만드는데, 생김새는 틀니와 같고 재질은 합성수지였다. 밤에 잘 때만 끼고 자는데, 처음 장착했을 때는 잇몸이 꽉 조이는 바람에 매우 불편했다. 또 아침에 스프린트를 빼고 나면 아랫니와 윗니의 부정교합 때문에 음식을 씹기가 힘이 들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야 정상으로 돌아온다. 최소한 6개월은 장착을 해봐야 도움이 되는지를 알 수 있단다.
기왕 시작한 것, 끝을 볼 심산으로 잠자리에 들 때마다 열심히 스프린트를 장착했다. 스프린트를 장착할 때마다 예의 그 턱관절장애 전문 치과의사와 무슨 선문답이라도 하듯 주고받던 대화가 자꾸만 떠올라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 지금도 그 때 그 일만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