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을아, 안돼!
서 옥 선
파란 하늘의 구름 사이로 꽃수를 놓은 참새가 떼를 지어 창공을 가른다. 마당에는 무을이가 달달한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포근한 낮잠에 빠져 있다. 조잘조잘 새소리에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몸을 떤다. 무을이는 우리 집 지킴이 이름으로 강아지 적부터 마당을 지켜 온 세월이 삼 년하고 여섯 달이다. 우리 동네와 같은 이름을 가진 무을이는 우리 집을 다녀간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방문객들은 녀석을 순둥이라고 말한다. 낯선 사람들이 나타나면 인사치레로 몇 번 짖다가 주인하고 친한 것을 알아차리면 금방 꼬리를 흔들며 주변에 살며시 앉는다. 혹시나 좋아하는 먹거리라도 챙길까 하는 기대를 하는 것 같다. 오늘은 장날이다. 장에 가면 꼭 사는 것이 있다. 무을이와의 소통용 미끼, 어묵이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낯선 소리가 귓전을 스친다. 조심스럽게 소리를 따라 가보니, 빈 난로 속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 작은 새의 날갯짓이 요란하다. 지붕 위 굴뚝 꼭대기에서 한눈팔다가 연통 속으로 미끄러져 벽난로에 빠진 모양이다. 거실 창문을 활짝 열고, 난로 문을 살며시 당겨서 놈을 날아가게 했다. 놈은 탈출을 시도했으나 굳게 닫힌 창문에 부딪혀 아래로 나뒹군다. 죽은 듯이 늘어져 있는 새를 수건으로 살며시 감싸며 “정신 차려 일어나.” 하고 속삭이듯 말했다. 놈은 발을 오그린 채 온몸이 늘어져 있었지만, 다행히 상처는 없는 것 같다. 새를 거실 창틀로 옮기고 움직임을 살폈다. 잠시 후 눈이 어슴푸레 열린다. 놈은 나의 속삭임을 알아차린 듯, 오므리고 있던 두 발을 서서히 펴고 간신히 몸을 가누고 설 수 있게 되었다.
창문 바깥 데크 바닥 위에 새를 내려놓았더니 뒤뚱거리면서 날갯짓을 시도한다. 쉽지 않은 듯싶지만 살아날 수는 있겠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 집 사냥꾼이 다가와 잽싸게 새를 쫓는다. “무을아, 안돼!” 다급한 외침에 놀란 사냥꾼은 주춤하면서 미묘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슬그머니 다리를 접고 앉으면서 내 눈치를 살핀다. 놀란 것은 나와 무을이 녀석뿐 만이 아니었다. 비틀거리던 새도 위기 상황을 알아챘는지 있는 힘을 다해 날개를 펴고 나무 기둥 사이로 잽싸게 빠져나간다. 그리고는 잔디 위로 고꾸라진다. 그 사이 무을이는 사냥을 포기한 듯 앉은 채로 긴 혀를 내밀어 입맛을 다신다. 그러고는 나를 향해 원망의 눈길을 잠시 흘린 후 놈이 고꾸라진 쪽을 바라본다.
자신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무을이를 피해 어렵게 비상을 한 새는 목련 나무의 빈 가지에 앉아 가쁜 숨을 가다듬는다. 달콤한 유혹을 멈춘 녀석의 성숙한 행동이 한 생명을 지켜 주었다. 단숨에 잡아챌 수 있는 사냥감을 쉽사리 포기해 준 녀석이 대견스럽다. 참 멋진 녀석이다. 심호흡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니 지난날 녀석의 사냥 현장이 떠오른다.
이태 전, 닭을 기르고 있던 때였다. 암탉들이 먹이를 찾기 위해 흙을 향해 요란하게 발길질했다. 닭들의 부산한 움직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무을이는 코를 앞다리 위에 올린 채 늘어져 있다. 옆에서 자기 밥그릇을 말끔하게 비우고 있는 닭에게조차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뜰에 있던 나는 일상처럼 한가로운 그림에 취하여 닭 한번 보고, 개 한번 쳐다보면서 그들의 행동거지를 한동안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돌아왔더니, 조금 전 마당에서 먹이를 찾던 닭 한 마리가 두 다리와 날개를 삐죽하게 뻗은 채 늘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내 눈을 의심하며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목에 상처와 핏자국이 보였다. 숨이 끊어진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무을이는 절대 아니야.’ 이웃집 개가 닭을 물어 죽인 일이 있었던지라 옆집 개를 의심하면서 CCTV를 확인했다. 아뿔싸! 사건의 피의자는 바로 우리 사냥꾼 무을이었다. 무심하게 누워있던 녀석에게 갑작스럽게 공격을 받은 불쌍한 암탉은 소리 한번 내어보지 못한 채 힘없이 당하고 말았다. 무엇을 원망한들 달라질 것은 없었다. 다만 지켜 주지 못한 암탉에게는 짠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남았다. 신선한 달걀을 아낌없이 나누어 준 암탉은 식구들의 건강 지킴이었는데……. 다음 생에는 더 좋은 환경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생명체로 태어날 수 있기를 기도하였다.
개 전문가에 의하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고 한다. 다만, 소통 방법을 모를 뿐이다. 녀석의 사냥이 버릇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훈련 전략을 세웠다. 아이 교육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성향에 맞는 적절한 교육 방법이 필요하듯이 개도 그 성격을 잘 파악해서 그에 따른 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한다. 무을이는 자기보다 덩치가 작은 고양이에게도 마구 짖으면서 다리는 뒷걸음질 할 정도로 겁이 많은 개이다. 강아지가 아니기에 많은 것을 훈련하면 스트레스로 사람을 멀리하는 역효과가 나올 것이 같았다.
식탐이 없는 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어묵이다. 녀석에게 먹을 것, 특히 어묵을 주기 전에 앉아서 기다리는 훈련을 거듭시켰다. 훈련을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앉아! 기다려.”라는 말에 기특하게도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다른 먹거리를 줄 때도 훈련을 계속 진행했다. 이윽고, 눈앞에 있는 먹이를 덥석 잡아채지 않고 앉아서 기다리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누군가가 자기 몫의 먹거리를 챙기는 눈치를 알아차리면 얼른 가까이 다가가 앉은 채로 혀를 날름거리면서 꼬리를 흔들기도 했다.
장에서 돌아오니 무을이는 내 손에 들린 검정 비닐봉지를 향해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춘다. 그는 봉지의 정체를 알고 있다. 물씬하게 풍겨 나오는 어묵탕 향이 마당 가득, 식욕을 자극한다. 어디선가 날아온 새 한 마리, 빈 하늘 위를 맴돌다가 전깃줄을 붙든다. 불꽃 같은 저녁노을이 서쪽 하늘을 감싸고, 녀석의 무심한 눈길은 전깃줄을 향한다.
32무을아 안돼[서옥선].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