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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성경공부교안 스크랩 멀리 돌아서 가는 길 (2011.2.27설교전문)
비니성 추천 0 조회 86 12.04.15 02:11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멀리 돌아서 가는 길

 

 

출13: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출애굽기는 아주 박진감 있는 책입니다.

마치 구약의 사도행전이라고도 할수 있지요.

출애굽기 서두에서는 애굽의 노예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백성들을 구출하기위해 여호와께서 한 남자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모세입니다.

민족 구출의 사명을 받은 모세는 애굽 왕궁으로 컴백합니다. 왕 바로와 상대하기 시작합니다. 모세의 경고와 함께 천재지변 같은 재앙이 연속으로 애굽을 뒤덮게 됩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거주지에는 아무 일도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습니다.

 

12장에 와서는 드디어 마지막 재앙이 다가옵니다.

장자의 죽음이 온 애굽을 뒤 덮는 피바람이 부는 밤... 그 밤의 절정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죽는 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의 피를 문어귀에 발라서 죽음을 넘어갑니다. 그래서 그 밤을 대대로 passover 유월절이라고 합니다.

 

자 드디어 13장에 도달했습니다

여기서 보는 이스라엘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닙니다. 자유인이 되어 행진하기 시작합니다.

저들이 갈 목적지는 정해져 있습니다. 가나안! 오래전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 아브람과 약속하신 바로 그 땅입니다. 저들은 그 가나안을 향해 출발합니다.

 

자, 그러면 목적지는 분명한데 어디로, 어떤 경로로 해서 그곳으로 갈 것인가?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가나안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저들의 가슴은 부풀어 오릅니다. 아! 가나안.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곳... 더구나 그곳은 이스라엘이 거주했던 고센으로부터 단 일주일 안에 갈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저 며칠 후이면 꿈에 그리던 축복의 땅에 도착하는구나!

 

멀리 돌아서 가기

 

그런데 그들의 기대는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출13: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노정은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저 바로의 손아귀에서 빼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데리고 가셔서 위대한 나라를 만드시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가는 경로에도 깊이 관여하시게 됩니다.

 

그 하나님께서 어떻게 방향을 잡으시는가?

보십시오.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가까운 길이 있습니다. 지름길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길로 인도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여기서 지도를 좀 참조하겠습니다. (영상 )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지름길은 바로 북동쪽으로 치고 올라가면 됩니다. 이 길은 약 4일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이지요.

그러나 이 길목에는 당시 호전적인 백성, 해양 민족인 블레셋 족속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철기 문화를 누리면서 무기로 무장한 강력한 세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친 백성이 저 불레셋과 충돌하지 않기를 원하셨습니다. 피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왜?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상태는 어떻습니까? 애굽의 노예 생활을 이제 막 청산햇습니다. 이들은 그저 오합지졸입니다. 무기를 다룰 줄도 므르고 전쟁을 치루어본 적도없습니다.

더구나 심각한 것은- 그들은 마음의 준비조차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즉 여전히 자신이 바로의 노예라는 노예 의식의 때를 아직도 씻어내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아! 또 노동하러 가야지 그러나가 아차, 내가 애굽의 노예가 아니구나...이 정도 입니다.

그들은 아직 왕 바로 대신 새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를 바로의 손에서 건져낸 여호와를 신뢰하자 그런 마음도 준비되지 못했습니다.

 

자, 그런 그들이 저 막강한 대적을 만나면?

버로 낙심합니다. 출애굽한 것을 후회할것입니다. 아이구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이 잘 아신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이 불레셋보다 약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연약함을 깊이 간파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은 저들의 경로를 친히 조정하시고 보호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불레셋을 피하게 하심

 

그러나 그때에 막상 당사자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니 바로 북동쪽으로 올라가면 금방 가나안인데... 왜 아래로 가는 거지? 남동쪽이면 정 반대인데??

지름길을 놔두고 왜 빙 돌아서 가야합니까? 그 길을 걸으면서 저들은 웅성거리고 불평하고 그랬을 것입니다.

 

성도, 그들의 얼굴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는 우리의 인생 여정을 그립니다. 계획을 세웁니다. 다들 빠른 길을 구상합니다. 다른 이보다 더 빨리 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지름길을 찾아 나섭니다. 그 길을 찾게 되면 그게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랑합니다. 늦으면 낙오자인 것 같이 초라해집니다.

 

이런 조급증은 우리 민족을 뒤덮고 있는 큰 질병 중 하나입니다.

아이들 교육도 그렇습니다. 어니가나 다 조기교육 조기 교육합니다. 그러나 꼭 그게 정답인가? 그렇지도 않습니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어른 흉내 내며 몸을 흔드는 것이 대견한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책을 읽어도 1학년 때 읽어야 할 책이 있고 2학년때 읽을 책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때 봐야 할 책이 있다면 청소년기 봐야 하는 책이 있는 것입니다.

동요를 불러야 할 때가 있고 명곡을 불러야할 때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가요를 영악하게 부르는 것이 자랑이 아닌 것입니다.

빨리 안가면 그러면 뭔가 뒤지는 것 같은 강박관념... 그런 경쟁이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또 중학교로 고등학교로 이어집니다. 결국 사회생활로 까지 갑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하여튼 지름길 가는 것, 앞서 움켜쥐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사유사(逸士遺事) 라고 하는 조선시대의 고전이 있습니다.

한양에 김학성이라고 하는 유명한 재사가 나옵니다. 그의 모친은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되어서 삯바느질을 하면서 두 아들을 서당에 보냅니다.

어느 날에도 집에서 삯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마치 오늘 주일 같은 날씨였던가 봅니다.

처맛물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무슨 울림 같은 여운이 나서 처마 밑을 파기 시작합니다. 그랬더니 가마솥이 나오고 그 솥뚜껑을 열어보니까 그 속에 은전이 가득합니다. 여기 눈이 반짝하는 이가 보이네요~

아마도 잦았던 난리로 인해서 누군가가 이 은을 이렇게 땅에 묻어놓고 피난을 갔다가 그 어디선가 죽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가난한 어머니는 재빨리 솥뚜껑을 덮고 흙을 되묻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이사를 갔습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삯바느질을 하면서 두 아들을 애써 가르쳐서 훌륭한 사람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훗날 그 어머니가 임종을 앞두었을 때 두 아들을 불러놓고 그 이야기를 지난날의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말을 하기를.... "땀흘리지 아니한, 또 갑작스럽게 얻은 재물이라는 것은 곧 재앙을 부르는 것이다".

 

참 혜안이 깊은 어른들이 우리네 조상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요즘은 어때요 ? 횡재, 일확천금, 대박... 이런 단어들이 복이라고 생각. 그거 무서운 줄 알아야 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 주어지는 복은 화근이요 심지어 저주가 되기도 합니다.

전혀 인격이 만들어지지 않은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면 자신도 망치고 사회도 망칩니다.

 

몇 주 전 이근방 판교동사무소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보도를 봅니다.

동사무소에 시의원이라는 이가 들어와서 자기를 몰라본다고 직원을 폭행했다네요. 서른 몇 살 된 이가 어쩌다 시의원이라는 자리에 올라서... 그게 동리 주민을 섬기는 자리라는 그 기본도 도통 모르는 이가... 그저 완장하나 찾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처신이었습니다. 그는 그냥 조용히 자기 집안일이나 하며 사는 게 복이었습니다. 공직에 나온게 화요 서둘러 출세한 것이 재앙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돌아봅시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께 요구하는 게 많은가. 재촉하는 것들이 많은가?

그리고 그 응답이 더디다고 조바심치며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짜증내는지...

빙 돌아서 가는 내 인생에 답답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내게 나은 길임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텃치를 받으며 인생길을 가는 것이 분명할 진대. 우리는 스스로 재촉하는 빠른 성공과 성취를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빙 돌아서 가는 길의 유익.

 

(사 55: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사 55:9)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늘과 땅을 굽어 살피시는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이 말씀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다... 이때 어느 생각을 따라야 합니까?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고... 이때 어느 길을 가야 합니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누가 이 사실을 부인할수 있습니까? 너무도 분명하잖아요? 그 엄청난 차이가.

그것 처럼 그가 지시하신 길은 내가 계획하는 길보다 높고 그가 가지신 생각은 내가 가진 생각보다 한없이 높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를 돌아서 가게도 하시고 때로는 멈추게도 하십니다. 이 믿음을 ?드는 이 아침이 되기를 빕니다!

 

마태복음 2장을 보면 이렇게 돌아서 간 사람들 얘기가 나옵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기예수를 죽이려는 헤롯왕을 피해 "다른 길로 돌아가니라".

올 때는 그래도 대로로 왔습니다. 그런데 갈 때에는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더 힘들고 먼 협곡을 따라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다른 길로 갔기에 그들도 살고 아기 예수도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빙 돌아서 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빙 돌려서 가게 하실 때에는 거기 깊은 사연이 있으십니다.

그냥 지름길로 뚝딱 가면 좋을 듯하지요? 아닙니다. 이렇게 돌아서 가노라면 분명히 힘이 더 듭니다. 시간이 더 걸리게 마련입니다.

자, 그러다보면 인내의 한계에 닥치곤 합니다.

그래서 17,18절에 나오는 ‘인도하다’... 위로하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즉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위로하며 인도하셨다! 이 같은 구체적인 증거가 바로 뒤에 등장하는 구름 기둥, 불기둥입니다. 낮에는 더위를 피하게 하려고 구름 으로 밤에는 차가운 광야의 한기를 덥히기 위해 불기둥으로 위로 하시며 가는 것입니다.

 

분명한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 우리의 연약한 영적 상태... 우리의 준비되지 않은 모습들...그래서 이대로 그냥가면 불레셋을 만나게 되며 그러면 큰 일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불레셋을 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내게 있어 그 불레셋은 무엇인가?

때 이른 출세요... 일확천금이요 성공으로 인한 자만의 늪일 수 있습니다. 거기 걸리면 좌초하고, 망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알맞은 길을 설계하시는 것입니다. 거기 순복하십시오.

우리의 인생이 직행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음이며 고로 돌아가는 길이 나은 것입니다.

나를 속속들이 아시고 내게 가장 알맞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영광을 받으시려 함

 

먼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두 번째 의도를 봅시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어디로 이끄셨는가를 보면 돕니다.

 

출13: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여기서 우리는 낯익은 지명을 봅니다. 홍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막다른 길로 돌려 이끄셨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운하는 수에즈 운하입니다. 길이가 192킬로미터이며 홍해와 지중해를 잇는 인공뱃길 입니다. 바로 운하가 놓인 곳이 출애굽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 깊이가 340m나 되는 수에즈만 앞바다, 얌수프라고 하는 홍해바다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막다른 길로!.

이제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레셋을 피하게 하셨다면 이제 좀 비켜서 가게 하시면 되는데 더 곤난한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더 이해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한편, 같은 시간에 바로의 궁전에서는 어떤일이 벌어졌을까요?

이스라엘을 떠나보낸 바로와 신하들은 보복을 벼르기 시작합니다.

14:3의하면 바로는 말하기를, 저놈들이 광야에 고립되었다고 외칩니다. 양 옆은 산이요 앞은 바다인 곳이라 우리가 뒤로부터 군사를 몰아치고 들어가면 쓸어버릴 수 있다. 이는 우리의 보복의 찬스이다!

여러분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내가 영광을 얻을 기회이다!

 

출14:4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홍해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찬스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바로의 군대로 말미암아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과연 하나님은 어떻게 이 일을 통해 영광을 받으려는 것인가? 어떻게 그의 명예가 드높혀 질수 있단 말인가?

당시대의 최막강 국가인 애굽과 그의 군대를 거기서 하나님이 친히 다루시겠다고 하십니다!

 

고대에 있어 신들은 다 지방신 local god 이고 부족신입니다.

애굽인들 생각에는 이스라엘의 신은 야웨이고 우리 애굽의 신은 태양신 라 이다. 바로는 태양신의 아들이며 우리 신이 더 위대하다!

여러분 이같은 허망한 미신들 위에 여호와 하나님은 좌정하시고 계십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나라들을 통치하십니다. 그분만이 홀로 온 인류로 부터 영광을 받으실 유일하신 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실을 하나님은 애굽과 그 당시 세계에 선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게 홍해요 이스라엘이 그리로 인도받은 이유인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그 위대한 일을 위해 조연으로 초대 받은 것입니다.

 

결과적인 얘기이지만, 사실 그렇게 되었는가? 그래요.

출 15장은 신바람 나는 장입니다. 홍해를 가르고 건넌 이스라엘백성들의 대합창이 거기 들려옵니다. 여호와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장엄한 서사시가 나와있습니다. 그 내용들 중에...

 

출15:11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출15:12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

 

이 노래를 듣는 이들은 누구나 그때 벌어진 일을 충분히 상상할수 있습니다.

바다가 애굽 군들을 뒤덮으니 그들이 물결에 다 잠겼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만군의 하나님이 거기 계셨습니다. 애굽인들은 이 사실을 인정해야했고 그 소식을 듣는 열방과 나라들은 다 떨며 여호와에 관한 소문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

 

출15:14 여러 나라가 듣고 떨며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출15:15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보십시오. 불레셋, 에돔, 모압 & 가나안 주민들이 다 낙담합니다.

사실이었습니다.

홍해의 사건이 있은 지 약 40여년 후, 이스라엘이 가나안 여리고 성과 전쟁을 하게 될 때... 오래전 사건임에도 아직도 가나안 주민들은 그 홍해 사건을 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대제국 이집트군이 수장되고 이스라엘이 승리했다는 사실...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가 얼마나 두려운 신인가 하는 소문은 그 시대에 널리널리 퍼져 나갔던 것입니다.

 

성도여, 하나님은 실로 온 세상의 주인이시오 신들 중의 신이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것을 어떻게 세상에 알릴 수 있습니까? 그 위대한 일을 위해 지금 이스라엘은 홍해 가장자리로 인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실로 그 모든 상황을 섭리하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한걸음 한걸음...오늘 우리 새 이스라엘에게도 그리하시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14장에서 홍해 바닷가에 인도받은 백성들이 얼마나 낙심했는지를 볼수 있습니다.

저들은 비명을 지르며 탄식합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느냐? 왜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다가 죽이려느냐? 합리적인 이야기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합리한 노정을 하나님이 택해주셨습니다.

그러나 - 결국 저들이 바다 가운데로 난 그 길을 따라 순종의 발길을 옮겨 놓게 시작할 때 위대한 일은 시작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큰 동풍을 준비하셨고 물은 갈라져 마른땅 같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 벽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들을 추격하던 바로의 병거와 말들은 수장되어 그 날 이후 다시는 그들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격동의 14장의 맨 마지막 구절을 보십시오.

 

출14:3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잘 보셔야 합니다. 놀라고 공포에 질린 것은 이방인들 뿐만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그 놀라운 사건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이스라엘 자신인 r서을 아십니까. 저들은 그 홍해 바닥을 밟고 간 당사자입니다. 체험입니다.

아! 우리의 여호와 그분이 이런 분이셨구나. 이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공경하며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대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종 모세를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조금 직전 까지도 저들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이 순간을 기다려오신 것입니다. 내 백성이 나를 경외하리라...

갓난 아이가 어느날 엄마를 알아보고 아빠를 알아보고 엄마, 아빠를 부르는 날이 옵니다. 애기 부모의 기쁨은 대단하지 않습니까?

거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있습니다. 당신의 백성으로부터 하나님으로 인정 받는 일, 하나님으로 섬김 받는 순간... 하나님의 기쁨은 여기에 있습니다.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날도 그것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의 자녀들을 막다른 홍해변에 몰아다 놓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에 이런일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그저 불레셋이나 피하게 하시는 보호를 하시는 그런 소극적인 인도에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더 성장하게 하시려는 적극적 의도가 있으십니다. 마냥 약하게 방치하지 않으시며 더 큰 훈련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더 크신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날 거기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무시하던 이들이 하나님을 인정케 되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친백성인 그들로 부터 찬미를 받으시게 된 것입니다.

아! 그러한 순간, 그러한 일이 있기 까지 우리는 길을 돌아야 합니다. 그리고 막다른 홍해 변에도 서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렘 29: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우리 생의 모든 날 동안에 우리가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 뒤에 가려져 있는 하나님의 숨은 의도가 있으시다! 그분의 놀라운 섭리가 있으시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라.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우리의 삶에서 빚어내실 평안과 소망- 그것이 그의 궁극적 기대이십니다.

 

우리 교회와 돌아가는 길

 

지난 주간에 이 출애굽기 말씀들을 묵상했습니다.

하나님이 지름길을 배제하시고 이스라엘을 멀리 돌아서 가도록 인도하심은 우리 성도들 개개인의 인생길에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들이야말로 그 날에 이스라엘 공동체에 주셨던 말씀이었듯이 바로 우리 교회 공동체에 주시는 말씀일 수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당신의 백성을 다루시는 원리는 예나 지금이 동일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우리들의 교회가 피해야 할 그 불레셋은 오늘날 교회에 무엇입니까? 서둘러 가서 만나는 그것들...

소위 급성장하거나 부흥한 중형 교회 대형교회에서 보는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우선 목회자들이 자만의 늪이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이루어낸 성공인 냥 여유만만하다가 엉뚱한 유혹과 자만의 수렁텅이에 글러떨어집니다. 결국 교회 공동체 전체가 낭패를 만납니다.

목회자 뿐입니까? 일부 대형 교회에서는 교인들이 공통적으로 자부심이 지나쳐 자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크기가 자신의 믿음의 크기인 냥 착각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중직분을 맡은 이들이 무슨 계급인 냥 은근히 힘을 주기 시작합니다. 새신자들에게 군림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결국 교회들은 그 내부의 다툼과 갈등으로 내적 소진을 다해버리는 것입니다.

아! 저들은 억지로 지름길로 간 것입니다. 그리고는 불레셋을 만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의 건축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습니다.

지름길을 버리고 빙 돌아서 먼 길로 가는 양상입니다. 이는 우리의 덜 준비된 마음, 덜 준비된 자세, 설익은 헌신들이 빚어낸 양상은 아닌지 그리고 그것들이야 말로 지금 우리의 불레셋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우리의 여정은 돌아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러나 감사하십시오. 비록 멈춰서는 모양새로 보인다 하더라도 홍해변에 서있는 것 같다하더라도 거기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가나안에 입성하게 되는가?

우리를 아시는 하나님의 만지시는 뜻이 완료돼야 합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일은 미루어질 수도 있고 속행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시간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다면... 우리 교회 공동체 전체가 우리의 믿음의 연약함과 완악함을 고백한다면... 주님의 교회는 온전히 주님만이 주인이심을 다시금 고백할 수 있다면...나아가 우리의 교회를 통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온 천하에 널리 퍼지게 하소서... 엎드릴수 있다면 바로 내일이 행진의 재출발의 날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홍해변은 하나님의 친히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참으로 곤난한 환경. 막다른 길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손댈 수 없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그의 능력과 권세를 펼쳐 보이기를 원하셨습니다. 온 사방 천지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간절한 소원- 오직 우리의 새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만이 높이 들리소서.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과 주인되심을 선포하옵소서. 우리는 단지 그의 발 앞에 엎드려 그를 찬미하며 그를 높이며 그에게 복종하는 교회이기를 맹세할 뿐입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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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2.04.15 02:11

    첫댓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길이 왜 돌아가는 길이 되었을까요? 적어도 며칠이면 되는 길을 40년이나 돌아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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