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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제 21,22구간 산행기
산행일자 : 2005년 10월 21~ 10월 23일
산행구간 : 21구간: 작은차갓재- 황장산- 감투봉-황장재-폐백이재-
벌재-문복대- 저수재 (약14 Km 휴식시간포함 9
시간40분)
22구간:저수재-촛대봉-투구봉-배재-싸리재-뱀재-묘적
령-묘적봉-도솔봉- 삼형제봉-죽령 (약20 Km 휴
식시간포함 9시간10분 )
날씨: 바람 많이 불고 맑음
산행인원: 이경석,황재석,김문식,전순영,조원일,청암지기,
22일 새벽 3시 안생달 마을 도착 서울에서부터 오락가락하던 빗방울은 그치고 바람만 차갑다.
안생달 마을 양조장 앞에 차를 세웠다. 산행준비를 하려고 차에서 내리니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바람은 바늘같이 살갖을 파고 든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고 설악산 대청봉에는 첫눈이 내렸다는 뉴스를 차안에서 들었다.
그러나 나의 등산복은 초가을 날씨에 맞게 입고 내려왔다. 얇은 쿨맥스 티셔츠에 여름용 긴 바지 그리고 오버트로우즈가 전부였다.
다른 대원들을 둘러보니 지난 산행에서 본 차림에 조끼가 하나 더 더해졌고 조원일대원은 거금을 투자해서 배낭과 바지와 모자를 새로 구입했다.
전순영 대원은 완전 한겨울 등산복을 입고 왔다. 지난해에 창립기념으로 만든 동계용 티셔츠에 털모자와 귀마개 거기다가 동계용 장갑과 흔들면 뜨거워지는 핫팩까지 완벽한 겨울장비이다.
놀려주었더니 자연을 상대로 준비해서 손해보지 않는단다. 유비무환이라며 핫팩을 흔들어 뱃속으로 집어 넣는다.
나는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도 오늘 하산하면 전순영 대원의 허리에 있는 지방이 핫팩에 의해 부풀려져 2인치는 늘어날 것이라며 놀려 주었다. 산행 준비를 끝내고 3시 20분 출발한다.
김문식 대장이 앞장선다. 양조장 앞에 대추나무가 있는데 바람에 떨어진 대추열매를 주워 바지에 한번 쓱 문질러 입에 넣고 씹어 먹는다. 뻣뻣한 껍질속에 숨어 있는 속살의 달착지근함이 온 입안에 감돈다.
우리들의 발걸음 소리에 깊은 잠에 빠져있던 온동네 개들이 한꺼번에 짖어댄다.
지난 대간 산행에 참석하지 못한 황재석 대원에게 황대원은 하루면 하늘재를 넘어 이화령까지 갈 수 있으니 작은 차갓재에서 헤어지자고 너스레를 떨어본다. 황대원은 무서워서 못간다며 엄살을 피우고 우리들은 웃으면서 작은 차갓재에 도착한다.
3시55 분 작은차갓재 도착
대미산 2시간 황장산1시간, 안생달 50분 지난번 백두대간 남한 종주구간 중 종착구간인 작은 차갓재에서 회기를 들고 사진찍는 것을 깜빡했다. 오늘은 잊지 않고 회기를 꺼내들고 사진을 찍는다.
4시 출발 작은 차갓재를 지나니 금방 헬기장이 나타난다. 헬기장을 지나면 안생달 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또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서 서서히 고도를 올리며 암릉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폭이 아주 좁은 바윗길과 옛날 구들장으로 쓰기에 아주 좋을 듯한 넓직한 바위들이 널려 있는 곳을 지난다.
조금 더 바위지대를 나아가면 밧줄이 매달린 구간이 나타난다. 처음 나타나는 바위구간은 다른 곳으로 돌아 갈 수 없는 지역으로 죽으나 사나 이곳을 지나야 한다. 5~6m정도 되는 거의 수직의 바위길을 밧줄에 매달려 올라야 한다.
너무 위험한 지역이라 겨울에는 안전을 확보할 보조 자일이 꼭 필요할 것 같다.
이곳을 지나면 기다란 밧줄이 바위와 바위사이, 소나무와 소나무사이를 마치 빨래줄처럼 늘어져 있다. 우리들도 잠시 빨래가 되어본다.
깍아지른 바위 사면들을 밧줄에 의지해 넘고 있지만 야간 산행이어서 주변의 경관을 볼 수 없는 아쉬움이 크다.
5시 10분 황장산 정상( 1077m) 도착
황장봉산. 춘양목이라고 불리는 질 좋은 소나무인 황장목이 많이 있어 조선시대에 봉산으로 지정되어 허락 없이 소나무를 베어내지 못하던 곳이란다.
황장목이란 이름은 소나무를 베면 누런 송진이 나온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고 나무를 베어서 말리지 않고 기둥으로 써도 본래 소나무가 서 있던 방향대로만 세워 놓으면 비틀림이 전혀 없다고 한다.
황장봉산의 또다른 이름은 작성산이다.
고려말 공민왕이 문안골로 피난와서 쌓았다는 작성산성이 있어 작성산이라도 불린다.
황장산 정상의 까만 정상 표시석 위에 지난 밤 빗방울이 방울져 얼어 붙어있었다.
하늘을 바라본다. 발길을 비추어 주던 달빛과 별빛들은 갑자기 몰려든 구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바람만이 차겁게 얼굴을 때린다.
이정표에는 대미산 3시간 10분, 안생달 1시간30분, 벌재 3시간 10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5시 15분 황장산을 뒤로하고 칼날같은 능선길을 따라 내려온다.
희미하게 밝아오는 여명에 줄줄이 늘어선 골짜기의 단풍들이 서서히 제 모습 단장에 분주하다.
커다란 나무가 뿌리째 들려 쓰러진 곳을 머리 숙여 인사하듯 지나가고 참나무 숲 능선길을 걸어 황장재(985m)에 도착하니 6시가 된다. 간식 겸 허기를 달래려고 잠시 쉰다.
나는 간식으로 건네주는 쵸콜렛을 받아 먹으려 손바닥을 벌리니 목장갑을 낀 손바닥이 까맣게 더러워져 있었다. 마다하지 않고 그 손바닥에 쵸콜렛을 받아 입안에 털어 넣는다.
6시10분출발 황장재에서 5분 정도 가면 전망좋은 바위가 나타나고 다시 조금 더 가면 헬기장이 나타난다.
헬기장은 전망이 확트여 주변을 잘 둘러 뵬 수 있다. 오른쪽으로 바라보이는 뾰족하게 올라 솟은 천주봉과 공덕봉을 가리키며 저렇게 생긴 산은 오르고 싶지 않다고 누군가가 한숨을 토해내듯 말한다.
헬기장을 통과하고 암릉을 지나면 오른쪽에 직각의 바위절벽이 아찔하게 놓여있는 곳에 도착하게 된다.
기록상에 의하면 치마바위인 것 같다.
그 아래 골짜기에는 울긋불긋 예쁜 옷을 갈아 입은 가을나무들이 몰려다니는 구름 사이를 비집고 얼굴을 내미는 아침 햇살에 제 색깔을 비추어 보기에 여념이 없다.
바위 절벽 아래 골짜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대간 팀의 제일 멋진 모델을 자처한 나도 사진을 찍으려니 나보고 절벽 끄트머리로 조금 더 가란다. 홍순이형 새장가 보내기 딱 좋은 기회라나 뭐라나....
8시 5분 아침식사 따뜻하게 햇살이 내리쬐는 곳을 찾아 앉아 아침 밥상을 펼쳐 놓았다.
산행시간을 줄이기에는 행동식이 제격이라고 하지만 시간을 재는 기록경쟁도 아니고 대간 산행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체력을 든든히 하는 것은 역시 밥인 것 같다.
아침상을 펼쳐 놓으니 출장 뷔페를 불러 온 듯하다. 김치 종류는 배추김치, 파김치, 총각김치 겉절이가 있고 밑반찬으로 굴무침, 홍어회, 김, 뱅어포볶음, 장조림. 마늘장아찌, 김치볶음, 버섯볶음, 고사리볶음, 멸치볶음, 새우볶음에 얼린 맥주까지 완전 야유회를 나온 듯 착각하게 한다. 6사람이 4가지씩만 꺼내 놓아도 24가지나 된다.
더운물에 밥을 말아 배부르게 먹고 자리를 정리한 후 8시45분 출발한다. 든든히 먹은 아침덕분에 발걸음이 가볍고 빠르다.
9시 10분 벌재 (625m)
도착 엉덩이를 깔고 앉아 미끄럼을 타면 금방 도착할 것 같은 가파른 경사 길을 지그재그로 내려오니 벌재이다. 대간 산허리를 댕강 토막내어 길을 내고 아스팔트를 깔아 놓았다. 도로옆에는 황장산 등산 안내도가 세워져 있고 길 건너에는 빨강색 지붕에 빨강색과 노랑색의 줄무늬 천막이 세워져 있다. 그 옆에는 쉬어 갈 수 있는 쉼터도 만들어 놓았다. 벌재에서 문복대를 오르는 길은 도로를 횡단하여 바로 올라가는 길과 도로를 횡단하여 오른쪽으로 50m정도 내려가면 월악농원 표시석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오르면 문복대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표식기도 많이 매달려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묘를 지나 오솔길을 죽 따라 올라가면 된다.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홀대모(단독으로 백두대간 남한구간 종주자)들의 흔적도 보인다.
100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이의 사진도 표식기와 함께 보인다.
9시55분 산불감시 초소를 통과한다.
떨어진 낙엽들은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뒤척이다 반대편 골짜기로 날아가고 우리들의 발걸음은 돌목재를 향한다.
10시 돌목재도착
무릎이 아프다며 걸음을 멈춘 조원일 대원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동기인 전순영 대원이 얼른 파스를 꺼내 무릎에 붙여준다. 짐을 줄여주느라 배낭을 열어보니 자일과 프렌드 등이 들어 있었다.
이번 산행에서 필요할 것 같아 가지고 온 것이란다.
힘들면 말하지 그냥왔느냐고 미안해하며 자일을 꺼내 전순영 대원이 자기 배낭에 넣는다.
물을 끓이라는 둥 4시간 짜리 다리라는 둥 우스갯소리로 놀렸어도 아무소리 없이 무거운 장비를 우리들을 위해서 메고 온 조원일 대원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11시 20분 문복대(1074 m) 도착
사방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문봉재또는 운봉산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정상에는 문복대라는 표시석이 세워져 있다.
문복대로 오르는 길에 올 가을 처음으로 나뭇가지 사이에 하얗게 매달린 서리들을 볼 수 있었다. 해가 좋아 녹아 없어질 것 같지만 서리가 녹지 않을 정도로 바람이 차가왔다.
사진기록도 남기고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에 서서 조원일 대원의 넉넉한 마음 씀씀이에 고마움의 박수를 보낸다.
또한 오늘 산행에서 한번도 지치지 않고 끝까지 앞장서서 훨훨나는 김문식대장에게 발전의 박수를 보낸다.
그 동안 체력보강을 위하여 수영장을 다니며 꾸준히 단련시키고 있는 김문식 대장은 인삼과 대추를 달여서 물주머니에 넣고 왔다가 물주머니의 잠금 장치가 헐거워 물이 흘러 배낭을 적셨는데 우리는 배낭이 열 받아 대장을 끌어올려 힘들이지 않고 산행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산행이 일찍 마칠 것 같아 지도를 펴놓고 다음산행의 탈출 가능로를 찾아보았으나 마땅하지 않아 오늘은 저수재에서 산행을 끝내기로 했다.
12시 20분 노란판에 까만 매직으로 지워진 글씨위에 장구재란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저수재까지는 20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김문식 대장은 서울에서 미리 연락을 취하고 온 단양택시 기사 아저씨와 통화를 한다.
저수재 휴게소에서 백두대간 구간 종주자를 위해 교통 편의를 제공하고 있지만 비용이 단양택시기사 보다 1만원이 비싸다.
우리들은 저수재로 장구재를 휘돌아 내려간다.
12시 40분 저수령 (850m) 도착
충북 단양과 경북 예천을 잇는 고개이다.
저수령이라는 이름은 오가는 길의 경사가 급해서 저절로 고개가 떨어진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과 외적이 모두 목이 잘려 죽임을 당하였진 곳이어서 저수령이라고 한다는 설이 있지만 지금은 차들이 쌩쌩 달려 넘나드는 고개가 되어 버렸다.
저수령에 세워놓은 표시석에는 저수령과 저수재가 함께 쓰여져 있어 재와 령은 격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나를 혼란케 하지만 그곳에 서서 회기를 펄럭이며 사진기록을 남긴다.
또 한 구간을 거슬러 올라왔다.
김문식 대장과 조원일 대원은 단양 택시기사와 함께 안생달로 향하고 남겨진 일행들은 저수재 휴게소에서 막걸리와 빈대떡과 오뎅으로 점심을 먹었다.
2시간 정도를 기다리다 차량을 가지러 갔던 대장이 돌아오고 우리는 단양 쪽으로 민박집을 찾아 나섰다.
단양쪽으로 30분 정도 내려오다가 오른쪽 폐교가 있다. 그 옆 사과 과수원이 딸린 민박집에서 하루 산행의 여장을 풀었다.
방2개와 거실과 주방이 딸린 민박집 독채를 5만원에 빌릴 수 있었다.
23일 새벽 2시 민박집 출발
민박집에서 나와 저수령으로 향한다. 이 곳에서 겨울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제 내린 비가 계절을 갈라놓은 듯하고 밤새 내린 서리는 차창에 얼어붙어 있었다. 시동을 걸고 5분 정도를 기다렸으나 녹지 않아 그냥 출발한다.
추위에 대비해 전순영 대원이 핫 팩을 흔들어 뱃속에 집어넣는 것을 보고 나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오늘 산행이 끝나면 배 둘레가 2인치는 부풀어오를 것이라며 놀려주고 다른 대원은 그런 것을 배에 넣고 다니면 다니지 말아야지 조금만 걸어도 온 몸에서 열이 나는데 웬 핫 팩이냐며 약을 올렸지만 전순영 대원은 유비무환이라고 완벽한 준비를 자랑한다.
2시 30분 저수령 출발
차에서 내려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 한 점 없다.
별들이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금방이라도 후드득 떨어져 내 곁으로 올 것 같다. 거기에 뒤질세라 반쪽 짜리 달님도 우리에게 달려든다. 우리의 조우함을 시기라도 하듯이 바람이 빠르게 달려와 할퀴고 지나간다.
저수령 표시석을 뒤로하고 가파른 능선 길을 오른다. 얼마나 올랐을까 발 아래가 아득하다.
2시 55분 촛대봉(1,080m)도착
생각보다 빠르게 촛대봉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배재까지 2.5Km, 수리봉까지 4.0Km, 단양군 대강면까지 13.5Km,라고 표시되어 있다. 오늘은 그냥 대강 대강 가면 된다며 대간 길로 접어든다.
그래서 그런지 봉우리도 대강 나타난다. 3시 5분 투구봉을 지난다. 충북과 경북의 경계에 서서 바람을 가르며 한 발 한 발 대간 길을 줄인다.
20분을 더 가니 시루봉(1,110m)이다.
1천미터가 넘는 봉우리 3개를 싱겁게 넘어 버린다.
회원들과 함께 대간 산행을 하지만 걷는 길은 홀로 간다. 다른 회원들은 별과 달과 바람을 벗삼아 밤길을 가며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가파르게 오르내리는 대간 길에서는 한적한 생각을 할 수 없지만 오늘같이 완만한 능선 길을 오르내리면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사라지게 마련이다.
아까부터 영화 시나리오가 머릿속에서 춤을 춘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던 대간나그네 한 팀의 미스테리한 증발사건을 가지고 공포영화로 만들어 보았다가 공상과학영화로 만들어 보았다가 코믹한 영화로 만들다 보니 배재를 통과한다. 시간은 3시 55분 배재 이정표에는 싸리재와 투구봉의 거리를 알려주고 있다.
4시 55분 흑목정상 도착
싸리재 1.5Km 좌측은 헬기장, 우측은 임도로 표시되어 있다.
우리는 헬기장 쪽으로 내려서면 된다. 여기서 10분 정도 쉬며 체력을 보충하며 잡담도 늘어 놓는다.
대원 중 한사람이 어제 마누라에게 1만원짜리 로또복권을 주고 왔는데 여지 소식이 없다며 남편은 주말만 되면 보따리 싸서 산에 가니까 주말 과부 마누라가 복권에 당첨되어 이때가 기회라며 보따리 싼 것이 아닌지 불안에 떤다.
그 말을 들은 다른 대원은 마누라가 멀리 간다면 기분이 되게 좋은데 무슨 이야기냐며 자기는 마누라가 어디를 간다고 하면 압제에서 해방된 민족처럼 기분이 좋다고 한다.
보따리 쌀까봐 걱정하는 마음도 보기 좋고 마누라가 나가면 기분이 좋다는 말도 듣기 좋다.
아무튼 아직도 마누라의 영향을 받고 있으니까...
5시가 조금 넘으니 오른쪽 산등성이가 서서 붉어오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붉게 물들더니 조금씩 넓게 퍼져나가 온 산을 물들였으나 해는 아직 솟아오르지 않는다.
우리 팀이 언제 해맞이를 하였나 짚어보니 지난 3월 황악산 정상에 이르기 전 형제봉에서 아침 해를 맞았다.
3개월 간의 방학기간도 있었지만 그동안은 비가 오거나 안개가 짖어 일출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오늘은 해가 솟아오르는 것을 꼭 보고 싶다는 욕심이 돌부리에 발이 채이고 나뭇가지가 옷깃을 잡아 당겨도 눈을 떼지 못한다.
사진 찍는 재미에 푹 빠져 있는 황재석 대원은 속상해 한다. 새벽녘 오늘 산행을 위해 배낭 정리를 하다 카메라를 만지작 만지작 하더니 배낭에서 꺼내 다른 짐과 함께 차에 두고 온 것이다.
날씨가 그리 좋지 않을 것 같다고 판단했고, 산행시간을 좀더 단축하려면 배낭을 가볍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카메라를 두고 왔다.
황재석 대원이 모처럼의 기회를 놓쳐버린 것을 아쉬워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품전시회를 할 예정인데 정작 작품사진 찍을 기회를 잃어버렸으니 얼마나 아까우랴. 우리들의 욕심을 미리 알았는지 두 개의 헬기장을 지나도록 해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6시30분 모시골정상도착
주위는 대낮같이 환한데 해는 보이지 않고 누구보다도 먼저 해를 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해는 보이지 않는다.
대원 가운데 한 사람이 이미 해는 떴는데 개스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니 그동안 해오름을 기다렸던 마음은 금방 실망으로 변하고, 또 다른 대원은 아직 해는 솟아오르지 않았다고 하니 다시 마음은 희망으로 가득찬다.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 산등성이가 반짝거리다가 갑자기 주위가 환해지는 것이 아닌가. 해뜨는 것 같다고 외치니 대원들은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와! 온다 온다 와! 올라온다 ." " 와! 나왔다 나왔다 . 쑥쑥올라온다." 모두들 환호성을 지른다.
묵은 피로가 한꺼번에 날아간다. 6시 45분 불과 2~3분만에 해는 쑤욱 올라 왔다.
오늘 내가 제일 먼저 해오름을 보았으니 오늘 해는 내 것이라고 우기며 해오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이런 기쁨에 야간 산행의 어려움도 금방 잊어버린다.
7시 5분 묘적령도착
모시골1.7Km라는 이정표를 보니 우리가 30분 동안 1.7Km를 걸었다. 그래도 높은 지대라고 드문드문 암릉이 나타났으나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묘적령에 도착하니 한 사람이 막 배낭을 꾸리고 출발할 모양세로 엉거주춤 우리를 맞는다.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이라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는다. 자그마한 키에 쌍커풀이 뚜렷한 눈을 가진 홀대모는 어제 벌재를 출발하여 묘적령에서 야영하고 다시 대간길로 들어선단다.
묘적령에 이르는 대간길에 빨간 표식기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번호가 매겨져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무슨 표식기일까 궁금하여 표식기와 표식기 사이를 발걸음으로 세어보았다. 평균 발걸음으로 경사가 높은지대는 35~40보정도, 내리막에는 23~25걸음걸이인걸 보아서 누군가가 거리 측정을 위해 매달은 표식기인 것 같다고 판단이 선다.
계속해서 이어지던 표식기가 묘적봉을 오르는 길목에서 끊겨 버렸다.
또한 묘적령에서 조금 지나면 플랭카드가 횡으로 결려있다. 통행에 불편을 드려 미안하다는 글이 대간꾼들을 더욱 황당하게 만든다. 방향을 헷갈리기에 딱 좋게 걸려 있다. 대간길 좌우로 표식기가 매달려 있으나 무시하고 직진하면 된다.
7시 35분 묘적봉( 1,148m) 도착
묘적봉이라는 표시석과 그 옆 동판에 방향표시가 새겨져 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다본다. 길게 M자를 그리며 휘어져 이어온 대간길이다. 멀리 우리가 지나온 철탑도 눈에 들어온다.
캄캄한 밤에 철탑을 지나는 전선과 바람이 만들어 내는 소리는 사이렌 소리 같기도 하고 울음소리 같기도하여 온 신경을 곤두서게 한 곳이기도 했다.
대간길 감상을 마치고 대간길로 들어서니 슬슬 시장기도 들고 발걸음도 무거워져 바람이 심하기 불지 않는 양지를 찾아 앉는다. 7시 55분.
9시 10분 도솔봉 헬기장도착
9시 15분 도솔봉정상(1,314.2m)도착
묘적봉을 지나면서 크고 작은 암릉을 거쳐 하늘 끝까지 닿을 듯한 나무계단을 밟고 오르니 도솔봉 헬기장이다.
하마터면 헬기장을 정상으로 착각할 뻔했다. 헬기장에는 우리가 이름 있는 봉우리에서 마주했던 정상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정상이 아니고 이곳에서 마주 바라보이는 돌탑이 쌓여져 있는 곳이 진짜 도솔봉이다.
부산 산사람들이 표시석을 세워 놓았고 동판에 대간 방향과 각 산줄기의 방향도 새겨 놓았다.
우리들은 정상 표식석을 헬기로 옮겨와 도솔봉으로 옮기기 귀찮아 여기에 세워놓은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진짜 도솔봉은 벼랑 끝에 돌탑을 세워 놓았다. 사방이 환희 트인 도솔봉에서 내려다보니 죽령 고개길과 고속도로, 연화봉으로 이어지는 꼬불꼬불한 능선길, 우리가 지나온 대간길 모두모두 볼 수 있었다. 하루 산행의 완결판이다.
도솔봉은 소백산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지만 봄에 철쭉꽃이 만발할 때에는 더할 나위 없는 절경이라고 한다.
사방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뾰족하게 솟아오른 도솔봉에서 그동안 쌓인 산행 피로를 한꺼번에 날려 보낸다.
도솔봉을 오르는 초입 계단에서 이경석 대원이 흰옷을 입은 산객을 보았다고 한다.
우리들은 누가 산에 흰 옷을 입고 다니냐 신선이 아니면 흰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에 있냐고 헛것을 보았다고 놀려대니
"야! 배가 고파야 헛것을 보지 배가 부른데 무슨 헛것을 보냐!"라고 대꾸했다.
도솔봉에 올라 이경석 대원의 말대로 흰옷 입은 사람을 눈 씻고 찾아보았지만 흰옷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우리들은 백두대간 산행을 하다보니 그동안 산행에서 쌓은 도가 산신령을 볼 정도로 대단한 눈을 가지게 된 것이라며 깔깔거리며 웃는다.
도솔봉에서 우측으로 90도 가량 꺾어 암릉으로 이어진 경사길을 가파르게 내려선다. 시간은9시 25분.
그제 내린 비가 이곳에서는 눈으로 변했다. 1,314m 1,270m 1,240m 1,250m 표시목이 세워져 있는 암릉들을 오르내리고 돌아가니 다시 나무계단이 나타난다.
나무계단을 올라가니 삼형제봉이 우리를 기다린다. 10시 20분이다.
산들은 참 좋겠다. 그냥 그렇게 앞뒤로 서 있는데 사람들은 오르내리며 형제봉, 삼형제봉이라며 가족의 울타리를 만들어주니 말이다.
10시 40분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1291봉 를 통과한다. 아직까지 죽령에 도착하려면 3.3Km가 남아 있다. 여기 이정표가 지나는 곳에서부터는 산죽 군락지가 있다.
산죽 이파리에는 눈이 얼어붙어 있었다. 완만한 내리막 경사길로 헬기장을 지났다.
마지막 헬기장에서는 우리 대원들이 갈대잎을 배경으로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협객이 되어 스틱으로 칼싸움 흉내를 내어본다. "얖! 내 칼을 받아라." "쨍그랑! 탁탁탁." "으 으 으 분하다." 부시럭 소리에 하던 동작들을 멈춘다.
가이드 산행을 하는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올라온다. 죽령에서 올라와 도솔봉까지 간다고 한다. 우리도 자리를 수습하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올라오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다.
경사진 길을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순간 민망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말 한마디로 분위기를 바꾸어 버린다.
" 아이쿠! 미안합니다. 앞에 계신 분이 너무 멋져 잠시 한눈을 팔았네요."
아마도 그 아저씨 내가 한 말 한마디에 3박4일은 기분 좋게 지내셨으리라.
너댓살 먹은 어린아이를 앞세우고 부부가 올라온다. 도솔봉까지 3시간 정도를 잡고 올라간다는데 걱정이 앞선다.
지금 올라가고 있는 속도로 올라가면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을 어떻게 올라 도솔봉에 도착할지 걱정이다.
11시 40분 죽령도착 헬기장을 3개 지나고 묘를 2~3기 지나 죽령에 도착했다.
도로를 건너니 좌측은 충북 단양군 대강면으로 장승들이 서있고 우측으로는 경북 영주로 죽령주막이 있다.
1천 미터가 넘는 높은 봉우리들을 넘고 돌았지만 힘들이지 않고 대강대강 돌게 해준 대강면 산신들에게 감사하며 산행 준비하랴, 답장 없는 연락하랴, 보고서 쓰랴, 홈페이지에 올리랴 한 달을 꼬박 백두대간에 매달려서 대간 산행을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게 해 준 김문식 대장에게 감사드린다.
또한 4시간짜리 다리라고 놀려대도 대간 산행에 꼭 참석하여 한 구간이라도 산행하고 떨어지는 조원일 대원에게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