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폐증은 직업병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오래되고 많은 직업병이다. 진폐증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직업병이다. 근로자 특수건강진단 결과에 의하면 진폐증은 매년 500명 이상이 유소견자로 판정 받고 있다. 진폐증 유소견자는 1988년에 6008명이 진단 받아 가장 많은 수를 기록했고 이후 점차 감소해 1998년에는 1005명이 진단을 받았다. 2002년에는 381명으로 전체 유소견자의 15.7 %를 차지하고 있었고 소음성난청 다음으로 많았다.
진폐증으로 산재보상승인을 받은 근로자는 1991년에 1228명이었고 이후 감소해 1998년에는 305명이었다. 그렇지만 진폐증은 2002년에도 529명이 승인되어 전체 직업병의 56.0%를 차지하고 있고 작업관련성질환을 제외하면 아직도 가장 많이 보상받는 직업병이다.
진폐증으로 사망하는 근로자는 매년 300여명으로 2002년도에는 386명이 진폐증으로 사망했다. 진폐증은 치료되지 않으므로 새로 발생하는 숫자가 적어도 누적 환자 수는 계속 증가한다. 1998년 8월말 현재 흉부 방사선 검사로 확인된 진폐증자의 수는 2만2713명이었다.
진폐증은 광부에게 많이 발생하는데, 1987년에는 1155개 광산에서 8만2097명의 근로자가 작업했으나 1990년대에 대부분 폐쇄되고 2000년에는 7개의 탄광만 남게 됐다. 1990년대에 대부분의 탄광이 폐광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과거의 분진 노출에 의한 진폐증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앞으로 탄광부 진폐증은 줄어들겠지만 주물공장 등 제조업과 건설업에서 발생하는 진폐증으로 계속될 전망이다. 제조업에서 발생하는 진폐증자 중에는 과거 광업에 종사한 경력이 있는 근로자가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진폐증은 무기물의 먼지가 폐에 흡입, 축적되어 조직에 섬유화 변화를 일으켜서 폐기능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먼지의 종류에 따라 규폐증, 탄분증, 철폐증, 석면폐증, 용접공폐증으로 분류한다. 석탄광부들은 탄분진과 함께 다양한 무기분진에 노출되므로 이를 탄광부진폐증이라고 한다. 규폐증이나 탄광부진폐증을 일으키는 주범은 유리규산이라는 물질인데 이것은 암석이나 모래에 섞여 있는 물질로서 결정형 형태의 아주 작은 입자로 분진이다. 유리규산 분진에 노출될 수 있는 작업은 탄광 이외에도 주물공장, 석재채굴 및 가공업, 연탄공장, 건설업 등이 있으므로 이러한 작업이 있는 한 진폐증 발생의 위험은 계속 있다.
먼지가 폐에 축적되어 섬유화 일으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진폐증은 주로 탄광부진폐증과 규폐증이지만, 용접공폐증도 많이 발견됐고, 기타 석면폐증, 안티몬폐증, 규조토폐증, 납석폐증, 활석폐증, 활성탄폐증, 망간폐증, 철폐증 등이 발견됐다. 이들이 근무했던 사업장은 석탄광업이 가장 많고, 주물주조업, 석재 채굴 및 가공업, 연탄제조업, 건설업, 조선업, 금속 및 기계제조업, 요업, 내화벽돌제조업, 유리제조업, 귀금속 가공업 및 기타 금속관련 광업이었다.
진폐증이 생기면 폐기능이 떨어지므로 호흡 곤란이 온다. 그러나 경미한 상태의 진폐증은 증상이 없으므로 근로자 스스로 이상 소견을 느끼지는 못한다. 사람과 작업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분진에 노출되는 작업을 한 후 9년에서 17년 사이에 진폐증이 발생하고 분진에 계속 노출되면 진폐증의 정도가 점차 심해진다.
진폐증이 있는 사람은 호흡기질환의 합병증이 잘 발생할 수 있다. 진폐증이 있는 사람에게서 활동성 폐결핵, 흉막염, 만성기관지염, 기관지확장증, 기흉, 폐기종 및 폐성심이 발생하면 이를 진폐증의 합병증으로 인정해 치료해 주고 있다. 1999년부터는 진폐증이 있는 경우 원발성 폐암(다른 장기에서 발생한 것이 폐로 전이된 것이 아니라 폐 자체에서 발생하는 암)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이를 진폐증의 합병증으로 인정해 주고 있다. 그 이전에는 진폐증이 있는 경우 폐암이 발생해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실제로 진폐증이 있는 근로자에서 폐암 발생이 많다는 지적에 따라 역학조사를 시행한 결과 진폐증 환자에서 일반인보다 폐암이 2.5배 높게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되어 이를 합병증으로 인정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은 대부분 일본의 기준을 참고했으므로 진폐증의 합병증도 일본과 유사하다. 그러나 폐암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에서 자체적인 연구에 의해 먼저 진폐증의 합병증으로 포함시켰다. 일본에서는 2001년부터 폐암을 진폐증의 합병증에 포함시켰다.
진폐증은 초기 증상이 없으므로 방사선검사로써 진단한다. 진폐증이 발생하면 흉부 엑스선 검사에서 변화 소견이 나타나는데 사진에 의한 흉부의 변화 정도에 따라 12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진폐증이 의심스러우나 확인되지 않는 초기 단계를 진폐의증이라 하고 이는 진폐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엑스선 검사가 진폐증을 진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지만 정확한 진단이 쉽지 않으므로 당연히 진폐증 진단에 대한 논란이 많이 발생했다.
호흡기질환 합병증 유발가능성 높아
1990년대 중반 조선업체의 노조를 중심으로 진폐증 진단의 정확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진폐증은 한 번 발생하면 치유되지 않고 고정되거나 악화됨에도 불구하고 진단기관에 따라 진폐증 여부에 대한 판정의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그 원인은 경미한 변화를 구분해야 하는 진폐증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흉부 전용 필름을 사용해야 하는데 일반 필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방사선 촬영 조건이 일반 엑스선검사와 달라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못해 판독을 위한 좋은 필름을 만들지 못했던 것과 필름을 판독하는 방사선과 전문의들이 경험이 부족하여 판정에 일관성을 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1996년부터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진폐정도관리를 실시하게 되었다. 우선 방사선 검사에 대한 정도관리를 실시했다. 각 건강진단기관의 장비를 표준화하고 촬영 방법을 점검해 좋은 화질의 사진을 얻도록 했다. 방사선과 전문의에 대한 별도의 교육과정을 마련해 진폐증을 진단능력을 향상시켰다. 정도관리 결과 많은 기관의 방사선 검사의 질이 향상됐다.
진폐증을 진단하는 다른 방법 중의 하나인 폐기능 검사에 대한 정도관리도 실시했다. 폐기능 검사자에게 검사 방법에 대해 실습교육을 시켰으며 판정의사에게 판정 방법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다. 2004년 현재 진폐증의 진단에 관여하는 인력은 3∼5년을 주기로 시험을 보거나 교육을 실시하며, 특수건강진단기관에 대해서는 매년 자료를 조사하거나 직접 방문해 평가하고 있다.
분진에 노출되는 근로자는 특수건강진단기관에서 일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방사선사진을 촬영하면 진폐증 진단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 퇴직한 후에도 가능하면 특수건강진단에서 건강진단을 받아야 진폐증을 놓치지 않는다. 특수건강진단기관이 아닌 일반 병원에서 진단을 받게 되면 진폐증의 진단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
진폐증에 대한 별도의 교육을 받지 않은 방사선과 전문의는 진폐증을 대부분 간질성 폐질환으로 판정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 업무관련성 확인에 소홀하게 되거나 업무상 질병으로도 잘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업무상질병 심의 사례를 보면 진폐증으로 진단 받았으면 쉽게 행정적으로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았을 것인데, 간질성 폐렴으로 진단 받아 복잡한 조사과정을 거치는 사례를 간혹 볼 수 있다.
분진에 노출된 적이 있는 근로자는 간질성 폐질환 또는 간질성 폐렴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면 혹시 진폐증이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진폐증은 주로 탄광부 진폐증이지만 다른 분진에 의한 진폐증도 다수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진폐증은 다음과 같다.
탄광부 진폐증
우리나라의 진폐증은 해방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진폐증은 1950년대 중반에 처음 발견되었는데 4800명의 근로자 중에서 3.3%가 진폐증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일본 탄광에 징용됐다가 돌아온 광부들로 실제 우리나라 광산에서 발생한 것은 많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본격적인 우리나라의 탄광부 진폐증은 1960년대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의 진폐증은 강원도 탄광 근로자 2만명에서 약 2%의 유병률(조사 대상자에 대한 질병자의 백분률)
을 보였다.
1970년대의 조사 자료에 의하면 약 10~16%의 유병률을 보였다. 1980년대에도 일부 탄광지역의 광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진폐증의 유병률은 13~17%이었다. 채탄 작업 환경이 많이 개선되고 대부분의 광산이 폐쇄되어 진폐증자의 발생은 줄어들고 있으나 아직도 과거에 노출된 분진에 의한 진폐증 발생은 계속되고 있다.
진폐증은 탄광뿐만 아니라 탄분진이 발생할 수 있는 탄저장소, 연탄공장의 주변 주민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 1988년에는 연탄공장 주위의 일반 주민에게서 진폐증이 발견됐다.
용접공폐
용접작업을 할 때 금속의 흄(금속이 기화되어 연기처럼 보이는 것은 아주 작은 금속 입자로 구성되어 있음)이 많이 발생하고 이것을 흡입하면 진폐증(용접공폐)이 생긴다. 용접공폐는 1982년에 최초로 보고되었고 주로 조선업의 용접공에게서 발생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용접공의 용접공폐 유병률은 3~9% 수준이었다. 10년 경력의 조선소 용접공의 3.2%에서 용접공폐가 발생했다.
용접공폐는 주로 선박건조업, 콘테이너 건조업, 자동차부품 제조업 등 용접을 하는 근로자에게 발생한다. 용접작업 환경이 개선됨에 따라 용접공폐의 발생은 크게 감소하고 있다.
석면폐증
석면을 다량 흡입하면 진폐증(석면폐증)이 생긴다. 1994년에 석면 사업장을 조사한 결과 석면폐가 최초로 발견된 후 10여명의 석면폐가 발견됐다. 우리나라는 석면 사용량이 많지 않았고 1990년 중반 이후로 사용량이 감소하고 있으므로 향후 석면폐 발생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물공의 진폐증
주물작업에서는 다량의 규사(모래)를 사용하므로 작업 특성상 분진이 많이 발생하므로 유리규산에 의한 진폐증이 생긴다. 1990년대 주물작업자의 진폐 유병률은 3~7% 수준이었다. 최근에는 주물작업장이 많이 폐쇄되거나 외국으로 이전하여 주물작업장이 줄어들었으나 아직도 주물작업장에서 진폐증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기타 진폐증
1990년대 초에 철분진 가공업체에서 진폐증(철폐증)이 발생했고 규조토 가공업체에서 규조토에 의한 진폐증(규조토폐증)이 발생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망간 분쇄업 근로자에게서 진폐증(망간폐증)이 발생했고 삼산화안티몬 제조업에서 진폐증(안티몬폐증)이 발생했다. 야자열매 껍질을 이용해 활성탄을 제조하는 사업장에서 진폐증(활성탄폐증)이 발견됐다.
1990년대 후반에는 카본블랙을 제조하는 사업장에서 카본블랙에 의한 진폐증이 발견됐다. 1999년에 귀금속단지의 전현직 근로자 380명을 조사한 결과 9%에서 진폐증이 발견됐다. 인공석만을 취급하는 경우에는 진폐증이 없었으나 천연석을 사용하는 경우에 진폐증의 유병률이 20~30%로 높았다.
2000년에는 타이어제조공장에서 탈크(활석)를 사용하던 근로자에게서 진폐증(활석폐증)이 발견됐으며, 납석광산에서도 진폐증(납석폐증)이 발견됐다. 석재가공업체에서도 실리카에 의한 진폐증이 발견됐으며, 해당 사업장의 진폐증 유병률은 7%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