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향하는 것이 있는 한 방황한다’
'지향이 있는데 방황한다고?' 처음 이 문장을 들으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지향'과 ‘방황'의 의미가 왠지 상충하는 것 같기 때문이죠.
그러나, 전영애 교수는 비문처럼 보이지만, 이 문장이야말로 60년간 파우스트를 집필한
괴테가 말하고 싶었던 인간의 진짜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녀 역시, "삶의 매 순간이 방황이었고 번민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헤매고 있다"2고 하는데요.
우리가 흔들리는 이유는 의식하든 안 하든 인간의 마음에는 솟구치는 것이 있고, 그러므로 어딘가 가고 있는 중이기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하죠.
일흔의 나이에 들어서도 여전히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마음속에 들끓는 무언가를 지향하고
추구하게 만드는 그녀만의 내면의 힘은 뭘까요?
서울대 독문과 교수로 40년 넘게 괴테를 연구하고 가르쳤던 전영애 교수.
은퇴 이후, 그녀는 누구나 들러 쉬다 갈 수 있는 ‘여백 서원’을 짓고
10년째 낮에는 홀로 서원을 운영하는 '7인분 노비'의 삶을, 밤에는 괴테 전집을 번역·발간하는 학자 삶을 살아가는데
서원을 돌보기 위해 땀 흘리며 노동하는 시간도 값지지만, 노동을 끝낸 후 어두운 밤 단칸방에서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그녀.
세계가 인정하는 '괴테 연구 석학'이라는 타이틀에 만족하지 않고, 3200여 평의 서원을 운영하면서도
괴테의 집을 시작으로 '괴테 마을을 조성하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에는 숨겨진 지향점이 있는데요.
바로, 방황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괴테를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죠.
"나이가 들다 보니, 뜻을 뒀던 일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다는 건 어마어마하게 감사한 일이어서
보답을 좀 해야겠더라고요. 어떻게든 내 경험을 조금이라도 전해주고 가야 되겠더라고요."
"제가 연구한 괴테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하나의 좋은 샘플로, 괴테가 이런 사람이었고, 이런 삶을 살았고, 문제들이 있을 때 이렇게 감당하고
극복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괴테 할머니는 어떻게 이러한 마음의 지향점을 이뤄가고 있을까요?
때로는 흔들리면서도 마음속에 들끓는 지향점에 다다르게 하는 내면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그건 바로, 흔들릴 때 나를 바로 잡아주고 주도적으로 내가 가야 할 곳에 도달하도록 돕는 내면의 힘
'자기 결정성'에서 비롯된 것 같은데요.
오늘은 이 ‘자기 결정성’을 내면에 자리잡게 하고 키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려 합니다.
갈 곳에 이르게 하는 힘, ‘자기 결정성’
사회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와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은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자기실현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결정하는 것
즉 '자기 결정성'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자기 결정성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SDT)'에 의하면, 인간이 주도적으로 자기실현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욕구—유능성, 자율성, 관계성—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욕구는 인간의 동기부여, 성장, 웰빙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유능성(Competence):
이 욕구는 우리가 활동을 수행하는 데 있어 스스로를 유능하게 느끼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일에 대한 피드백을 통해 이를 강화할 수 있으며, 작은 성공들이 모여 큰 자신감으로 이어집니다.
자율성(Autonomy):
이 욕구는 자신의 행동과 결정이 자신의 진정한 의지와 일치할 때 강화됩니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일에 더 큰 만족과 헌신을 느낄 수 있게 해줍니다.
관계성(Relatedness):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의미 있는 연결을 두고자 하는 깊은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지받고 소속감을 느낄 때 이 욕구가 충족됩니다.
한 책3 에서는 요즘과 같이 경쟁과 비교가 만연한 사회일수록
이러한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하는데요.
즉, 내 일상에서 이러한 욕구가 충족되면, 주도적으로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생긴다고 볼 수 있죠.
'자기 결정성'의 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선택의 폭은 제한되어 있다.
이런 삶을 살다 보니 관계에 쓰는 신경마저 사치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기본 욕구를 포기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도전해서
성공의 기쁨을 누리고, 점심 메뉴와 같은 사소한 일이라도 직접 선택하며
가까운 이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기실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3라고 말합니다.
괴테 할머니의 일상을 봐도 유능성, 자율성, 그리고 관계성 욕구가 균형적으로
채워지는 것이 자기실현을 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즉, 괴테 석학으로서 괴테 전집을 번역·발간하며 스스로에 대한 유능감을 채우고
은퇴 이후의 삶에도 자기 평생의 숙원이었던 서원을 짓고 마을을 조성하는 삶을 살아내며
자율성의 욕구를 채우고, 마지막으로 사회의 구성원이자 많이 연구하고 경험한 어른으로서
젊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면서 관계성의 욕구도 채워지기 때문에
설사 자기실현의 과정에서 흔들리더라도 계속해서 갈 곳을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