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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 회의는 선장禪杖을 들고 광장 한 가운데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머리를 빡빡 밀었지만, 여전히 그의 얼굴은 기생오라비처럼 미끈했다.
조영은 회의를 대면해 겸손하게 합장 인사를 했다. 그리고 목검을 들고 차분하게 그를 맞았다.
조영이 그를 바라보니, 듣던 바처럼 그렇게 난폭하고 몰상식하게 생기지는 않았다.
“시주께서 먼저 공격을 하시오.”
회의가 무겁게 말했다.
조영은 가벼운 공격을 몇 차례 날렸다.
회의가 선장을 들어 일일이 막았다.
두 사람의 공방전을 가장 관심있게 지켜보는 듯한 이들 가운데 하나는, 물론 무 태후다. 뜨거운 태양 아래 호쾌하고 어지럽게 움직이는 두 사람의 그림자에, 시종 무표정한 시선을 투영하고 있는 냉엄한 여제女帝의 얼굴과 가슴 속에서 무슨 상념이 오고 가는지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두 사람의 용호상박을 관전하던 태후는, 끝내 이렇게 말했다.
“이만하면 족하오. 회의대사의 실력을 알만 하오. 최고의 패권자 조영을 맞아 선전하는 것을 보니, 허명은 아니었소. 중지시키시오.”
두 사람 다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조영은 일찍부터 승기를 잡고 회의를 이길 수 있었음에도 그의 지위와 체면을 생각해 많이 양보했었다.
이렇게 장장 사흘 동안의 무술대회는 막을 내렸다. 스물네 무사 모두에게는 상금이 차등 지급되었다.
이 날 무 태후 앞에서 자신의 무예를 선보였던 회의는, 훗날 무 태후에게 대장군의 칭호를 받아, 군사를 이끌고 전장에 나가기도 한다.
유시酉時(오후 6시 전후)가 되기 전에 낙양궁의 정원인 서원西苑 전각에는 각양 색깔의 휘황한 등불들이 내걸리고 이번에 출전한 무사들과 그 가족들 및 문무백관들을 위한 만찬석이 완벽하게 준비되었다.
서원 안의 인공호수, 적취지積翠池에는 오색 등불들로 장식한 배를 띄워 잔치의 분위기를 돋우었다.
서원과 적취지는 원래 수나라 양제가 매월 연인원 이백만 명의 인부를 동원해 낙양궁을 조성할 때인, 서기 605년에 만든 것이다. 문헌에 따르면, 서원의 둘레는 이백리, 적게 잡아도 일백만 평 이상이었으며, 그 안의 적취지 둘레는 십여 리 아니면 수십 리, 굴곡을 감안해도 삼십여 만평이 넘었을 것이다.
수양제는 그 드넓은 인공 정원 안에, 발해 바다 속에 잠겨있다는 전설상의 산들,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 등 삼신산三神山을 조성하고, 분수를 만들어 백여 척 높이 솟아오르게 했으며, 화려하고 정교한 대臺, 원院, 당堂, 루樓, 전각 등을 곳곳에 세웠는데, 동산은 앞이건 뒤건 선경仙境과 같았다고 한다.
서원西苑 북쪽에는 용린거龍鱗渠라는 인공수로를 열어, 물이 정원을 돌고 돌아 강과 연결되고 바다로 흘러들게 했다.
겨울철, 궁궐 내 수목들의 잎이 시들고 떨어지면 채색 비단으로 꽃과 잎을 만들어 나무에 꿰매 붙였으며, 조화造花와 인공 잎사귀의 색깔이 바래면 새것으로 교체해, 동산은 항상 따스한 봄 같은 분위기였다.
겨울의 적취지에는 얼음을 깨고 비단으로 연꽃과 줄기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수양제는 달 밝은 밤, 궁녀들을 거느린 채 말을 타고 서원에서 노니길 즐겨했으며, 그 때 청야유곡淸夜遊曲이라는 노래를 지어 연주하게 했다<자치통감>.
수양제 양광은 진정 멋과 낭만을 알았던 사람 같다. 하지만 그게 도에 지나치니 사치와 방탕이 극에 달했던 것이다.
수백 명이 한 자리에 모인 서원의 식사 자리에서 조영은 할아버지 고승과 함께 아무 말도 없이 음식 먹기에만 열중했다. 그 주위에는 영주도독 조문홰와 그가 출전시킨 무사 서연, 그리고 송막도독 이진영과 그의 딸 이루하, 그녀의 비자婢子 여미아, 이진영의 가신장인 신창 이해고, 말갈추장의 아들 사비우 등이 있었다.
그가 한참 음식 먹기에 여념이 없을 때 어디선가 부드러운 향기가 코에 물씬 풍겨왔다.
“안녕하세요?”
매우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한어였다.
조영은 설마 한어를 쓰는 여인이 자신에게 인사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무심결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한 아름다운 아가씨가 화려한 옷을 입고 웃음을 가득 담은 채 자기 곁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었다.
의복을 보니, 지체가 극히 높은 여인인 것 같았다.
조영은 그 고귀한 신분의 여인에게 예를 갖추고자 잠깐 일어나 목례를 한 후, 다시 자리에 앉았다.
“배가 몹시 고프셨나 보군요. 호호호!”
그녀는 입을 가리고 웃더니, 말을 이었다.
“하긴 그럴 거예요. 사흘 동안 내리 싸움만 했으니, 웬만한 장사라면 벌써 기진맥진했을 거예요.”
조영은 그녀의 말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 그녀를 쳐다보니 그녀가 자신을 내려다보며 눈웃음을 치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녀가 자신에게 말을 건넸음을 알아차리고 자리에서 재차 벌떡 일어났다.
“염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대담하게도 조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젊은 여자가 낯선 남자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세간에서는 거의 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녀는 이 행동을 통해 자신의 신분이 조영보다 월등하게 높다는 것을 은연중 암시하고 있었다.
조영도 얼떨결에 손을 내밀어 그녀와 악수했다. 감촉이 따스하고 부드러웠다.
조영이 그녀의 낯을 살짝 훑어보니, 그녀는 아직 스물도 되어 보이지 않았는데, 위아래 화려한 채색의 비단옷을 걸친 채, 긴 머리를 곱게 묶어 단장하고 있었다. 얼굴은 백옥처럼 하얀데, 아름다운 교태가 철철 넘쳐흐르는 품이 왕후의 귀족 같고, 얼핏 보기에도 참으로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제 이름은 영월令月(음력 2월, 상서로운 달)이라 해요. 이영월李令月. 이월에 태어났거든요. 또 저는 달을 무척 좋아한답니다.”
그녀는 묻지 않은 것까지 늘어놓고 연이어 물었다.
“공자님의 존함은?”
“아, 네 그렇군요. 저는 고조영이라고 합니다. 높을 고高, 복 조祚, 영화 영榮”
“어머나! 복 조 자는 임금이란 뜻도 있는데, 높은 임금의 영화라는 뜻이군요.”
그녀는 수 개 월 전 사냥터에서 이루하가 했던 것과 유사한 말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감회가 묘했다.
자칭 이영월이라는 젊은 처자가 조영에게 다가와서 둘이 대화를 나누자 주변의 인물들이 그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특히 이루하가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두 귀를 쫑긋 세운 채, 두 사람의 대화에 유심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여미아는 본척만척했으나 그녀도 신경이 쓰였는지, 가끔씩 이쪽을 힐끗힐끗 쳐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쪽을 바라보지 않을 때도 여미아는 좀 긴장한 듯, 두 사람의 대화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듯한 표정이다.
조영은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본 후 그녀에게 말했다.
“그렇게 격려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함부로 할 소리가 아닙니다. 아가씨는 화인華人이신 것 같고 고귀한 가문의 금지옥엽이신 듯한데요?”
자칭 이영월이라는 소녀가 손을 입으로 가리고 소리 내어 거리낌 없이 웃었다.
“호호호! 사람들은 저를 태평공주太平公主라고 부른답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저는 공자님의 늠름한 기개와 무예에 반했어요.”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속에 있는 말을 거침없이 토로했다.
‘태평공주?’ 조영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어쩐지 행동거지가 활달명랑하고 옷이 매우 화려하며 얼굴이 아름답더라니.
조영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고승과 이진영 등도 몹시 놀랐다.
태평공주가 누구인가? 삼년 전 붕어한 당 고종 이치와 현금의 실질적 통치자 무 태후 사이에 태어난 막내딸로서, 이 시기의 당 황제 예종 이단李旦(662 - 716)의 친여동생이었던 것이다.
태평공주는 이마가 아주 시원하고 아름다웠다. 칼로 조각해 놓은 듯 둥그스름하고 볼륨감이 넘치며 고상한 그녀의 턱 선은, 고고한 기품의 보름달을 연상시켰다. 그녀는 전형적인 동양미인이었다.
좀 때 이른 이야기인 것 같으나, 그녀는 훗날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게 된다. 태평공주는 무주武周(690~705) 시대에 친어머니 측천무후(무 태후)를 보좌해 권세를 누리고, 뒤에 예종이 폐위되었다가 재즉위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는가 하면, 측천무후와 유사하게 계속 당황실의 실세로 군림한다.
태평공주는 무 태후의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그녀의 활달한 성격까지도 닮아있었다. 막내딸로 부황 고종 이치와 어머니 무후로부터 극심한 총애를 받았다.
수 해 전에는 토번吐蕃(티베트)에서 사신을 보내 태평공주와의 혼사를 요청했으나, 공주를 멀리 떠나보내기 싫어한 고종과 무후가 이를 거절한 적도 있었다.
측천무후(무 태후)가, 우리 소설에서 고조영이 당 황실에 등장한 이 시기에도, 그녀를 유달리 가까이 하며 중요한 정사政事까지도 그녀와 은밀히 의논하곤 했을 정도로<자치통감>, 태평공주 이영월은 매우 영특한 여인이었다.
그녀의 말에 주변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예를 표하고, 조영은 새삼스레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오, 그러셨군요. 몰라 봐서 죄송합니다.”
조영이 다시 당당하고도 정중하게 그녀에게 인사했다.
“저, 제가 공자님 나이를 물어본다면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
태평공주는 여전히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저는 정묘년丁卯年(667년) 생입니다.”
“어머나! 저하고 한 동갑이네요! 저도 정묘년에 태어났어요. 근데 생월과 생일은 언제예요?”
“이월 초하루입니다.”
“네?”
그녀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조영이 물었다.
“저도 이월 초하루 생이에요.”
“우연의 일치 치고는 너무 재미있군요. 그런데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이십니다.”
“감사해요.”
말괄량이 태평공주 이영월은 얼굴이 몹시 아름다워, 미녀들로 숲을 이루고 있는 대당大唐 낙양궁 안에서조차 절세미녀로 통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 무 태후의 굄과 후광을 입고 궐내에서의 행보가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녀의 요구와 뜻은 거의 관철되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
그녀를 은근히 사모하는 젊은 남자들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그녀가 누군가? 당금 황제 예종 이단의 친여동생이고 목하 최고 권력자 무 태후의 귀염둥이 막내딸이 아닌가?
그녀의 눈이 얼마나 높겠는가? 그런 그녀가 만찬석에서 느닷없이 조영에게 찾아와 그의 나이를 물어보고 그 앞에서 아양을 떠는 것이다. 황궁의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나이 든 사람들은 물론, 이루하도 아연 긴장했다.
여미아는 이영월이란 여인의 신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못 본 체하고 음식 먹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놓치지 않고 있었다.
“공주마마께선 저희들의 무예시합을 구경하셨는지요?”
조영이 물었다.
“네, 사흘 동안 낱낱이 관람했습니다. 저도 무예를 무척 좋아합니다.”
“아, 그러셨군요. 부끄럽습니다. 변변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해서.”
“아니에요. 제가 보긴,”
그녀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더니 조그맣게 속삭였다.
“공자님의 무예가 가장 훌륭했어요. 이해고도 공자님보다 한 수 아래예요.”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져서 주변에 잘 들리지 않자, 그들의 대화를 줄곧 엿듣고 있던 여미아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이쪽을 슬쩍 쳐다보았다.
바로 그 순간이다.
우연히도, 태평공주 이영월의 시선이 여미아 쪽을 향하고 있다가 여미아가 고개를 드는 순간, 여미아와 시선 대 시선으로 충돌했다. 두 시선은 그 찰나지간에 한 중앙에서, 마치 성단星團과 성단의 대격돌마냥 폭발을 일으킨다.
태평공주 이영월은 여미아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도, 길바닥의 돌멩이처럼 미녀들이 눈에 밟히는 황궁 안에서 절세미인으로 통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고고하게 생긴 천향국색天香國色은 생전 처음 목격했던 것이다.
얼핏 느꼈지만, 그 기품하며 태도, 눈빛, 전체적인 자태와 분위기가 그토록 환하고 초연하고 영묘灵妙하고 성스런 여인을 목전에서 대면하기는 난생 처음이다.
태평공주 이영월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바깥으로 싸돌아 다녔으나, 저자에서나 다른 어떤 고장에서 이런 미인을 만난 기억이 없다. 심지어 동서고금의 책에서도 그런 품격의 미인이 존재했다는 기록은 읽어보지 못했다.
자신이 거리로 나서기만 하면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자태와 미모에 혹해 뒤에서 수군거리기 일쑤였다.
“저 미녀가 도대체 누구야?”
“누구긴 누구야? 자네 말조심하라구! 태후마마의 금지옥엽 태평공주님이야!”
그들의 수군거림을 은근히 즐기곤 하던 태평공주는, 여미아를 보는 순간, 비록 찰라 간에 얼핏 인지했지만, 글자 그대로 하늘의 만월이 수치심에 자기 얼굴을 구름 속에 숨기고, 지상의 화려한 꽃이 부끄러워 잎사귀로 낯을 가릴 만큼, 이렇게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풍기는 여인도 있었던가 의심하며, 새삼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녀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사실, 여미아에 대한 태평공주의 이런 감각은 유별난 게 아니었으며, 필자가 서투른 미사여구를 총동원해 과장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건, 여미아의 낯을 처음 목도하는 이들이 한결같이 공유하던 느낌이다. 그녀와 자주 만나는 이들은 그렇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입은 옷을 보니 수수해서 귀족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 곁에 앉아 있는 여인은 북방 나라 귀족의 옷차림이었으나, 그녀(여미아)는 고려인들의 정갈한 흰 옷을 입었을 뿐 고관대작의 딸처럼 보이지는 않은 것이다.
여미아는 태평공주와 두 눈이 마주치는 순간, 속으로 깜짝 놀라 고개 숙여 인사한 후, 얼른 시선을 회피하고 다시 젓가락으로 음식물을 집었다.
그 때 넋을 잃고 여미아를 바라보던 태평공주의 귀에 남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과찬이십니다. 저는 그분들보다 훨씬 더 못하지만, 그 분들이 제게 양보한 것입니다.”
“아, 네?”
여미아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던 태평공주 이영월이 조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공자님은 참 겸손하시군요.”
그리고 갑자기 다시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이듯 조영에게 물었다.
“공자님은 혹시 저 여인을 알고 계시나요? 저분은 공자님처럼 고려인의 옷을 입고 있군요.”
이렇게 말하며 이영월이 손가락으로 여미아를 가리키는 것이다.
조영은 태평공주의 손길을 따라가다가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녀가 여미아를 가리키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조영이 여미아를 보니 그녀는 전혀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이고 음식을 먹고 있었다. 하지만 새삼, 그녀에게서는 매혹적이고 고고하고 성스런 기품이 주변에 가득히 퍼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 네. 약간 알고 있습니다. 저 분은······.”
잠깐 말을 멈춘 조영이 고개를 돌려 태평공주 이영월을 바라보며 의견을 물었다.
“그럴 게 아니라, 제가 저 북쪽에서 온 저희 일행과 지인들을 소개해 올리는 게 예의일 것 같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조영은 대당 낙양궁의 태평공주 앞에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그러나 겸손하게 말했다.
“오, 그거 정말 반가운 소리예요. 전 친구 사귀는 것을 무척 좋아한답니다. 이 안에 있다 보니 무료하고 따분하기 그지없어요.”
태평공주가 이렇게 종알거리며 조영에게 재촉했다.
“어서요! 내게 소개해 주세요.”
이렇게 말하며 그녀는 대담하게도 조영의 팔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조영은 얼떨결에 그녀에게 이끌려 자기 일행과 송막도독 이진영, 이루하, 여미아 등까지 일일이 태평공주에게 인사를 시켰다.
이 순간에는 누가 객이고 누가 주인인지 알기 어려웠다. 조영이 마치 주인 같고 태평공주 이영월은 손님 같았다.
조영이 이루하와 여미아를 이영월에게 소개할 때 그녀들은 이영월에게 다시 한 번 공손히 절했다. 태평공주가 여미아를 쏘아보다가 조영에게 물었다.
“이 여인은 한낱 비자인데도 주인과 동석해 식사를 하다니, 뭔가 사연이 있는가 보군요.”
고조영이 난처한 표정을 짓자 이루하가 대답한다.
“신분은 저의 종이지만, 저와 한 자매처럼 이물 없이 지낸답니다.”
태평공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차례 여미아를 훑어본 후 이루하에게 시선을 옮기며 손을 내밀었다.
“아가씨는 너무나 아름다운 화용월태의 절세가인이시군요. 송막도독의 공주님께 어울리는 품위를 지니고 있어요.”
이루하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속으로 어떻게 하면, 이 여자를 골탕 먹일까 머리를 굴리면서.
(다음 회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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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2023. 9. 22. 가을기운완연한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