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이천동(梨川洞),
어머니 뱃속처럼 편안하고 아름다운 마을
개관
이천동은 수성구 고산2동의 법정동이다. 대덕산이 북쪽으로 뻗으면서 형성된 두리봉(212.8m)-연호산(129.6m)-모봉(149.8m) 산줄기의 남동쪽 평야에 자리한 마을이다. 1600년경 김해 김씨가 처음 마을을 개척했다고 한다. 최근까지만 해도 마을 앞 넓은 들판은 논농사, 주변 낮은 산자락은 과수를 중심으로 하는 밭농사가 활발했다. 하지만 최근 연호동과 이천동을 중심으로 하는 연호지구에 복합타운이 조성됨에 따라 2024년 현재 개발이 한창이다. 이천동 북쪽 산자락에는 1977년 들어선 공군방공포병학교가 있다.
이천동은 북동쪽 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다른 마을로 통하는 고개가 많이 있었다. 동쪽에는 내환동(대흥동) 괵기(곡계·곡기)로 넘어가는 괵기고개가 있었다. 남동쪽에는 연호동 굴말로 넘어가는 구름고개가 솟아있다. 서쪽에는 황청동(황금동)으로 넘어가는 배냇고개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쟁잇골에서 연호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는 행인들이 통시처럼 마음대로 똥을 누기도 했다는 뜻에서 유래한 통시고개가 있었다.177) 마을 북쪽에 있는 담티 고개는 만촌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천동 서쪽 골짜기 끝에 이천내지(梨川內池)가 있다. 이 못 주위에 배내·새청·안골 세 마을이 있다. 세 마을은 깊은 골짜기에 자리한 탓에 아직 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전통 생활양식이 많이 남아 있다. 이러한 마을 특성을 살려 마을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배내 마을을 가꾸는 사람들의 모임’을 만들어 지금도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에 힘쓰고 있다. 반면 달구벌대로에 접한 이천동 입구에서 이천내지에 이르는 지역은 모두 연호지구에 수용돼 옛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주요 유적과 유물로는 청동기시대 주거유적이 발굴됐다.
177) 수성구립고산도서관, 「고산, 비밀의 구릉 성산」, 2022, 76쪽.
지명 유래
이천동은 마을에 큰 배나무가 있어, 혹은 마을에 배나무가 많아 ‘배내 마을·이천동’으로 불린다. 마을 가운데로 배내(梨川)가 흐르는데, 서쪽 두리봉 골짜기에서 시작해 마을을 남북으로 양분하며 동쪽으로 흐른다. 이천동은 두리봉 동쪽 골짜기인 배내골을 중심으로 자리한 마을로 경산현읍지(1785)에는 이내리(梨內里), 「호구총수」(1789)와 경산현읍지(1850년대), 영남읍지(1895), 조선지지자료(1910년대초)에는 이천리(梨川里)로 기록되어 있다. 이내리는 배나무골 안쪽인 배내골에 자리하고 있어 이내리라 했다. 이천동은 이내리의 ‘내(內)’를 ‘냇가’를 의미하는 ‘천(川)’을 사용한 마을 이름이다.
한편 이천동은 마을 지형이 낮은 산으로 빙 둘러싸인 채 북동쪽만 산 없이 긴 골짜기로 열려 있다. 이런 지형이 마치 여성의 자궁을 닮았다는 뜻에서 ‘배내에 있는 마을’이란 의미로 배냇골이라 불렀다고도 볼 수 있다. 마을 안쪽을 흐르는 하천은 마을 바로 뒤쪽 두리봉을 발원지로 하기 때문에 ‘내’보다는 작은 도랑에 가깝다. 따라서 이천동은 ‘배나무골’, ‘배냇골’ 외 여성의 자궁인 ‘배내’를 표기한 동명으로도 볼 수 있다.
내지(內池)·이천내지
내지는 배내 마을에 있는 저수지로 둘레가 400m쯤 되는 작은 연못이다. 내지란 이름은 연못이 마을 안쪽에 있어 붙은 이름이다. 내지를 기준으로 서쪽에는 배내 마을, 남쪽에 새청 마을(샘천·연골)이 있다. 내지는 연꽃이 피는 여름이면 마을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고산2동 마을이야기(고산2동, 2020)에는 옛날 새청 마을에 연실 한 꾸러미가 다 들어갈 정도로 깊은 옹달샘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샘을 ‘연골샘’, 골 이름을 ‘연골’이라 했다고 한다. 경산현읍지(1749)에 “이천외제(梨川外堤)와 이천내제(梨川內堤)는 현 서쪽 20리에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내지를 기준으로 서쪽에 당옆골과 안골이 있는데 대부분 과수농사를 지었고, 동쪽에는 내지들이 있었는데 논농사를 지었다.
담티 고개·담티재·담티못·장현제(墻峴堤)
담티 고개는 지금의 수성구 만촌동과 고산의 경계인 대륜중고등학교 북편 높은 고개를 말한다. 담티 고개는 몇 가지 지명 유래설이 전한다. 본래 담티 고개는 황금동 두리봉에서 만촌동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1980년대 초까지 대구와 경산의 경계였다. 지금의 담티 고개가 생긴 것은 일제강점기 때로 많은 인부를 동원해 산을 관통해 만들었다. 이때 산을 뚫은 것이 마치 담을 틔우듯 했다고 ‘담티’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전한다.
담티 고개에는 또 다른 유래설도 있다. 명나라 장수 두사충과 관련된 유래설이다. 두사충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으로 조선에 왔다가 임란 후 조선에 귀화해 대구에 살았다. 그는 풍수지리에 밝았는데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당시 많은 사대부의 묘터와 집터를 잡아준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묘터로 수성구 성동 고산서당 터를 미리 점지해 두었다. 만년에 아들과 함께 자신의 묘터를 살피기 위해 세 번이나 길을 떠났다. 하지만 매번 담티 고개에 이르면 숨이 차고 가래가 끓어 결국 고개를 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두사충이 ‘담티가 나 넘지 못한 고개’라는 뜻에서 담티 고개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결국 두사충은 고산서당 자리가 아닌 담티 고개 직전인 지금의 모명재 뒷산 형제봉 자락에 묻혔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담티 고개를 ‘장현(墻峴)’으로 기록하고 있다. 장현은 담장고개라는 뜻인데, 나중에 ‘담치’→‘탐지’→‘담티’가 됐다는 설도 있다. 1954년 항공사진에는 대륜 중·고등학교 자리는 야산을 낀 논밭이며, 대구 도심 방향에서 담티 고개로 올라가는 초입에 민가 4-5호가 보인다. 담티 고개 관련해 청도군지(1834)에 흥미로운 내용이 보인다. “新官到任時慶山仇火驛大馬一匹步從二名兵房色領率待候於慶山潭峴(신관 사또가 도임하면 경산 구화역의 대마(大馬) 1필과 보종 2명을 병방색이 거느리고 경산 담현에서 신관 사또를 기다린다)”는 기록이다. 지명조사철(1959)에는 담티고개에 대해 “옛날 성리당(城理堂)이 있었던 곳이므로 당제를 모셨다는데 일제 시 이를 헐어 버리고 대구와 경산을 통하는 도로를 만들어 지금은 흔적이 없어지고 당테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그 후 음이 변하여 당터고개라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배내·배내 마을
배내 마을은 이천동의 자연부락으로 ‘배내’라고 불렸다. 배내 마을에는 배나무가 많았으며 ‘배낭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다. 두리봉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는 내(川)가 있는데 이름은 배내이고, 배내 주변 마을이 ‘배내 마을'이다. 배내는 옛날 이 마을에 큰 배나무가 있어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는데 지금은 없어졌으며, 그 위치도 알 수 없다고 한다. 1954년 항공사진에는 내지 서쪽에 약 25호 규모 배내 마을이 보이다.(’내지‘ 사진 참조)
새청·샘천·연골
새청은 이천내지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고산2동 마을이야기(고산2동, 2020)에는 옛날 새청 마을에 연실 한 꾸러미가 다 들어갈 정도로 깊은 옹달샘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샘을 연골샘, 골 이름을 연골이라 했다고 한다. 새청은 샘천이 변한 지명으로 추정된다. 1954년 항공사진에 10호 정도 되는 새청 마을이 보인다.(’내지‘ 사진 참조)
외지(外池)·밤못
연호역에서 이천동으로 들어서면서 오른쪽 달성 아파트 옆에 있는 못이다. 외지라고도 하고 밤못이라고도 한다. 1954년 항공사진에는 외지 주변에 민가 3호가 보인다. 1983년 지도에는 달성 아파트 자리에 작은 못과 양계장이 있고, 그 남쪽에 대성적연와공장이 보인다.
윗재인골·아랫재인골·쟁골·잰골
이천동에는 두리봉에서 연호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중간쯤에 윗재인골과 아랫재인골로 부르는 자연부락이 있었다. 옛날 이곳에 두 개의 재실이 있었는데 위쪽(북서쪽) 재실이 있던 마을을 윗재인골, 아래쪽(북동쪽) 재실이 있던 마을을 아랫재인골로 불렀다고 한다.178) 또 다른 설로는 골짜기에 기와를 굽는 기왓굴이 있었기 때문에 재인골로 불렀다고도 한다. 나중에 윗재인골, 아랫재인골에 공군방공포병학교가 들어오면서 두 마을 주민들은 모두 달구벌대로에 접한 이천동 입구 ‘새마을’로 터전을 옮겼다. 1954년 항공사진에는 윗재인골에 6호, 아랫재인골에 4호 민가가 보인다. 1983년 지도에는 윗재인골은 밭, 아랫재인골은 논이 많이 보인다.
178) 대구직할시 교육위원회, 우리고장대구, 1988, p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