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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 마, X바!"
[한만수의 '백 년 동안의 검열'] 웃음을 박멸하려던 제국
한만수 동국대학교 교수 기사입력 2012-05-28 오전 10:53:26
때는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프랑스가 1년도 버티지 못한 채 독일에 항복했으며 독일·이탈리아·일본의 삼국 동맹이 결성되고 승승장구하던 시기였다. 창씨개명, 조선어 말살 등이 본격화되었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폐간된 것도 이 때였다. 1937년 중국 침략을 기점으로 일제는 총력전에 돌입했으며 '하면 된다' '(전쟁) 하면 이긴다'로 똘똘 뭉칠 것을 강요했다. 이 살벌한 시기에 웃음을 만들어 퍼뜨리고 싶어 했던 극작가와, 웃음을 박멸하고 싶어 했던 검열관이 있었다. 일본 연극 <웃음의 대학>(2004년 영화화, 2011년 국내 공연)은 이 두 사람의 '삼류' 인생을 얽어 짰다.
한쪽엔 검열관이 있다. 만주에서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험한 일을 하다가 갓 제국의 심장부로 돌아왔다. 비교적 자유로운 '내지'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다. 물론 경관이니만큼 경찰국가 일제에서 권력의 한 구석을 차지한 것으로 나오지만, 자신의 소신에 반하는 행위를 매일 직업적으로 반복해야 하는 말단 부속품에 불과하다.
그의 소신은 검열이란 불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표현의 자유를 신봉해서가 아니다. 어떤 작품은 괜찮고 어떤 작품은 불가하다는 식의 판정을 내리는 일 자체가 난센스라는 것이다. 1억이 단결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성전을 치러야 할 비상시국에 무슨 놈의 웃음이란 말이냐, 검열할 것도 없이 모든 희극의 상연을 금지해버리는 게 마땅하다는 것.
그러나 말단 검열관에 불과한 그는 검열 제도를 고칠 힘은 없다. 그러니 자신의 권한 안에서 그 일을 수행한다. 무자비한 검열을 통해 스스로 상연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 대본에 대해서 무리한 수정 요구를 계속 내린다. 심지어는 웃음을 삭제해버리라고까지 요구한다. '웃음 없는 희극'을 요구하는, 그야말로 코미디 같은 검열을 자행한다.
다른 쪽엔 희극 작가가 있다. '웃음의 대학'이라는 삼류 극단에서 그럭저럭 먹고산다. 어떻게 해서든 검열관의 허가를 받아내야 한다. 공연 날짜는 다가오는데 검열 도장을 받지 못했으니 극단주도 배우들도 초조하다. 검열실 밖에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들어서자마자 90도로 허리를 꺾어 절한다. 뇌물이랍시고 과자를 사왔다가 면박만 받는다. 연신 머리를 조아린다.
검열관이 아무리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밤을 꼬박 새우면서 그에 맞춰낸다. 그 다음날 가져오면? 또 구박만 받고 퇴짜. 천신만고 끝에 통과되는가 싶으면 또다시 새 요구가 제시된다. 동료 배우들마저 분개한다. 그들의 분노는 검열 권력이 아니라 힘없는 희극 작가에게 집중된다. 검열관의 요구마다 백기투항으로 응하는 비겁한 자라면서 작가를 두들겨 팬다. 하지만 작가는 계속 새 각본을 써서 검열실을 찾아간다.
둘 사이의 대립이 이 영화의 주된 얼개이며 재미도 거기에서 나온다. "고국을 위하여(충성을 바친다)"라는 대사를 세 군데에 삽입하라고 검열관이 요구하면, 세 번을 넣은 뒤에 "고깃국을 위하여"라는 대사를 한 번 더 끼워 넣어 웃음을 만든다(일본말에서 '國'은 '쿠니'로 발음되며, '肉'은 '니쿠'로 발음된다. '쿠니'와 '니쿠' 사이의 말장난이다. 말장난이란 번역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이 번역자는 '고국'과 '고깃국'으로 순발력 있게 바꿔냈다).
'고국을 위한 충성'이 '고깃국을 위한 충성'으로 뒤바뀌는 것은, 단순한 웃음에 그치는 게 아니다. 사실 전쟁이란 많은 경우 '고깃국'을 위한 것이었다. 한 번도 본 일이 없고 자신에게 어떤 위해도 가한 일이 없는 동족에 대한 대량 학살에 나서는 이 기괴한 일은 흔히 '성전'으로 미화되지만, 기실은 많은 부분 이익을 둘러싼 충돌이다. 물론 병사들의 이익이라기보다는 자본과 국가 권력의 이익이겠지만, 전쟁에서 생긴 이익의 극히 일부나마 병사들의 가족들에게 배분되는 효과는 있다. 그리하여 전쟁이란 '식인'의 다른 이름이 아니겠는가. '고국'은 '고깃국'이다. 단순한 말장난처럼 보이는 웃음 속에는 자못 깊은 뜻이 자리한다.
물론 고국과 고깃국의 말장난은 검열관의 엄숙주의를 자극하여 화나게 만든다. 왜 자꾸 쓸데없이 웃음을 만드냐는 검열관의 힐난에 희극작가는 대답한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손이 그렇게 가는걸요." 그렇다, 웃음이란 자연스러운 일이다. 긴장을 해체하고 같이 웃는 자들과 동류 의식을 만들어낸다. 그 자연스러운 웃음에의 충동이 비교적 강력한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무리한 요구를 받아도 이를 수용해서 다시 고쳐 쓰는 자, 동료들에게 두들겨 맞으면서까지 웃음을 만들고 싶어지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런 에너지가 창작의 원동력이겠지.
검열관에게도 기실은 웃음이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도 인간이니까. 작가를 혼쭐내어 쫓아내지만, 혼자 있을 때는 그 대사를 생각해내고 킥킥거린다. 일억이 총 단결하여 천황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워야 한다는, 제국이 강요하고 자신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엄숙주의에는 이제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갈등은 검열관의 극적 변화로 귀결된다. 그는 '박멸해 버려야 한다'고 말하던 희극 상연 극장을 찾아가 구경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극본을 더 재미있게 고치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그런 경찰관이 어디 있어? 그렇게 하면 부자연스럽잖아. 이렇게 설정하면 어때?" 뭐 이런 식이다. 그래서 검열실 자체가 '웃음의 대학'이 된다. 웃음의 사형 집행장이 웃음의 대학으로 바뀌는 대반전. 검열관은 이 대학의 교수이자 학생이다. 그는 웃음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웃음의 힘을 배우기도 한다. 희극 작가도 마찬가지이다.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고 배운다. 흔하게 발견할 수 없는, 아름다운 배움의 공동체.
그들은 이제 동지이다. 희극 작가가 징병되어 떠나는 장면. 마지막 인사를 온 작가에게 검열관은 죽지 말고 돌아오라고 외친다. 함께 희극 공연을 올리자고 말한다. '고국'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다던, '고깃국'을 위해서라면 죽음을 무릅써야 한다던, 웃음을 박멸해버려야 한다고 믿던 제국주의자의 전향.
제국은 병사들이 부상당한 채 돌아오기를 원하지 않았다. 부상병의 신체는 전쟁의 참혹함을 대중들에게 공개 전시하는 셈이었고, 부상병 치료란 총력전에 집중되어야 할 국가 자원의 '낭비'에 불과했다. 그들은 차라리 죽어야 했다, 가미가제처럼. 전사자는 추앙받았지만 부상병은 외면당했고, 훈장을 단 채로 구걸에 나서야 했다.
그런 죽음을 향해 징병되어 가는 작가의 뒤통수에 검열관이 외친다. 죽지 말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죽지 말라. 웃음이여 죽지 말라. 살아 돌아와서 함께 웃음의 대학을 다시 건설하자고 말한다.
이 연극에서는 희극 작가에게 엄혹한 검열 조건이 주어졌을 때 오히려 작품의 완성도는 높아졌다. 자신의 직업적 규칙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엄격하게 검열하고자 했던 검열관은, 검열이라는 직업적 행위를 통해 오히려 새 인간으로 재탄생한다. 웃음과 예술에 감화되고 새로운 세계에 입문한다(웃음과 춤을 통해서 인간은 인간을 넘어설 수 있다고 말한 니체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만주에서 노동자를 학대하던 경관이 예술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검열관과 희곡 작가가 만나면서 누구도 혼자서는 쓸 수 없었던 훌륭한 대본이 탄생되었다.
물론 이런 검열관은 실제로는 없다. 그들은 그저 무미건조한 책읽기와 결재 서류와 조사 보고서 작성에 시달리는 서류 노동자일 뿐이다. <웃음의 대학>을 쓴 미타니 코키(三谷幸喜)는 묻고 싶었을 터이다. 검열 권력은 예술을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을까, 예술은 어디까지 사람을 바꿔나갈 수 있을까.
미타니는 예술과 웃음의 감염력 쪽에 거는 셈이다. 극 중의 희극 작가는 검열관의 무리한 요구를 맞춰나가면서 극본을 오히려 더 훌륭한 것으로 만들어갔으며, 검열관은 자신의 직업을 배신한 채 새로운 인간으로 재탄생했다는 것이니까. 미타니는 검열의 생산적 효과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검열의 금지를 우회하는 과정에서 예술은 더 훌륭한 것이 될 수 있다. 난관을 돌파하는 과정에서 정신은 단련되고 그 표현 역시 격상된다.
검열관은 '웃음'을 재건하자고 '절규'했다. 이런 희비극적 아이러니는 총력전 체제에의 항변이겠지만, 그다지 외칠 필요까지는 없는 외침이었다. 웃음은 박멸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검열관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살아 돌아올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 하지만 그는 죽는다 하더라도 무수한 작가들, 무수한 웃음들은 이어지게 마련이다.
눈물이 동일시에 의해 발생된다면 웃음은 거리감에 의해 발생된다. 눈물이 국가 권력과 개인을 초월적으로 동일시하라고 요구한다면, 웃음은 그 까마득한 거리를 인식하도록 만든다. 숱한 전쟁 미담들이 '거룩한 죽음'을 향해 나아가기를 촉구한다면, 웃음은 그렇게 걸어가던 병사가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는 모습에 주목한다. 노모(老母)의 눈물이 눈에 밟혀 뒤돌아보다가 그랬을 수도 있겠지. 여하간 그 순간에 무중력 상태의 관념에서 만들어지는 엄숙주의는 균열되고, 인간은 신체를 가졌기에 중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각인된다.
비극이 귀족의 것이었다면 희극은 별 볼일 없는 대중들의 것이었다. 그들을 살게 하고 위안을 주고 즐거움을 주는 것이었다. 대중들의 삶이란 킥킥거리기라도 하면서 버텨야 했던 고통스러운 것이었으니까. 그들에게 웃음이란 흔히 피눈물의 다른 이름이었으니까.
말하다 보니 지금 우리도 비슷하다. <나는 꼼수다>와 '애정남'이 없었더라면 이명박 정권과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사는 일이란 얼마나 삭막했을 것인가. 애정남은 검열을 우회하면서 권력에 대한 웃음을 만들어냈다. <나꼼수>는 아예 법망의 허점을 이용해서 검열을 받지 않으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애정남 최효종이 "숨만 쉬고 살면 된다"면서 88만 원 세대의 절망을 풍자할 때 젊은이들은 웃는다. 그 웃음의 8할은 피눈물이다. 그 웃음은 지금은 그저 발산이나 위안에 불과하지만 그 에너지는 언젠가 폭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웃음의 대학'은, 징병된 희극 작가의 예정된 죽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치가 강정 마을을 구할 수 있을까요?
[인권오름] 함께 하자던 정치인들은 어디에 갔을까
딸기 평화바람 활동가 기사입력 2012-05-28 오후 1:33:50
요즈음 핫이슈는 통합진보당 문제이다. 온통 신문마다 하루가 멀다 하고 1면을 장식한다. 그런데 그게 정말 가장 큰 이슈일까. 파괴되는 구럼비, 22명이 죽어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 언론노동자들의 파업, 부실천지 4대강 사업 등등 이 사회에 중요한 일들은 통합진보당 사태만은 아니다.
사실 선거에는 평소 관심이 없었다. 투표권이 주어지고 10년 정도 투표를 하지 않았다. 정치가, 특히 정치인들이 뭔가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정에 들어오면서부터 정치인들에게 자꾸만 뭔가를 기대하게 됐다. 마을을 함께 지키는 친구들이 연행되고 마을 어르신들이 연행되어도, 우리들은 단 하루도 공사를 제대로 막아 본 적이 없었다.
삼성이라는 거대한 자본은 국가 공권력을 등에 업고 주민들을, 신부님들을, 지킴이들을 짐짝처럼 드러내고 공사를 지속해왔다. 아무리 악을 써도 우리들의 힘은 미약하기만 했다. 그래서 정치가 뭔가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정치인은 진정성이 없는 몰염치의 족속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변했다. 뭔가를 기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총선이 끝나고 잔치는 끝나버렸다. 너도나도 목소리 높여 강정 문제를 해결하겠다던 사람들은 자기 밥그릇 지키기에 급급해져 버렸다. 그리고 통합진보당의 비리는 모든 이슈를 삼키는 블랙홀이 되었다. 그 사이에 쌍용차 해고 희생자는 22명이 되었고, 강정의 구럼비는 산산조각이 나고 있는데 뭔가 해결할 것처럼 날뛰던 그 많은 정치꾼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해고자들의 생존권이, 강정주민들의 안타까운 싸움이 권력을 잡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현장에서 싸워가는 사람들은 하루하루 절대적인 공권력에 맞서 모든 불이익을 감수한다. 조사를 받고 재판장에 나가고 때론 감옥에 들어가면서 자신들의 현장을 지키고 있다. 그에 반해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싸우는 사람들이 얻은 성과들을 가로챈다.
언제나 그랬듯 강정은 또다시 외로운 투쟁 중이다. 도민들을 무시하는 제주도청에 '강정주민 살려줍서' 외치고 있다. 올레7코스를 지나는 올레꾼들에게 강정의 외로운 투쟁을 알리고, 구속 50일을 넘긴 송강호 평화 활동가를 위해 피켓을 든다. 그리고 조금만 천천히 달리라고, 제발 우리 마을에 오지 말라고 레미콘과 덤프트럭 운전수 아저씨들을 설득한다.
정부는 주민들과 활동가들의 정당한 의사표현을 막기 위해 강정마을에서의 집회와 시위를 불허했다. 국방부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예정지역을 군사시설보호지역으로 지정해 그동안 지킴이들이 해온 불법공사 감시활동과 항의 행동들을 막으려고 한다. 국가는 빠른 속도로 강정마을을 좀먹고 있다.
적어도 진보정치라는 이름을 말하고 싶다면 현장에서 눈을 때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들의 당권을 지키는 일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현장과 함께 하는 일이다. 투쟁하는 이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서 무엇을 말하겠다는 것인가. 적어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진보정치라고 말하고 있다면 말이다.
강정은 아직 싸우고 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도 싸우고 있다. 두물머리의 농민들이 싸우고 있으며, 한진의 스머프들도 싸우고 있다. 방송국피디, 아나운서, 작가, 기자들이 싸우고 있다. 대학생들이 싸우고 있으며, 청소노동자, 버스노동자도 싸우고 있다. 눈을 돌려 주변을 보자. 그리고 나와 가장 가까운 곳의 투쟁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자. 따뜻한 차 한 잔도 좋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주지 못하는 희망을 우리가 우리에게 전달하자.
따뜻한 봄바람이 부는 강정, 강정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글은 "정치가 강정을 구할수 있을까요?"라는 제목으로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 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 을 찾아가면 됩니다.)
후쿠시마 쇠고기, 타지역 생산으로 둔갑 판매
생산지 바뀌어 상당수 쇠고기 판매됐을 가능성 높아
연합 기사입력 2012-05-28 오후 1:39:00
오사카(大阪) 경찰이 후쿠시마(福島) 쇠고기를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것처럼 산지를 위장해 판매한 정육점을 적발했다고 아사히신문이 28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의하면 오사카부 경찰은 쇠고기의 원산지를 속여 판매한 정육점을 적발해 점장을 부정경쟁방지법위반 혐의로 체포하기로 했다.
문제의 정육점은 효고(兵庫)현과 오사카부에 점포를 여러 개 운영하는 식육 판매업체의 직영점으로 작년 9월부터 올해 2월 사이 후쿠시마와 미야기, 도치기현의 쇠고기 약 1.4t을 공급받아 일본 남부의 가고시마(鹿兒島)현 등으로 산지를 위장해 판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는 사고 원전이 있는 후쿠시마현과 주변 지역의 쇠고기가 생산자나 유통업자에 의해 산지가 바뀌어 광범위하게 판매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후쿠시마와 미야기, 도치기현 쇠고기는 작년 여름 방사성 세슘에 오염된 사례가 드러나면서 각각 3∼5주간 출하가 정지됐으며, 이 때문에 소비자의 신뢰를 잃어 판매가 급감하면서 가격이 폭락했다.
일본에서는 현재 국내 생산 쇠고기의 경우 산지를 '국산'으로만 표시하면 유통이 가능하지만, 슈퍼마켓 등은 소비자를 의식해 산지를 자세히 표시하도록 생산자와 유통업자에 요구하고 있다.
'항암제'와 '노인 틀니', 무엇이 더 시급한가?
[서리풀 논평] 보건의료 정책에 더 많은 민주주의를
시민건강증진연구소기사입력 2012-05-29 오전 8:29:50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매주 한 차례 발표하는 '서리풀 논평'을 동시 게재합니다. (사)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비영리 독립 연구기관으로서,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보건의료 정책에 더 많은 민주주의를
1985년 미국 오리건 주는 메디케이드(저소득층을 위한 의료 지원 프로그램으로 한국의 의료 급여와 비슷하다)가 재정 위기에 빠지자 장기 이식을 급여 항목에서 제외했다. 이 조치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일곱 살 먹은 백혈병 환자가 한국 돈으로 1억 원이 넘는 수술 비용을 마련하려고 모금 운동을 하는 중 사망하자 논란은 더욱 커졌다.
주 정부가 쓸 수 있는 재정은 한도가 있는데 어떤 병을 가진 사람이 우선 대상자가 되어야 하는지가 논란의 핵심이었다. 비싸지만 극소수의 환자는 확실하게 낫게 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인가, 싸고 흔하지만 여러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서비스가 우선인가.
이런 논란은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예컨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올리자는 데는 이론이 없지만, 노인 틀니가 먼저인지 새로 나온 초고가의 항암제가 우선인지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다.
오리건 주는 이런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길을 택했다. 주 의회의 상원의장이던 존 키츠해버는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제안한다. 미리 기준을 정해놓고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순서대로 진료 항목을 명시적으로 정해놓자는 것이었다(입법화).
당시까지 이런 방법은 전례가 없는 획기적인 것이었고, 그 때문에 여러 찬반 의견과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오죽하면 현재까지도 의의와 한계를 두고 연구와 평가가 계속되고 있다. 이 제도는 보건 정책 분야에서는 이른바 '오리건 실험(Oregon Experiment)'이라 불린다.
오리건 실험이 법으로 만들어지고 실제 적용되는 길은 매우 멀고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정책이 만들어지는 기술적이고 실무적인 과정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이 과정에서 보통의 시민들이 가진 시각과 판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대중들은 세 가지 방식을 통해 정책 결정에 참여했다. 정책을 수립하는 책임을 맡았던 위원회는 모두 열한 차례의 공청회를 열었고, 의료인과 시민단체 대표를 비롯하여 정책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의견을 폭넓게 들었다.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 방식인 지역 사회 토론회도 마흔일곱 번이나 열렸다. 주민들이 어떤 시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는지 알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일부 주민만 참여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자 한계였다. 주최 측은 일반 사람들이 많이 참여할 것을 기대했으나 참석자의 약 70퍼센트는 의료 관계자였다. 가난한 사람은 거의 없고 여유 있는 계층이 많았던 것도 문제였다. 토론회에서는 정책을 주민에게 소개하고 소집단별로 토론한 다음 토론 결과를 발표하게 했다.
세 번째 참여 방식은 주민 여론 조사이다. 전체 주민을 무작위로 뽑아 스물아홉 가지 건강 상태를 두고 무엇이 중요한지 주민의 판단을 물었다.
전체 방식은 매우 복잡하지만, 주민이 낸 의견만 가지고 결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문가의 판단과 객관적인 데이터도 중요한 기준이 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주민들이 낸 의견의 비중은 처음보다 더욱 줄었는데, 1차 결과를 두고 거센 비판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치통, 두통, 요통 같은 가벼운 병이 간 이식이나 골수 이식보다 더 우선순위가 높게 나온 것이 비판을 받은 핵심 이유였다. 결국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여 주민들의 의견을 희석시키는 방향으로 초안을 고쳤다.
오리건 실험 이후, 일반 시민이 보건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것은 익숙한 주장이 되었다. 물론, 오리건 사례에서 보듯이 보건 정책을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문성과 효율성의 문제가 가로막고 있고, 주민들이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다. 결과(건강이나 의료 혜택)가 좋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결과주의' 역시 우리 속의 방해물이다.
그러나 정책 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그 결과에 관계없이 좋은 삶을 위해 마땅히 추구해야 할 가치이다. 하물며, 심화된 민주주의를 통해 더 좋은 정책이라는 결과까지 얻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한국의 정책에는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며, 보건 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비교적 최근에 정부와 의료계가 갈등을 빚고 있는 두 가지 정책이 있다. 하나는 올해 4월부터 시행된 의원급 만성 질환 관리 제도이고, 다른 하나는 7월부터 시행하려고 하는 일부 질환의 포괄 수가 제도이다. 정부는 정책이 필요한 근거를 제시하고, 의료계는 정책이 가져올 부작용이나 부정적 결과를 근거삼아 반대한다. 갈등의 양상이 사뭇 격렬해서 의료대란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전에도 그랬지만, 찬성이든 반대든 늘 등장하는 명분이 국민을 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 국민은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한다. 역설이자 부조리지만, 이 역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거창한 이름을 가진 여러 위원회나 공청회에 소비자, 시민 대표가 참여하고 발언하지만, 아무래도 요식 행위 또는 합리화 과정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그나마 이번 정부 들어서는 그조차 귀찮은 듯 대폭 생략하거나 줄이는 일이 흔하다. 보건의료 정책은 전문성이 강하다는 것을 핑계로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하다.
만성 질환 관리제나 포괄 수가제가 시행되면 일차적으로 영향을 받는 집단은 일반 대중이다. 정부와 의료계가 심각하게 다투는 것을 보더라도, 재정이든 의료 이용이든 그 영향이 작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당사자의 목소리는 아주 작고, 참여할 수 있는 공간도 찾기 어렵다.
그 결과, 당사자의 이해충돌과, 그 이해를 조정하고 무마하려는 정책만 두드러져 보인다.
이제 보건의료 정책에도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형식적인 공청회나 전문가가 대신 참여하는 위원회, 민주주의를 흉내 내는 요식 행위로는 충분하지 않다. 더 많은 대중이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적 공공성'에 기초한 정책 결정과 집행이 필요하다.
참고 자료
Caitlin J. Halligan. "Just What The Doctor Ordered : Oregon's Medicaid Rationing Process and Public Participation In Risk Regulation". Georgetown Law Journal, 83, 1994-1995.
소아암 환자를 위한 모금 방송, 정상일까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청년 사회복지사가 만드는 복지국가
이명묵 사회복지책마을 이장 기사입력 2012-05-29 오전 8:29:55
21세기 오늘을 살고 있는 한국인, 그중에서도 청년의 세대적 사명을 생각합니다. 20세기 전반, 우리 선대는 조국 독립을 위해, 해방 직후에는 통일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폐허된 나라를 지독한 가난에서 일으켜 세워 오늘의 물질적 풍요의 기초를 다진 분들이 지금의 70~90대입니다. 30여 년간의 군부독재와 맞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이 땅에 자유의 길을 열은 분들이 지금의 50~70대입니다. 20세기 한 세기 간의 선대의 헌신으로 독립과 풍요와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20~40대는 (삼포세대의 고통을 안고 있음에도) 선대 3대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선대의 각 세대는 살았던 시대는 달라도, 본인들이 겪고 있는 시대적 고통을 후대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생각은 같았다고 봅니다. 또한 그들은 당대의 과제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21세기 초반, 이 시대의 과제는 무엇입니까? 나는 '분단의 고착과 통일의 미제', '물질 예속의 가속화 속에서의 인간성의 피폐화', '양극화의 심화', '고용문제에 따른 현실의 불안',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미래경제의 불안', '불완전한 민주주의' 여섯 가지를 꼽습니다. 이는 곧 여섯 가지 대안인 '평화', '정신문화와 탈상품화', '사회연대', '일자리', '생애복지', '온전한 민주주의'를 목표로 삼게 합니다.
이 시대의 난제에 대한 해법은 '복지국가'
그러면 이 대안의 근간들은 무엇일까요? '평화'는 국내뿐만 아니라 동북아 사회·경제·정치·군사의 안정과 균형에서 담보되는 것으로, 사실 "복지국가가 답이다"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다섯 가지 대안의 근간으로 '복지국가'를 생각합니다. 물신주의는 정신의 결핍에서 오기도하지만 보통은 불평등한 사회구조에서 일상 생존의 조건(교육, 일자리, 주거, 보건, 노후)이 각자도생에 맡겨짐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흥하는데, 보편적 복지로 개개인 삶이 불안하지 않게 되면 물신주의 기세가 수그러든 자리에 정신문화가 들어서 인간성이 회복될 것입니다. 물신주의와 금융자본주의(21세기 천민자본주의, 약탈자본주의)가 낳은 양극화는 사회집단, 경제단위, 지역 간에서 발생되는데, 각 단위 간의 평등성이 존중되는 사회연대 틀의 기둥인 복지국가에서 그 간극과 격차는 좁혀질 것입니다. 실업과 비정규직 문제뿐만 아니라 고용의 심리적 안정은 노동과 복지를 연계하는 복지국가 체제가 대안입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재정 부담이 크지만 경제적 효과거 가장 큰 것으로, 생애 주기별 보편적 사회정책이 체계화된 복지국가 전략 없이 인구문제 해결책은 없습니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쟁취한 1987년 이전을 제1의 민주화 운동기라면, 이후 25년이 지난 시점에 사회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를 논하는 것은 온전한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는 제2의 민주화 운동입니다. 2012년에 제2의 민주화 운동을 준비하는 것은 46년 전에(1966년) 선포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따른 인권운동이기도 합니다. 즉 정치적 민주주의에 이어 사회적·경제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사회적·경제적 권리를 담보하는 복지국가 체제를 갖추자는 것입니다.
복지국가 담론이 더욱 뜨거워야 하는 이유
우리나라에서 2010년부터 회자된 '복지국가' 담론은 일부 싱크탱크와 학자들과 시민사회단체가 촉발시켰고 그것을 정치권과 매스미디어에서 받아 활용였으나, 4.11 총선이 끝나면서 1차 흥분기는 가라앉고 있습니다. 6.2 지방선거에서 4.11 총선까지 약 2년간의 정치시즌과 맞물려 복지국가 담론은 상당히 정치적이었습니다. 여야 모두 표퓰리즘적이었다는 것이 4.11 총선이후 드러났습니다.
그러면 12월 대선 때 다시 반짝하고 다음 선거철까지 없던 것으로? 복지국가 논쟁을 정치권에만 맡겨두면 이러한 악순환은 반복될 것입니다. 최근 복지국가 담론의 후퇴가 안타깝기는 해도, 재정비 기회로 삼는다면 오히려 호기일 수 있습니다.
복지국가 담론이 더욱 뜨겁게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당장의 우리 사회 6대 과제에 대한 해법으로 복지국가 이상의 최적의 대안이 없습니다. 둘째 지난 50년 간 성장일변도의 국가경영에 따른 공과를 건강한 국민공동체로의 전환이 필요한 지점에 다달았고 새로운 국가이념은 복지국가이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셋째 전혀 이질적 체제이면서 심한 격차를 보이는 북한과의 통일을 대비한다면 남북한 주민이 융합할 수 있는 있는 체제를 고민해야하는데 경쟁보다 연대를 원칙으로 하는 복지국가가 남한에서 먼저 운용되어야 합니다. 넷째 글로벌 국가 경쟁시대에 우리나라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생존을 위해서도 복지국가는 필요합니다.
그러면 복지국가 논쟁은 누가 주도하고 누가 참여해야 하는가? 지금까지의 논쟁은 '정당'과 '선거'가 주도했습니다. 그들의 관점은 표퓰리즘 일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대로 국민들 관점의 표퓰리즘을 생각합니다. 정당이 국민을 향하여 "복지를 줄 테니 표를 주세요"가 아니라, 국민이 정당을 향하여 "복지국가를 받으면 표를 주겠다"가 되는 겁니다. 국민이 주권자이고,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권리에 기반한 국민의 정치의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세금 더 낼 테니 나와 내 자식의 사회적 경제적 권리를 보장하라"입니다. 그런데 한 나라에서의 (복지)국가 상은 국민들의 합의 수준 그 자체이기에,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대한 국민의 사회·철학적 인식이 변수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충분한 복지국가'로 이해하는 국민이 적지 않습니다. 보편적 복지정책은 거지근성만을 키울 뿐이라고 주장하는 국민도 적지 않습니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다가는 남유럽 국가들 꼴 난다고 확신하는 국민이 많습니다.
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의 역할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 사회복지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복지국가 담론이 사회복지학자나 사회복지사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것에 자존심이 상할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 현장의 일상과 연관이 없어 보일수도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필자는 복지현장의 사례들대부분이 복지국가 논쟁과 직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복지국가 담론에 지금이라도 함께해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먼저 현장 이야기입니다. 사회복지사가 만나는 클라이언트 개인의 문제는 가족의 문제이고, 가족의 문제는 지역이나 사회문제이고, 그 문제는 사회정책이나 사회체제와 연결됩니다. 사회복지서비스는 사랑이고 전문가적 영역으로 사회복지사 개인의 역량이기도 하지만, 그 스펙트럼의 한쪽에는 우리 사회 공공 안전망의 역량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더 근본적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즉 개인의 문제를 개인과 가족의 문제로 한정짓기 보다는 사회적 관점에서 인식하고 공공의 체제를 갖추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사회복지사가 복지국가 논쟁 주체의 한 세력으로 등장하길 기대합니다. 복지국가 담론의 주요 이슈는 보육·교육, 일자리, 주거, 건강, 노후입니다. 이것은 사회복지학과에서 공부했던 최우선 사회보장 주제이고, 국민의 복지권과 사회권인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 가장 마땅한 전문가는 사회복지사입니다. 이 다섯 가지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주민들을 전국의 사회복지사는 일상으로 만나고 있습니다. 그들의 문제를 지금까지는 사회복지사 개인이나 복지시설 단위 차원에서 지원하고자 했다면, 복지국가 담론은 사회적 공공의 차원에서 (일시적 대증적이 아닌) 일상의 체계로서 고민하는 겁니다.
연말이면 매스컴에서 백혈병이나 소아암 환아 치료를 위한 모금 프로그램을 합니다. 이 나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생명을 모금성과에 의존한다? 대한민국에는 국민의 나라가 없다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사는 케이스워커이고 프로그램워커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소셜워커로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전문가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활동가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기에 너무 힘들어하는, 고통 받고 있는 국민들의 삶을 속속들이 그 실상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집단이 사회복지사입니다. 복지정책은 현장에서 나와야 합니다. 복지국가 담론은 현장 사회복지사가 주도해야 합니다.
청년사회복지사의 세대적 리더십
앞으로의 복지국가 쟁점은 크게 두 가지 일 것입니다. 하나는 어떤 유형의 복지국가냐입니다. 영미형이냐 북유럽형이냐 아니면 제3의 모델이냐? 또 하나는 개별 이슈입니다. 무상의료, 국민연금, 비정규직, 대학등록금, 아파트값, 실업과 비정규직, 복지재정과 증세 등등. 물론 이러한 이슈를 본인들의 과제로 이해하는 사회복지사가 많지 않습니다. 사회복지가 '삶의 질'의 문제라고 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국민들 삶의 질을 좌우하는 이러한 문제가 사회복지사에게 마지막 관심사라고 하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회복지사는 긍정적으로는 '사랑의 천사', '복지헌신자' 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부정적으로는 '온실 속의 난초', '월급쟁이 복지사', '정부 복지정책 하청업 종사자' 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청년 사회복지사가 복지국가 담론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주도적으로 운동하는 것은 피동적 복지실천가에서 능동적 복지활동가로 정체성을 변환하는 것입니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사회·경제적 권리로 인식하면서 제2의 민주화 운동 또는 인권운동을 통하여, 우리 사회에서 주변인으로 한 발 물러섰던 자리에서 '선구자'로 자리 변환하는 것입니다. 여섯 가지 이 시대의 과제를 사명으로 고민하면서 복지국가 운동을 하는 것은 청년 사회복지사들이 앞장서서 '세대적 책임'을 자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1세기 초반을 살았던 청년 사회복지사들이 한국사회 복지국가 운동을 주도했다고, 그들 때문에 5000만 국민의 삶의 질이 달라졌고 사회연대가 구축되었다고, 평가받기를 기대합니다.
잠든 아이의 키, 옆으로 재고 싶지 않다면…
[토론회]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삶의 질 향상 방안' 포럼
김덕련 기자 기사입력 2012-05-30 오전 7:58:56
영화 <와일드카드>(2003년 개봉, 감독 김유진)에서 눈길을 끈 장면이 있다. 형사인 아빠가 아이의 키를 옆으로 재는 모습이다. 장시간 격무에 시달리다 집에 들어온 아빠는 그런 아빠를 기다리다 잠든 아이의 키를 옆으로 잴 수밖에 없다. 얼마나 컸는지 확인하기 위해, 깊이 잠든 아이를 깨워 일으켜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영화에선 유쾌하게 표현됐지만 사실 서글픈 이야기다. 문제는 이 서글픈 장면이 현실에는 없고 영화에만 있을 뿐이라고, 혹은 현실에 존재하더라도 형사에게만 해당하는 일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 노동자의 1년 평균 노동시간은 2100시간이 넘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444시간(약 2.6개월, 2010년 기준)을 더 일한다. 현실이 이런데,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이런 장시간 노동 체제를 바꾸고자 하는 이들이 29일 오후 한국노총 대회의실(서울 여의도)에 모였다. 이날 대회의실에서는 국제사무직노조 한국협의회(UNI-KLC)가 주최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삶의 질 향상 방안' 포럼이 열렸다.
"노동시간 단축에 기여 못하는 노조들, 반성해야"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손미아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포럼의 발제를 맡았다.
배 연구위원은 "한국의 장시간 노동 비중이 다른 나라보다 매우 높다"며 외국과 비교했다. 한국 노동자 중에서 주 40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은 82퍼센트에 이른다(2009년 기준). 일본(64.1퍼센트), 독일(51.9퍼센트), 프랑스(34.5퍼센트)보다 훨씬 높다.
한국의 장시간 노동 체제의 특징 중 하나는 시간제 노동의 비중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배 연구위원은 "전일제 노동 중심의 고정화된 고용 모델에서 다양한 형태의 정규직 시간제 노동이 병존하고 전일제에서 시간제로 전환 및 역전환이 가능한 고용 모델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배 연구위원은 "특별한 때에만 해야 할" 연장·휴일노동 같은 초과노동이 일상화돼 있다는 데 주목했다. "완성차 업계의 주당 근로시간은 휴일 특근을 포함해 평균 55시간 이상이며 주말 중 하루는 특근을 하는 것이 거의 관행처럼 돼 있다." 완성차 업계의 주당 노동시간은 전체 산업 평균(41.3시간)보다 14시간 정도 길다. 배 연구위원은 완성차 업체들이 "연장근로시간 규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배 연구위원은 "노조가 있고 임금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자동차, 조선, 은행업 등의) 산업에서 (……) 대기업 노사가 연차휴가보다는 연차수당 지급을 선호하며 담합했고, 노조들도 주 40시간제 시행을 맞아 노동시간 단축의 대의(를 따르기)보다 조합원들의 실리주의적 요구에 굴종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배 연구위원은 "장기근속자가 많은 조선, 자동차, 은행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은 주 40시간제가 도입된 후에도 거의 1개월분 이상의 통상임금을 연월차수당으로 받고 있다"며 "이런 걸 보면 법으로 (정해) 연월차수당을 안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그래야 노동시간이 줄어들 수 있고", 그만큼 노동시간 단축이 중요한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배 연구위원은 노조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노조가 노동시간 단축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노조들, 반성해야 한다. 노조가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연구자로서 보기에 한심하다."
이에 더해 배 연구위원은 월 최대연장근로시간제(월 50시간) 도입 등 장시간 노동을 줄일 법적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체 주기 파괴 포함한 교대제는 발암물질"
손 교수는 장시간 노동, 야간 노동, 교대제 근무가 인체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짚었다.
먼저 손 교수는 주야 맞교대 근무를 하면서 야간 노동을 한 자동차 노동자들의 생체주기 변화에 관한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겉으로는 건강하고 멀쩡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야간 노동을 지속한 결과 내부 생체 시계가 교란되면서 생체 주기가 파괴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손 교수는 이런 현상이 "각종 장기, 심혈관계, 내분비계, 소화기계, 재생산에 관련된 기관 등을 손상시키며 특히 암을 유발한다"고 우려했다.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제암기구는 (……) '24시간 생체 주기의 파괴를 포함한 교대제는 인체에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발암물질이다'라고 발표했다."
손 교수는 이 대목에서 "여성 교대 근무 노동자들은 미숙아나 저체중아를 출산할 위험이 높"고 "월경 주기 불순, 임신 불능, 유방암 증가"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야간 노동이 특히 여성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장시간 노동이 우울증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했다. "1주일에 60시간 이상 노동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우울증에 빠질 위험이 2-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손 교수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해달라"
발제에 이어 각 부문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실태를 발표하는 자리가 이어졌다.
유주선 전국금융산업노조 정책본부장은 은행원들이 1년 평균 2572시간이라는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하루 평균 2.51시간의 초과노동을 하지만, 보상은 평균 0.85시간에 대해서만 받고 있다고 했다(보상율 34퍼센트). 이처럼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청 한도 제한'으로 조사됐다.
유 본부장은 지난 15년간 일반 은행의 점포가 962개 늘어났지만, 정규직은 2만8657명 감소하고 비정규직이 1만6555명 증가했다고 밝혔다. 정규직 인력이 점포당 약 40퍼센트 정도 줄어들었다는 설명이다. 이에 비해 "10년간 국내 은행들은 총자산이 115퍼센트, 자기자본이 250퍼센트, 당기순이익이 213퍼센트 늘어나는 등 크게 성장했다"고 지적했다.
유 본부장은 정규직을 늘리고, 연장노동과 휴일노동을 법정 한도 이상으로 허용하는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금융업을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올해 실태조사를 한 결과 병원 노동자들이 하루 평균 3시간 정도 초과노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또한 조사 결과, 병원 노동자들이 법정 연차휴가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핵심 이유는 "인력 부족"인 것으로 조사됐다. 나 실장은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가동돼야 하는 병원 사업장에서 교대 근무제는 불가피하다"면서도 "교대 근무자를 보호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줄여야 하지만 한국의 실정은 그와 정반대"라고 우려했다.
나 실장은 "보건의료 산업의 연장근로는 (24시간 가동돼야 한다는) 업무 특성 때문에 발생하기보다는 인력 충원을 제대로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측면이 크다"고 밝혔다. "인력을 확충하고 열악한 교대 근무제를 개선한다면, 현재 보건의료 산업에 정착돼 있는 3교대 근무제로 주 40시간을 준수하면서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 실장은 "보건의료 산업을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은행권과 보건의료 부문뿐만 아니라 사무금융, 유통업, 우편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실태도 공표됐다.
포럼 참석자들은 장시간 노동 체제를 바꿔야만 노동자들이 인간적인 삶을 꿈꿀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노동시간 단축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것이다. <와일드카드>에 비유하면, 아이의 키를 옆으로 재는 일조차 못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손학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이날 행사장을 찾아 축사를 했다. 손 상임고문은 "노동자에게 저녁이 있는 삶, 휴일이 있는 삶, 휴가가 있는 삶을 보장해야 한다"며 "노동시간 단축은 미완의 한국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문제가 직결된다"고 말했다. 손 상임고문은 축사를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행사장을 떠났다.
"'대학병'이 경제성장률 까먹는다"
삼성연 "고졸자 일할 풍토 개선 필요"
이대희 기자 기사입력 2012-05-30 오후 2:50:03
한국 사회의 맹목적 대학 입학 수요가 경제성장률을 갉아먹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30일 류지성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성공하는 세상'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와 같이 밝히고, 고졸자들이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대학병' 때문에 경제성장률 1%p 잃어
류 연구위원은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진학률에도 불구하고 인적자본 성장률은 1991년 0.96%를 정점으로 2011년 0.86%까지 하락했다"며 "최대 42%로 추정되는 대졸 과잉학력으로 인해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이 늦어진 결과 2009년 이후 노동투입의 경제성장 기여도가 마이너스로 반전되었다"고 지적했다.
인적자본 성장률이란 교육이 노동생산성 향상에 기여한 정도를 나타내는 척도다. 노동자가 교육에 따라 더 높은 노동생산성을 갖게 되는데,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자본축적이 높을수록 인적자본 성장률이 커진다.
즉, 인적자본 성장률이 낮아졌다는 건 노동자에게 투입하는 교육의 질과 양은 늘어났으나, 그로 인해 축적되는 자본 수준은 떨어졌다는 얘기다. 인적자본 성장률이 낮아진 만큼 노동시장에 투입되는 학력은 과잉이라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청년층이 학력을 높이기 위해 노동시장 진출을 늦춤으로 인해 발생하는 연간 기회비용은 최대 19조 원에 달했다. 과잉학력으로 인한 기회비용, 즉 등록금 부담 증가와 임금 손실액은 4년제 대졸자의 경우 최대 14조7660억 원에 달했고, 전문대 졸업자도 4조2370억여 원으로 추산했다.
류 연구위원은 "4년제 대졸자의 경우 과잉학력으로 인한 1인당 기회비용은 1억2000만 원에 달한다"며 "대졸 과잉학력자 42%가 대학진학 대신 취업하여 생산 활동을 할 경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01%포인트 추가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달리 말하면 현재의 과도한 대입 수요로 인해 1%포인트 추가 성장할 기회를 잃었다는 뜻이다. 입시 열병이 국가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대학 입시 의존은 사회적 비용 증가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류 연구위원은 지적했다. 지난해 현재 한국의 총 사교육비는 20조1000억 원으로 GDP의 1.63%에 달한다.
류 연구위원은 "자녀가 2명인 경우 가계 월평균 소득 384만 원의 12.5%인 48만 원이 사교육비로 지출되는 셈"이라며 "대학진학 기회비용과 막대한 사교육비를 더하면 총 39조1000억 원(GDP의 3.2%)에 달하며, 이는 올해 국가일자리예산(10조 원)의 약 네 배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현재 한국의 상황이 대학에 가지 않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류 연구위원은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고, 고졸자들이 직업을 선택해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 연구위원은 "지난 10년 간 상장사 고졸 출신 임원은 7.2%에서 2.6%로 급감했다. (고졸 취업자의) 임금은 4년제 대졸자의 77.5~79.4% 수준으로 고착되어 있다"며 "고졸자 일자리의 질 보장, 지속 가능한 종합적인 처방과 접근이 전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고졸자들의 취업 현실도 녹록지 않다고 그는 지적했다. 지난해 말 현재 고졸 청년층의 고용률은 59.1%, 실업률은 7.9%에 달한다. 이에 반해 대졸이상자의 고용률과 실업률은 각각 74.1%, 7.2%로 모두 고졸자보다 양호하다.
일자리의 질도 낮다. 고졸 취업자 중 기능ㆍ기계조작 단순노무 종사자가 38%, 서비스 판매 종사자가 32.8%에 달한다. 취업환경 또한 열악해 상용직 비중은 47.3%에 불과하다. 절반가량이 정규직에 준하는 취업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셈이다. 전문대졸 이상자의 상용직 비중은 72.4%다.
류 연구위원은 대입 중시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 우선 기업이 노동자의 학벌 대신 개인 능력에 맞는 업무를 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또한 기업이 고졸자를 즉시 활용할 수 있도록 산학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고교 교육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대졸자에 맞춰져 있던 채용 기준을 고졸 수준으로 완화하고 직군전환제도를 적극 활용할 필요도 있다고 류 연구위원은 강조했다. 사회적으로 학력을 중시하는 풍토를 개선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그는 밝혔다.
사무실에서 반바지와 샌들을 허하라
[창비주간논평] '쿨 패션'으로 원전 전기 줄이자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탈핵에너지국 담당국장 기사입력 2012-05-30 오후 8:45:20
올여름엔 서울시청을 한번 구경 가볼까 한다. 새로 지은 청사도 구경할 겸 공무원들도 구경할 겸. 시청사 천장에는 반투명 태양광 전지판이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한국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이라는 공무원들이 넥타이와 양복을 벗고 반팔에 반바지, 샌들을 신고 있을 것이다.
절전과 재생가능에너지 도입으로 원전 1기를 줄이겠다고 선언한 서울시는 올여름 '쿨비즈'(Cool Biz) 운동을 넘어선 '슈퍼 쿨비즈' 운동을 시작한다고 한다. 8년 전 일본에서 시작된 에너지절약 운동인 쿨비즈는 쿨 비즈니스(Cool Business)의 줄임말인데, 우리 정부는 2009년부터 '쿨맵시'로 용어를 바꾸어 운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이 운동을 추진하는 공무원들은 고작 넥타이 정도를 벗는 데 그치고 여전히 한여름에도 긴팔 긴바지 양복에 구두를 신었다. 그런데 서울시 공무원들은 반바지에 샌들까지 허용한다고 한다. 공무원 사회를 경험해본 이들이라면 믿기지 않을 파격적 조치다.
한여름의 건물 안은 왜 이렇게 추울까
한여름에 관공서나 은행, 업무용 빌딩을 들어설 때면 가방에 넣어둔 긴팔 겉옷을 꺼내 입어야 한다. 너무 더운 여름날에는 가끔 더위를 피해 이런 건물에 들르기도 하지만 오래 있지는 못한다. 심한 온도 차이로 피부 표면이 축축해지는 느낌까지 드니 겉옷을 껴입지 않으면 감기 걸리기 맞춤이다. 옷으로 몸의 한기가 좀 가시기는 하지만 샌들 신은 맨발이 시린 것은 어쩔 수 없다. 밖은 30도를 넘는 무더위로 푹푹 찌는데 건물 안은 가을 날씨처럼 선선하다 못해 춥기까지 하다. 일하는 사람들의 복장이 긴팔인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여름에 어울리지 않는 긴팔 긴바지 양복 차림이라서 이렇게 춥게 냉방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춥게 냉방을 해서 그런 차림을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작년 9·15 정전사태가 났을 때 한 대기업에서 일하던 조카는 냉방으로 추워서 겉옷을 입고 있었고 정전사실도 몰랐다고 한다. 양복이 필요 없는 외부사원이라 겉옷을 준비한 것인데, 제한송전이 감행되는 와중에도 과냉방은 계속되고 있던 것이다. 보험 업무를 하는 친구를 만났을 때는 긴팔 양복에 넥타이까지 맨 그이가 안쓰러워 시원한 카페를 골라 들어갔다. 그 친구 말이 직업상 어쩔 수 없는 옷차림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편견이 한여름의 그의 복장을 규정했다는 것인데, 글쎄, 우리가 그렇게 꽉 막힌 고리타분한 사회였나 싶다.
대도시 전기소비의 대부분은 냉난방을 위해서 쓰인다. 그래서 정부당국은 여름과 겨울이면 전기절약의 목소리를 높인다. 일본에서도 지난 5월 5일 전기 생산의 30%가량을 차지하던 54기 원전이 모두 멈춘 뒤, 이번 여름을 원전 없이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고심하고 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 냉방용 전기를 절약하는 것이다. 이제 노타이를 넘어서 반바지에 샌들까지, 슈퍼 쿨비즈 운동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일본은 원전 전기 없이 여름을 무사히 나는 게 목표고 서울시는 원전 1기 줄이는 게 목표다. 목표가 확실하니까 절전 운동이 거침이 없다. 반면, 목표가 애매한 정부 당국의 수요관리 결과는 밝히기가 무안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수일 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제3차 전력수급계획에서 2006〜2011년 사이 연평균 전력수요증가율은 2.4%로 예상되었으나 실제로는 그 배에 달하는 4.8%로 기록되었다. 전기소비를 줄이는 수요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결과, 우리나라는 우리보다 GDP가 높은 독일이나 일본보다 1인당 전기 소비량이 더 많다. 지난 10년간 2배 가까이 증가했으니, 세계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전기소비 증가 국가라 할 만하다.
손쉽고 간편한 방법으로 원전 전기를 줄일 수 있다
전기는 다른 에너지원을 이용한 2차 에너지로 고급에너지라 할 수 있다. 전기를 많이 쓴다는 것은 그만큼 자원을 낭비하고 지구를 파괴한다는 의미다. 더욱이 전기로 냉난방을 하는 것은 더 아까운 낭비다. 화력이든 원자력(핵분열 에너지)이든 전기를 만들기 위해서 먼저 열을 생산한다. 이 열의 30~40%만이 전기가 되는데 이 전기로 다시 열을 만들어 냉난방을 하는 과정에서 손실이 또 발생한다. 냉방 역시 열차이를 이용하기 때문에 열을 발생시키는 것은 마찬가지다. 결국 전기로 냉난방을 하게 되면 그 과정에서 버려지는 에너지가 80%는 되는 셈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손실이 발생하는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건물이 잘못 지어져서 너무 덥거나 춥기 때문이다. 더운 여름날 그늘에 피해 있으면 시원한데, 건물 안은 냉방을 하지 않으면 그늘인데도 숨막힐 만큼 덥다. 유리건물인 경우 온실 효과로 그야말로 찜통이다.
한편으론 전기요금이 상대적으로 싼 것도 문제다. 집에서는 에어컨 좀 틀었다 하면 전기요금 폭탄을 맞는데 업무용 건물은 가정용보다 전기요금이 저렴하고 누진율도 없어서 전기를 많이 써도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다. 환경운동연합 건물은 전기 대신 가스로 냉난방을 한다. 전기변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60~70%의 손실을 아끼는 현명한 방법이다. 하지만 전기로 냉방을 할 때보다 비용은 많이 들 것으로 보인다.
건물의 단열을 높이고 전기요금 체계를 정상화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여름에 반바지에 샌들을 신으면서 냉방전기를 줄이는 것은 손쉽고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나아가서 원전 전기를 줄이기 위함이라고 하니, 그대의 멋진 쿨 패션은 원전의 위험으로부터 우리와 우리 아이들을 지키는 멋진 선택이다.
삼성전자에서 또 희귀병 사망…발병 당시 만 18세
올해만 4번째 '삼성전자 사망자'…화학물질 묻은 LCD 패널을 손으로 자르는 일 하다 발병
김윤나영 기자 기사입력 2012-06-03 오전 10:24:08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노동자였던 고(故) 이윤정(33) 씨가 '산재 소송' 결과를 보지 못하고 지난달 7일 뇌종양으로 사망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삼성전자 사망자'가 나왔다.
삼성전자 LCD 천안공장에서 일하던 중 재생불량성빈혈에 걸려 퇴사한 윤모(32) 씨가 발병 13년 만인 지난 2일 오후 10시경 끝내 숨을 거뒀다. 윤 씨는 올해 들어서만 4번째로 발생한 '삼성전자 희귀병 사망자'다. 산재 신청을 애초에 포기하거나 산재 판정을 기다리다 지친 환자들이 시간이 흘러 이제는 하나둘씩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고(故) 윤 모 씨는 군산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99년 6월 삼성전자 LCD 천안공장에 입사했다. 입사 당시 고인은 회사가 실시한 건강검진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으며, 집안에 혈액관련 질병 이력도 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화학물질이 묻은 LCD 패널을 손으로 자르는 일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인 1999년 11월 말, 윤 씨는 공장에서 일하던 도중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고 희귀병인 재생불량성빈혈 진단을 받아 같은 해 12월 퇴사했다. 이후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13년째 수혈에 의존해 살아왔다. 발병 당시 윤 씨의 나이는 만 18세였다.
지난달부터 급격히 상태가 나빠진 윤 씨는 응급실에 입원했고 심한 통증으로 모르핀주사에 의존했다. 숨지기 직전에는 양쪽 대퇴부 고관절이 70% 괴사했고, 온몸에 검붉은 반점과 멍이 들었으며 하혈이 멈추지 않았다. 방광은 물론이고 폐에까지 피가 들어찼던 그는 결국 지난 2일 사망했다.
윤 씨는 입사 후 검은색 유리재질의 LCD 패널을 자르는 일을 맡았다. 생전에 그는 "바로 앞 공정에서 독한 냄새가 진동하는 화학물질을 LCD 패널에 발라서 넘겼고, 3조 3교대로 일하면서 화학물질이 묻은 패널을 면장갑만 끼고 손으로 조각 내서 잘랐다"고 증언했다. 고인은 또한 유리패널을 자르는 과정에서 미세한 유리가루에 노출됐고, 설비가 고장 나면 직접 화학약품이 묻은 기계부품을 교체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LCD도 반도체처럼 감광제 및 유기용제와 여러 화학물질을 사용해 유리기판을 가공하는데, LCD는 반도체보다 크기가 크기 때문에 제품 한 개당 화학물질 사용량이 더 많다"며 "윤 씨가 LCD 패널에 묻은 희귀병(혈액질환)을 유발하는 화학물질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윤 씨가 19살에 희귀병에 걸려 삼성전자를 퇴사한 이후로 윤 씨 모녀는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전락했다. 정부에서 월 40만 원을 받으며 근근이 생활한 윤 씨는 골수이식을 해야 했지만, 경제 형편이 어렵고 맞는 골수도 없어서 연명치료를 이어왔었다.
고인의 빈소는 고향인 전북 군산의 월명장례식장에 차려졌다. 한편, 윤 씨가 일하던 삼성전자 LCD 사업부는 지난 4월 삼성디스플레이로 분사됐다.
道, 농촌유학 지원조례 제정 추진
김종표 | kimjp@jjan.kr 승인 2012.05.29 00:30:13
전북도가 도내 농촌유학 활성화를 위해 관련 조례를 제정, 예산 지원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도에 따르면 현재 도내에서 체계적으로 농촌유학 시설을 운영 중인 곳은 정읍과 완주·장수·임실 등 4개 시·군 9곳에 이른다.
도가 이들 9개 시설에 대해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도서구입 및 화장실·세면장 등 시설개선 사업에 모두 1억6600만원의 예산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따라 도는 농촌유학 지원 조례를 제정, 해당 시설 법인화 등을 통해 도비 보조의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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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정신병원 사건, 국가인권위 직권조사 검토
서신검열·통화 감청 등 진정권 침해행위도 조사키로
이강모 | kangmo@jjan.kr 승인 2012.05.30 00:21:54
속보= 정읍의 한 정신병원에서 벌어진 환자 인권유린 사건과 관련 국가인권위원회가 해당 병원에 대한 직권조사에 나설 방침이다. (본보 5월 30일자 6면보도)
30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정읍시 A정신병원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조만간 인권침해조사 소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편지 서신검열 및 전화 통화 감청 등의 진정권 침해행위에 대해서도 별건으로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국가인권위 관계자는 "A병원은 이전에도 이번 사건과 비슷한 5건 정도의 진정이 접수돼 조사가 진행 중이었다"며 "진정서 개봉 및 발송을 제한한 사안에 대해서도 인권위법 위반 여부를 따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법 57조에는 '진정을 허가하지 않거나 방해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에 앞서 전주지검 정읍지청은 지난 29일 환자들을 수시로 폭행하는 등 가혹행위를 저지른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등으로 정읍 모 정신병원 기획과장 김모씨(32) 등 병원관계자 3명을 구속기소한 바 있다.
이들은 입원을 거부하거나 병원처우에 불만을 표시한 환자를 무참히 폭행했고 이들 가운데 2명은 자살했고 1명은 병원 격리실에서 의문사한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또한 A병원에 대한 압수수색 결과 병원 행정관리부장 서류철에서 환자들이 국가인권위와 수사기관에 낸 진정서가 개봉된 채 무더기로 발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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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동거하는 30~40대 자녀 10년새 91% 증가
서울시 48만명…`부모가 자녀 부양 시대' 도래
연합 | yonhap@jjan.kr 승인 2012.06.01 09:41:04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부모가 자녀를 부양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서울지역에서 가구주인 부모와 동거하는 30~40대 자녀가 10년새 90% 이상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는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조사' 등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가구주인 부모와 동거하는 30~40대(30~49세 연령) 자녀가 2000년 25만3천244명에서 2010년 48만4천663명으로 10년새 91.4%(23만1천419명)나 늘었다고 1일 밝혔다.
이 기간에 30~40대 인구 중 가구주인 부모와 동거하는 자녀 비율도 7.6%에서 14.7%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가구주인 부모가 자녀와 함께 사는 이유에 대한 조사(통계청 2011년 사회조사)에서는 `자녀가 경제적 이유 등으로 독립생활이 불가능해서' 29.0%, `손자녀 양육 등 자녀의 가사를 돕기 위해서' 10.5%로 자녀부양 때문에 함께 산다는 응답이 총 39.5%에 달했다.
이는 `경제·건강의 이유로 본인의 독립생활이 불가능해서'라는 응답(32.3%)보다 높았다.
서울시민 중 자녀가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비율도 2006년 60.7%에서 2010년 30.4%로 4년새 절반으로 줄었다.
향후 자녀와 함께 살고 싶다는 60세 이의 노인의 비중은 2005년 49.3%에서 2011년 29.2%로 6년새 20.1% 포인트나 감소해 노후를 자녀에게 의지하지 않으려는 부모가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저출산·고령화 사회로의 변화, 만혼·미혼·이혼의 증가, 가치관 변화 등으로 부모가 성인 자녀를 부양하는 가구가 늘어나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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