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농담조로 얘기했지만 방학되자마자 독서모임을 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미녀 선생님들과 만나지 못해서(주변에 사정을 얘기하면 다들 나를 부러워한다. 꽃밭에서 논다고. 특히 아내는 살짝 질투까지 한다. 근데 귀엽다. 그래서 더 놀린다^^). 아는 척 할 곳이 없어져 허전한가? 그 원인을 찾다보니 도달한 출구는 독서모임에서 내가 오히려 더 많이 상구했기 때문이다.(이기적인 놈!) 모임의 최대수혜자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그래서 내 입장을 이해하실 분이 내년에 나왔으면 좋겠다. 5기에게 <교육본위론> 독서모임을 이끄실 근스승을 하신다면 엄청난 복을 받으실 것이다. 내가 받은 그 충만한 사랑을 경험하시면 내 말이 헛말이 아님을 알터.
1학기 동안 나에게 다가온 격렬한 상구체험은 여기 다 펼칠 수 없지만, 그 근거가 되는 활동은 독서모임에서 비롯한다. 그 중 하나만 고백할까? <창간사> 읽을 때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삼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를 느꼈다. 그 때 울었으면 여 선생님들 앞에서 얼마나 쪽 팔리겠는가? 그래도 남자 자존심이 있지... 그날 모임을 마치고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앉아 10여분 목놓아 울어야했다. 혜가가 되기로 작정한 것이다.
얼마만큼 다가갔는지 모르지만 난 지금 교육의 수레바퀴를 충실히 전개시키고자 노력한다. 몸부림 친다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그래야 내가 살아있다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하지만 뜻대로 체험이 진행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디 진행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끈을 계속 조이고자 한다. 이제는 논문쓰기 벼랑에서 날개를 내어서 펼쳐야한다. 첫 비행이 과연 어떻지? 근스승 최성욱 선생님과 원스승 청간 선생님께서 굽어보고 계시니 기대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하자!
청간이 사회화와 교육에 있어서 결과와 과정을 뒤바꾼 것은 생각의 역전이다. 좀 과장하자면 천재일우의 번뜩이는 영감을 잡은 것이다. 어떻게 그런 발상을 했을까? 과정 중심의 사고를 구조주의 방법으로 틀을 잡은 것이 교육의 내재율이고, 이를 비유한 것이 협동교육의 수레바퀴 모형이다. 이것이 바로 조작의 대상이 아닌 복종의 실체로 개인 주체에 전면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 앞에선 그저 복종해야만 그 속에서 복종이 선물하는 자유(이게 어마어마하게 높고 클 것 같다)를 누릴 수 있다. 이것을 얼마나 철저하게 깨우치는 것이 교육본위론의 핵심에 다가가는 첩경이다. 후속해서 나오겠지만 그 간의 체험을 추적하는 특별한 센서를 발동하여 교육 요소들 간의 미세 움직임을 포착해 들어가야한다. 어떻게? 자신의 현품을 가로막고 있는 언어의 거품과 정보의 껍데기를 걷어내고 감춰진 현품을 대상화시켜야한다. 그리고 차상품과의 거리를 가늠하여 상구와 하화의 원동력을 자체 생산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원활히 하느냐가 교육 체험의 관건이다. 조용한 가운데 사유를 진행하면 이러한 실재가 떠오를 것이다. 질문을 가지고 사유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부상한다. 왜? 머리를 비웠기 때문에. 그 때 잡으면 된다. 자연스럽게. 잡으면 또다른 의문이 줄줄이 꿰인다. 선물을 받는 것이다.
박현정 선생님의 질문공탁을 놓고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교육보다 사회화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떠올렸고, 교육에 관한한 힘들지만 자신이 관심있는 부분에서 제한적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교육본위론의 품위가 올라갈수록 학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달라질까?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을 것이다. 그 중 채은숙 선생님과 같은 높은 수준의 특별한 사례도 있을 것 같다. 난 아직도 체벌금지를 무척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다. 그만큼 폭력적이고 고루하다.
이지연 선생님께선 맡으신 개인주체, 건듯건듯 잘도 넘어간다. 난 하나하나 목에 턱턱 걸리는데. 똑같은 글인데도 확실히 다르게 느끼나보다. 중1권 전체에서 나에게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이다. 나도 예전엔 이 부분이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숨 막힐 정도로 느껴지니 이 책이 지닌 품위는 어느 정도인지. 근스승 최성욱 선생님께서도 계속 읽어도 점점더 어려워지는 대목이 있다고 하셨다. 근데 그 부분은 청간 선생님께서 가장 쉽게 쓰신 부분이라고 하셨다.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는가?
황가원 선생님의 "이체이품" 상황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협동교육 상황이기에 쉽게 읽혔다. 하지만 지금의 기초공사가 부실할 때 중2권에서 다뤄질 내재율, 메타교육, 교육평가에선 헤매기 일쑤다. 꼼꼼히 쳐다봐야한다. 중요한 포인트는 아예 대못으로 박아야한다. 특히 무대에 등장하는 새로운 개념어들! 붙들어매어야 한다.
한용운의 "복종"은 대강 일제시대에 쓰여졌을텐데 꽤나 오해를 받았을 법하다.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이런 대목은 앞 뒤 자르고 부각시키면 그대로 친일파를 넘어 충일파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전체 맥락을 보건대 불교에서의 희열을 복종으로 표현했다는것이 확실하다. 물론 청간의 심열성복과 대차가 없을만큼 주체에 대한 헌신이 강렬하다. 복종의 상대어인 자발성과는 형식논리면에서 상반되지만 함께 어우러지면 더 깊은 차원을 갈무리하고 있다. 주체에 대한 헌신까지 깊이를 보장할 수 있다. 청간의 논의는 인문학의 깊은 사유와 다 연결되고 있다. 그 중 하나라도 붙잡아서 논의하면 교육학의 최고 선진이 되는 것이다. 이제는 청간을 통하지 않고는 삶의 깊은 차원인 교육에 다가가기 어렵다. 이왕지사 청간이라도 잘 이해하고 활용해야 후진으로서 떳떳할 수 있는 것이다. 후에 장상호 선생님을 모르는 후배들에게 "에헴... 내가 겪은 장상호 교수는 ~~~." 그렇게 하여 새상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이미 우리는 전설이 되고 있다. 전설따라 삼천리~~~
첫댓글 왜.. 극과 극은 통한다고... 극상품의 장상호 선생님의 글 중 어떤 부분은 극하품의 제가 읽기에 편하게 느꼈을수도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샘께서 나중에 또다시 읽어보시면 느낌이 달라질 거예요. 저는 그런 체험했지용^^ 빨리 완벽하게 이해되기를 바랍니까? 천천히 새록새록 새롭게 이해되는 즐거운 느낌을 계속 받고 싶나요? 만약 후자를 선택하신다면 당신은 과정을 즐기는 교육주체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짝짝짝!!!
오늘 어제 못한 부분 마무리를 하려고 책을 다시 읽었는데 또 다른 생각이 많이 떠올랐어요 과정을 즐기고 있어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