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14. 6. 8 (토)
산행지: 주금산 (鑄錦山 813M, 포천시)
코스: 내촌초교 - 내리마을회관 - 독바위 - 정상 - 합수점 - 몽골문화촌
<< 산행기 (이은우): 홈페이지에서 옮김 >>
며칠 전 문자로 받은 산우회 등산계획을 보고 망설였다. 814미터... 일 년 전 테니스하다 다친 무릎이 아직 따끔거리고 많이 걸으면
시큰시큰하다. 그러나 스틱에 지하여 도전 해보기로 했다.
오늘 산행은 주금산이다. 일명 비단산으로 불리고 있고 정상부근의 기암 수려한 비금계곡이 어우러져 비단결 같은 산세를 자랑하고 있다. 서북쪽 자락에 베어스타운 스키장이 있으며 정상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비금계곡은 아직도 오염되지 않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오늘 산행은 내리4리 마을회관에서 쉼터바위, 독바위를 거쳐 정상에 오른 후 팔각정, 헬기장을 거쳐 비금계곡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철로 강변역에 내려 동부터미널에 도착하니 인원점검하는 이승규 산총 등 반가운 모습이 보인다. 신출원이 종점인 버스는 마지막으로 도착한 주상록 커플을 태운후 9시 정각에 출발했다. 참석자는 김석태, 김인중, 남상균, 박찬용, 박찬진, 박창서, 송영찬, 어재선, 용희주, 이승규, 이은우, 이형렬, 정인현, 주상록 커플, 홍성만, 최영효, 하삼주 산우 등 모두 18명.
제일 앞좌석에 앉아 옆의 송영찬 회장과 차창에 다가오는 풍경을 완상하며 문창극 총리후보자, 유병언 청해진회장 등과 관련하여
우국충정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이승규 산총이 나를 산행기자로 지목하는 바람이 갑자기 느긋하던 마음이 흔들렸다. 그렇다면
오늘 주금산 산행기는 2009년 10월 감악산, 1012년 2월 제왕산에 어 세 번 째 쓰는 산행기가 되는데 산총은 보통 1년에 한번 써야한다 하니 할 말이 없다. 9시 54분에 내촌버스정류장에 내렸다.
길을 물어 시 분에 등산로 10 20 초입에 도착했다. 걸어오면서 남상균 산우는 홍성만 산우에게 조각(却)이라는 법조용어는 어렵다고 말했고 나는 위자()하다라는 말도 어렵다고 했다. 홍성만 산우는 판사로서 느낀 소회와 판결의 실마리를풀어 후배판사들을
지도한 사례를 털어놓았다. 산로 초입에서 김인중 산우는 같이 가던 남상균 산우와 헤어져 왼쪽으로 치고 라가더니 길이 아니라며
다시 내려와 우리와 합류했다. 임도를 타고 편하게 올라가는가 했는데 곧 공사 중인 임도와 만나고 등산로는 공사 중인 임도에
파묻혔다. 등산로를 찾는데 가파른 비코스를 올라가면서 김인중 산우는 초장에 죽이누만.. 하고 중얼거린다.
등산로가 묘연하여 산행기자가 스마트폰 지도를 열고 GPS를 켜니 4-50미터 올라가면 등산로가 있다. 가까스로 등산로를 만나니
정상 1.81 Km 라는 이정표가 반갑게 기다린다. 그 길은 아까 김인중 산우가 가던 길이 이어진 것이었는데 15분 알바를 하여 돌아와 만난 셈이다.
산행을 시작한 지 50분쯤 지나 과일을 나누며 휴식을 취했다. 여기에서 박찬진 산우는 45회 조성암이 제주에서 치과의사들을 제압하여 삼보일배로 사과시켰다는 에피소드를 전했고 주상록 산우는 세월호의 진짜 침몰원인은 조타수가 자기보다 어린 여자 항해사가
고까워 반발심으로 키를 획 틀어 침몰되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또 류병언 회장은 이미 밀항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는데
밀항국가는 모른다고 한다. 이 곳에서 산행기자가 송영찬 회장에게 회장 대접으로 사진 한 장 찍어주겠다고 하자 보내주지도 않을
사진을 왜 찍냐 뜬금없이 핀잔이다. 떡 하나 더 주는 마음으로 정인현 산우와 그때 찍은 사진을 올린다.
분 올라가서 또 쉬었다 용희주 산우는 5분 만에 쉬는 법이 어딨냐고 항의했으나 아무래도 우리 나이가 있어 그 항의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그리고는 정상까지 계속 치오르는 산행이 이어졌다. 아까 내촌리에서 보이던 독바위가 머리 바로위에 아득하게 올려다 보이고 길은 습기가 차 흙과 자갈이 버무려져 미끄러웠다. 산행 시작 2시간 만인 12시 30분 경 홍성만, 하삼주 산우와 산행기자가 속한 후미조가 팔각정에 도착했다. 뒤에는 주상록 커플만 남았는데 15분이 더 지나 도착했다. 올라오는 길 2시간 동안 마주친 등산객은
세 팀, 주금산은 오늘 거의 우리가 독차지한 셈이다.
팔각정은 18명 산우가 자리 잡고 점심하기에 딱 좋은 넓이다. 따가운 햇빛도 막아주고 나무바닥이 건조한 상태다. 산행기자가 산우회에 다니면서 맞이한 최상의 점심장소였고 다른 산우들로 그렇게 생각했다.
점심시간은 왕구렁이 뱀술로 시작되었다. 하삼주 산우는 교수님 권위로 이 뱀술은 성기능 회복주라고 주장한다. 성기능 개선주는
성기능이 어느 정도 있는 상태에서 개선시키는 것이고 성기능 회복주는 우리처럼 아주 소멸된 상태에서 새로이 회복시켜주는 것으로 그만큼 성능이 강력하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누군가 주상록 커플 앞에서 대어놓고 주상록은 성기능 회복주를 마셔야 한다고 강권하면서 오늘 생길 애 이름은 주금산을 따서『주주금』으로 지어야한다고 했는데 아무리 주금산이 비단산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답다고 해도 태어날 애 이름으로 주금(=죽음)은 좀 그런 것 같다. 나는 동조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영찬이라는 이름을 모두들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주상록의 장남이름이 영찬인데 그 동생이 인찬이다. 주영찬이는 아빠와 여행 가서 휴대폰만 들여다 보았다고 주상록 산우가 아들 욕을 하는데 주영찬 욕인지 송영찬 욕인지 도무지 헷갈린다. 주인찬이 이야기 나오면 산우들이 영찬아 니 동생 이야긴데? 하고 눙치고 송영찬 산우는 그때마다 공연스레 깜짝깜짝 놀라는 것 같다. 듣다 못한 송영찬 산우는 상록아 아들 이름 바꿔라! 하고 소리친다. 급기야는 주영찬이와 하삼주 교수 따님과 혼사문제가 거론되었는데 산우들은 무조건 박수치고 혼사가 결정된 것으로
하자고 하여 그렇게 했다.
그런데 산행기자가 쓴 2009년 10월 감악산 산행기에 의하면 주상록 산우는 분명히 그 날, 앞으로 조용히 살겠다고 말했고 감동 먹은 산행기자는 그 기록을 남긴 적이 있는데 5년이 지난 지금 주상록 산우가 다시 심기일전 우리를 즐겁게 해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점심 중에 고도로 60미터 정도 위에 있는 주금산 정상에 공격조로 몇 명이 가기 로 했고 모두들 산행기자도 같이 가야 한다고 우긴다. 무릎이 아파 근근히 왔는데 사진 찍어 메일로 보내달라고 외쳤으나 무조건 가야한단다. 그리하여 박찬용 산행대장, 주상록, 최영효 산우 그리고 산행기자가 정상에 갔다 왔다. 정상에서 인증샷을 찍었다. 아래 사진을 보니 박찬용 대장이 사진기를 바닥에 놓고 찍는
기술이 수준급이다.
30분에 왕복한 정상 가는 길은 급히 갔다 오려 한 것도 있고 음주 산행인 이유도 있어 숨이 찼다. 갔다 오니 이미 어재선 산우와 이형렬 산우는 급한 일이 있어 하산하고 없었다. 팔각정 바로 위로 나있는 하산길은 헬기장으로 이어졌다. 헬기장 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헬기장에서는 서리산 축령산 , , 철마산, 천마산이 병풍이 되어 뽀얗게 보였다. 축령산 하면 김석태 산우가 생각난다. 2010년 3월 13일 산우회 축령산 산행은 아직 산에 잔설이 있었고 정상은 오른편이 천길 낭떠러지인 길을 지나야 했다. 그 때 김석태 산우의 표정은 아직도 산우들의 기억에 생생하다고 한다. 산우들이 그 이야기를 자꾸 하니 김석태 산우는 앞으로 축령산의 “축”이라는 말도 하지 말라도 손사래를 친다.
헬기장을 시 분에 출발하여 2 35 하산길에 들었다. 1시간 50분 쯤 하산하여 광청성 가든이라는 곳의 입구에서 후미를 기다렸다.
저녁으로 닭백숙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여러 산우들은 마루에서 누워 휴식을 취한다. 송영찬 회장과 용희주 산우는 바둑을 두었다. 용희주 산우가 백을 잡았는데 닭백숙이 나오는 바람에 승부까지는 가지 못했다. 당연히 서로 이겼다고 주장하는 데 이기면 자기 젊은 시절이, 아니면 인격이 다 이기는 것으로 되는지 아는가보다.
닭백숙과 소주 막걸리 맥주를 , , 섞어 마시면서 이승규 산총은 7월 산행은 홍천 백우산으로 한다고 하면서 회비를 걷었다.
송영찬 회장도 일어나 참석한 산우들에게 감사하며 다음 번 산행을 기약했다. 6시 반에 광청성 가든에서 나와 몽골문화촌 앞에서
마석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7시40분에 마석역에 도착했고 상봉역에서 헤어졌다.
마석행 버스를 기다리며 마석역에서 상봉행 전철을 기다리며 산행기자는 당구 한 게임 또는 뒤풀이 한 잔을 기대했으나 그런 일은
없었다. 인격이 높아진 건지 하교수 말대로 성기능이 소멸된 건지 의외이기는 하다. 산행기자는 김인중 산우와 자주 만날 것을 약속하고 4호선 전철 과천역에서 헤어졌다. 이번 산행은 산행기자로서는 다친 무릎의 희망을 본 기회였고 오랜 만에 산우들과 친교를 나눈 보람찬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