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마을의 각현 스님은 다음 희망 릴레이 주자로 주성대학 유성종 학장을 추천했다. "물질적으로 초연하고 정확한 인생 목표를 가진 존경할만한 선비"라는 게 추천 이유였다. 지난 29일 충북 청원군 주성대학 학장실에서 유 학장을 만났다. 올해 72세인 유 학장은 "희망 릴레이의 인터뷰 대상자로 내가 선정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말을 이었다.
#1 - 대꼬챙이 같은 교육자
주성대 유성종 학장은 40년 동안 변함없이 교육계를 지켜오며 교육계는 물론 지역사회의 존경을 받는 교육자다. ⓒ미디어다음 신동민
교육계는 유혹도 많고, 비리도 많은 곳이다. 교장, 교감이 되기 위해 뇌물을 썼다는 사건도 터지고, 지방 교육위 장학사 등 고위직에 오르기 위해 부정을 저질렀다는 뉴스도 낯설지 않다. 그래서인지 교육계 인사 중 생명이 긴 사람이 별로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 시대 존경할만한 스승이 누구냐"라는 질문에 답변하기를 힘들어 한다.
유성종 학장은 40년 동안 변함없이 교육계를 지켜오며 교육계는 물론 지역사회의 존경을 받는 교육자다. 교육계 지인들은 그를 두고 "물질에 초연하고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대꼬챙이 같은 사람"이라고 평한다.
"다른 것 없습니다. '자기 혁신'이라는 말을 염두에 두고 '나의 주인은 나'라는 생각으로 교육과 교육행정에 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내 스스로 내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뇌물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평생 '물질적으로 최소한으로 산다'는 생각을 놓지 않았습니다."
"유 학장에 대한 세간의 평이 어디서 비롯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유학장은 평소 소신을 들려주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유학장은 자신의 소신 덕분에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요즘 연말인데 시민들의 기부 활동이 많이 위축됐다지요? 사회사업 하시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시민들이 '내가 기부를 해도 어떻게 쓰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한다고 합니다. 제가 가진 좀 있다면 좀 내놓을 텐데… 제가 가진 게 적어 남을 못 도와 주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충북교육위 장학사, 중등교육과장, 교장, 교육부 장학편수실장, 국립교육평가원장 등 고위직을 두루 고친 인물이 가진 게 적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교육계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판공비, 업무추진비 등을 사사롭게 사용하고 근 돈을 집까지 가져가는 분들이 있어요. 저는 판공비와 업무추진비 등 과외의 돈은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집에는 봉급만 가지고 갔습니다. 법정 봉급만 들고 살다 보니 재산이 많지 않네요."
#2 - 신입생으로 입학한 학장님
유성종 학장은 교육계 고위직을 두루 역임한 후 대학 신입생으로 입학한 경험이 있다.
ⓒ미디어다음 신동민
유성종 학장은 교육계 고위직을 두루 역임한 후 1995년 현도사회복지대 사회복지학부 학생으로 입학한 경험이 있다. 당시 많은 매체들이 유 학장의 대학 입학 소식을 화제로 다뤘다. 유 학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3개월 동안 각종 매체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현역에서 은퇴하고 노인복지 시설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여생을 마칠 생각이었습니다. 아무 일도 아닌데, 언론에서 관심을 갖더군요. '그 나이에 왜?'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나이들어 공부를 계속 하는 게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요? '어린 학생들과 어울릴 수 있겠느냐'고 우려하는 분들도 있었는데, 40년 동안 학생 곁에 있던 사람이 더 가까운 곳에서 학생들과 어울리는 게 뭐가 어렵겠습니까. 고위직 출신이 왜 몸을 낮추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과거의 경력을 생각하며 몸을 낮추기를 꺼리는 풍토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유 학장은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예전 학생들과 차이점은 무엇인지도 알 수 있었고, 노인복지 정책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할 시간도 있었다.
"노인복지에 대한 공부를 하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인복지를 '구호'의 개념을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노인의 상태는 따지지 않고, 무조건 시설에 수용해서 먹이고 재우는 것이 노인복지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노인 중에는 멀쩡한 노인들이 더 많습니다. 이들이 무언가를 배울 수 있고, 또 배운 것을 써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노인 인력을 잘 활용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이득이죠."
#3 - 老교육자가 본 요즘 학생, 요즘 교육
"한국처럼 청소년을 마구잡이로 교육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미디어다음 신동민
교육자에서 학생으로, 학생에서 다시 교육자로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 학장은 늘 교육 현장에 있었다. 학생들의 변화도 고스란히 느끼면서 살고 있다.
"제 경우 중학교 동창생들과 형제 같은 우정으로 지냅니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같은 반 친구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인간의 어울림이 많이 퇴색하고 있습니다. 우정도 없고, 의리도 안보입니다.목표의식이 없다는 것도 요즘 학생들의 특징입니다. 목표의식이 없으니 홀로서는 것을 두려워하죠. 대학원 박사 과정에 등록하러 오면서 엄마 손 잡고 오는 사례가 단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 학장은 '꿈'을 잃어가는 학생들이 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며 "학생들이 나약해진 것은 어른들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68세의 나이로 학생으로 되돌아 갔을 때에도 많을 것을 느꼈다.
"학생들의 시간 관념이 많이 떨어지더군요. 10분, 20분 늦는 것은 늦는 것도 아니고, 늦어도 미안해 하지도 않습니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학생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유 학장은 여러 가지 대안을 생각해 봤다고 한다. 요즘도 '교육의 올바른 변화'를 화두로 적잖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정부의 교육 정책은 비판 받아 마땅합니다. 교육개혁은 교육의 내용과 방법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하지만 최근의 교육개혁은 밤낮 제도개혁과 이에 따른 돈타령만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교실에서 어떤 내용을 어떻게 배우는가 보다, 대학입시 문제 출제와 원서 접수 방법 등에 매달려 있는 셈입니다."
유 학장은 '도덕교육의 부재'를 지적하며 매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기본과 기초가 갖춰지지 않은 인재들이 배출되면서 사회의 기본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처럼 청소년을 마구잡이로 교육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가정 교육에도 기본이 없습니다. '다른 것 다 제쳐두고 1등만 하라'는 식입니다. 인간성, 사회성, 공동체 의식 다 제처두고 1등만 하면 모든 게 용서가 됩니다. 최근 경제계에서 모럴헤저드 현상이 잇따르고, 사회 지도층 범죄가 만연하는 것도 공부만 시키고 인간을 만들지 않은 교육 때문이 아닐까요?"
유 학장은 "학생들이 자신을 좀 더 사랑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끝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 충실하는 사람이 나쁜 유혹을 이길 수 있고, 자신이 속한 학교, 사회, 나라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유 학장의 지론이다.
"꽁초 줍는 학장이 시간 날 때마다 강조하는 이야기를 들려 드렸습니다. 도움이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유 학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