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7.06 13:55 | 수정 : 2013.07.06 14:05
최근 시장 정체기를 겪고 있는 막걸리 업체가 새로운 신제품과 빅 모델을 앞세운 적극적 마케팅으로 신규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특히 막걸리는 젊은 층을 공략하며 4세대로 진화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전통주인 막걸리 시장은 지난 2009년부터 불기 시작한 막걸리 열풍으로 수년간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성장세가 갑자기 꺾였던 막걸리 시장이 최근 다시 서서히 회복기에 들어서고 있다.
- 1, 2. 젊은층 기호를 감안해 개발된 국순당의 아이싱과 서울탁주의 이프 3. 국순당의 대박은 출시 2개월 만에 500만병 판매를 돌파해 막걸리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2년 막걸리 출하량은 41만4500㎘로 2011년 44만3700㎘ 대비 6.6% 감소했다. 이는 막걸리 열풍이 일기 시작한 2008년 이후 첫 출하량 감소다.
막걸리 열풍이 주춤한 것은 지난해 4월부터다. 지난해 4월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5.1% 감소했다. 이후 출하량은 지속적으로 줄었다. 올해 들어서도 4월까지 누적 출하량은 11만8200㎘로 지난해 같은 기간 누적 출하량인 13만5900㎘에 비해 13%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지난 3월부터 출하량이 서서히 늘기 시작했다는 점은 다행이다.
막걸리 시장의 성장세 둔화는 2012년 봄철 이상고온 현상과 가뭄 등 날씨가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새로운 소비층인 20~30대층을 잡을 만한 제품이 부족했으며, 소비자의 새로운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마케팅 활동도 미약했던 것으로 업계는 풀이하고 있다. 또 주류시장에서는 수입 맥주와 수입산 와인의 수요가 증가하고, 이른바 ‘소맥(소주+맥주)’이 주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며 상대적으로 막걸리의 입지가 약해졌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막걸리 시장이 중소기업 고유 업종으로 지정되면서 대기업의 시장 진입이 제한된 것도 성장 둔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그동안 막걸리 시장이 활성화된 데는 국순당 등 전통주 업체의 역할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지난 2011년 3월에는 보해양조가 ‘순희’ 브랜드로 막걸리 시장에 진출해 시장을 키웠다. 그러나 2011년 막걸리가 중소기업 고유 업종으로 지정되면서 대기업의 시장 진출이 막혔다. 지난해 6월 경주법주가 ‘경주법주 쌀막걸리’로 막걸리 시장에 진출했으나, 전국 브랜드로 성장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근 다시 막걸리 시장이 서서히 회복 조짐을 보이는 것은 막걸리업체들이 신제품 개발을 통해 소비자 입맛 잡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새롭게 출시된 막걸리들은 고급화를 표방한 것이 특징이다. 이는 그동안 막걸리 업체들이 호황에 안주하며 신제품 개발에 등한시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막걸리 업체들 신제품 개발로 소비자 입맛 잡기 나서
국순당이 지난 4월 선보인 막걸리 ‘대박’은 초반 순조로운 매출을 보이며 성장세가 둔화된 막걸리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대박은 제품 출시 2개월 만에 500만병 판매를 돌파해 국순당의 인기 브랜드인 ‘국순당 생막걸리’와 ‘우국생’을 제치고 국순당 내 매출 1위 막걸리 브랜드로 올라섰다. 지난 4월은 막걸리 성수기임에도 늦추위가 지속되는 등 좋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이러한 매출 호조를 보인 것은 더욱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 최근 막걸리가 젊은층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변신을 거듭하며 진화하고 있다.
이처럼 대박이 출시 초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달지 않고 깔끔한 맛으로 막걸리 마니아층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에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박은 막걸리 빚기에 가장 적합하도록 직접 배양한 전통 누룩과 막걸리 전용 효모를 사용해 막걸리 본연의 맛을 가장 잘 담아내고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그동안 대부분의 막걸리에는 전용 효모 없이 빵 등을 발효시키는 데 쓰이는 일반 효모를 사용했다. 또 3단 발효법과 냉장숙성 공법을 도입해 잡맛을 없앴으며 막걸리 고유의 맛과 신선함을 최대한 유지하도록 개발했다. 보통 막걸리는 2단 발효 과정을 거쳐 제조된다.
국순당은 지난해 6월에는 1960년대 이전 양조장에서 빚던 쌀막걸리 맛을 그대로 재현한 ‘옛날 막걸리’를 개발해 선보였다. 막걸리의 역사에서 1960년대는 일제강점기 이후 가장 격변의 시기로 정부에서 시행한 양곡관리법으로 막걸리의 원료가 쌀에서 밀로 바뀐 때다.
막걸리는 현대를 거치면서 일본식 누룩의 도입과 수입쌀, 밀가루 사용 등으로 다양화돼 옛 모습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국순당 ‘옛날 막걸리’는 40대 이상의 장년층으로부터 집근처 양조장에 대한 추억과 옛날 막걸리의 맛에 대한 기억을 자극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다른 막걸리 업체도 특화된 기술을 접목한 다양한 신제품을 선보였다. 참살이가 지난 4월 선보인 ‘꿀 막걸리’는 천연 물질인 벌꿀을 이용해 생막걸리의 유산균이 오래 살아 있도록 개발한 막걸리다. 시중에 유통되는 생막걸리는 10일이 지나면 산도는 높아지고 유산균 수는 줄어들지만 이 제품은 일정한 수치가 유지된다.
배상면주가는 지난 4월 프리미엄 전략의 하나로 유기농으로 재배한 쌀로 만든 ‘유기농 막걸리’를 출시했다. 이 제품은 인공감미료인 아스파탐을 넣지 않고 유기농 쌀만으로 발효해 담백한 풍미를 낸 것이 특징이다. 배상면주가는 지난 2011년 아스파탐을 첨가하지 않은 ‘느린마을 막걸리’를 선보인 데 이어 이 제품으로 막걸리의 고급화에 나설 방침이다.
농협중앙회는 대표적인 전통주 기업인 서울장수와 손잡고 신제품 ‘홍삼장(長)막걸리’를 개발해 지난 5월부터 전국 농협하나로마트에서 판매하고 있다. 홍삼장막걸리는 농협한삼인의 국내산 6년근 홍삼분말을 첨가해 품질을 높였다.
막걸리의 고급화가 시장 활성화의 주요인이라는 점은 경북 울주군의 복순도가 손막걸리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복순도가 손막걸리는 시골의 도가에서 생산되지만 전국적인 지명도와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오로지 국내산 햅쌀과 누룩을 사용하며, 스테인리스 용기 대신 전통방식인 항아리를 이용한다. 삼베를 이용해 누룩을 직접 짜는 작업공정 때문에 하루 생산량은 100병 정도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1병에 8800원으로 일반 막걸리에 비해 가격이 비싸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다. 누룩이 발효되는 과정에서 자연 생성되는 탄산으로 인해 샴페인과 같은 청량감이 맛의 특징이다. 이 막걸리는 전·현 정부에서 연거푸 건배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해 3월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담과 지난 5월 청와대에서 열린 재외공관장 만찬에서 건배주로 사용됐다. 막걸리 업체 관계자는 “복순도가 막걸리처럼 지역의 특색을 살린 독특하고 고급스러운 막걸리 등이 꾸준하게 나와야 시장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막걸리뿐 아니라 막걸리 전문점도 고급스럽게 변신하고 있다. 베니건스 외식사업부에서 운영하는 프리미엄 막걸리바인 청담1막은 고급스럽고 세련된 인테리어와 다양한 종류의 생막걸리로 수많은 마니아들을 형성하고 있다. 트렌드세터의 중심지인 서울 학동사거리에 있는 청담1막은 화학 첨가물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 막걸리와 고급 호텔에서만 판매되는 우곡주 등의 프리미엄 막걸리, 그리고 생막걸리 50% 이상이 블렌딩된 12종의 막걸리 칵테일 등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막걸리 라인업을 구축했다. 청담1막의 가장 큰 특징은 고객에게 적합한 막걸리를 추천하는 막걸리 소믈리에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월향, 셰막이 프리미엄 막걸리바로 유명하다. 월향은 100% 유기농 현미만을 사용해 만든 막걸리를 판매한다. 80년 전통의 충남 당진 신평양조장이 운영하는 셰막은 하얀 연꽃 백련 막걸리가 대표 제품이다.
- 복순도가 손막걸리는 전통방식 그대로 항아리를 이용한다.
젊은 층 기호 감안한 4세대 막걸리 등장
해외여행이나 유학을 경험한 20~30대는 막걸리보다 수입맥주를 선호하고, 취하기보다는 음료수처럼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술인 RTD(Ready To Drink)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RTD 제품은 저알코올, 소형포장, 마시기 편한 과즙 첨가, 청량감 증대 등 간편하게 마실 수 있다는 장점으로 주류시장에서 꾸준히 자리를 넓히고 있다. 이미 와인 시장은 소형 포장과 팩 제품 등이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다.
막걸리도 변신을 거듭하며 진화하고 있다. 이른바 4세대 ‘LTE’형 제품이 그것이다.
막걸리 1세대는 속칭 말통 또는 주전자 세대였다. 2세대는 페트병으로 진화하며 규격화·소용량화됐다. 유통기한이 30일로 확대되고 냉장체인 시스템을 도입한 3세대는 막걸리의 전국구 시대를 열었다. 이제는 3세대를 뛰어넘어 4세대 LTE (Little : 소용량, Taste : 맛, Easy : 쉽게 휴대하는 용기) 막걸리가 등장해 시장 확대에 나서고 있다.
4세대 LTE 막걸리는 철저하게 젊은층의 기호를 감안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LTE 막걸리 시대를 개척한 주인공은 국순당 캔막걸리 ‘아이싱’이다. 국순당이 지난해 8월 선보인 아이싱은 기존 막걸리와는 전혀 다른 맛이다. 아이싱은 냉각 숙성 공법을 도입해 부드러우면서도 톡톡 튀는 탄산의 청량감으로 가볍고 시원하다. 또 합성 감미료 대신 자몽 과즙을 첨가해 열대과일의 새콤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알코올 도수는 기존 막걸리의 6도보다 낮은 4도로 알코올에 약한 사람들도 좀더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용기형태도 기존의 페트병이 아닌 캔 형태로 개발했다. 아이싱은 출시 이후 4개월 동안 총 400만캔이 판매되며 기존 국순당 캔막걸리 대비 5배의 판매 실적을 올렸다.
막걸리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서울탁주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이프’도 LTE형 막걸리다. 이프는 알코올 도수를 3도로 낮추고 달콤한 향과 맛에 청량감을 더했다. 막걸리 업체 우리술도 지난해 11월 알코올 도수 3도짜리 ‘미쓰리’를 선보였다. 쌀로만 빚은 ‘미쓰리 블루’와 유자과즙을 첨가한 ‘미쓰리 그린’ 등 2종으로 구성됐으며 캔과 페트 형태 두 가지로 선보였다.
4세대 막걸리의 알코올 함량은 3~4%로 기존 3세대 막걸리가 대부분 6%인 것에 비하면 절반 정도로 낮다. 용량도 기존 3세대 막걸리가 페트병을 사용하고 용량이 750㎖짜리가 대부분인 것에 비하면 4세대 막걸리는 휴대가 간편한 캔 용기를 사용하고 용량은 350㎖로 기존 3세대 막걸리의 절반 이하다.
최근에는 막걸리의 광고모델로 빅 모델이 기용되면서 젊은 층의 시선을 잡고 있다. 국내 주류시장은 빅 모델의 경연장이다. 월드스타인 싸이부터 인기 걸그룹, 꽃미남 스타 등 주류 광고모델은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다. 성장세가 둔화된 막걸리가 다시 붐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맥주나 소주 등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소비자의 눈길을 확 끌어당길 수 있는 전략이 필요했다. 그동안 막걸리 광고에는 빅 스타가 기용된 적이 없었다. 국순당이 영화배우 전지현을 신제품 막걸리인 대박의 모델로 기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지현은 오랜 고심 끝에 대박의 광고모델을 승낙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주류 광고는 데뷔 16년 만에 처음이다.
동남아 등지로 해외 시장 확대
-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지난 5월31일 명동역 인근에서 해외관광객을 대상으로 막걸리 체험 홍보행사를 하고 있다.
정부도 막걸리 시장 확대에 팔을 걷어붙였다. 무엇보다 막걸리 활성화에 대한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관심이 엄청나다. 이 장관은 농촌경제연구원 재직 시절 전통주에 대한 책을 쓸 정도로 전통주, 특히 막걸리에 대한 관심이 많다. 지난 5월에는 경기도 포천 이동주조 막걸리 공장에서 막걸리 업계 대표 등과 현장 간담회를 가지기도 했다. 청와대의 건배주로 막걸리를 추천한 이도 이 장관이었다.
농식품부는 막걸리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신제품 개발을 강화하고, 동남아 등 새로운 해외 시장 개척을 통해 시장 다변화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미 베트남, 태국 등지의 수출이 어느 정도 가시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와인이나 맥주, 위스키 등이 주를 이루는 서구의 기준에서 고형분이 있고 탁한 색깔의 막걸리는 익숙하지 않은 맛과 형태”라며 “그러나 알코올 도수가 낮고 캔에 담긴 막걸리는 외국인도 좋아한다는 점에서 해외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