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생각보다 참 많은 텍스트 속에서 살아갑니다. 아니, 파묻혀 지낸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네요. 책장에 꽂혀있는 책, 교과서, 거리의 수많은 간판, 가판대 위의 신문, 출근하자마자 처리해야 하는 서류…….
예민한 촉수로 좋은 정보를 섭취하는 일은 지식정보화 시대의 미덕입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문자와 글 속에 잠겨있는 건 아무래도 뻐근하고 피곤한 일입니다. 이럴 때에는 책 덮고 눈 감고 한숨 푹 자는게 최고겠죠? 야무지게 귀를 쪼아대는 매미소리를 벗삼아 뒹굴거리는 것도 좋겠구요. 마음을 움켜잡는 근사한 작품을 감상하는 일도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겠습니다. 관훈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텍스트 ↔ 이미지> 전시회 관람도 연장선 상에 있습니다.
김승호 미술연구소가 기획한 <텍스트 ↔ 이미지>展은 한국 미술계의 원로, 중진들과 신예 작가들이 모여 만든 전시회 입니다. 김경주, 김승영, 김홍주, 노주환, 박영근, 오윤석, 오치규, 정광호가 참여했습니다. 힘 있는 작품으로 한국 미술계에서 중요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작가들 입니다. 이들은 회화·설치·조각·디자인과 같이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텍스트와 이미지에 구애받지 않고 개념 위를 자유롭게 오갑니다. 또한 작품으로 관객에게 말을 겁니다. 그런 그들이 <텍스트 ↔ 이미지>展에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텍스트와 이미지. 다소 관념적인 주제이지요. 작가들에게 '텍스트'란 무엇일까요?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 끊이지 않는 샘물, 연구해야 할 골치덩어리, 매일 쓰며 연구하다 사랑에 빠지게 되는 오브제는 아닐런지요.
우리 시대의 작가들은 '텍스트와 이미지'라는 관념적인 주제를 어떻게 풀어나갔을까요? 하나씩 살펴봅시다.
첫번째 작가는 김홍주 입니다. '텍스트'에 관해서는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작가 입니다. 지난 겨울,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시공간의 빗장풀기>에서 그는 "미술관에 들어서는 관람객들이 작품을 해석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압박감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언뜻언뜻 글자가 보입니다. 무어라 써놓은 것 같긴 한데, 문자 위에 문자를 겹쳐놓아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읽어낼 수 없습니다. '낫 놓고 기역자 못 읽는다'는 속담이 떠오릅니다.ㅎㅎ 문자의 가장자리에는 부적을 진열해 관객들은 '뜻을 알 수 없고 단지 이미지만을 전달받게' 됩니다. 부적은 전문가가 아닌 이상 그 뜻을 읽기 어렵기 때문에 글자를 그림으로 보게 되지요. 작품에 부적을 넣은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김홍주는 관람객들에게 그림을 해석하지 말고 그저 보이는 그대로 느껴보라고 권합니다. 글자를 그림으로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개인적으로 전시회의 미션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낸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노주환의 <활자도시 서울>입니다.
한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서울입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서울이네요. 자세히 안을 들여다보면 나노미터 수준으로 촘촘하게 채워진 활자들이 있습니다. 실눈을 뜨고 봐야 보일 정도로 글자 크기가 작습니다. 높고 낮은 건물들, 동서를 가로지르는 한강과 다리들까지. 그 모든 것이 활자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노주환 작가의 <활자도시 서울>은 시선을 압도하는 금빛 도시의 조망도입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도시가 활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텍스트가 오브제로 변신하고, 그것이 도시의 형태로 완성되는 내러티브가 쉽고 재밌게 다가왔습니다.
2층 2전시실에는 밝은 색감의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는데요. 작품의 무게감은 가볍지 않았습니다.
오치규, 김경주의 작품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오치규 작가의 작품입니다. 커다란 붓에 먹물을 묻혀 슥슥 그린 듯 하지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쉬운 터치에서 따뜻함이 묻어납니다.
<우리는 무엇을 향하는가>,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연작입니다. 작품 제목에 서정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향하는가> 시리즈는 엽서로 만들어 선물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경주의 작품입니다. 필기체로 흘려쓴 듯한 영어 문장이 검정비닐로 완성되어 있지만 이를 해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빨간 테이프로 아슬아슬하게 텍스트를 고정시킨 모습은 감각적인 리듬감을 선사합니다.
3층 제3전시실에는 오윤석, 정광호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고요하고 시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오윤석의 <Mi> 입니다. 2009년에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어떠세요? 어딘가 세계지도를 닮지 않았나요?^^
저는 이 작품을 보자마자 시인 배교윤의 <바람의 나라로 보내는 편지>가 생각났습니다. 유학길에 오른 딸에게 보내는 시인데요. 작품 가운데 그어진 사선에 타국으로 떠나는 여정이 어려있는 듯 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게 촘촘하게 종이가 뜯어지고 꼬아져 있습니다. 군데군데 물감이 흩뿌려져 있고요. 종이를 뜯어낸 각도와 정도에 따라 작품 전체의 이미지가 완연하게 달라지는 데 그 강약 조절이 탁월했습니다. 파여짐으로써 존재를 알리는 신선함이 기발했구요. 오윤석 작가의 페이퍼 컷팅은 산뜻하고 싱그러운 그의 작품세계로 안내합니다. 한 컷 한 컷 뜯어낸 종이들은 철새가 되기도 하고 은빛 가루를 하늘에 뿌린 것 처럼 별하늘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노란빛 종이 위에 새겨진 집요함.
덕분에 작품은 더욱 많은 이야기를 품게 되었습니다.
미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소위 '오타쿠'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지요. 저는 그런 기질을 가진 작가일수록 좋은 작품을 만든다고 믿습니다. 자신이 관심 가지는 대상에 올인하고 큰 애정을 쏟아부으면서 색다른 시각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는 것.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은 그렇게 탄생합니다. 정광호의 작품 또한 오타쿠적 기질이 없었다면 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사진 속 작품은 <THE LETTER> 입니다.
힘있는 한자 한 획 한 획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군요. 텍스트와 오브제의 시각적 완결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작품을 마주한 순간, 아름다움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작품입니다. 구리선으로 만든 큰 잎인데요.
은은하게 반짝입니다. 구리선이라는 단단한 재료와 연약하고 우아한 잎의 모습이 묘한 조화를 이룹니다.
앞서 소개했던 작가 김홍주의 색필화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도 있지요.
구리선으로 만든 잎. 바람에 흔들려 연약함이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했습니다. 실핏줄 같은 맥이 서로의 몸에 의지한 채 커다란 잎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문자 왕국의 노예들입니다. 좋은 작품들을 감상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텍스트로 사유하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작품들을 만났으니까요. <텍스트↔이미지>展은 단순히 텍스트와 이미지만 교감한 게 아닙니다. 작품과 관객이 교감했고, 서로 다른 물질이 한자리에서 호흡했습니다. 금속의 빛, 공간의 숨, 종이의 결을 모두 느낄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지요. 그래서 더욱 뜻깊었습니다. '관객에게 말을 걸어오는 작품'과 함께 할 수 있어 고즈넉한 시간이었습니다.
글, 구성 - 균미, 강희
첫댓글 그리우면 그리운대로으 연작을 보며 그리운 날은 그립게 가고 ...오윤석 작가의 페이퍼 컷팅을 오래 보고 앉아있다보니 많은 이야기가 하고 싶어져 밤으로 가는 기차를 들으며 海道를 따라 가는 그림움이 있네요.
작품과 관객이 교감 할 수 있다면 그 이상 행복한 일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관객에게 말을 걸어오는 작품...가끔 무심코 들어간 전시장에서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작품들은 잊지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