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 전우익
세상살이의 고통과 자유
권정생 ― 작가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현암사 1995) / 전우익 지음
선생님,〈깎아내려 죽이기와 추켜올려 죽이기〉란 노신의 글을 선생님도 읽으셨지요?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중국에 왔을 때 청년들이 그의 강연을 들으러 갔다가 되돌아가버린 이야기 말입니다. 마치 타고르를 신선처럼 연단에 세워놓고 그의 앞에 거문고를 놓고 향을 피우는가하면, 양쪽에 옹위하듯이 시인 서지마와 정객인 임장민이 인도 모자를 쓰고 앉아있는 모습이 역겨웠던 거지요. 결국 지나친 떠받들기가 타고르의 진실을 죽이고 만 것입니다.
무엇을 평한다는 것은 바로 이렇게 떠받들거나 깎아내리는 것 둘중 하나여야 하는데 이런 낭패가 어디 있습니까. 선생님의《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를 평해 달라고 하셨는데 저는 추켜올리기도 싫고 깎아내리기도 싫으니 그냥 제 멋대로 몇자 쓰겠습니다.
초판본을 읽고 교정을 다시 봤다는 재판본을 또 읽느라 두번이나 본 것을 느낀 대로 쓰겠습니다.
먼저 추사 선생님의〈세한도〉를 쓰신 대목을 읽으면서 모리 오우가이의 거룻배(高瀨舟)를 생각했습니다.
도꾸가와 시대에 어느 고아 형제가 있었는데 동생이 오랫동안 병으로 앓아누워 있고 형이 하루하루 날품을 팔아 살았지요. 어느날 동생이 형한테 너무 고생시키는 것이 부담스러워 혼자서 칼로 목을 찔러 자살을 하려했지만 목이 제대로 찔리지 않아 피만 흘리며 괴로워하고 있었지요. 저녁때 형이 돌아와보니 동생이 그 지경을 하고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동생은 형에게 애원했지요.〈형, 어서 이 칼로 내 목을 찔러 빨리 죽게 해줘.〉형은 동생의 고통을 차마 볼 수 없어 칼로 목을 깊숙이 찔러 숨지게 하는데, 그때 이웃에 사는 노파가 찾아왔다가 그 광경을 보게 되지요. 노파는 놀라 얼른 관에다 알렸고 형은 동생을 죽인 살인범으로 거룻배를 타고 먼 바다 외딴섬으로 종신징역살이를 떠난다는 줄거리입니다. 추사 선생님의〈세한도〉는 이 형의 슬픔에 비하면 좀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 나무 한그루도 돌멩이 하나도 경우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고 또 다르게 보는 것이 정상입니다. 모든 것을 똑같이 보고 똑같이 느낀다면 목숨이란 것이 있을 이유가 없겠지요. 비슷하게 보고 느끼는 건 괜찮지만 획일화를 요구하는 건 차라리 죽으라는 말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무늬로 바뀌는 상처〉도 그렇네요. 누군가 아름다운 것은 곧 슬픈 것이라 했는데 잘 모르겠군요.
제가 살고있는 마을 중, 특히 윗마을 사람들의 앞앞을 보면 너무도 깊은 상처를 지니고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상처라는 것은, 특히 이 나라 사람들의 상처는 역사의 비극에서 비롯되어 더 깊이 아프게 남아있지요.
나무의 무늬처럼 역시 사람들도 그런 상처들을 지혜롭게 아물려 참으로 아름답게 남기고 있습니다. 혹은 이야기로, 혹은 노래와 춤과 아이들의 놀이에까지 전승되고 있습니다. 서양 사람한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춤 가운데 우리는 곱사춤, 문둥이춤, 앉은뱅이춤 같은 신체장애인들의 노골적인 몸짓도 거리끼지 않고 춤으로 남겨놓았습니다. 한국의 춤을 보면 다른 외국인들의 춤과 달리 그냥 눈으로만 즐기는 춤이 아니라 뼈속까지 저려오는 아픔을 느끼게 하는데 역시 말못하는 백성들의 몸짓이 그렇게 춤이 되어 남았기 때문이지요.
진도 씻김굿의 소리는 과연 우주를 휘감듯이 영혼의 소리로 울려나옵니다. 대체 씻김굿을 처음 부른 이는 누구였을까요? 수많은 아리랑 가운데서도 저는 밀양 아리랑을 가장 좋아합니다. 얼핏 들으면 그냥 가벼운 가락인데, 거듭 들으면 절대 가벼운 노래가 아닙니다. 같은 삼박자의 춤곡이지만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곡보다 더 경쾌합니다. 아랑이란 처녀의 슬픈 한이 담긴 노래인데 그 한을 어떻게 극복했기에 이토록 흥겨울까요.
요사이 민요나 판소리를 부르는 것을 들어보면 혼을 다해 부르는 이가 없어요. 영화〈서편제〉를 보니 거기 나오는 당산나무와 산과 들은 아름다운데 제작진이 만든 세트나 소품, 입고 나온 옷 한가지도 정성들이지 못했어요.〈서편제〉는 그런 면에서는 국민학교 학예회 수준밖에 안되었지요. 참으로 안타까왔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수많은 고통을 견디면서 이토록 아름다운 춤과 노래를 남겨줬는데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되겠지요.
선생님이 말씀한 자유인에 대한 것은 잠깐 미뤄두고 사마천이 중형을 당한 뒤 어떻게 살았나 궁금해집니다.〈남자〉의 그것을 잃어버린 다음의 인생은 당해보지 못한 사람은 짐작도 못하겠지요.
제가 방광수술을 한 뒤, 한번은 버스정류소 변소에서 고무신짝만한 소변주머니를 꺼내놓고 오줌을 뽑고 있자니 옆에 누가 와서 들여다보고 뒤로 넘어질 듯이 깜짝 놀라더군요. 그 양반은 내 그것이 저 만큼 큰 것인가하고 오해를 한 것 같아요. 제가 고무주머니를 보이며 웃으니까 그때서야 신기한 듯이 따라 웃더군요. 그 뒤부터는 아예 똥누는 변소간에 들어가 숨어서 소변을 뽑아왔습니다.
또 한번은 버스를 타고 오는데 소변주머니의 마개가 빠져 담겨진 오줌이 주루루 흘러 바지가랭이를 타고 내렸습니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 당황했지만 그냥 눈을 꼭감고 모른척 끝까지 서있다가 내렸지요. 이럴 땐 주위 사람 눈치를 아예 무시해버리는 게 상책이지요. 집에 와서 속옷과 바지를 벗어 빨면서 그때서야 처량해질 수 있었지요.
사마천은 오줌누는 그것까지 잘렸으니 아예 여자처럼 쭈구리고 앉아 오줌을 눠야 했을 테고, 그러자면 자연 남의 눈을 피해 숨어서 볼 일을 봐야 했겠지요.
선생님, 자유인이란 가능할까요? 선택의 자유는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은 절대 자유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그야말로 행복했습니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땀흘려 일하지 않아도 온갖 먹을 것이 풍성하고, 그들을 해치는 폭군도 적도 없고 참으로 평화로웠습니다. 그들은 벌거벗고 있어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천사처럼 깨끗한 어린이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에덴동산엔 딱 한가지 자유라는 게 없었습니다. 자유가 없는 곳엔 변화가 없습니다. 변화가 없으면 성장이 없고 성장이 없으면 바보 천치가 됩니다. 일종의 꼭둑각시로 사는 거지요.
결국 에덴동산을 탈출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겁이 많은 남자 아담이 아니고 여자인 하와였습니다. 인류역사는 이렇게 여자로 인해 시작된 것입니다. 하느님이 절대 먹으면 안되고 죽는다고 했던 선악과를 하와가 제 손으로 따서 자신이 먼저 먹고 아담에게도 먹였습니다.
그들의 눈앞엔 에덴동산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자신들의 몸뚱이는 어린아이가 아닌 다 큰 남자와 여자로 되어있었습니다. 하느님은 노발대발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이르기를 아담에게는 종신토록 수고하여 처자식을 먹여살려야 하고 하와에겐 잉태하여 아이를 낳는 고통이 있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유에는 이렇게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노라가 집을 나간 뒤 어찌 되었읍니까?〈인형의 집〉에서는 벗어났지만 살기 위해서는 또〈돈〉이란 올가미에 구속당해야 한다고 노신이 썼지요.
대나무 조각에다 오십만자가 넘는 글자를 쓰면서 사마천은 자신이 진정한 자유인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어느 스님이 저한테 무엇에나 집착하지 말라 하시더군요. 집착(執着)하지 말라는 것은 붙잡고 있지 말고 붙어있지 말라는 뜻이니 결국 자유로워지라는 말이네요. 그래서 제가 스님께 여쭈었지요.〈스님은 왜 속세를 버리고 떠나서는 산속에 숨어서 수행에 집착하십니까? 일단 떠나갔으면 그것으로 해탈을 한 것이 아닙니까?〉
스님은 그냥 웃더군요. 제 질문이 억지였을까요?
태양계의 별들은 모두 각자 위치에서 한치도 어긋남이 없이 제 길을 따라 돌아야만 살아갈 수 있답니다. 만약에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행성 가운데 어느 것이든 자기 궤도를 이탈했다간 그대로 끝장나버린다지 않습니까.
알든지 모르든지 이 우주의 모든 사물은 무엇엔가 붙잡혀 있어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자유니 해방이니 하는 말 함부로 못쓰겠네요.
마르크스는 가장 큰 불행이〈복종〉이라 했고, 엥겔스는〈치과에 가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쪽이든 얽매여 있기는 마찬가지군요.
예수는〈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했거든요. 그래서 그는 진리대로 살다보니 스스로 십자가를 지는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고요.
그러니까 사마천 역시 진리라는 걸 지키기 위해 예수처럼 고난의 십자가를 진 것이지요.
자유라는 게 이렇게도 무서운 것이네요.
선생님이 저희 집에 찾아오신 것이 1976년이었지요. 이오덕선생님과 함께 오셨을 때 너무 닮아 쌍둥이는 아니더라도 사촌쯤은 되는가 싶었습니다.
그로부터 벌써 스무해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귀찮은 일도 있었고 오지게 바람맞은 적도 있었지만 이렇게 질기게도 붙어있군요.
저는 어릴 때 동무 하나가 있었는데 일찍 죽어버렸지요. 그 아이네 집은 살기가 괜찮아 학교에서 점심시간이 되면 도시락밥을 금을 그은 듯이 꼭 절반만 먹고 나눠주던 애였습니다. 그 집 부모님들도 다른 아이들보다 저하고 동무하는 것을 좋게 보시고 다른 집에는 절대 놀러 못가게 해도 우리 집에 놀러오는 것은 허락해주셨습니다. 그 애는 저녁마다 와서 숙제공부를 얼른 해치우고는 밤늦도록 윷놀이를 했지요.
한번은 그 애가 멀쩡한 바지에다 넙적한 헝겊으로 무릎을 기워입고 학교에 왔어요. 뒤에 알고 보니 자기 엄마한테 기운 바지를 달라고 조르더래요. 그 애는 제 기운 바지를 보고 항시 미안했던 모양입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그 애는 일류중학교인 사범병설중학교에 들어가고 저는 객지로 각자 헤어졌지요. 그랬는데 그 애가 통학기차에 치여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죽은 뒤에도 그 애는 십년이 넘도록 밤마다 꿈에 나타나 살았을 때처럼 산에도 가고 개울에서 멱도 감으며 놀았지요. 죽어서도 동무를 못잊어 밤마다 꿈속에 찾아왔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요즘은 잊었는지 좀처럼 꿈에도 안나타납니다.
친구라는 것도 인연이 있고 남녀의 궁합처럼 그렇게 합이 맞아야 되는 것이지 억지로는 안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격도 다르고 생각도 틀리면서도 가깝게 사귀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만나면 금방 원수 될 것처럼 싸우면서도 헤어지면 또 만나고 싶어진다고 합니다.
〈이능을 읽은 느낌〉에서〈하늘은 보고 있다〉는 제목을 붙이셨는데, 그 하늘의 실체는 역시 인간의 눈이고 역사의 눈이겠지요. 이능을 쓴 나까지마 아쯔시도 그런 뜻에서〈하늘〉이란 말을 썼을 것입니다.
가끔씩 저는 누워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나〉라는 존재가 어떻게해서 의식을 지니고 이 광활한 우주 한 귀퉁이에 떠 있는 지구라는 땅덩어리에 생겨났을까?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니면 기적인지, 행인지 불행인지, 어쨌든 내가 있다는 것에 오싹한 두려움을 느끼곤 합니다. 이러다가 조금 안정이 되면 그래도 의식을 지닌 인간으로 태어나 웃고 울고,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잠깐이라도〈삶〉이란 걸 맞본 것에 고마운 생각도 듭니다.
우주의 역사는 150억년이라고 하는데 그럼 그 이전에는 역사도 없고 어떤 형체도 존재하지 않았는지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가능할까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이 무한한 우주의 신비에 대해서 무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글프고 원통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몇몇 과학자들은 우주의 역사를 150억년이라고 하지만 그 150억년 이전의 역사는 상상조차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느집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하도 구박을 받다보니 한다는 말이〈니 늙고 내 젊을 적에 보자〉했지요. 그런데, 시어머니가 늙어 죽자 며느리도 어느새 늙어 있었지요. 인생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겠지요.
정영상선생님의 시〈목욕탕에 가면〉을 두군데나 쓰셨는데, 이 대목이 가장 정겹게 읽힙니다. 역시 사람은 사람의 체온이 제일 따스한가 봅니다.
정영상선생님은 주변에 함께 있던 분이어서 더욱 정이 가는가 봅니다. 살았을 때 두 내외분이 우리 집에 왔다가 떨구어놓고 간 피카소의 그림이 찍힌 손수건은 끝내 돌려드리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죽으면 누구나 다 떨구어놓고 갈 것인데,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은 또 이렇게 마음아파하는 것인가 봅니다.
고호의 그림책을 받고 잠시 좋았는데《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서평을 써달라는 쪽지를 보고는 아이구! 속았구나 싶어 실망했습니다. 과연 세상엔 어느 것 하나 공짜가 없음이 눈으로 확인 되었으니까요.
어쨌든 이래저래 공짜없는 세상이니 이제부터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쉬셨다가 내년쯤 이런 책 한권만 더 쓰시길 빌겠습니다.
*「녹색평론」, 1995년11~12월호(통권2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