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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문학건설(朝鮮民族文學建設)의 기본과제(基本課題)
임 인 식 (林 仁 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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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영성(領城)에서 조선민족(朝鮮民族)의 독자적(獨自的) 발전(發展)과 자유(自由)로운 성장(成長)을 저해(沮害)하고 있든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의 붕괴(崩壞)에 있어서도 독자적(獨自的) 발전(發展)과 자유(自由)로은 성장(成長)의 새로운 전제(前提)를 맨드러내었다.
우리 민족(民族)의 모어(母語)로 표현(表現)되고 우리 민족(民族)의 사상(思想)ㆍ 감정(感情)을 내용(內容)으로 한 조선문학(朝鮮文學)이 제국주의(帝國主義)의 지배하(支配下)에서 순조(順調)로히 발전(發展)할 수 없었음은 불가피(不可避)한 일이었다. 생활(生活)을 지배(支配)하는 자(者)는 문학(文學)을 지배(支配)하고 생활(生活)에서 예속(隸屬)된 민족(民族)은 문학(文學)에서도 예속(隸屬)되는 것이다.
더구나 뒤늦게 자본주의적(資本主義的) 발전(發展)의 도상(途上)에 오르고 황급(遑急)히 제국주의적(帝國主義的) 계단(階段)으로 돌입(突入)하지 아니할 수 없었든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 자신(自身)이 후진적(後進國)이었다는 사정(事情)은 그 밑에 예속(隸屬)된 조선민족(朝鮮民族)의 불신(不信)을 한층(層) 더 깊게 하였다.
일본(日本)의 조선통치(朝鮮痛治)는 근대제국주의국가(近代帝國主義國家)의 식민지지배(植民地支配)라느니보다도 고대(古代)에서 볼 수 있는 강(强)한 민족(民族)에 의(依)한 약(弱)한 민족(民族)의 정복(征服)의 성질(性質)을 다분(多分)히 갖이고 있었다.
라마(羅馬)3) 에 침입(侵入)한 게르만족(族)이나 파란(波蘭)에 나타난 몽고족(蒙古族)과 같이 일본(日本)은 통치자(統治者)이기보다 정복자(征服者)에 가까웠다. 첫재로, 일본(日本)이 전래(傳來)의 문화수준(文化水準)에 있어 조선(朝鮮)보다 높지 못했든 것. 둘재로, 자기(自己)의 문화(文化)를 갖어 오지 못하고 제삼자(第三者)의 문화(文化)를 매분(媒分)한데 지내지 못한 것.
셋재로, 그런 때문에 조선(朝鮮)을 통치(通治)하는 대신 민족적(民族的)으로 동화(同化)식히고자 한 것.
이러한 몇가지 점(點)에서 조선민족(朝鮮民族)은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에 지배(支配)되어 있었다느니보다 차라리 정복(征服)되어 있었고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의 후진성(後進性)은 일관(一貫)하여 삼십육년간(三十六年間) 조선민족(朝鮮民族)의 전생활(全生活)에 작용(作用)하고 있었다.
합병이후(合倂以後) 십년(十年)을 계속(繼續)한 소위(所謂) 무단통치(武斷統治)의 광폭(狂暴)한 행동(行動)가운데 또 제일차대전(第一次大戰)뒤 십여년(十餘年)동안 이른바 문치시대(文治時代)를 피로 물드린 반일투쟁(反日鬪爭)에 대(對)한 중세기적(中世紀的) 공격(攻擊)을 통(通)하야 그러고 만주침략이후(滿洲侵略以後), 태평양전쟁기간중(太平洋戰爭其間中), 무모(無謀)하게도 강행(强行)한 동화정책(同化政策) 속에 후진(後進)한 제국주의국가(帝國主義國家)의 비근대적(非近代的)인 식민지약탈정책(植民地掠掠奪政策)인 군국주의(軍國主義)는 그 잔인(殘忍)한 본성(本性)을 유감(遺憾)없이 발휘(發揮)하였다. 그러므로 근대적(近代的) 제국주의국가(帝國主義國家)의 지배하(支配下)에 사는 다른 식민지제국(植民地諸國)이 향유(享有)하고 있는 피압박민족(被壓迫民族)의 사소(些少)한 권리(權利)까지도 우리 조선(朝鮮)에 있어서는 허용(許容)되지 않았다.
조선어(朝鮮語)와 조선문학(朝鮮文學), 조선(朝鮮)의 산천(山川)과 조선민족(朝鮮民族)이 받은 수난(受難) 역사(歷史)에 비(比)하면 <큐-리>부인전(夫人傳)은 오히려 행복(幸福)된 기록(記錄)이라 할 수 있다. 조선민족(朝鮮民族)은 이 미개(未開)한 침략자(侵略者)의 채축아레 오즉 노하(奴何)한 의미(意味)에서이고 발전(發展)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想像)키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 또 한가지 불리(不利)한 조오(條仵)은 조선민족(朝鮮民族) 자체(自體)가 극(極)히 후진(後進)한 민족(民族)이였다는 불행(不幸)한 조오(條仵)이 첨여(添如)되어 있었음을 잊어서는 않된다. 조선민족(朝鮮民族)은 오래인 역사(歷史)와 전통(傳統)을 갖이고 있었음에도 불구(不拘)하구 그 구(救)할 수 없는 없는 아세아적(亞細亞的) 봉건사회(封建社會)의 장구(長久)한 꿈을 미처 깨우기 전(前)에 영맹(獰猛)한 침략자(侵略者)의 독아(毒牙)에 물닌 바 되고 말은 것이다.
모든 의미(意味)의 근대적(近代的) 개혁(改革)과 민주주의적(民主主義的) 발전(發展)의 어느 한가지 수행(遂行)하지 못한 채 사멸(死滅)하고 있는 봉건왕국(封建王國)으로 식민지화(植民地化)의 운명(運命)을 더듬었다.
그리하야 민족생활(民族生活) 가운데 광범(廣汎)하게 남어 있는 봉건적(封建的) 제관계(諸關係)는 시국주의적(市國主義的) 착취(搾取)의 호개(好個)의 지반(地盤)이 되고 난폭(亂暴)한 비근대적(非近代的) 약탈(掠奪)의 편의(便宜)한 온갖 수단(手段)을 제공(提供)하였다. 이리하야 봉건적(封建的) 잔재(殘滓)는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가 조선(朝鮮)을 지배(支配)을 하는 데 불가결(不可缺)한 발판(板)이 되고 조선(朝鮮)의 근대화(近代化)와 민주주의적(民主主義的) 개혁(改革)은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의 극(極)히 시려하는 바가 되어 조선(朝鮮)에 있어서 민족독자(民族獨自)의 발전(發展)의 기초(基礎)가 될 민주주의(民主主義) 개혁(改革)은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가 조선(朝鮮)을 지배(支配)하는 한(限) 영원(永遠)히 달성(達成)될 수 없는 죽은 과제(課題)로 화(化)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조선(朝鮮)에 있어 반봉건적(反封建的) 투쟁(鬪爭)은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에 대(對)한 투쟁(鬪爭)이 되지 아니할 수 없었고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에 대(對)한 투쟁(鬪爭)은 또한 언제나 내부(內部)에 있어 봉건잔재(封建殘滓)에 대(對)한 투쟁(鬪爭)과 연결(連結)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조선(朝鮮)에 있어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 지배(支配)의 철폐(撤廢)야말로 조선(朝鮮)의 근대화(近代化)와 민주주의적(民主主義的) 개혁(改革)의 유일(唯一)한 전제(前提)이였든 것이다.
일본(日本)에 대(對)한 연합국(聯合國)의 승리(勝利)에 의(依)하야 비로서 조선민족(朝鮮民族) 앞에 이 전제(前提)가 맨드러진 것이다.
우리가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의 패망(敗亡)을 가르처 조선문학(朝鮮文學)의 독자적(獨自的) 발전(發展)의 길을 여는 전제(前提)를 창괄(創适)하였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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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구조선개국(舊朝鮮開國) 이래(以來), 일제하(日帝下)의 삼십육년간(三十六年間) 불소(不少)한 세력(勢力)이 경주(傾注)되어 왔음에도 불구(不拘)하고 진정(眞正)한 의미(意味)의 조선민족문학(朝鮮民族文學) 수립(樹立)의 과제(課題)는 이 전제(前提)의 현실(現實)우에서 처음으로 근본적(根本的) 해결(解決)의 계단(階段)으로 드러스는 것이다.
웨그러냐 하면 먼저도 말한 것과 같이 민주주의적(民主主義的) 개혁(改革)을 수행(遂行)하지 못하고 일본(日本)의 식민지(植民地)가 된 조선(朝鮮)은 근대적(近代的)인 의미(意味)의 민족문학(民族文學)을 형성(形成)할 시간(時間)과 조오(條仵)을 한가지로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족문학(民族文學)은 한 민족(民族)을 통일(統一)된 민족(民族)으로 형성(形成)하는 민주주의적(民主主義的) 개혁(改革)과 그것을 토대(土臺)로 한 근대국가(近代國家)의 건설(建設) 없이는 수립(樹立)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조선(朝鮮)과 가치 모어(母語)의 문학(文學)이 외국어(外國語)-한문(漢文)-문학(文學)에 대(對)하여 특수(特殊)한 열등지위(劣等地位)에 있었든 나라에서는 정신(精神)에 있어 민족(民族)에 대(對)한 자각(自覺)과 용어(用語)에 있어 모어(母語)로 도라가는 <르네상스>4) 없이 민족문학(民族文學)은 건설(建設)되지 아니하는 것이다.
주지(周知)와 같이 우리나라에서는 천년(千年) 이상(以上)의 중국(中國)의 문자(文字)로 표현(表現)된 한문문학(漢文文學)에 대(對)하야 모어(母語)의 문학(文學)은 종속적(從屬的) 지립(地立)에 떠러저 있었다. 이 원인(原因)이 동양문화사상(東洋文化史上)에서 점(占)하는 중국문화(中國文化)의 탁월(卓越)한 지위(地位)와 우리의 고유(固有)한 문자(文字)의 발명(發明)이 지연(遲延)된 곳에도 있다고 하지만 이 명예(名譽)롭지 못한 역사(歷史)를 이십세기초두(二十世紀初頭)에 이르도록 정산(精算)하지 못한 것은 전(專)혀 조선(朝鮮)의 봉건왕국(封建王國)이 과도(過度)하게 장수(長壽)했듯 때문이다. 민주주의적 개혁(改革), 근대국가(近代國家)을 건설(建設)만이 한문(漢文)과 국문(國文), 혹(或)은 한문문학(漢文文學)과 모어문학(母語文學)의 부자연(不自然)한 위치(位置)를 고칠 것이요 이것을 고쳐야 조선민족(朝鮮民族)은 비로서 자기(自己)의 진정(眞正)한 민족문학(民族文學)을 건설(建設)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한문(漢文)대신에 국문(國文)이 한문문학(漢文文學) 대신에 국어문학(國語文學)이 지배적(支配的)인 위치(位置)에 스랴면은 당연(當然)히 한문(漢文)을 숭상(崇尙)하고 국문(國文)을 천시(賤視)하든 문화적(文化的) 사대주의(事大主義)의 물질적(物質的) 기초(基礎)인 봉건사회(封建社會)가 파괴(破壞)되지 아니하면 안될 것은 물론(勿論)이다.
그럼으로 부당(不當)한 지위(地位)에 있는 국어문학(國語文學)을 정당(正當)한 지위(地位)로 회복(回復)식히고 그것을 질적(質的)으로 근대적(近代的)인 민족문학(民族文學)에까지 발전(發展)식히자면 조선민족생활(朝鮮民族) 생활(生活)에 호(互)해서 민주주의적(民主主義的) 개혁(改革)이 수행(遂行)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개혁(改革)은 주지(周知)와 가치 역사적(歷史的)으로 조선시민계급(朝鮮市民階級) 손으로 실천(實踐)될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과제(課題)를 수행(遂行)할 시민계급(市民階級)의 연령(年齡)은 극(極)히 어리고 이 개혁(改革)이 실천(實踐)될 희망(希望)은 먼 장래(將來)에 예상(豫想)할 수 밖에 없는 시기(時期)에 조선(朝鮮)은 일본(日本)에 예속(隸屬)되고 만 것이다.
요(要)컨대 문학상(文學上)에 있어서도 민주주의적(民主主義的) 개혁(改革)을 통과(通過)하지 않고 조선문학(朝鮮文學)은 일본제국주의지배하(日本帝國主義支配下)에서 근대문학(近代文學)의 수립과정(樹立過程)을 거러나오게 되었다는 변칙적(變則的)이고 기이(奇異)한 운명(運命)의 길을 더듬게 되었다.
봉건사회(封建社會)의 문학(文學)으로부터 일약(一躍)하야 제국주의치하(帝國主義治下) 식민지민족(植民地民族)의 근대(近代)로서의 비약(飛躍) 이것이 오늘날까지 우리가 영위(營爲)해오든 온갖 문학생활(文學生活)의 본질(本質)이었다.
그럼으로 조선신문학(朝鮮新文學)의 사십년역사(四十年歷史)는 단순(單純)히 제국주의치하(帝國主義治下)에서 식민지민족(植民地民族)이 영위(營爲)한 문학(文學)이었다는 의미(意味)에서만 특이(特異)한 것이 아니라 문학사적(文學史的) 발전(發展)의 법칙(法則)으로 보아서 민족적(民族的)으로는 민족문학수립(民族文學樹立)의 역사적(歷史的) 계기(契機)요 문학적(文學的)으로 보면 근대문학(近代文學) 성립(成立)의 현실적(現實的) 계기(契機)였든 근대적(近代的) 시민적(市民的) 개혁(改革)의 과제(課題)를 해결(解決)하지 아니하고 고유(固有)한 봉건적(封建的) 문학(文學)과 외래(外來)한 근대적(近代的) 문학(文學)이 기계적(機械的)으로 연결접합(連結接合)되었다는 사실(事實)에서 변칙적(變則的)인 것이었다.
조선신문학사상(朝鮮新文學史上)에 나타나는 온갖 부자연성(不自然性), 비법칙성(非法則性)은 모두 여기에 기인(基因)하는 것이다. 결국(結局) 제국주의(帝國主義)에 의(依)하야 유린(蹂躪)과 황폐(荒廢)한 표현(表現)에 불과(不過)한 것이었다. 그럼으로 신문학(新文學)의 전사(全史)를 장식하는 여러 가지 유파(流派)와 각양(各樣)의 사조(思潮)가 혹(或)은 교체(交替)되고 혹(或)은 서로 투쟁(鬪爭)하였음에 불구(不拘)하고 문학사상(文學思想)에 있어 민주주의적(民主主義的) 개혁(改革)의 과제(課題)의 해결(解決)은 그대로 보유(保留)되어 있었고 이 과제(課題)가 보유(保留)되어 있는 한(限) 모든 문학유파(文學流波)와 사조(思潮)의 변천(變遷)은 견실(堅實)한 민족문학(民族文學)으로서의 성격(性格)을 형성(形成)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신문학사(新文學史)의 각(各) 유파(流波)와 사조(思潮)의 변천(變遷)이 유행(流行)의 변화(變化)와 같었고 모두가 모방(模倣)과 같은 혹(惑)을 주었음을 역역(歷歷)히 기억(記憶)하고 있다. 신문학(新文學)의 역사(歷史)가 이러한 혹(惑)을 준 원인(原因)은 물론(勿論) 여러 곧에 구(求)할 수 있으나 근본적(根本的)인 이유(理由)는 민주주의적(民主主義的) 개혁(改革)에 의(依)하야 신문학전례(新文學全體)가 민족생활(民族生活) 가운데 충분(充分)히 뿌리를 박고 있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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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상(現象)은 결국(結局) 우리 민족(民族)의 기구(崎嶇)한 운명(運命)과 변칙적(變則的)인 역사생활(歷史生活)의 소산(所産)이나 그와 동시(同時)에 신문학(新文學)은 또 조선민족(朝鮮民族)이 변칙적(變則的)으로남아 근대화(近代化)의 길을 거러가고 있었다는 사실(事實)의 표현(表現)임은 움즉일 수 없는 일이다.
이조말엽(李朝末葉) 이래(以來) 귀족(貴族)의 문학(文學)으로부터 점차(漸次)로 중인(中人)과 평민(平民)의 문학(文學)으로 옴겨오든 시조(時調)라든가 새로운 시대(時代)의 문학적(文學的) 주인공(主人公)이 되면서 결하지세(決河之勢)로 일반화(一般化)되든 <이애기책>의 발전(發展)이 벌서 미미(微微)허나마 이조(李朝) 봉건사회(封建社會) 가운데서 머리를 들기 시작한 시민계급(市民階級)의 문학적(文學的) 생활(生活)을 표현(表現)한 것이요, 개국이래(開國以來) 일본합병(日本合倂)에 이르기까지 문학계(文學界)의 주인공(主人公)이 된 신소설(新小說)과 창가(唱歌)가 역(亦)시 이 시대(時代)의 시민계급(市民階級)의 급격(急激)한 성장(成長)을 말하는 문학(文學)이었다.
다른 기회(機會)에도 여러번 지적(指適)한 바와 가치 신소설(新小說)과 창가(唱歌)는 낡은 형식(形式)에다 새로운 정신(精神)을 담은 문학(文學)이였다. 이 새로운 정신(精神)이란 일본(日本)과 그타(他) 외국(外國)으로부터 흘러 드러오는 근대사상(近代思想)의 영향(影響)임은 물론(勿論)이나 이 가운데는 또한 조선시민계급(朝鮮市民階級)이 조선(朝鮮)의 민주주의적(民主主義的) 개혁(改革)과 근대국가(近代國家)를 수립(樹立)하자는 역사적(歷史的) 욕구(欲求)가 표현(表現)되어 있음도 부정(否定)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역사적(歷史的) 사회적(社會的) 조오(條仵) 가운데서 이인직(李人稙), 이해조(李海朝) 등(等)의 신소설(新小說)과 유명무명(有名無名)한 작가(作家)의 손으로 된 다수(多數)한 사사조(四四調)의 창가(唱歌)가 씨워졌고 이러한 문학적(文學的) 시험(試驗)을 통(通)해서 초기(初期)의 소설(小說)과 신시(新詩)가 맨드러졌다. 신소설(新小說)과 창가(唱歌)가 구시대문학(舊時代文學)의 연장(延長)이었다면 새로운 소설(小說)과 신시(新詩)는 형식(形式), 내용(內容)이 다가치 신시대(新時代)에 적합(適合)한 문학(文學)이었다. 이러한 형태(型態)의 문학(文學)이 일본(日本)의 영향(影響)과 또 일본(日本)을 통(通)하여 수입(輸入)된 서구문학(西歐文學)의 직접적(直接的)인 모방(模倣)에서 나온 것은 부정(否定)할 수 없는 사실(事實)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영향(影響)을 밧고 또 그것을 모방(模倣)한 동기(動機)속에는 조선시민계급(朝鮮市民階級)의 문학적(文學的) 이상(理想)이 반영(反映)되어 있었다. 그들이 비록 사회적(社會的)으나 문학적(文學的)으로 일절(一切)의 봉건적(封建的)인 것을 타파(打破)하고 명실공(名實共)히 시민(市民)의 문학(文學)을 수립(樹立)할 계급(階級)에 이르지 못하였다 하드래도 외래(外來)한 서구문학(西歐文學)을 대(對)하자 그것이 자기계급(自己階級)의 이상(理想)하는 문학적(文學的) 형태(型態)임을 직각(直覺)한 것이다. 일한합병전후(日韓合倂前後)를 통(通)하야 생산(生産)된 시(詩)와 소설(小說)은 조선시민계급(朝鮮市民階級)의 이러한 상태(狀態)를 여실(如實)히 반영(反映)하고 있었다.
유치(幼稚)한 내용(內容), 졸렬(拙劣)한 형식(形式)이 비록 서구적(西歐的) 소설(小說)이나 시(詩)의 형성(形成)은 모방(模倣)했다 하드래도 신소설(新小說)과 창가(唱歌)로부터 그다지 먼 구리(矩離)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 솔직(率直)히 말하면 이 시대(時代)의 문학(文學)은 겨우 조선근대문학건설(朝鮮近代文學建設)의 한 전초(端初)에 불과(不過)하였다.
이러한 시기(時期)에 조선(朝鮮)은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의 식민지(植民地)로 정복(征服)되고 삼일봉기(三一蜂起)가 이러날 일구일구년(一九一九年)까지 조선민족(朝鮮民族)의 전생활(全生活)은 헌병정치(憲兵政治)의 야만(野蠻)스런 마제하(馬蹄下)에 유린(蹂躪)되고 마렀다. 문학(文學) 역(亦)시 미문(未聞)의 참담한 운명(運命)가운데 침묵(沈黙)하지 아니할 수 없어 완전(完全)히 암흑(暗黑)한 십년간(十年間)이 계속(繼續)하였다.
이동안 씨워진 한두개의 작품(作品)이 우리 신문학사상(新文學史上)에 아즉도 기억(記憶)될 수 있는 것은 그 전(前) 싸허온 약간(若干)의 문학적(文學的) 시험(試驗)과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에 대(對)한 조선민족(朝鮮民族)의 반항의식(反抗意識)을 근대문학(近代文學)의 형식(形式) 가운데 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일차대전(一次大戰)이 종식(終熄)하고 삼일(三一)의 대봉기(大蜂起)가 일어나자 조선인(朝鮮人)의 민족적(民族的) 자각(自覺)은 전면적(全面的)으로 앙양(昻揚)되고 세계(世界)를 풍미(風靡)하든 약소민족해방운동(弱小民族解放運動)의 혁명적(革命的) 파조(波潮)은 조선전토(朝鮮全土)를 휩쓰렀다.
실(實)로 현대조선문학(現代朝鮮文學)의 토대(土臺)가 된 본격적(本格的) 신문학운동(新文學運動)은 이와 같은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에 대(對)한 반항운동(反抗運動)의 일익(一翼)으로 파생(派生)하여 무단통치(武斷統治)의 폐지(廢止)와 문치(文治)로 표현(表現)된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의 소량(少量)의 양보(讓步)를 틈타서 급격(急激)히 발전(發展)하기 비롯하였다.
형태적(型態的)으로는 조선문(朝鮮文) 신문잡지(新聞雜誌)의 허가(許可)와 약간(若干)한 언론활동(言論活動)의 완화를 이용(利用)하여 문학(文學)은 가능(可能)한 온갖 방법(方法)으로 조선민족(朝鮮民族)의 의견(意見)을 표현(表現)하려 하였고 문학적(文學的) 형식(形式)의 최대한(最大限)의 발달(發達)을 도모(圖謀)하였다.
이 사업(事業)의 영도적(領導的) 세력(勢力)이 된 것은 물론(勿論) 시민계급(市民階級)이요, 그것을 대변(代辯)하는 소시민(小市民)들이었다. 따라서 일구이○년대(一九二○年代) 전후(前後)의 신문학(新文學) 가운데는 약간(若干)의 반봉건성(反封建性)과 반제성(反帝性)이 표현(表現)되어 인권(人權)의 자유(自由)라든가 인성(人性)의 해방(解放) 등(等)에 대(對)한 기초적(基礎的) 요구(要求)가 드러있었다.
그러나 계급(階級)으로서 유약(幼弱)한 조선(朝鮮)의 시민(市民)은 신문학(新文學)의 진보성(進步性)을 철저(徹底)히 추진(推進)식히지 못했다.
그들은 일본(日本) 제국주의(帝國主義)에 대(對)하여 철저(徹底)하게 반항(反抗)할 수 있을 만큼 혁명적(革命的)이지 못하였고 임이 지도적(指導的) 시민층(市民層)의 일부(一部)는 봉건적(封建的) 지주(地主)와 야합(野合)하여 일본(日本) 제국주의(帝國主義)와의 타협(妥協)의 길에서 활로(活路)를 개척(開拓)하기 비롯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삼일봉기(三一蜂起) 후(後) 불과(不過) 이(二), 삼년(三年)이 못가서 신문학(新文學)은 조선시민계급(朝鮮市民階級)의 정신적(精神的) 반항(反抗)이기보다도 더 많이 조선현실(朝鮮現實)에 대(對)한 소시민층(小市民層)의 비관적(悲觀的) 기분(氣分)과 급진적(急進的) 반항의식(反抗意識)의 표현수단(表現手段)으로 화(化)하고 마렀다. 이것이 일구이이일이사(一九二二一二四) 전후(前後) 조선문학(朝鮮文學)의 주조(主潮)를 이룬 자연주의(自然主義) 문학(文學)의 특색(特色)이다. 그리하야 이 시대(時代)의 급진적(急進的) 일면(一面)은 새로히 대두(擡頭)하는 노동자계급(勞動者階級)의 문학운동(文學運動)과 봉착(逢着)하면서 그 자신(自身)의 역사적(歷史的) 사명(使命)을 끝막는 순간(瞬間)에 도달(到達)하지 아니할 수 없게 되었다.
박궈말하면 신문학(新文學)의 급진성(急進性)은 푸로레타리아 문학(文學)의 혁명성(革命性)과 결부(結付)되든가 그러치 아니하면 <메카다니즘>과 절망의식(絶望意識)의 심연(深淵)으로 전락(轉落)되었다.
이 과정(過程)을 통(通)하여 조선(朝鮮)의 시민계급(市民階級)은 조선(朝鮮)의 민족문학(民族文學) 건설(建設)에 있어 기여(寄與)할 수 있는 역량(力量)과 시간(時間)이 얼마나 적고 짤다는 것을 유감(遺憾)없이 표시(表示)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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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조선시민계급(朝鮮市民階級)의 문학적(文學的) 단명(短命)과 더부러 새로히 대두(擡頭)한 푸로레타리아 문학(文學)은 그것 역(亦)시 일본(日本)의 직접(直接)의 영향(影響)과 일본(日本)을 통(通)해서 드러온 소연(蘇然)의 간접적(間接的) 영향(影響)을 받은 것은 물론(勿論)이나 원칙적(原則的)으로는 조선(朝鮮)에 있어 근대화(近代化) 노동계급(勞動階級)의 발생(發生)과 그 계급적(階級的) 자각(自覺)의 정신적(精神的) 표현(表現)이었다. 그럼으로 조선(朝鮮)의 푸로레타리아 문학(文學)은 조선(朝鮮)의 노동자운동(勞動者運動)의 영향하(影響下)에 그러고 그 일익(一翼)으로서 발생(發生)한 것이다.
그런데 삼일봉기(三一蜂起)를 계기(契機)로 전개(展開)되었든 민족운동(民族運動)이 일구이삼일사○년경(一九二三一四○年頃) 노동자운동(勞動者運動)의 대두(擡頭)로 말미암아 교체(交替)되다싶히 퇴조(退潮)한 것은 문학(文學)의 발전(發展)우에서도 중대(重大)한 의의(意義)가 있다. 웨 그러냐하면 민족해방운동(民族解放運動)에 있어 노동자운동(勞動者運動)의 대두(擡頭)가 민족운동(民族運動)의 혁명성(革命性)의 상시(喪矢)과 시기(時期)를 같이 하였든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文學)의 영성(領城)에서 거위 동일(同一)한 현상(現象)이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민족운동(民族運動)의 혁명성(革命性)의 상시(喪矢)은 말할 것도 없이 조선민족해방운동(朝鮮民族解放運動)에 있어 시민계급(市民階級)의 진보성(進步性)의 상시(喪矢)이다. 그와 반대(反對)로 노동자운동(勞動者運動)이 민족해방운동(民族解放運動) 가운데서 영도적(領導的) 위치(位置)에 스게 되었다는 것은 사회주의사상(社會主義思想)이 수입(輸入)된 때문이 아니라 조선(朝鮮)의 노동자계급(勞動者階級)은 시민계급(市民階級)이 탈락(脫落)한 뒤 민족해방운동(民族解放運動) 가운데서 불가피적(不可避的)으로 중심적(中心的) 역할(役割)을 놀지 아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일구이사일오년대(一九二四一五年代)로부터 십년간(十年間) 푸로레타리아 문학(文學)이 이론적(理論的) 창조적(創造的)으로 문학계(文學界)의 주류(主流)를 이룬 것은 단순(單純)히 외래사조(外來思潮)나 문학적(文學的) 유행(流行)의 결과(結果)도 아니며 조선문학(朝鮮文學)이 임의 역사상(歷史上)에서 민족문학수립(民族文學樹立)의 과제(課題)가 해결(解決)되었거나 과거(過去)의 일로 화(化)했기 때문도 아니다.
조선(朝鮮)의 시민(市民)이 힘으로 미약(微弱)하고 그 진보성(進步性)이 역사적(歷史的)으로 단명(短命)하였다 하드래도 근대적(近代的)인 민족문학수립(民族文學樹立) 과제(課題)는 의연(依然)히 전민족(全民族)압헤 노혀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不具)하고 민족문학수립운동(民族文學樹立運動)이 계급문학운동(階級文學運動)으로 박귄 것을 이 시기(時期)에 있어 문학적(文學的) 진보(進步)와 민족해방(民族解放)의 정신(精神)이 계급문학(階級文學)의 형식(形式)으로 밖에 표현(表現)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궈말하면 타협화(妥協化)하고 있는 시민(市民)에 대(對)한 반대투쟁(反對鬪爭)을 추진(推進)하면서 노동자계급(勞働者階級)은 자기(自己)의 반제국주의투쟁(反帝國主義鬪爭)을 계급적(階級的) 형식(形式)으로 전개(展開)한 것이다.
그리하여 속칭(俗稱)하는 바와 가치 계급문학(階級文學)과 민족문학(民族文學)의 대립시대(對立時代)가 출현(出現)하였다.
그러나 이 시대(時代)가 단순(單純)한 양파(兩派)의 분열시대(分裂時代)로 조선(朝鮮)의 민족문학발전(民族文學發展)은 정체(停滯)되었느냐 하면 그렇지 아니했다.
양파(兩派)의 분열(分裂)과 대립(對立)에도 불구(不拘)하고 조선문학(朝鮮文學) 발전(發展)은 의연(依然)히 쉬이지 않었고 오히려 조선(朝鮮)의 민족문학수립(民族文學樹立)에 필요(必要)한 여러 가지 문제(問題)가 이 대립투쟁(對立鬪爭)을 통(通)하여 밝혀졌다.
첫재로 푸로문학(文學)은 종래(從來)의 신문학(新文學)우에 몃가지 중요(重要)한 예술적(藝術的) 기여(寄與)를 했다. 내용(內容)에 있어 미약(微弱)한 진보성(進步性)과 계몽성(啓蒙性)을 혁명성(革命性)과 대중성(大衆性)의 방향(方向)으로 발전(發展)식혔고 형식(形式)에 있어 <레아리즘>5) 을 확립(確立)한 것은 큰 공적(功績)에 속(屬)하는 일이었다. 더욱이 중요(重要)한 사실(事實)은 푸로 문학(文學)은 협(狹)애한 소수자(少數者)로부터 문학(文學)을 민중(民衆)에게 해방(解放)하였다.
둘재로 대립투쟁(對立鬪爭)을 통(通)하여 종래(從來)의 민족문학(民族文學) 가운데 있는 반봉건성(半封建性)과 국수주의적(國粹主義的) 일면(一面)이 노정(露呈)되었다. 이 두가지 요소(要素)는 옳은 의미(意味)의 민족문학수립과정(民族文學樹立過程)에 있어 분명(分明)히 배제(排除)되어야 할 비근대적(非近代的) 요소(要素)이었음에 불구(不拘)하고 초창기이래(初創期以來) 일관(一貫)해 신문학(新文學)에 부수(附隨)되어 오든 요소(要素)이다. 이점(點)은 신문학(新文學)의 비진보적(非進步的) 측면(側面)이며 조선시민(朝鮮市民)의 경제적(經濟的) 후진성(後進性)과 정치적(政治的) 약점(弱點)의 반영(反映)으로 푸로문학측(文學側)의 공격(攻擊)이 주(主)로 여기에 집중(集中)되었음은 정당(正當)하였다. 덕우나 일구이공년대(一九二○年代)만한 진보성(進步性)도 가지지 못한 당대(當代)의 시민문학(市民文學)이 푸로문학측(文學側)의 공격(攻擊)을 받어 격렬(激烈)히 반발(反撥)하면서 드러낸 측면(側面)도 이것이었다.
셋재로 푸로문학(文學)은 수입(輸入)된 사조(思潮)의 모방(模倣)으로 기인(基因)되는 공식주의적(公式主義的) 약점(弱點)을 드러내었다. 종래(從來)의 신문학(新文學) 가운데 드러있는 긍정(肯定)될 요소(要素)와 새로히 대두(擡頭)할 수 있는 예술문학(藝術文學) 가운데 드러 있는 좋은 의미(意味)의 민족성(民族性)을 뿌르죠아적(的)이라고 하여 부정(否定)하는 과오(過誤)에 빠졌다. 반제국주의적(反帝國主義的)이요 반봉건적(反封建的)인 민족문학(民族文學) 수립(樹立)의 과제(課題)가 역(亦)시 장래(將來)에 있다는 사실(事實)도 그다지 고려(考慮)되지 아니했고 문학유산(文學遺産)의 계승(繼承)이라든가 예술적(藝術的) 완성(完成)이라든가 하는 문제(問題)도 적당(適當)히 취급(取扱)되지 아니했다. 통트러 민주적(民主的)인 민족문학(民族文學)의 수립(樹立)이 부단(不斷)히 현실적(現實的) 과제(課題)로 살어 있고 그것을 수행(遂行)할 주요(主要)한 담당자(擔當者)자로서의 역사적(歷史的)사명(使命)에 대(對)한 자각(自覺)이 부족(不足)했음은 반성(反省)되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이러한 문학적(文學的) 정치적(政治的) 분열(分裂)의 과정(過程)을 통(通)해서 푸로문학(文學)은 자체(自體) 가운데 내포(內包)된 결함(缺陷)을 인식(認識)할 수 있을 정도(程度)로 예술적(藝術的) 정치적(政治的)으로 성장(成長)해갓고 그와 대립(對立)한 진영(陣營)에서 초기(初期)의 신문학(新文學)과는 확실(確實)히 구별(區別)되는 신선(新鮮)한 작가(作家)와 시인(詩人)이 성장(成長)하였다.
만일(萬一)의 푸로문학(文學)의 정치적(政治的) 공식주의(公式主義)와 그 밖의 문학(文學)의 국수적(國粹的) 잔재(殘滓)와 예술지상주의(藝術至上主義)를 청산(淸算)할 수 있었다면 넓은 의미(意味)의 예술적(藝術的) 협동(協同)과 높은 의미(意味)의 민족문학(民族文學)의 수립(樹立)이란 과제(課題)로 접근(接近)할 수 있는 지점(地點)에 도달(到達)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不幸)히 우리나라의 모든 경향(傾向)의 문학(文學)은 문학(文學)에 있어서의 민주주의적(民主主義的) 개혁(改革)과 진보적(進步的)인 민족문학(民族文學)의 수립(樹立)이란 역사적(歷史的) 과제(課題)에 대(對)한 충분(充分)한 이해(理解)와 자각(自覺)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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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사이에 양심(良心)있는 조선(朝鮮)의 작가(作家)와 시인(詩人)에게 협동(協同)을 촉진(促進)식흰 정치적(政治的) 변화(變化)가 생기(生起)하였다. 일본(日本) 제국주의(帝國主義)는 드되어 세계(世界) 전쟁(戰爭)의 막(幕)을 연 것이다. 우선(于先) 일구삼공년(一九三○年)에 만주침략(滿洲侵略)을 개시(開始)하면서 가장 반일적(反日的)인 계급운동(階級運動)과 푸로문학운동(文學運動)을 공격(攻擊)하고 중국(中國)에 대(對)한 일층(一層) 대규모(大規模)의 약침전쟁(掠侵戰爭)을 시작하면서 모든 종류(種類)의 진보적(進步的) 운동(運動)과 진보적(進步的) 문학(文學)에 대(對)한 더한층(層) 가혹(苛酷)한 압박(壓迫)에 착수(着手)하였다. 실(實)로 이때로부터 조선민족(朝鮮民族)의 희생(犧牲)을 토대(土臺)로 하여 침략전쟁(侵略戰爭)을 성취(成就)식히자는 일본(日本) 제국주의(帝國主義)의 야망(野望)은 노골적(露骨的)으로 조선반도(朝鮮半島)에서 실행(實行)되고 민족생활(民族生活)은은 미증유(未曾有)의 도탄(塗炭)가운데로 드러간 것이다.
조선(朝鮮)의 문학(文學)은 일제(一齊)히 공포(恐怖)와 위협(威脅)과 가속화(加速化)하는 박해(迫害)의 와중(渦中)으로 몰려 드러가면서 대략(大略) 다음의 세가지 지점(地點)에서 공동전선(共同戰線)을 전개(展開)하는 태세(態勢)를 취(取)하였다.
첫재, 조선어(朝鮮語)를 직힐것.
둘재, 예술성(藝術性)을 옹호(擁護)할 것.
셋재, 합리정신(合理精神)을 주축(主軸)으로 할 것.
조선어(朝鮮語)의 수호(守護)는 우리나라의 작가(作家)가 조선어(朝鮮語)로 자기(自己)의 사상(思想), 감정(感情)을 표현(表現)할 자유(自由)가 위험(危險)에 빈(瀕)하고 있었든 것이 당시(當時)의 추세(趨勢)이었을 뿐만 아니라 모어(母語)의 수호(守護)를 통(通)하여 민족문학(民族文學) 유대(維待)의 유일(唯一)한 방편(方便)을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성(藝術性)의 옹호(擁護)를 통(通)하여 모든 종류(種類)의 정치성(政治性)을 거부(拒否)할 자세(姿勢)를 가춘 것은 일견(一見), 민족주의(民族主義)를 내용(內容)으로 삼는 종래(從來)의 민족문학(民族文學)이나 <맑시즘>6) 을 내용(內容)으로 삼든 종래(從來)의 푸로문학(文學)의 본질(本質)과 모순(矛盾)하는 것과 가트나 이 시기(時期)의 특징(特徵)은 문학(文學)의 비정치성(非政治性)의 주장(主張)이 한아의 정치적(政治的) 의미(意味)를 갖이고 있었다. 박궈 말하면 일본(日本) 제국주의(帝國主義)의 선전문학(宣傳文學)이 됨을 거부(拒否)하는 소극적(消極的) 수단(手段)이었었다.
합리정신(合理精神)의 문제(問題)는 주(主)로 평론활동(評論活動)에 국한(局限)되었었으나 비합리주의(非合理主義)로 무장(武裝)한 <팟시즘>7) 이 동아(東亞)에서 이러나고 있든 당시(當時) 조선문학(朝鮮文學)은 비교적(比較的) 마찰이 적은 논리적(論理的) 측면(側面)에 이것과 대립(對立)한 것이다.
이 시기(時期)동안에 협동(協同)가운데서 조선(朝鮮)의 문학자(文學者)들이 남긴 업적(業績)은 결(決)코 적은 것이 아니었고 또 하나 기억(記憶)할 것은 조선(朝鮮)의 문학자(文學者)들이 신문학이래(新文學以來) 처음으로 공동노선(共同路線)에서 협동(協同)했다는 사실(事實)이다.
그러나 세계(世界) <팟시즘>의 발광(發狂)에 끄닐줄 모르는 침략정책(侵略政策)은 조선문학(朝鮮文學)의 이러한 상태(狀態)를 오래 지속(持續)치 못하게 하였다.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은 전영역(全領域)에서 조선민족(朝鮮民族)의 생활(生活)을 근저(根底)로부터 뒤집어 노핫다. 봉건적(封建的) 지주층(地主層)과 대부분(大部分)의 자본가(資本家)들은 즐기어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의 주구(走狗)로 화(化)하고 민중(民衆)은 사(死)와 기아(飢餓)의 구렁으로 내몰렸다. 조선민족(朝鮮民族)의 생(生)과 사(死)의 시기(時期)가 드듸어 도래(到來)하고 만 것이다. 그리하야 문학(文學)우에도 철추(鐵鎚)가 나려 조선어사용(朝鮮語使用)의 금지(禁止), 내용(內容)의 일본화(日本化)에 의(依)해서만 조선인(朝鮮人)의 문학생활(文學生活)은 가능(可能)하게 되었다. 몇 사람의 문학자(文學者)는 주화(周和)와 가치 이 길을 선(選)하고 그 길만이 조선(朝鮮)의 문학(文學)이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조선인(朝鮮人)을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의 노예(奴隸)를 맨드는 운동의 일익(一翼)으로서의 국민문학(國民文學) 이것이 태평양전쟁(太平洋戰爭) 개시기(開始期)로부터 작년(昨年) 팔월(八月) 십오일(十五日)에 이르는 동안 조선(朝鮮)을 문배(文配)한 유일(唯一)의 문학(文學)이었다.
그리하여 종래(從來)에는 민족적(民族的)이냐 계급적(階級的)이냐 또는 진보적(進步的)이냐 반동적(反動的)이냐 하는 방법(方法)으로 생각되든 문제(問題)가 이 시기(時期)에 이르러서는 민족적(民族的)이냐 비민족적(非民族的)이냐 혹(或)은 친일적(親日的)이냐 반일적(反日的)이냐 하는 형식(形式)으로 제기(提起)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럼으로 친일문학(親日文學)은 존재(存在)하였고 반일문학(反日文學)은 존재(存在)할 수 없었든 것이다. 그러나 유감(遺憾)스러운 일은 우리 문학(文學)이 용감(勇敢)한 반일문학(反日文學)의 기(旗)치를 높이 들고 싸호치 못한 사실(事實)이다.
이러는 동안에 일본제국주의(日本帝國主義)의 운명(運命)의 날은 도라와서 전쟁(戰爭)은 종식(終熄)되고 조선민족(朝鮮民族)은 자동적(自動的)으로 일본(日本) 제국주의(帝國主義)의 기반(羈絆)을 떠낫다. 그리하야 먼저도 말한 바와 가치 정치적(政治的), 문화적(文化的)으로 독자적(獨自的) 발전(發展)과 자유(自由)로운 성장(成長)의 가능성(可能性)이 전개(展開)되자 문학(文學)에 있어서도 문제(問題)는 친일적(親日的)이냐 반일적(反日的)이냐 하는 데로부터 다시 한번 전회(轉迴)하야 근본적(根本的)인 지점(地點)으로 도라오게 되었다. 박궈 말하면 해방(解放)된 조선민족(朝鮮民族)이 건설(建設)한 문학(文學)은 었더한 성질(性質)의 문학(文學)이어야 하느냐을 자문(自問)해야 할 중요국면(重要局面)에 스게 된 것이다.
계급적(階級的)인 문학(文學)이냐?
민족적(民族的)인 문학(文學)이냐?
우리는 솔직(率直)히 문제(問題)를 이러한 방식(方式)에서 주관적(主觀的)으로 세웠든 사실(事實)이 있음을 인정(認定)하지 않으면 않된다. 었던 사람은 계급문학(階級文學)이어야 한다고 주장(主張)한 것도 사실(事實)이요 민족적(民族的)인 문학(文學)이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사실(事實)이다.
그러나 이만치 중대(重大)한 문제(問題)는 항시(恒時) 객관적(客觀的)으로 제기(提起)되어야 하는 법이다.
그러면 조선문학사상(朝鮮文學史上)의 가장 큰 객관적(客觀的) 사실(事實)은 무엇이냐? 하면
첫재로, 일본(日本) 제국주의(帝國主義) 문화지배(文化支配)의 잔재(殘滓)가 남어 있는 것.
둘재로, 봉건문화(封建文化)의 유물(遺物)이 청산(淸算)되지 아니한 것.
등등(等等)인데 었제서 이러한 유제(遺制)가 아즉도 잔존(殘存)해 있는가 하면 조선(朝鮮)의 모-든 영역(領域)에 있어 민주주의적(民主主義的) 개혁(改革)이 수행(遂行)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은 여러 번 말한 바와 갔다.
조선문학(朝鮮文學)의 발전(發展)과 성장(成長)의 가장 큰 장애물(障碍物)이었든 일본(日本) 제국주의(帝國主義)가 붕괴(崩壞)된 오늘 우리 문학(文學)의 일로부터의 발전(發展)을 방해(妨害)하는 이러한 잔재(殘滓)의 소탕(掃蕩)이 이번엔 조선문학(朝鮮文學)의 온갔 발전(發展)의 전제조건(前提條件)이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 이것의 제거(除去) 없이는 었더한 문학(文學)도 발생(發生)할 수도 없고 성장(成長)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現實)이다. 그러면 이러한 장애물(障碍物)을 제거(除去)하는 투쟁(鬪爭)을 통(通)하야 건설(建設)될 문학(文學)은 었더한 문학(文學)이냐? 하면 그것은 완전(完全)히 근대적(近代的)인 의미(意味)의 민족문학(民族文學) 이외(以外)에 있을 수가 없다. 이러한 민족문학(民族文學)이야말로 보다 높은 다른 문학(文學)의 생성(生成), 발전(發展)의 유일(唯一)한 기초(基礎)일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일로부터 건설(建設)해 나갈 문학(文學)의 과제(課題)이며 이 문학적(文學的) 과제(課題)는 또한 일로부터 조선민족(朝鮮民族)이 건설(建設)해 나갈 사회(社會)와 국가(國家)의 당면(當面)한 과제(課題)와 일치(一致)하고 공통(共通)하는 과제(課題)다.
여기에 문학건설(文學建設)의 운동(運動)이 조선사회(朝鮮社會)의 근대적(近代的) 개혁(改革)의 운동(運動)과 조선(朝鮮) 민주주의적(民主主義的) 국가건설(國家建設)의 사업(事業)의 일익(一翼)이 될 의무(義務)와 권리(權利)가 있는 것이다.
문학자(文學者)는 재능(才能)과 기술(技術)과 그러고 인간(人間)으로서 성실(誠實)과 예술가(藝術家)로서의 양심(良心)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적(民主主義的)인 민족문학(民族文學)의 건설(建設)을 위(爲)하야 노력(努力)하고 그보다 더 큰 노력(努力)과 희생(犧牲)으로써 조국(祖國)의 민주주의적(民主主義的) 국가건설(國家建設)을 위(爲)하야 싸와야 한다.
이상(以上)이 나의 생각에 의(依)하면 조선문학건설(朝鮮文學建設)에 기본과제(基本課題)에 대(對)한 문학자(文學者)와 문학가동맹(文學家同盟)의 임무(任務)라고 믿는다. 이 임무(任務)에 수행(遂行)을 위(爲)하야 우리 문학자(文學者)는 개인(個人)의 노력(努力)을 동맹(同盟)의 노력(努力)으로 집중(集中)하고 동맹(同盟)의 노력(努力)을 또 민주주의적(民主主義的) 국가대립(國家對立)에 관(關)한 전국적(全國的) 사업(事業)에 집중(集中)하지 아니하면 안될 것이다. ● <건설기(建設期)의 조선문학(朝鮮文學) ․1946>
1) 歐洲(구주) : 유럽
2) 露西亞: ‘러시아’의 음역어.
3) 라마(羅馬) : 로마
4) 르네상스 : 14세기~16세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하여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인간성 해방을 위한 문화 혁신 운동. 도시의 발달과 상업 자본의 형성을 배경으로 하여 개성·합리성·현세적 욕구를 추구하는 반(反)중세적 정신 운동을 일으켰으며, 문학·미술·건축·자연 과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유럽 문화의 근대화에 사상적 원류가 되었다.
5) 레아리즘 : ‘리얼리즘’의 북한어.
= 리얼리즘 - 사실주의. 일반적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재현하려고 하는 창작 태도. 19세기 중엽에 유럽에서 일어난 예술 사조로, 현실을 존중하고, 주관에 의한 개변·장식을 배제한 채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그 개성적 특질을 있는 그대로 그려 내려고 하는 경향 또는 양식이다.
6) 막시즘 : 마르크스주의(한자: -主義, 독일어: Marxismus, 영어: Marxism) 또는 과학적 사회주의는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경제학자, 언론인, 혁명가였던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기반을 둔 사회이론 및 정치 행위이다. 마르크스는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의 철학,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정치경제학, 19세기 프랑스 사회주의 및 파리 꼬뮌에 기초, 소위 과학적 사회주의을 만들어 내는데 이는 이상적 사회주의 및 프루동의 사회주의 이론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7) 파시즘 : 제일차 세계 대전 후에 나타난 극단적인 전체주의적·배외적 정치 이념. 또는 그 이념을 따르는 지배 체제. 자유주의를 부정하고 폭력적인 방법에 의한 일당 독재를 주장하여 지배자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한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철저한 국수주의·군국주의를 지향하여 민족 지상주의, 반공을 내세워 침략 정책을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