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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정연구센터에서 발간하는 계간 [농정연구] 2010 가을호에 실린 GS&J 회원회장 고현석 전 곡성군수의 글입니다.
한국농촌의 비전과 발전 방안에 관한 제언
(전 곡성군수)
한국농촌의 현상적 특징 (1)
한국의 농촌을 현상적으로 간결하게 묘사한다면, 지속적인 인구감소와 급속한 고령화로 요약할 수 있다.
1. 지속적인 인구감소
앞으로 한국의 인구는 감소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농촌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그 요인은 첫째, 출생인구를 초과하는 사망인구와 둘째, 유입인구를 초과하는 유출인구로 요약된다.
전자는 이미 고령인구가 많고 가임인구가 매우 적은 인구구조로부터 도출되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한국 전체로 보면, 출생율이 낮아서 앞으로 인구감소가 예상되지만 아직 출생인구가 사망인구를 웃돌아서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평균수명이 훨씬 늘어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매년 도시에서는 출생인구가 사망인구보다 많은데 농촌은 반대이어서, 상대적으로 격차가 커진다.
후자는 지금도 여전히 이른바 선별적 인구이동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능력 있는 청장년층에서 주로 자녀교육을 이유로 이촌향도(離村向都)의 인구이동이 지속되고 있다. 근래에는 수도권으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물리학의 표현을 빌리자면 “농촌인구의 순유출율은 서울 또는 수도권으로부터의 거리 또는 거리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겠다. 연구자들이 통계를 가지고 이 가설을 실증적으로 검증해 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지방대도시가 가지고 있는 약간의 흡인력은 감안되어야 할 듯싶다.
2. 급속한 고령화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단연 세계 신기록이다. 저출산과 평균수명의 연장이 맞물린 결과이다. 통계청에 의하면 2007년 7월 1일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481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9.9%를 차지한다. 그런데 농촌을 보면, 노인인구가 20%를 넘은 군이 많고 이미 30%를 넘어선 군도 있다. 이는 이촌향도의 선별적 인구이동 때문이다. 즉 청장년층과 학령층의 이촌은 도시의 노인인구 비율을 낮춰주면서 농촌의 노인인구비율을 높여줌으로써 고령화 속도에서 도농 간의 격차를 조장한다.
농촌의 고령화는 저출산과 평균수명의 연장에 젊은 인구의 유출이 겹쳐서 도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즉 주민이 오래 살게 되어 형성된 직접고령사회라기 보다는 인구이동으로 초래된 간접고령사회의 성격이 강하다. 그것도 농촌에 고령인구가 유입됨으로써 형성된 능동적 간접고령사회가 아니고 젊은 인구의 유출로 초래된 피동적 간접고령사회이다.
3. 인구감소와 고령화의 악순환 구조
모든 사태에는 거기에 이르게 된 인과관계가 있다. 그리고 그 사태가 지속적으로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경우에는 대개 인과관계가 서로 꼬리를 문다. 선순환과 악순환이다.
한국사회가 농업사회로부터 산업사회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농촌의 인구감소는 경제적 요인, 즉 소득과 일자리를 찾아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인구 때문이었다. 순기능이 컸다. 그런데 현재는 자녀교육이 수도권과 대도시의 농촌인구 흡인력의 가장 큰 요소로 지목되고 있다. 이를 매개로 악순환 구조가 고착되어 왔다.
농촌의 자녀교육환경 열악 -> 젊은 인구의 이촌향도 -> 농촌인구 감소 및 고령화 촉진 -> 지역활력 감소 및 교육여건 악화 -> 젊은 인구의 이촌향도 촉진
이러한 악순환이 지속되다 보면 한국의 농촌은 생산 공간으로만 기능하고 정주공간으로는 더 이상 역할이 없게 될 것이다. 단순화해서 말한다면, 수도권에서 먼 순서로 사람이 살지 않는 텅 빈 공간이 되어갈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농촌가옥의 공가화와 그 집적의 결과인 농촌마을의 폐촌화 및 부유한 도시민의 별장화에서 가시적으로 예견되는 사태이다. 별장이나 특수한 집단의 거주지가 듬성듬성 있는 농촌을 정주공간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선진국에 비하여 아직도 농업종사자의 비율이 높으므로 더 줄어야 한다거나 줄어도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그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인구가 많아야만 지역발전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가진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인구가 많으면 도시이지 농촌이 아니다. 인구밀도가 낮아야 농촌이다. 그러나 농촌인구가 지금보다 더 줄어든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보는 입장일지라도, 이런 상황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추세의 연장선에서 예견되는 한국농촌은 이미 농촌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농촌의 현상적 특징 (2)
한국사회의 발전과정에서 근래에 떠오른 농촌공간의 추가적 특징이 하나 있다. 농촌을 정주공간으로 유지·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논하기 전에 먼저 살펴볼 만한 사태이다. 다름 아닌 교통과 통신의 발달과 정보화이다. 전국에 깔린 도로망과 고속전철 등 교통의 발달은 도시와의 시간거리를 대폭 단축시켰고, 전국의 농촌마을에까지 광케이블을 설치해서 인터넷 세상을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모든 농촌은 미국으로 치면 대도시의 교외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대도시의 쇼핑센터가 자리 잡은 마을이나 읍내 또는 도시 가까이에 있어서 도시인들이 수시로 찾아 휴식하며 즐기는 레저·관광·휴양 타운과 같은 입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 농촌에 사는 사람들이나 농촌을 찾은 사람들이 모두 인터넷을 이용하여 농촌에 있어도 세상의 온갖 정보에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사태는 현재 수도권에서 비수도권 지방으로, 대도시에서 농촌으로 힘을 분산시키는 기능보다는 수도권과 대도시로 흡인시키는 기능이 더 크게 나타나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크게 보아 중립적이라고 볼 수 있고, 향후 무한한 변화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농촌을 정주공간으로 유지·발전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활용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우선 정보통신 시설의 설치와 운영에서 농촌이 도시보다 불리하지 않도록 정책적 배려가 요청된다.
한국 농촌의 비전
한국농촌의 비전은 악순환의 구조를 수용하는 한, 다시 말하면 현재의 추세를 연장하는 선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다. 시대의 흐름을 타고 농업종사 또는 농촌거주를 희망하는 인구가 점차 늘고 있지만 이들이 자연스럽게 농촌으로 이주하는 것만으로는 농촌공동화(農村空洞化)의 추세를 바꿀 수 없다.
그러므로 현재의 추세에서 예견되는 결과를 단호히 거부하고 농촌공간을 인간의 정주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될 것이라는 데에 한국 농촌의 미래 비전이 설정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많은 이론과 정서와 실제적 필요를 가지고 있다.
농업과 농촌의 다원적 기능은 농업계가 흔히 내세우는 이유이다. 좀 더 직접적으로는, 환경이 좋아서 지구상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한반도의 반쪽에 살면서 농촌을 사람이 살지 않는 공간으로 비어놓는 데에 동의할 정치가나 학자나 국민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의 정도와 이른바 시장원리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믿는 정도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다. 더욱 직관적으로는 국민 대다수가 농촌공동화에 무조건 반대할 것이다. 비록 각자의 행동은 농촌을 공동화시키는 추세에 따르고 있다 할지라도 그렇기 때문에 농촌공동화에 찬성한다는 사람은 없다.
현실적으로 우리 국민의 대다수가 앞으로 모두 도시에 모여살고 농촌은 레저활동을 포함한 생산공간으로만 쓰기로 하는 데에 동의한다면 그렇게 못 할 것도 없다. 이미 농업도 통근농업이 가능해 진 세상이다. 다만, 그렇기로 한다면, 하루 빨리 합의를 도출하고, 하루 빨리 현행의 농촌지방자치를 중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 지방자치정부들이 농촌공간에 쏟아 붇는 엄청난 노력들이 너무나 큰 사회적 낭비로 귀착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그 이유가 무엇이든 “농촌공간에도 사람이 정주해서 농촌지역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라는 소박하면서도 매우 포괄적인 명제가 현 단계 한국농촌의 장래 비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농촌의 발전방안
한국농촌을 정주공간으로 유지·발전시키려면 현재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각의 단계에서 다양하고 집요한 노력들이 쌓여야 할 것이다. 이를 전제로 하고, 큰 줄기를 따라 두 가지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농촌교육환경의 획기적 개선, 둘째, 도시은퇴자뉴타운 건설이다.
1. 농촌교육환경의 획기적 개선
한마디로 말해서 부모가 농촌에 살아도 자녀교육에서 도시보다 불리하지 않은 여건을 만들어 주자는 제안이다. 개인마다 학업의 성취에 차이가 나기 마련이며, 교육에서도 경쟁은 필요하고 순기능이 크다. 그런데 부모가 농촌에 거주하면서, 자녀를 농촌학교에 보내면 도시보다 학업성취가 낮아 상급학교 진학에서 불리하고, 자녀를 도시에 유학시키면 그에 따르는 위험과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할 수만 있다면 자녀를 도시로 유학시키거나 가족이 도시로 이사하는 것이 좋은 일이며 온당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자녀 개인의 능력차가 아니라 부모의 거주지로 인한 차이 또는 농촌학교인가 도시학교인가로 인한 차이이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자와 학자들을 포함해서 일반적으로 “농촌에 소득이 없어서 젊은 인구가 농촌을 떠나므로, 농촌에 공장을 유치하는 등 일자리 즉소득원을 만들어 주는 것이 농촌문제 해결의 핵심과제이다,”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농촌의 주민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말한다. 얼핏 그럴듯한 말이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소농구조의 한국농업과 농촌에서 겸업소득이 없이는 적정한 농가소득의 확보가 어렵다. 그러므로 일본이나 대만처럼 평균농가소득의 80% 이상을 농업 이외에서 벌어들일 일자리가 우리 농촌에 절실하다. 여기까지는 맞다. 그런데 소득이 올라가면 현재 농촌에 살고 있는 젊은 인구가 더 빨리 더 많이 도시로 이주해서 농촌으로 통근할 가능성이 크다. 말하자면 농촌의 인구감소를 촉진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물며 농촌에 기업을 유치하면 농촌인구가 늘 것이라는 기대는 어불성설이 될 수도 있다. 현재 농촌에 직장을 가지고 정기적으로 소득을 얻고 있는 군 공무원, 학교 교사, 공공기관 직원, 농수협 직원 등 봉급생활자들의 대다수가 도시에서 통근하고 있는 현실에서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이들만 농촌에 정주해 주어도 농촌지역경제가 획기적으로 활성화될 것이다.
자녀교육이 농촌인구 유출의 주된 요인이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실증연구를 통해서 확인되어 왔다. 그러나 그 해결방안은 매우 추상적으로 나열되거나 지엽적으로 실행되는 데에 그쳤다. 자녀 교육 문제가 중요하고 심각하다고 말들은 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문제라고 사실상 외면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수도권과 대도시로 몰려드는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비싼 땅에 학교를 신설하거나 교실을 증설해야 하는 막대한 예산은 당연시하면서 농촌에 소규모학교를 유지하는 예산은 낭비로 보아서 학교통폐합을 요구하고 추진해 왔다. 이에 대하여 농촌은 소규모학교 통폐합 반대로 맞서 왔지만, 따져보면 자녀교육 여건의 개선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소극적인 저항일 뿐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제7차 교육과정에서 중요시하는 특기적성교육을 다양하게 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적정규모의 학교가 요청되기 때문에, 단순히 예산의 측면만으로 공방을 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자녀교육문제의 해결 없이는 농촌에 젊은 인구의 정주를 기대할 수 없음이 분명한 현실이라면 어떻게든 그 해법을 찾아야 하는 일이다. 해법이 없다면 농촌의 공동화를 수용하고 이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자녀교육에서 도시보다 불리하지 않은 여건의 조성이라는 목표를 뚜렷이 인식한다면,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은 다각도로 상정해 볼 수 있다. 초등교육환경은 농촌이 도시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많다. 그런데 중학교부터가 문제이다. 그러므로 부모가 농촌에 살면서도 자녀를 도시민과 똑같은 부담으로 도시의 중`고등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만들어 주거나, 자녀가 농촌의 중`고등학교를 다녀도 도시학교에 비하여 대학진학에 불리함이 없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런 길을 찾아 노력해야 한다. 더 유리하게 해주면 이도향촌(離都向村)의 인구이동으로 전체적 흐름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는 현실이다.
무엇보다도 지방정부의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농촌에서는 학부모들이 그 수에 있어서 영향력이 있는 집단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계속 인구가 줄어드는 주된 요인이 자녀교육에 있음을 지방자치 10년의 역사를 겪으면서 인식하게 된 농촌지방정부들이 많아졌다. 학부모가 아니라 지방정부가 자녀교육에 나서게 된 것이다. 심지어 서울의 강남구와 같은 교육여건이 좋은 지역의 지방자치정부까지 나서서 자녀교육지원이 주민들이 바라는 긴절한 생활수요임을 간취하고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하물며 인구유출을 막기 위한 처절한 자구노력으로 자녀교육지원에 나서는 농촌의 지방정부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런 추세라 하겠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농정시책 가운데 하나인 농어촌뉴타운 조성사업에도 자녀교육 환경개선이 핵심적인 내용으로 등장하였다. 도시에 나가 사는 전업농의 자녀들을 농촌으로 유치하여 젊고 유능한 후계농업경영인을 확보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농림수산식품부의 업무보고에서 “도시에서 농어촌으로 들어오게 하려면 무엇보다 교육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지적이 있었다고 한다. 공공기관의 지방이전과 이를 담아낼 혁신도시가 그렇듯이 농어촌뉴타운도 자녀교육환경의 조성에 그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엽적이거나 땜질식이 아닌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획기적 처방을 기대해 본다. 비록 일부 지역일지라도 시범사업의 역할을 통해서 농촌에서 자녀교육 문제의 해결가능성을 열어주는 데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자면 농림수산식품부만이 아니라 교육에 대한 책임부서인 교육과학기술부가 농촌교육 문제의 해결에 적극 나서도록 해야 할 것이다.
농촌교육문제의 해결에서 첫술에 배부를 수도 없고 완벽한 해결이란 어렵겠지만, 도시보다 불리하지 않은 교육환경에 접근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분명히 있다는 인식이 현 단계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명분, 형식논리, 도그마에 얽매여 매우 공허하거나 실리가 없는 주장과 행동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도시보다 나은 교육환경을 실현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 요구와 행동으로 성과를 쌓아 나가야 한다. 농촌현장에서 그러한 사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학입시와 관련하여 ‘수능의 등급화’는 농촌교육 활성화의 촉매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는데 첫해부터 이른바 일류대학의 저항에 부딪치더니 사실상 작동을 못하고 말아 대단히 유감스럽다. 대학은 교육이 목적이므로 이에 부합되는 학생선발 방법, 즉 입시요강을 채택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입시요강이 공교육과 사교육 및 젊은 인구의 농촌정주에 미치는 막강한 위력을 고려해서 교육목적에 크게 지장이 없다면 이런 측면에 순기능으로 작용하도록 노력해 주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특히 이른바 일류대학은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 이런 요구를 학교와 교육당국에 직접 내기도 하고 국회의원으로 하여금 챙겨보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과거에 학교수 · 학급수 · 학생수를 기준으로 배정하던 교육예산을 학생수 단일 기준으로 배정하는 것도 농촌교육에 불리하다. 진정으로 농촌의 공동화를 원하지 않는다면, 이런 예산배정 기준 뿐만 아니라, 농촌학교를 도시학교와 차별화해서 지원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농촌의 학급당 학생수 기준을 도시보다 적게 하여 농촌학교의 학급수를 늘려 준다거나, 도시에서는 사교육에 맡겨진 부분을 농촌에서는 일정부분 공교육이 맡아 주고 교사에게 이에 상응하는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다.
그밖에도 교육대학 출신들의 성적순 배치 문제, 농촌학교 교사의 지역거주 환경 조성, 농촌에서는 학교가 명실상부한 지역사회학교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 등등 해결해야 하고, 마음먹고 나서면 해결이 가능한 일들이 수없이 많다. 도시보다 농촌을 배려하는 것이 본래 의미의 형평성일 것이다. 이런 일들이 도시와의 형평에 어긋난다는 생각을 고쳐야 한다.
일부 농촌지방정부가 자구적인 노력으로 학원이나 기숙학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교원단체가 나서서 반대하고, 교육당국이 위법이라고 시정을 요구하며, 성적 좋은 학생만을 위한 학원운영은 교육평등권에 어긋난다고 통고한 사례가 있다. 농촌교육의 절박한 현실을 외면한 안타까운 행태들이다. 이제는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해결책을 찾아 토의하고 요구하고 행동하는 길밖에 없다. 여기에 농업인단체와 학계의 관심과 동참을 호소하고자 한다.
이러한 노력은 당장은 당면한 농촌교육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지만, 그 결과는 농촌과 교육을 넘어 매우 심대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농촌에서 자녀교육이 도시보다 낫다거나 농촌에 살아도 자녀교육에서 최소한 도시보다 불리하지 않다는 상황이 된다면, 다음과 같은 효과가 차례로 나타날 것이다.
제1단계로 현재 농촌에 살고 있는 젊은 인구의 유출 중단이다. 제2단계로 현재 농촌에 직장(소득원)이 있는 도시통근 세대의 농촌 유입 및 농촌에 정주하면서 도시로 통근하려는 도시에 직장이 있는 젊은 세대의 농촌유입이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통근하는 것을 뒤집어 보면 농촌에서 도시로 통근도 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농촌에서 자녀교육이 가능하게 되면 비용, 건강, 여가 등 여러 측면에서 도시통근을 할 이유가 없어지며, 오히려 경제력이 약한 도시의 젊은 직장인들이 농촌정주를 선호하게 될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도시(특히 수도권 및 대도시)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일방적 우세가 도시와 농촌이 갖는 각각의 특성을 따라 개인적 선호가 달라지는 선택적 관계로 바뀌는 것이다. 제3단계는 새로운 기업의 농촌입지 촉진과 그 종업원의 농촌 거주이다. 현재 농촌 입지기업의 종업원 가운데 많은 수가 인근도시에서 통근한다. 이는 어떤 형태로든 기업의 비용이다. 인력조달의 애로가 토지가격이 싸다는 농촌입지의 이점을 상쇄해 버리므로 농촌입지를 꺼린다. 그러나 농촌에서 자녀교육이 가능하게 되면, 종업원들이 직장이 있는 농촌에 정주하게 되어, 저렴한 토지비용과 쾌적한 환경의 이점을 살릴 수 있게 되므로, 기업의 농촌입지가 저절로 활성화될 것이다.
이는 바로 우리나라를 직주일치(職住一致)의 사회로 변모시키는 커다란 계기를 만드는 일이다. 2003년 여름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가 주최한 연수에서 한국경제에 관한 강의를 한 박용성 당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게 농촌인구 과소화의 원인과 대책을 질문하였다. 군수로서는 부끄러운 우문을 던진 것이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이 간결하고도 명쾌한 답변을 듣게 되었다. 현답이었다.
① 이 지구상에 ‘단신부임(單身赴任)’이라는 말이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 ② 이는 자녀교육 때문이다. ③ 그 대책은 나는 모른다.
직장이 어디이든 서울이나 대도시에 가족을 남겨두고 단신 부임해서 혼자 사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처럼 비가정적이고 비인간적인 행태가 바로 자녀를 위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나쁘다고 할 것인가? 나쁘다고 비난해서 고쳐지고 해결될 수 있는 일도 못 된다. 물론 자녀에게 올인하는 한국적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변화시키는 노력이 있어야 하겠지만, 당장은 그 원인이 되는 자녀교육시스템에서 해결점을 찾아내는 노력이 훨씬 중요하고 시급하다. 진즉부터 경제정책과 공간정책과 교육정책이 우리 국민들의 자녀교육열이라는 매우 강력한 요인에 함께 주목하면서 이를 지혜롭게 활용하는 데에 머리를 맞댔더라면, 현재 당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크다. 지금부터라도 그랬으면 좋겠다.
직주일치의 사회가 되면, ① 개인은 절약된 통근시간과 비용으로 자신과 가족을 위하여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고, ② 기업은 통근비용이 절약되고 종업원의 활력으로 생산성이 높아지며, ③ 국가적으로는 통근 에너지 절약과 환경오염 및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고 ④ 국토공간의 활용도를 균형 있게 높일 수 있으며, ⑤ 정부는 수도권과 대도시의 학교증설 예산을 절감하고 농촌학교시설의 활용도를 높여 예산의 효율이 높아진다. ⑥ 총괄적으로, 저탄소 녹색생활이 구현되어 지금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훨씬 높은 행복감을 느끼는 사회가 된다.
그러므로 농촌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나서는 것은 매우 보람 있고 당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력을 기울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과제인 것이다.
2. 도시은퇴자뉴타운 건설
한마디로 말해서 능력 있는 도시은퇴자의 농어촌 정주를 유도하여 농어촌지역사회의 새로운 활력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다. 우리나라의 장수과학을 선도하면서 세계노화학계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박상철 교수가 일찍이 도시의 은퇴자들이 노후를 농촌에서 사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 농촌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복합적으로 푸는 매우 바람직한 방안임을 제시한 바 있다. (박상철 외, [한국의 장수인과 장수지역, 변화와 대응],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121쪽). 청장년층의 이탈로 피동적 간접고령사회가 되어버린 농촌을 도시인들이 노년에 농촌으로 이주하는 새로운 의미의 능동적 간접고령사회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는 장수과학의 관점에서 은퇴자들을 위해서나 국민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장수과학의 연구에 의하면 농어촌, 중소도시, 대도시의 순으로 장수도가 높다. 나이가 들면서 폐와 신장의 기능저하 속도가 다른 장기보다 빠르다. 공기와 식재료의 중요성을 말해 준다 고 할 것이다. 한편, 사회경제적 요인이 장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근래에 대도시의 장수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농촌의 사회경제적 환경을 개선해 준다면 자연환경이 좋은 농촌이 도시보다 건강장수에 훨씬 좋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한국의 고령화 추세에서 심각한 당면과제의 하나가 평균수명의 연장속도를 건강수명이 못 쫓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국민의 건강수명을 1년 연장하게 되면 최소한 3조 4천억 원의 사회적 비용이 절감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도시에서는 은퇴인구의 사회활동이 흔히 기피대상이어서 사회적으로는 쓸모없는 인력이다. 개인적 성취와 즐김이 있을 따름이다. 그런데 인력자원이 고갈되어 가는 농촌지역사회에서는 소중한 인력자원이 될 수 있다. 당당한 제3기 인생을 꾸리기에 좋은 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도시의 은퇴인구가 농촌에 정주하게 되면 본인과 가족, 농촌과 국가 모두에게 이롭다. 그렇다면, 당연히 농촌의 사회경제적 환경을 개선해서 도시은퇴자들이 농촌에 정주하도록 유인하는 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개인도 국가도 충분한 준비를 못한 상태에서 고령화사회를 맞았다. 그러므로 정부의 고령사회대책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노인들을 위한 시혜적 복지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로부터 이른바 실버타운과 골프리조텔이 경제적으로 상당한 여유가 있는 노인들의 수요에 부응하게 되었다. 실버타운은 대개 농촌과 무관하고, 골프리조텔은 농촌개발의 범주이긴 하지만 은퇴자의 농촌정주와는 거리가 있다. 실버타운이나 골프리조텔의 수요층이 되지는 못하지만 충분한 연금을 받거나 수도권의 아파트를 처분하면 노후의 생활에 지장이 없는 은퇴자들을 농촌에 정주하도록 하는 틀이 도시은퇴자뉴타운이다.
도시은퇴자뉴타운의 구체적 형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마을규모 정도일 경우에도 풍광 좋은 터를 잡아 저렴한 전원주택을 공급하는 것만으로는 도시은퇴자 유치가 어렵다는 점이다. 노년의 삶을 활기차고 보람 있게 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마을이어야 하고, 그러자면 일정한 규모가 되어야 한다. 100호는 넘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마을은 얼마든지 기존의 지역사회와 조화를 이루고 상생할 수 있다. 예컨대, 농촌학교의 특기적성교육 자원봉사와 학습부진아 지도를 해주는 선생님들의 마을이라거나 지역사회에 새로운 문화와 경제활동을 촉발시킨 혁신마을로 기능한다면 크게 환영받을 것이다. 전국의 비수도권 농촌 시·군이 모두 이런 형태의 은퇴자뉴타운을 하나씩 만들어서, 출향 은퇴자들이 고향에 돌아와 그 지식 · 경험 · 경제력을 바탕으로 고향의 발전에 기여하며 보람 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추진해 볼 만하다. 도시 은퇴자를 농촌으로 유치하는 다른 하나의 접근은 미국의 썬 씨티 (SUN City) 사례에서 보듯이 농촌에 노인특성화 도시 또는 은퇴자도시를 건설하는 것이다. 마을규모의 은퇴자뉴타운과 병행해서 무방한 사업이다.
정부에서도 대통령자문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가 제70회 국정자문회의(2005. 12. 21.)에 도시민의 농어촌 이주를 중심으로 한 “농어촌 복합생활공간 조성방안”을 건의한 바 있다. 이에 발맞춰 농림부는 2006년에 전원마을사업을 중심으로 “특히, 자녀교육 등 농촌이주의 제약요인이 적은 도시은퇴장년층(Senior)을 대상으로 한 농촌정주모델 창출”을 내걸고 콘테스트를 개최하기도 하는 등 전원마을조성사업이나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의 목표로서 도시인 유치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귀농이 쉽지 않고 별장형 · 주말형 · 요양형 · 예술작업장형 등의 전원주택 또는 전원마을은 농촌정주의 관점에서 매우 불안정하다. 대안학교 부근에 학부모들이 정주하게 된 자녀교육형 전원마을이 그나마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특수한 경우로서 일반적 해법은 못 된다고 할 것이다. 도시로부터 농촌정주인구를 유치하려면 능력 있는 도시은퇴자를 핵심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절실하다. 알고 보면 건강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나 제3기 인생의 전체적인 틀에 비추어 자기 자신들에게 매우 좋은 일이므로, 호응을 얻어 성공할 가능성이 높고, 보편적 해법에 가까운 방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이들을 농촌으로 유치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단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는 일이 시급하다. 그런 모형이 자리를 잡게만 되면, 비교적 안정적인 농촌정주로 이어질 것임은 분명하며, 나아가 매우 빠른 속도로 확산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만한 수요가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총선 때 드디어 고령화시대에 대비하는 “건강문화 복합도시” 건설계획이 여당의 공약으로 등장했고, 이를 대도시 주변 그린벨트를 풀어 짓는다는 구체적 방안이 제시되기에 이르렀다. 고령사회대책으로서 노인도시 건설이 제안된 것은 반갑고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수도권의 규제가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키므로 이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논란의 와중에 있는 마당에, 국가경쟁력과는 무관한 은퇴노인들마저 수도권 등 대도시 인근에 살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은 잘못이다. 이렇게 되면 그나마 농촌의 능력 있는 노인들까지 대도시 인근에 모이게 되고 농어촌의 공동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린벨트의 활용은 그 자체로서 논란이 클 것이다. 그러므로 농림수산식품부, 국토해양부, 보건복지가족부 등 고령사회대책과 농촌개발에 책임이 있는 부처들은 이른바 건강문화 복합도시이든 도시은퇴자뉴타운이든 비수도권의 농촌공간을 활용한다는 정책방향을 분명히 해야 하며, 농업계는 그러한 요구를 공론화해야 할 것이다.
농촌에 도시은퇴자뉴타운을 조성하는 것은 얼핏 복지를 위해서 또는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 지출하게 되는 비용으로 보고 투자의 경제적 타당성은 없을 것으로 치부하기 쉽다. 그러나 건강수명의 연장에 의한 사회적 비용 절감효과와 은퇴자의 농촌이주로 인한 수도권 등에 대한 즉각적 주택공급효과 등 계산 가능한 직접적 경제효과만으로도 충분한 경제적 타당성이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은퇴자들의 농촌정주가 고령사회 및 농촌과 대도시의 문제해결에 기여할 간접효과가 직접효과를 훨씬 능가하는 엄청난 것임을 고려한다면 국가 차원에서 사업의 타당성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문제는, 국민경제적 · 국가적 관점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도시은퇴자뉴타운을 비수도권 농촌 현장에 조성해야 하는 사업주체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의 조건에서는 분양이 쉽지 않고,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려우며, 그렇다 보면 금융기관의 융자 등 자금조달에도 어려움이 따른다는 데에 있다. 민간자본이 투자되기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다시 말하면, 기반시설의 정부 지원 등 여러 가지로 유리한 여건을 조성해 줌으로써 분양가능성과 수익성을 예견할 수 있도록 해주고, 또한 재원조달이 가능하도록 지원해 주는 제도가 마련되어애 도시은퇴자뉴타운을 실제에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민간기업의 농촌투자나 도시은퇴자의 농촌정주를 둘러싸고 투기논란이 일어날 정도가 된다면 못 마땅한 일일까?
현재로서는 도시은퇴자에 초점을 맞춘 효과적인 지원제도가 미흡하다. 하루 빨리 포괄적 지원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초기에는 파격적인 유인 제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분산된 관련시책들을 모아서 그런 조건을 만들어 주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최종적으로 일은 사람이 한다. 그러나 제도가 뒷받침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일을 더 잘 해낼 수 있게 된다. 도시의 중산층이 직장에서 은퇴하면 농촌에 정주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지원정책은 그 시급성과 중요성에 비추어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과감히 촉진하는 쪽으로 제도를 마련해나가야 할 것이다.
3. 활력 있는 농촌지역사회의 복원
한국의 농촌을 인간의 정주공간으로 유지·발전시키기 위해서 ① 농촌교육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젊은 인구의 정주를 확보할 것과 ② 도시은퇴자뉴타운을 농촌에 건설하여 능력 있는 도시은퇴노인을 농촌에 유치할 것을 제안한다. 전자가 주(主)이고, 후자는 종(從)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환경개선이 주이지만 성과를 내고 효과를 얻기까지 많은 시일을 요하는 일인 반면에, 도시은퇴자뉴타운은 종이지만 바로 착수해서 빨리 성과를 내고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농촌에는 돈과 아이디어(정보)가 없어서 발전이 더디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이다. 아이디어가 있고 예산까지 확보해 두었는데 이를 감당해 줄 공무원이 없거나 다행히 공무원까지는 확보했는데 현장에서 소화해 낼 민간(주민)이 없어서 일을 못하는 경우가 농촌에서는 종종 있다. 서울이라면 사업이 있고 예산이 확보되었다면 일할 사람이 구름처럼 모일 것이다.
근래에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많은 사업들에서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상향식 계획수립이 권장되거나 요구된다.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은 그 중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런데 도시의 관점에서는 너무나 지지부진하고 들어간 노력에 비하여 성과가 미미하여 답답해하기 쉽다. 그러나 매우 좋은 방식이고, 현재의 농촌으로서는 그 정도의 성과도 매우 소중한 것이므로, 앞으로도 꾸준히 추구해야 한다.
한편 농촌에서 이른바 지역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자구적 노력이 다양하게 이루어져 왔다. 전남의 경우라면, 민간 주도의 장흥학당과 지방정부 주도의 ‘21세기 장성 아카데미’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겠다. 광역지방정부라면 강원도의 새농어촌건설운동을 이런 노력의 성공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모자라는 역량은 외부 전문가의 컨설팅에 의존하고 중앙정부의 자문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잠시 다녀가는 자문은 도움은 크지만 현장에서 일을 추동해 내지는 못한다. 기본적으로는 농촌 현장에 살면서 이를 소화해 내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농촌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지역사회와 지방정부의 자구적인 노력과 중앙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고 잘 키워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 성과가 소중하긴 하지만 답답할 수밖에 없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인해서 농촌지역사회의 활력이 너무 탈진되고 보니, 빨리 소화해서 성과로 연결시켜 내기가 힘든 까닭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수혈이 시급하다. 대도시의 교외와 같다고 할 한국농촌의 입지적 특성과 아이티(IT) 강국의 이점을 능히 활용하여 아름다운 농촌공간에 활력을 창출해 낼 인력이 공급되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한 방안으로 ① 도시은퇴자뉴타운 건설과 ② 농촌교육환경의 획기적 개선을 제안하면서, 활발한 논의와 토론을 통하여 잘 다듬어지고 행동에 옮겨지기를 소망한다.
이는 농촌지역의 역량을 키우기 위하여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방정부, 중앙정부, 민간의 다양한 노력이 무의미하다거나 방편적 처방에 불과하다고 폄하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또 근본적 처방이 아닌 방편적 조치들은 의미가 없다거나 보편적 해법이 못되는 특수한 사례들은 가치가 없다고 폄하하는 것도 아니다. 여건이 어려운 만큼 그런 노력들이 더욱 소중하고 찬사를 받아 마땅한 일이다. 특수와 보편도 엄밀히 구분하기 어려운 정도의 차이로 볼 수 있다. 현재의 특수한 사례가 쌓이고 번지다 보면 일반적 해법으로 등장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 노력들과 함께 좀 더 근본적이고 적극적으로 농촌의 활력을 창출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밀어보자는 제안이다. 현재 하고 있는 노력들이 좀 더 빠른 속도로 좀 더 효율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바탕을 만드는 일을 병행하자는 것이다. 자녀교육문제와 같은 것은 그 중요성에 공감하면서도 해결이 불가능한 사안으로 미뤄버리는 경향이 있다. 농촌지방정부의 장으로서 현장 경험에 비추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매우 빠른 속도로 해결책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력히 전달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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