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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나라 인도(India) 배낭여행기<2>
아잔타 석굴(인도 중부 아우랑가바드에서 북서쪽으로 (106km - 불교미술의 금자탑)
7. 고대도시 마이소르(Mysore)
벵갈루루의 관광을 끝내고 다음날 아침 우리를 태운 미니 투어버스는 남서쪽 마이소르(Mysore-인도 지도에는 Mysooru로 표기)로 출발하였다. 거리는 138km 정도인데 4시간이나 걸린다.
카르나타카 주에서 벵갈루루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인구 80만 정도의 마이소르는 옛 마이소르 왕국의 수도로 유럽풍의 화려한 궁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유적이 남아있는 역사의 도시인데 낮은 위도에도 불구하고 데칸고원의 구릉지대로 해발고도가 높아 날씨는 비교적 선선하다. 카르나카주도 예전에는 마이수루(Mysooru State) 주라고 불렀다던가...
첫 번째로 고대 이슬람 왕궁유적인 스리랑가파트남(Sli Rangapatnam) 유적을 지나쳤는데 돌보지 않아 쓸쓸한 성벽과 건물 잔해들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다음 들른 곳은 스리랑가 힌두사원(Sli Ranga Hindu Temple)으로 비교적 잘 정돈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고푸람과 화려한 내부 장식이 볼만하였고, 많은 관광객들과 참배객들이 북적거리며 제법 번창한 기념품 가게들도 늘어서 있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메뉴판을 뒤적이다보니 중국식 볶음밥인 쉬쯔완 라이스(Schzwan Rice)라는 것이 보여 시켰더니 익숙하지 않은 냄새가 나지만 먹을 만했다.
오후에 찾은 성 요셉 성당(St. Joseph Catholic Church)은 그리 오래된 성당은 아니지만 웅장한 규모와 어마어마한 첨탑, 성당내부 지하에 모셔진 아름다운 성녀의 잠든 모습 등으로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또 지하복도 양쪽 벽에는 빼곡히 순교한 성인들의 명패가 붙어 있다.
마이소르 궁전(Mysore Palace)은 아라비아풍의 둥근 지붕과 유럽풍의 아기자기한 건축양식이 복합된 굉장히 아름다운 건물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한데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마이소르 궁전에서의 에피소드>
다른 우리 일행(인도인)은 입장료가 20루피(500원)인데 나는 외국 사람이라고 200루피(5000원)를 내라고 한다. 화가 나서 가이드한테 분명히 투어요금에 모든 입장료가 포함되었다고 했는데 말이 되냐고 따졌더니 외국인은 별도라고 한다. 말도 안된다고 계속 우기니 여행사에 전화로 연결해주며 따져 보란다. 우리돈 5천 원 밖에 안돼서 그냥 내고 들어갈까 생각도 들었지만 기분이 나쁘다.
가이드는 결국 두 손 들었는지 그러면 20루피 입장권을 사오란다. 그런데 이번에는 매표원이 얼굴을 쳐다보더니 200루피를 내라고 한다. 가이드를 찾아 또 따졌더니 질렸다는 표정으로 그냥 슬쩍 들어가 박물관은 들어가지 말고 사진만 찍으면 괜찮을 거라고 귀뜸한다. 어차피 박물관을 들어갈 생각도 없었기에 그냥 들어가려고 했더니 이번엔 경비원이 쫓아와서 표를 사오란다. 그냥 외부 사진만 찍고 나오겠다고 했더니 안된다고 하다가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팁을 조금만 주란다.
또 따질까 하다가 손에 쥐고 있던 20루피(500원)를 줬더니 함박웃음을 흘리고 허리를 굽신거리며 어서 들어가시란다. 얼굴표정은 화를 내고 따졌지만 속으로는 웃음이 나온다.
다음은 브린다반 가든(Brindavan Garden)이라는 호수공원을 관광했는데 엄청난 인파에 깜짝 놀랄 정도이다. 공원은 호수를 끼고 있는 넓은 면적에 잔디밭을 꾸미고 공원가운데로 물줄기가 흐르도록 하여 제법 아름답기는 한데 그 외에는 별로 볼거리도 없는 이곳에 이렇게 사람들이 바글거린다는 것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더구나 호수 건너편에 사람들이 유람선을 타고 가거나 꽤 먼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 따라가 봤더니 조그맣고 초라한 음악분수가 달랑 하나있는데 옆에는 꼭 야구장같이 커다랗게 관람석도 만들어 놓았다. 작고 초라한 분수에서 물줄기가 나오며 음악에 따라 물줄기가 춤을 추자 사람들은 박수와 환호성을 보낸다. 참 볼거리와 놀거리가 무척이나 부족한 나라인가 싶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함께 왔던 다른 관광객들은 벵갈루루로 되돌아가고 나와 한 가족만 내일 우티 관광을 위하여 호텔로 향하였다. 호텔은 샤워도 없고 매우 엉성하다.
8. 인도의 샹그릴라 - 우티(Ooty)
무쿠르티 국립공원의 야생 코끼리 / 우티고개의 찻집 주방
아침 9시, 천혜의 휴양지라는 우티로 출발했는데 도로는 형편없었지만 도로변의 풍광이 상당히 멋지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푸른 밀림이 나타나고, 평화스러운 농촌 풍경과 열대 과일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과수원도 보인다.
우티를 가려면 카르나타카 주와 타밀나두 주의 경계를 어우르는 제법 넓은 지역의 무쿠르티 국립공원(Mukurthi National Park)을 지나가야한다. 입구도 출구도 분명치 않은 공원의 한 가운데 비포장 도로를 가로질러 가는데 가운데쯤 작은 마을도 있다. 울창한 밀림이지만 도로 양편 10m 정도는 시야가 트이도록 풀을 잘라내서 시원한데 도로는 돌멩이에 물구덩이에....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도로변으로는 야생동물 주의 표지가 눈에 많이 띈다. 시속 30km 이하로 달릴 것, 야생동물 주의표지(Wild Animal Cross), 호랑이 서식지(Tiger Reserve Area), 코끼리, 표범, 사슴 야생서식지, 차를 멈추지도 말고 차에서 내리지도 말 것, 야영금지, 먹이주지 말 것, 괴롭히지 말 것...
코끼리 서식지를 지날 때 야생 코끼리 서너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나뭇잎을 먹는 것이 보이자 사람들은 카메라로 찍느라 법석이다. 또 사슴 서식지를 지날 때 7~8마리의 사슴이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가서 차를 잠시 멈추어야 했다. 정말 야생이 살아 숨쉬는 자연공원이다.
국립공원이 끝나는 근처인 듯 갑자기 높은 산이 앞을 가로막는다. 꼬불거리는 가파른 산길이 10km정도 계속되는데 대관령보다 훨씬 더 꼬불거리는 길로 중도에 헤어핀 벤드(Hairpin Bend)라는 표지판이 36곳이나 되고 커브마다 5/36 식으로 몇 번 째 커브인지 표시를 해 놓은 것도 재미있다.
이 고개는 무척 가파른데다 정말 머리핀 구부러지듯 커브가 급하니 고물차들은 올라가지 못하고 중간에 멈추어 서서 돌을 괴어놓고 고치고 있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결국 우리 차도 바퀴부분에서 뭔가 부러지는 것 같은 큰 소리가 나서 간신히 중간지점 쉼터까지 왔는데 한 시간 정도나 지체하면서 수리를 한 다음에야 다시 산길을 오를 수 있었다. 다행히 초라한 쉼터에는 작은 가게 두 세 개 있어 음료수와 요깃거리를 판다. 차와 찐 옥수수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목을 축인 다음 다시 출발하는데 날씨가 무척 덥다. 거리는 150km 정도밖에 안되는데 다섯 시간이나 걸려서 우티에 도착했다.
천혜의 휴양지라는 우티는 지대가 상당히 높은 듯 공기가 매우 선선하고 상쾌하다. 하늘을 찌르는 삼나무들과 고사목들이 나타나고 제법 큰 호수도 있는데 놀이공원으로 잘 꾸며져 있다. 또 잘 가꾸어진 나무공원(Tree Park)도 있는데 관광객들로 바글거린다. 인도에는 이런 자연공원이 많지 않은지 사람들이 무척 많고 모두들 감동하는 표정들인데 내 눈에는 그저 평범한 산으로 보일 뿐, 단지 다른 곳에 비하여 비교적 시원하고 산비탈에 옹기종기 예쁘게 지어진 집들과 산비탈 밭에서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원주민 아낙네들이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정도였다.
돌아오는 길, 어둠 속에서 야생 코끼리 두 마리가 눈에서 인광을 뿜으며 어슬렁거리는 것이 보였고 차창으로는 북두칠성이 너무나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밤 11시 쯤 마이소르 도착해서 저녁식사를 했는데 그림으로는 그럴싸해서 커드 라이스(Curd Rice)를 시켰는데 받아보니 냄새가 싫어 도저히 못 먹겠다. 한 술을 뜨다말고 대신 밀가루 부침개 모양의 로띠(Rotti) 2장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식사 후 밤 12시 경 다시 출발하여 벵갈루루에 도착하니 새벽 4시 50분이었다.
9. 호스페트(Hospet) - 고대왕국 함피(Hampi)와 파타다칼(Pattadakal)
파타다칼(호스페트에 있는 힌두사원 - 세계 문화유산)
대 유적 함피와 파타다칼 등을 관광하기 위해서는 호스페트(Hospet, 일명 Hosapete)로 이동해야 하는데 벵갈루루에서 5시 10분에 출발하여 오후 1시경 도착하였으니 버스로 여덟 시간이나 걸린 셈인데 거리는 300km 쯤 되는 모양이다.
이곳은 데칸고원의 끝자락으로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은 남쪽 평원지대와 사뭇 다르다. 키 크고 잎이 넓은 나무들은 사라지고 메마르고 엉성한 나무들이 이따금씩 보이는 땅으로 끝없이 넓은 평원이 계속된다. 이따금 밭들과 과수원(포도원)도 보이는데 곡식이 자라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호스페트가 가까워지면서 산줄기가 나타나는데 왼편으로는 호수도 보인다. 인구 20만 정도의 작은 도시 호스페트는 주변에 많은 유적들이 흩어져 있는 관광의 거점도시이다. 체력이 너무 떨어지고 더워서 이발소에 들러 길게 길렀던 머리를 깎아버렸더니 한결 기분이 상쾌해 졌다. 이곳에서는 당나귀 떼까지 도심을 어슬렁거린다. 안 넘어가는 점심을 몇 술 뜨고는 12km 떨어진 함피를 다녀오기로 했다. 버스비 13루피.
‘바위산이 빚어낸 경이(驚異)의 고대도시’ 함피(Hampi)는 14세기에 융성했던 비자나가르 왕국(Vijanagar Empire)의 수도로 엄청나게 넓은 바위산 전체가 왕궁유적인데 그 넓이는 14㎢ 나 된다고 한다. 왕궁 안에 있는 16세기 초에 세워진 힌두사원 비루팍샤(Virupaksha)는 거대한 고푸람(높이 56m)과 정교한 조각으로 가득 채워진 56개 열주의 방 만다파가 유명한데 참배객들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 비루팍샤는 후일 엘로라 석굴사원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던가....
안타까웠던 것은 유적 가운데를 낡은 차들이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고, 소와 개들이 배회하면서 배설물을 쏟아내고, 심지어 유적의 좁은 돌기둥 사이로 버스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든다. 또 유적의 중심부인 사원의 바로 앞에도 버스정류장을 비롯한 많은 기념품 가게들, 또 식당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식당 거리를 지나다보니 한글로 『칼국수』라고 써 붙인 식당이 보여서 들어가 봤더니 주인이 한국말은 못했지만 메뉴는 칼국수, 감자탕, 수제비, 김치볶음밥 등 상당히 다양하고, 김치와 깍두기는 접시 당 20루피라고 적혀있다. 또 메뉴판 빼곡히 한글 낙서들이 휘갈겨져 있다. 김치와 깍두기를 생각하니 눈이 휘둥그레져 물어봤더니 관광 비수기라 김치, 깍두기가 없다고 해서 그냥 돌아서고 말았다.
호스페트에서의 제2일은 석굴사원과 대 사원 파타다칼(Pattadakal) 관광인데 먼저 3시간 거리의 일깔(Ilkal)로 가야한다. 일깔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2시간을 더 달리면 석굴사원으로 유명한 바다미(Badami)에 이르게 되는데 여기에 호텔을 정하고 둘러봐야 한다.
바다미에 호텔을 정하고 곧바로 오토릭샤(Autosicsha/3발 툭툭이)를 500루피에 전세해 관광길에 나섰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석굴사원(Badami Cave Temple)으로 모두 네 개인데 1~3석굴은 힌두교 석굴로 6세기에, 제4굴은 자이나교 석굴로 7~8세기 경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3번과 4번 석굴이 특히 눈길을 끈다.
반남반녀 아르다나리쉬바라신 / 전라(全裸)의 자이나교 신
비슈누 사원인 3번 석굴은 입구 베란다의 천정 조각이 너무나 아름답고 또 우반신은 남자로, 좌반신은 여자로 조각된 아르다나리쉬바라(Ardhanarishvara) 신상이 눈길을 끈다. 가슴을 보면 왼쪽 반과 오른쪽 반을 남녀로 조각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이 3번 석굴은 엘로라의 석굴군에 필적하는 예술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 4번 자이나교 석굴도 엘로라의 그것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훌륭한 석조 조각예술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북동쪽 45km지점에 있는 아이홀레(Aihole)인데 바다미의 고고학의 공원이라 일컬어진다고 한다. 6~8세기에 조성된 이곳은 굉장히 넓은 지역에 수많은 사원들이 들어서 있다.
입장료가 100루피인데 라바나파디(Ravanaphadi) 석굴사원, 후치말리(Hucchimalli) 사원, 코티구디(Konti Gudi) 사원 등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이 있다.
아이홀레(Aihole)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목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명한 힌두사원 파타다칼(Pattadakal 혹은 Pattadkal)이 있다.(바다미에서 22km)
AD 7~8세기, 찰루키아 왕조 때 건축되었다는 이 엄청난 유적은 인도 석조건축의 최고봉으로 꼽힌다고 한다. 입장료 250루피를 내고 들어가면, 먼저 잘 정돈된 잔디밭이 나타나고 그 잔디밭 너머로 어마어마한 석조 건축물이 나타나는데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 파타다칼은 9개의 힌두사원이 서로 맞닿을 듯 마치 하나의 건축물처럼 모여 있는데 각각 모양과 크기가 다르며, 외부 벽면을 가득 메운 현란한 힌두세계의 다양한 부조들은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한다.
엊그제 호스페트에서 환전을 했어야 하는데 마침 일요일이어서 그냥 왔더니 바다미에 은행이나 환전소가 없다. 생각지도 않은 유적 입장료를 내다보니 택시비도 모자라 택시기사에게 부탁하여 제일 크다는 호텔에 갔더니 100달러에 3.700루피 밖에 못준단다. 기가 막혀서 다른 곳은 없냐니까 옆의 까페에 가보란다. 그 곳에서는 한 술 더 떠서 3.000루피를 주겠다고...
나보다 택시기사가 더 안절부절 못하며 걱정을 하기에 할 수 없이 호텔에서 3.700루피에 환전할 수밖에 없었다. 700루피 정도를 그냥 도둑맞은 기분이다.
자청하여 친절하게 가이드 역할까지 해 준데다 환전하려고 나를 태우고 이곳저곳을 다녀준 오토릭샤(Autoricsha) 기사가 너무 고마워 택시 대절비 500루피에 150루피를 팁으로 얹어 주었더니 매우 고마워한다. 기사가 데려다 준 기차역에서 7시 35분, 비자푸르 행 기차(기차비 40루피)를 탔는데 10시 30분경에 비자푸르에 도착하였다.
10. 무슬림의 성지 비자푸르(Bijapur)와 소도시 솔라푸르(Solapur)
골 굼바즈(비자푸르에 있는 이슬람 왕 무하마드의 능묘 - 세계에서 두 번째 크기의 돔)
인구 30만 정도의 자그마한 카르나타카 주 북부도시 비자푸르는 5~6세기 무슬림 왕국이었다는데 왕궁유적은 많이 훼손되어 그다지 화려하지 않지만 제6대 왕이었던 무하마드의 능묘로 건축되었다는 거대하고 화려한 돔형식의 이슬람 건축물 골 굼바즈(Gol Gumbaz)가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세계에서 바티칸의 성 바로로 성당 다음으로 크다는 이 돔은 높이가 51m, 직경이 37m나 되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무슬림들의 성지라고 하는데 비자푸르(Bijapur)는 '무슬림 승리의 도시'라는 의미라고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시내 관광에 나섰는데 제일 먼저 호텔 바로 앞에 거대한 모스크가 인상적인 골 굼바즈로 향했다. 깊은 해자로 둘러싸인 성곽의 가장자리 부분에 세워진 골 굼바즈는 잘 가꾸어진 잔디밭 가운데로 넓고 곧은 길이 시원하게 뚫려있고 수목이 우거진 아름다운 정원과 더불어 박물관도 함께 있다는데 시간이 너무 일러 문을 열지 않아 내부는 들어가지 못했다.
골 굼바즈 바로 앞의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따라 시내로 들어가면 가운데 쯤 다시 자그마한 성곽 유적이 나타나는데 결국 2중 구조의 성곽인 셈이고 그곳에 왕궁유적이 있었다.
왕궁건물인 가간 마할(Gagan Mahal), 대 회의장이나 연회장으로 짐작되는 사트 만질(Sat Manzil), 높은 첨탑이 인상적인 나르심하 사원(Narsimha Temple) 등이 밀집해 있는데 몹시 훼손이 심하였지만 그 위용은 당당했다.
어저께부터 살살 아파오던 복통이 더욱 심해져서 약방에서 약을 사 먹었는데도 설사가 시작된다. 결국 관광도중 설사가 터져 배낭을 집어던지고 쓰레기가 나뒹구는 길옆 풀숲에서 실례를 범하고 말았다. 마침 인도였기에 망정이지 다른 곳이었으면.... 냄새를 맡고 돼지들이 몰려든다.
서둘러 호텔로 돌아와 약을 먹고 종일토록 침대에서 쉬었다. 인도 음식이 워낙 향이 강하여 그러잖아도 입에 맞지 않았는데 속이 뒤틀리니 물도 잘 넘어가지 않는다. 혼자 다니는 여행은 이럴 때 가장 곤란하다. 그러나 어쩌랴 이를 악물고 버티는 수밖에....
다음날 아침, 버스로 1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마하라슈트라주(Maharashtra)의 솔라푸르로 향하였다. 솔라푸르(Solapur)는 인구 100만정도의 도시로 특별한 볼거리는 없고 철도교통의 요충지라고 관광책자에 나와 있다. 나도 특별히 관광이 목적이기보다는 아우랑가바드로 가는 중간에 하루 쉬어가는 도시이다.
마하라슈트라주(Maharashtra State)는 인구 1억 2천만, 면적은 30만 7천 ㎢(남한면적의 3배)라고 하니 어마어마하다.
비자푸르로부터 거리는 100km 정도 밖에 되지 않는데 아침에 출발하여 저녁 무렵에 도착하였으니 7~8시간 정도 걸렸으니 인도의 열악한 도로사정을 짐작할 것이다. 낡아빠지고 털털거리는 버스 차창으로 불어드는 뜨거운 바람, 차에서 내 뿜는 지독한 매연, 중간에 들르는 정거장마다 바글거리는 사람들과 온통 쓰레기로 뒤덮인 거리... 죽는 줄 알았다. 설사는 멈췄는데 계속 헛구역질이 나고 아무것도 못 먹겠다. 갑자기 여행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11. 데칸고원의 고대도시 아우랑가바드(Aurangabad)와 엘로라(Ellora) 석굴
비비카 막바라(무굴제국 제6대와 아우랑제브 왕비의 능묘 - 작은 타지마할)
마하라슈트라주(Maharashtra)의 아우랑가바드(Aurangabad)는 인도 중부의 관광거점 도시로 근처에 수많은 유적들이 있다. 무굴제국 6대 황제인 아우랑제브가 황태자 시절 태수로 부임하였던 데서 도시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인구는 100만 정도의 자그마한 도시이다.
아우랑제브 황제는 죽은 왕비를 위하여 세계 7대 불가사의(不可思義)로 꼽히는 아름다운 능묘(陵墓) 타지마할(Taz Mahal)을 건설한 무굴제국 5대 황제 샤자한의 아들이다.
첫날은 먼저 쿨다바드(Khuldabad)에 있는 아우랑제브가 왕비를 위하여 타지마할을 본 떠 17세기 중반에 건축하였다는 능묘(陵墓)를 보러갔는데 비비 카 막바라(Bibi Ka Maqbara)라고 한다. 아름다운 건물은 타지마할(5대 황제 샤자한의 왕비 능묘)과 꼭 닮아 작은 타지마할이라고도 불린다는데 크기는 300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무척 아름다운 능묘였다. 이 능묘는 아우랑제브가 어머니 뭄타즈마할을 생각하며 지었다고도 하고.....
3~7세기에 건축된 석굴사원, 13km 떨어진 곳에 있는 다울라타바드 요새(Daulatabad Port)는 지나가면서 사진만 찍었고, 물의 정원 혹은 물레방아 정원이라고 부르는 인도 중세의 관개시설인 판차키 바바사(Panchakki Babashah) 등을 둘러보았는데 중세 인도의 한 단면을 보는 것 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엘로라 석굴사원(Ellora Cave Temple)은 아우랑가바드 북서쪽 20km 지점으로 바위산 중턱에 2km에 걸쳐 석굴사원이 34개가 조성되어 있는데 인도 관광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으로 꼽히는 곳이다.
각각의 석굴은 석굴 앞 바닥에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1~12 석굴은 6~7세기에 조성된 불교석굴로 연대가 가장 오래되었고, 13~29 석굴은 힌두교 석굴, 30~34 석굴은 8~10세기 가장 나중에 조성된 자이나교 석굴이다. 모든 석굴들이 모두 특징이 있고 아름다운 부조들로 채워져 있지만 비교적 작은 규모지만 단연 두드러지는 것은 제16 힌두교 석굴인 카일라쉬 사원(Kailash Temple)이다.
카일라쉬 석굴사원의 위용
이 석굴은 어마어마하게 큰 것이 우선 두드러지는데 다른 석굴과 특별히 차별되는 것은 단순한 석굴이 아니라 산을 통째로 파고 들어가(하늘이 보이도록) 바위산 자체로 사원을 조성하고 다시 그 뒤의 바위벽을 파내어 수많은 석굴을 조성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건물과 석조물들은 다른 곳에서 조각하여 가져다 세운 것이 아니라 바위산을 파 들어가며 자체 돌로 깎은 것이라고 하니 더욱 불가사의할 따름이다. 일례로 사원에 세워진 거대한 코끼리도 네 발이 바닥에 그대로 붙어있다.
사원의 규모는 사원 앞쪽 가로길이가 46m, 사원 뒤쪽 암벽 높이가 33m, 입구에서 안쪽까지 54m나 된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본전(本殿)건물은 물론 벽면들마다 가득 채워진 부조들이 눈부시고 사원의 탑 뒤에는 거대한 코끼리 상도 우뚝 서 있다. 뿐만 아니라 사원 뒤편의 절벽은 다시 수많은 동굴을 파서 가지가지 힌두교 신들을 모시고 있다.
우리는 그저 훌륭한 예술품으로 감상하며 감탄할 따름이지만 바위산을 통째로 파내고 또 파들어 가느라 얼마나 많은 석공들이 얼마나 많은 세월을 이곳에서 고생했을까 경외감이 든다.
12. 대 석굴사원 아잔타(Ajanta) - 찬란한 불교미술
제15굴 입구의 코끼리 조각 / 제26굴 와불상
아우랑가바드에서 북동쪽으로 106km 떨어진 곳에 있는 아잔타(Ajanta) 대불교석굴군은 1819년, 호랑이 사냥을 하던 영국군 병사 존 스미스 일행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고 한다.
불교가 쇠퇴하면서 근 1.200여 년 동안 밀림에 버려져 잊혀졌던 아잔타는 호랑이가 맞은편 절벽 밑으로 사라져서 스미스 일행이 내려가 살펴보았더니 거기에 어마어마한 석굴군(石窟群)이 있었고 비로소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이 아잔타는 엘로라 석굴군보다 몇 세기 앞서 조성된 석굴이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버스는 황량하고 넓은 데칸고원 평원을 달리는데 텅 빈 뱃속에다 날씨가 너무 뜨거우니 금방 녹초가 된다. 4시간 쯤 달렸을까 버스는 평원에서 갑자기 수풀이 무성한 계곡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계곡 아래에 내려왔을 때 넓은 주차장이 보이고 몇 개의 건물이 보이는 곳에서 나 하나만 달랑 내려놓고 가버린다. 거기에 아잔타 석굴사원 매표소가 있었다. 이곳에서 마을까지는 다시 4km정도 더 가야한다. 입장료는 255루피.
와고라강 계곡이 반원형을 그리며 흐르는 절벽을 중심으로 조성된 30개의 불교석굴군은 높이 70m의 암벽에 BC 2세기부터 BC 1세기까지 조성된 전기 석굴군과 AD 5세기에서 AD 7세기까지 조성된 후기 석굴군으로 나누어지는데 총 길이는 1.5km에 이른다. 가장 오래된 석굴은 BC 2세기에 조성된 제10석굴이라고 하는데 이 아잔타 불교석굴군은 동아시아 불교미술의 보고(寶庫)이자 초기 인도 불교미술의 금자탑(金子塔)으로 불리어진다.
전기 석굴군은 불상이 없고 후기 석굴군부터 불상이 모셔지기 시작했고, 초기 형태의 불탑이 나타나는 등 불교 건축물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귀중한 불교유적이라고 한다. 보존 상태도 비교적 양호하여 천정과 벽면을 가득 채운 현란한 색채의 프레스코화는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불교미술의 정수(精髓)로 꼽히는 제1굴의 아름다운 프레스코화 '연화수보살상(蓮花手菩薩像)', 석굴 입구를 양쪽에서 두 마리의 코끼리가 무릎을 굽히고 지키는 제15굴, 초기불교의 법당(法堂) 모습과 불탑의 원형을 짐작케하는 제19굴, 아잔타 석조예술의 꽃으로 불리는 제26굴의 아름다운 부처님 와불상(臥佛像) 등등.... 참으로 귀중한 인류의 유산이라는 느낌이다.
몸의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 제대로 사진도 못 찍었다. 입구에 200루피 짜리 가마도 있었는데 타고 올걸 그랬다는 후회도 든다. 뱃속은 텅 비었는데 목으로는 콜라 밖에는 아무것도 넘길 수 없다. 매표소 옆에서 팝콘을 팔고 있기에 샀는데 깔대기 모양의 신문지 봉지에 담아주는 것을 한주먹 입에 넣었지만 도대체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없다. 메마른 입속에서 가까스로 녹여 목구멍으로 넘기려고 석굴사원 귀퉁이에 앉아 팝콘 깔대기를 옆에 놓고 콜라를 마시는 사이 랑구르 원숭이가 옆에 세워놓은 팝콘을 낚아채 도망친다. 그것을 빼앗으려 한 무리의 원숭이 떼가 뒤를 쫓고.... 참 내,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천신만고 쉬고 또 쉬며 그래도 악착같이 마지막 석굴까지 모두 둘러보았다. 입구로 나와 나무그늘에서 헉헉거리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서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그렇다니까 제법 또렷한 한국말로 자기소개를 하는데 이름은 아시라프 알리(Asiraf Ali)로 부산에서 1년 동안 여행사 가이드를 했다고 하며 한국 명함도 보여 주는데 매우 반가웠다. 이름이 알리인 것으로 보아 무슬림인데 이곳에서 무슬림들은 정직하다고 평판이 좋다.
날씨가 너무 덥다고 했더니 지금이 장마철 직전으로 가장 더울 때라며 한낮 기온은 섭씨 38~40도 정도를 오르내린다고 하며 자신도 곧 살기 좋은 한국으로 다시 가겠다고 한다.
너무 힘들어 여행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하자 가는 방법이 아우랑가바드로 되돌아가서 비행기로 뭄바이로 간 다음 한국으로 가는 방법이 가장 빠르다고 한다. 지금 당장 그 루트를 밟고 싶다고 했더니 택시를 하는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보더니 지금 바로 가자고 하여 그 친구의 오토바이 뒤꽁무니에 타고 4km 떨어진 마을로 왔다.
아우랑가바드 공항까지 택시로 3시간 정도 걸리고 차비는 1.200루피(3 만원)를 달라고 한다. 당장 그렇게 하자고 흥정이 되어 알리에게는 고맙다고 100루피와 입맛이 없어 한 개비 피우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담뱃갑과 라이터까지 주었더니 입이 헤벌어진다. 더운 날씨에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택시를 타는 것도 고역이었다.
아우랑가바드 공항에서는 곧바로 뭄바이 행 비행기가 없어 네 시간이나 공항로비에서 앉아 기다렸는데 시원하니 그래도 살 것 같다. 또 콜라만 마셔댔다.
아우랑가바드에서 서남쪽으로 350km 지점에 뭄바이가 있다.
13. 인도의 관문 뭄바이(Munbai) 그리고 머나먼 귀국길
인도문(Gateway of India) / 뭄바이 빨래터
녹초가 되어 뭄바이 공항에서 한국 행 비행기표를 알아보고는 시내로 들어왔다. 표가 곧바로 없기도 하려니와 너무 몸이 좋지 않아 한 이틀 쉬다가 가야겠다.
시내로 들어와 호텔에 이틀치 요금을 내고는 침대에 쓰러져 곧바로 잠이 들었다. 잠이 깨니 저녁 무렵인데 뭔가 먹어야 기운을 차리고 귀국 비행기를 탈 수 있겠다 싶어 프런트에 전화로 계란 프라이를 넣은 샌드위치와 바나나 네 가닥, 사과 큰 거 1개, 콜라 한 병을 날라다 달라고 하여 침대에서 강제로 입에 구겨 넣었다. 에어컨을 강하게 틀어 놓으니 조금 살 것 같고 음식도 제법 입에 들어간다.
웃기는 것은 여기서는 샌드위치를 안만들어 보았는지 식빵 테투리 구운 부분은 모두 뜯어내고 계란 플라이와 토마토 슬라이스를 넣고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ㅎ
다음날 아침 조금 기운을 차리겠는데 또 욕심이 생긴다. 이곳까지 왔는데 뭄바이 관광을 안 할 수가 있겠는가? 마음을 다잡고 다시 관광안내 책자를 펴 들었다.
마하라슈트라주의 주도(州都)인 뭄바이(Mumbai)는 인구 1.400만의 대도시로 인도 제2의 도시라고 하며, 1995년 봄베이(Bombay)에서 뭄바이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볼거리가 많았지만 내 몸 상태를 고려하여 인도문(Gateway of India)과 인도문에서 10km 거리 뭄바이만(灣)에 있는 작은 섬 ‘코끼리 섬(Elephanta)’ 만 보기로 했다. 호텔에 부탁하여 택시를 불렀는데 300루피를 달라고 해서 바가지를 씌우는게 아닌가 의심했는데 인도문은 굉장히 먼, 기다란 반도 끝 부분인 아폴로 부두에 있었다.
가는 도중 택시 기사는 갑자기 도로변에 차를 세우더니 내려서 다리 난간 밑을 넘겨다보라고 한다. 영문을 모르고 내려다 봤더니 그곳이 사진으로만 보던 유명한 인도의 빨래터였다. 벌집 같이 칸막이가 처진 빨래터에서 물에 불린 빨랫감을 휘둘러 내리치는 장면이 신기하고, 길게 줄에다 널어놓은 빨래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것이 이채로웠다. 인도 카스트제도에서 제일 아래 계급인 빨래꾼들은 대대로 세습되며 신분상승이 안된다든가....
뭄바이 도심은 유럽풍의 멋진 건물들이 즐비하고 사람들도 세련되어 보인다.
뭄바이 만 아폴로 부두에 세워진 거대한 인도문은 1911년 영국 식민지 당시 조지 5세(현 엘리자베스 여왕의 할아버지)의 델리 방문을 기념하여 9년 간의 공사 끝에 1924년에 완공되었다고 하는데 인도의 상징처럼 되어 버렸다. 16세기 구자라트(Gujarat) 양식이라는 인도문은 높이가 26m로 굉장히 멋지고, 바로 옆에는 뭄바이의 최고급 호텔이라는 타지마할 호텔이 있는데 꼭 거대한 왕궁을 보는 것 같다.
배로 한 시간 거리의 코끼리섬(Elephanta)까지 배 삯이 120루피, 섬에 내려서 500m쯤 타는 코끼리 간이기차가 5루피, 7~8세기에 건축된 힌두교 석굴사원을 들어가는데 250루피이다. 이곳 코끼리섬의 석굴사원은 삼면상(三面像)의 시바신 석상 등 볼만 하다고 안내책자에는 소개되어 있었지만 힘도 없고, 돈도 아깝고, 너무 많은 석굴사원을 보았던지라 그만두었다. 대신 배에서 바라보는 뭄바이 시와 인도문과 타지마할 호텔, 그리고 코끼리섬의 아기자기한 풍광 등이 인상에 남는다.
다음날 인천행 비행기에 올라 다시는 배낭여행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귀국하였는데 집에 와 재어보니 체중이 4kg이나 줄었다. <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