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가 지향하는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을 순간 포착하여 짧은 언술로 표현하는 방식은 서정시의 근원적 시정신에로의 회귀라고 할 수 있다.
강경희 평론가가 《문학과 현실》(2010년 여름)에서 「현대 서정시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에서 전통의 서정과 현대의 서정 사이에 차이점으로, 전자가 일원론적 세계관을 지향하며, 자아와 세계가 충돌하여 빚어낸 갈등과 모순을 동화시켜 자아와 세계의 거리를 없애려는 시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90년대 이후 전개된 이념부재와 탈중심주의적 경향에 따른 급격한 세계 단절의 인식이 개입된 것으로 ‘신서정’, ‘반서정’, ‘탈서정’이라는 용어가 함축하듯이 현대의 서정시는 전통 서정의 근본 정서가 상실되거나 파괴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본다. 즉 후자는 전자와 달리, 자아와 세계의 마찰과 균열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본다.
이와 같은 견해는 새삼스로운 것은 아니다. 김준오 『시론』에서 서정시의 장르적 특성으로 서사나 극과 구분되는 서정시의 시정신은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으로, 자아와 세계의 일체감을 말했다.
김준오는 듀이의 『Art as Experience』를 참고로 “자아와 세계가 각기 특수한 성격을 '상실'하고 하나의 새로운 동일성의 차원에서 승화되었을 때 미적 체험이 된다는 것이다.”라고 주객일체의 경지를 지적했고, 또 바슐라르의 말을 빌려서는 “몽상하는 사람이 말할 때는 누가 말하는 것인가, 그인가, 세계인가?”라고 하는 정도의 경지, 자아와 세계의 구분이 없는 동일성이야말로 서정시의 시정신이고 세계관이라고 말했다. 김준오는 자아와 세계의 거리 결핍이 서정시의 본질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도 김준오는 사실 많은 현대시들에서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고, 오히려 대립과 갈등이 지배적이라며 서정시 이론의 불충분함을 지적한다.
서정시의 세계관은 현대 서정시에서는 그대로 적용하기 힘들다는 결론이다. 그것은 전통적 세계관이 붕괴되며 탈중심주의적 새로운 세계관으로 이행된 측면과도 관계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현대시에서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시의 다수가 전통적인 서정시의 정신을 그대로 지켜오는 경우가 많다. 서정시가 처음 발생할 때의 세계관과 오늘의 세계관이 어찌 일치할 수 있겠는가마는 시적 세계관이 제아무리 바뀌었을지라도 근원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마저 폐기처분된 것은 아니다.
시의 위기라는 담론이 드러날 때마다, 그 대안으로 항상 거론되는 것이 왜, 서정의 회기라는 말인가.
첫댓글 몸 담고 계신 대학의 많은 사역들 거의 마무리하시고
약속대로 다시 연재를 시작하셨군요.
시대와 세계가 바꼈을지라도
근원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으로 시작된 서정시의 정신적 근원에 잇닿아 있는,
서정시의 시적 세계관을 더욱 강화하는
디카시임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격려 감사합니다. 방학 중에 마무리할 작정으로 최선을 다해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