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순례여행(22) - 1월11일: 역사의 현장을 걸으면서 전남장성으로
노목사님댁에서 여장을 꾸려서 길을 떠나는데 노목사님이 손수 배낭을 매었습니다. 나의 수고를 조금이나마 들어주려고 무거운 배낭을 매었던 노목사님의 애씀이 마음에 닿았습니다. 노목사님과 사모님은 손이 머무는데 도움을 주시려고 전남 완도에서 섬기시는 전도사님에게 전화를 해서 길손이 그곳에 들리게 되면 환대하도록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광주 양림동 옛길을 걸었습니다. 양림동 길은 70년 세트장 같은 동네도 있었습니다. 30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젊은 시절의 동네의 모습이어서 정감이 갔습니다.
노목사님과 나는 70년 대 고대를 함께 다녔으니까 그때 고대앞동네도 이러한 정감을 간직한 곳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30년 이상이 지난 지금에는 엄청난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때에는고대의 여학생들은 참 순박하고 자연적인 멋을 간직했는데 지금 여학생들은 너무나 세련되고 멋장이들이 많아진 것같습니다.
너무나 정형화되는요즘 문화를 보면서 종종 옛모습이 그리운 것은 그때가 인간적인 정감이 더욱 많아서 그런 것같았습니다. 노목사님과 사모님과 함께 양림천을 걸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도시하천이었습니다. 수량도 풍부하고 광주시와 남구청에서 잘 관리한 것같았습니다. 그 하천에는 겨울철새들이 물에는 노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했습니다. 환경이 많이 좋아진 것같았습니다. 추측건대 이 양림천도 여러 해 전에는 오염된 물이 흘렀을 것입니다. 지금은 너무나 맑은 물이 흘러서 이곳을 찾으면서 산보하는 많은분들에게 안식과 평안을 줄 수 있는 것같습니다.
양림천을 나와서 충장로를 함께 거닐면서 그 역사의 현장인 전남도청까지 왔습니다. 광주 5.17 민주화운동으로 알려진 80년대의 사건의 중심에 섰던 금남로와 전남도청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곳은 한때에 게엄군에 저항하면서 정권을 잡았던 군부에 저항했던 지도부가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역사의 아픔이 있는 곳입니다. 많은 희생이 있었고 피흘림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세상을 떠난 사람이 광주 망월동에서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곳 전남도청은 전남 무안으로 옮겨갔고 이곳에는 아시아 문화센터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광주는 가무가 있고 문학과 예술이 있는 곳입니다. 계속해서 이 지역이 민족의 갈등과 아픔을 치유하고 진리의 횃불을 드는 그런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금남로를 걸었습니다. 이곳까지 무거운 배낭을 지고서 배웅해준 노목사님과 사모님과 아쉬운 작별을 했습니다.
길을 걸으면서 노목사님의 사역이 양림교회와 광주지역에서 산위에 있는 등불처럼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광주시내를 걸으면서 장성군까지 가기로 큰 맘을 먹었습니다. 우선 광주역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광주시내의 이곳 저곳을 걸으면서 이곳 주민들의 체취를 맛보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광주역을 거쳐서 하남동 방향으로 가는데 광주 비엔날레기념관이 보였습니다. 전세계적인 미술관람행사인데한번들리고 싶었지만 길손의 여행길은 시간이 넉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쉽지만 그냥 통과하기로 했습니다.
점심때가 되어서 파리바게트에 들려서 빵을 먹으면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가는 길에 공구의 거리라는 특별한 거리가 있었습니다. 다양한 기계공구상들이 모여있는 곳이었습니다. 상가들이 깔끔하게 정리된 상가였습니다. 하남동지역은 새롭게 개발된 주택지가 있었고 그 근처에는 산업단지가 있었습니다. 광주시가 넓게 발전된 것같았습니다. 하남동지역은 새로운 신흥아파트가 세워졌고 근처에는 많은 첨단산업단지가 조성되어있었습니다. 어떤 가스충전소는 우리는 정량정품을 판매하는데 잘못된 판매소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프랭카드를 붙여놓았습니다. 아마 어떤 다른 판매점과 경쟁을 하는데 그 판매점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광주 시내를 빠져나오는 것은 만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전 10시에 출발해서 오후 네시까지 거의 6시간을 걸었는데도 여전히 광주시내입니다. 광주의 마지막 거점인 비아동이라는 곳까지 왔습니다. 이곳은 5일장이 서는 곳이었습니다. 작은 왕복2차선 도로가 온갖 장사하는 분들이 차와 노점으로 복잡했습니다. 어떻게 차들이 빠져나갈까 염려했는데 어떻게 용케도 차들이 잘도 빠져나갔습니다. 붕어빵을 천원치 사먹으면서 차를 기다렸습니다. 이곳에서 장성군 남면으로 가는 차를 탔습니다. 남상도목사님이 운영하는 한마음자연학교에서 장신대에서교수로 섬기는 유해룡목사님과 김영동목사님이 국토순례하는 친구를 위로차 방문하면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버스롤 타고서 남면면소재지까지 왔는데 이 버스는 한 마음자연학교까지는 가지를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버스를 타려면 20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이곳에서 한 마음자연학교까지는 약4km정도가 걸린다고 합니다. 시간은 오후 4시반을 지나서어떻게 할 것인가를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걷고 싶었습니다. 광주시내를 하루 종일 걸었는데 이곳 장성군에서 또 걷고싶으니까 어느 정도 걷기에 이력이 생긴 것같습니다. 그래서 또 걷기 시작했습니다. 날이 저물기 작하는 시점에서 걷는 것이 참으로 유쾌했습니다. 한 시간 후에 오랜 사귐을 가졌던 친구 목사들을 만난다는 것이 너무나 기대가 찾습니다. 두 분다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참으로 존경하는 귀한 친구들입니다. 늘 만남에 감사하는 친구들이지요. 찬양도 하며 기도도 드리면서 겨울산야를 즐기면서 한마음 자연학교까지 갔습니다. 학교에 가까이 가니까 친구들이 배웅을 나왔습니다. 반가운 만남을 가졌습니다. 한양에서 먼 이곳까지 왔습니다. 여장을 풀었는데 김영동목사님이 저녁 식사를 맛있게 준비했습니다. 조리용 생선찌개에 라면을 넣어서 요리를 했는데 특별한 맛이 있었습니다. 시장이 반찬입니다. 맛있게 저녁을 들었습니다. 그 동안 여행일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황토집이었는데 너무나 뜨뜻했습니다. 좋은 기회여서 그 동안 하지 못했던 빨래를 세숫비누로 빨았습니다. 빨래를 방바닥에 늘어놓고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장성의 한마음자연학교에서 피곤한 육체에 쉬게 했습니다.
"주님, 유해룡목사님과 김영동목사님의 교수사역과 가정에 주님의 은총과 긍휼을 더하소서! 사랑하는 종들을 통해서 장신대와 한국교회에서 주님의 선한 역사가 더욱 풍성케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