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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음악 : Mozart: Piano Sonata No. 12 F Major, KV 332 - (1) Alleg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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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샘의 시창작 강의(17): 시창작에 있어 좋지못한 인식의 유형들
Ode to the West Wind 서풍에 부치는 노래
P.B. Shelley P.B. 셸리
O WILD West Wind, thou breath of Autumn's being 오, 사나운 폭풍, 너 가을의 숨결이여!
Thou from whose unseen presence the leaves dead 너의 존재 앞에서 휘몰리는 죽은 잎새들은
Are driven, like ghosts from an enchanter fleeing, 눈에는 안보여도 마술사에게 쫓기는 유령의 무리와 같도다.
Yellow, and black, and pale, and hectic red, 누런, 검은, 파란 혹은 빨간 열기 띄운
Pestilence-stricken multitudes!—O thou 열병에 걸리니 저 무리들, 오, 너는
Who chariotest to their dark wintry bed 그 무리들을 검은 겨울의 잠자리로 몰아친다.
The wingèd seeds, where they lie cold and low, 그러면 그들 날개 돋친 씨앗들은 그 무덤 속에
Each like a corpse within its grave, until 시체되어 차디차게 사그라져 잠드나니,
Thine azure sister of the Spring shall blow 너의 하늘빛 봄 누이가 꿈꾸는 대지 위에
Her clarion o'er the dreaming earth, and fill 그 나팔을 불어대어 향기로운 꽃 봉오리를 풀뜯는
(Driving sweet buds like flocks to feed in air 양떼처럼 활짝 공중으로 휘몰아서
With living hues and odours plain and hill
산과 들을 생기솟는 빛깔과 향기로 가득 채우는 그 날이 올 때까지.
Wild Spirit, which art moving everywhere 거센 정신이여, 그 어디든 떠도는 너는
Destroyer and Preserver—hear, O hear! 파괴자이며 또한 보존자, 들으라. 오, 나의 말을.
Thou on whose stream, 'mid the steep sky's commotion,
네가 흘러가면 가파른 천공에는 난동이 일고,
Loose clouds like earth's decaying leaves are shed,
그러면 흩어지는 구름은 대지 위에서 썩어가는 낙엽처럼
Shook from the tangled boughs of Heaven and Ocean,
하늘과 대양에 얽힌 가지로부터 우수수 떨어진다.
Angels of rain and lightning! they are spread 비와 번개의 사자들, 너의 하늘거리는 물결의
On the blue surface of thine airy surge, 푸른 표면엔, 어느 사나운 '미내드'의 머리 위에
Like the bright hair uplifted from the head 치솟은 빛나는 머리단처럼,
Of some fierce Mænad, ev'n from the dim verge 희미한 지평선 언저리에서
Of the horizon to the zenith's height 천당 끝 닿는데 이르기까지
The locks of the approaching storm. Thou dirge 다가오는 폭풍우의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Of the dying year, to which this closing night 너, 한 해가 저물어 밤을 불러오는 만가여
Will be the dome of a vast sepulchre, 너의 온갖 증기 한데 뭉친 막강한 힘은
Vaulted with all thy congregated might 거대한 둥근 무덤되고 그 천장을 이룰지니,
Of vapours, from whose solid atmosphere 이제 그 만고한 대기로부터
Black rain, and fire, and hail will burst. O hear!
새까만 비와 불길과 우박이 터져나오리라. 오, 들어보라!
Thou who didst waken from his summer-dreams 베이이 만에 뜬 암석의 섬가에 누워
The blue Mediterranean, where he lay, 수정물결 감도는 파도소리에 잠들어
Lull'd by the coil of his crystalline streams, 여름날의 꿈에 잠겼던 푸른 지중해를 일깨운 너,
Beside a pumice isle in Baiæ's bay, 눈 앞에 그려만 보아도 감각이 아찔해지는
And saw in sleep old palaces and towers 하늘색 이끼와 향기로운 꽃 속에 파묻힌
Quivering within the wave's intenser day, 옛 궁전과 탑들이 물결에 반사되어
All overgrown with azure moss, and flowers 더욱 강렬한 햇빛 속에서 떨고 있는 것을
So sweet, the sense faints picturing them! Thou 꿈결에 그려보는 지중해를 일깨운 너,
For whose path the Atlantic's level powers 네가 길을 나서면 강대한 대서양의 잔잔한 물결 또한
Cleave themselves into chasms, while far below 스스로 쪼개져 나가 길을 터주고
The sea-blooms and the oozy woods which wear 저 아래 바닷가엔
The sapless foliage of the ocean, know 바다꽃, 즙이 없는 잎새 우거진 습기 찬 바다 숲이
Thy voice, and suddenly grow gray with fear 너의 목소리를 듣고 겁에 질려 졸지에 백발되고
And tremble and despoil themselves. O hear! 온 몸을 떨어 잎을 떨어뜨린다. 오, 들어보라!
If I were a dead leaf thou mightest bear 내가 너에게 휘날리는 마른 낙엽이라면
If I were a swift cloud to fly with thee 내가 너와 날 수 있는 빠른 구름이라면
A wave to pant beneath thy power, and share 오 통제 불능자여, 내가 너보다 덜 자유로울 뿐
The impulse of thy strength, only less free 너의 힘 아래 헐떡이며, 네가 가진 힘의
Than thou, O uncontrollable!—if even 충동을 함께 나눈 파도라면, 내가
I were as in my boyhood, and could be 소년 시절 같기만 하다면, 하여 하늘을 나는
The comrade of thy wanderings over heaven, 너의 속도를 앞지르는 일이 꿈만이
As then, when to outstrip thy skiey speed 아니었던 그때처럼, 창공을 방랑하는
Scarce seem'd a vision,—I would ne'er have striven 너의 벗이 될 수 있다면, 이처럼 간절히
As thus with thee in prayer in my sore need. 기도하며 너와 겨루려 하지 않았으리라
O lift me as a wave, a leaf, a cloud! 오 나를 일으켜다오, 파도처럼, 잎새처럼, 구름처럼!
I fall upon the thorns of life! I bleed! 나는 인생의 가시밭에 쓰러져 피를 흘리노라!
A heavy weight of hours has chain'd and bow'd 힘겨운 세월의 무게에 묶여 꺾이고 말았노라
One too like thee—tameless, and swift, and proud.
길들일 수 없고, 재빠르고, 당당한, 너 같았던 내가.
Make me thy lyre, ev'n as the forest is 저 숲처럼 나를 너의 수금으로 삼아다오
What if my leaves are falling like its own! 숲의 잎새처럼 나의 잎새들 진다한들 어떠리
The tumult of thy mighty harmonies 너의 힘찬 조화가 일으키는 격동이
Will take from both a deep autumnal tone, 숲과 나로부터 슬프나 감미로운
Sweet though in sadness. Be thou, Spirit fierce, 깊은 가을의 가락을 얻으리니, 사나운 정신이여
My spirit! be thou me, impetuous one! 나의 영혼이 되어 다오! 맹렬한 자여, 내가 되어 다오!
Drive my dead thoughts over the universe, 내 죽은 사상을 시든 잎들처럼
Like wither'd leaves, to quicken a new birth 우주에서 몰아내 새로운 탄생을 재촉해다오!
And, by the incantation of this verse 그리고 이 시를 주문(呪文) 삼아
Scatter, as from an unextinguish'd hearth 꺼지지 않은 화로의 재와 불티처럼
Ashes and sparks, my words among mankind! 내 말을 온 세상에 흩뜨려다오!
Be through my lips to unawaken'd earth 내 입을 통해 잠깨지 않은 대지에
The trumpet of a prophecy! O Wind, 예언의 나팔이 되어다오! 오 바람이여
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겨울이 오면 봄이 어찌 멀다 할 수 있으랴?
셸리의 시 "서풍에 부치는 노래"다. 시인은 사회개혁을 향한 그의 반항정신을 자연현상에 투사하여 다시 그 기운을 소생시켜 달라고 기원한다. 1부에서 시인은 서쪽에서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을 “가을의 숨결”로 칭하며 불러낸다. 죽은 잎들을 몰아가면서 또한 바람에 날리는 종자들을 봄이 올 때까지 겨울의 대지 위에 보존하는 바람을 가리켜 시인은 “파괴자이며 보존자”라 일컬으며 시적 영감을 달라고 기원한다. 2부에서는 거센 서풍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을 일으켜서 머지않아 몰고 올 비바람을 예견한다. 3부에서 시인은 서풍의 거센 힘을 동경하면서 그를 가리켜 “통제할 수 없는 자!”라 부른다. 시인은 곧 어린 시절 거칠 것 없이 뻗쳐오르던 자신의 힘을 상기하고 지금껏 세파에 시달려 무력하게 쓰려져 현재에는 사슬에 묶인 신세가 되었지만 어렸을 때는 자존심을 굽힐 줄 모르고 그 무엇으로도 통제할 수 없던 힘을 가졌던 자신이 마치 서풍과도 같았다고 한탄한다. 이어 5부에서는 그러한 서풍의 거센 정신을 자신에게 불어넣어 줄 것을 간절하게 기원한다.
문득, 필자도 이 시를 생각하면 20여년 전 필자의 젊은 청춘의 피끓었던 대학시절이 생각난다. 6,29선언의 바로 그해 나는 셸리의 이 시를 읽으며 데모대에 휩쓸리고 있었다. 당시 나는 故함석헌옹이 "슬프면서도 녹아드는 혼의 기도"이자 "나를 몇번이나 엎어진 데서 일으켜 준 시" 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셸리는 영국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가장 순수한 시인중 한사람으로 바이런, 키츠와 더불어 영국의 3대 시인으로 유명하다.남부 영국의 명문 출신으로 이튼을 거쳐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 낭만적 시인의 기질을 나타내어 '미치광이 셸리'란 별명을 듣고, 또 《무신론의 필요성 The Necessity of Atheism》이란 팸플릿을 발간하여 퇴학당하기도 했다. 런던에 나와 핼리에트라는 16세 소녀와 결혼했으며 혁명적 사상가 고드윈과 상면, 그의 사상에 공명하는 동시에 그의 딸 메리와 연애, 헬리에트를 투신 자살하게 했다.
1816년 메리와 재혼했으며 창작할 때의 과로로 건강을 해치고 이탈리아에 여행, 1822년 스페치아만(灣)에서 친우를 만나 돌아오던 중 폭풍으로 익사했다. 그의 시는 그의 성격적 분열을 반영, 한편으로 사회 혁명에 대한 정열, 또 한편으로는 순수한 서정적 정신이 엿보이는데 프랑스 혁명을 당시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보고 모든 분야에서 자유의 전사로서 행세, 압제에 대한 반항으로 무신론을 선언했으나, 마음의 밑바닥에는 열렬한 범신론이 깃들어 있었다. 전자를 대표하는 작품에 《지적(知的) 미에 바치는 찬가(讚歌)(1816)》ㆍ《Epipsychidion(1821)》 등, 후자의 대표로서 《서풍(西風)에 부치는 노래 Ode to the West Wind(1819)》ㆍ《종달새 To a Skylark(1819)》ㆍ《구름 The Cloud(1820)》 등 유명한 시가 있다. 그의 시는 흔히 관념적으로 달콤하다고 평을 받으나 한편으로 그의 순수한 서정시는 어떤 형식으로든지 이상주의적 혁명에의 정열과 연결지어 있다고 보여진다. 《시에 대한 변호 A Defence of Poetry(1821)》는 그의 낭만적 시론을 대표하고 있다.
세파의 찌든 때를 먹어가며 현실과 사실의 스트레스를 겪고 세계와 현실에 대한 직시와 글로벌 자유주의의 힘을 경험하면서 마흔의 고개를 들어선 지금의 필자가 생각하기에 어떤 면에서는 매우 유치하기도 하고 이제는 우습기도 하지만 시창작 강의의 인식에 대한 문학적 사고를 하자면 이 영국 낭만주의 시의 대가 셸리의 시처럼 인용하기에 좋은 것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조계사에 피신하며 엄청난 사실왜곡과 거짓선동을 하고 있는 후진적 망쪼 철도귀족노조들을 보자면 정말 어이없고 나이먹어 한심한 사기꾼으로 전락들 했구나 하는 처연한 생각도 함께 들기도 한다.
우파든 좌파든 하였튼 시인은 순수해야 한다고 본다면 당시 내 젊은 청춘을 보냈던 6,29의 시절은 정말 암울했던 시기는 틀림이 없었으며 그 푸른하늘을 갈구하던 젊은 심정들에 마치 프랑스 혁명처럼 온 국민이 공감을 보내주셨던 것도 충분한 이유가 있었고 잊을 수 없는 대한민국 역사의 한페이지였다. 6,29 선언시절은 정말 온 국민이 공감을 했는데 지금 철도노조 파업은 왜 공감하지 않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때의 갈구는 정말 순수했기 때문이며 지금은 그들만의 철밥통 밥그릇 지키기 떼거리 불법땡깡, 거짓선동이라는 것을 국민들이 알기 때문이다.
차지하고 자 우리는 셸리의 시에서 무엇을 배워야 한다. 지금 중고등학생, 대학생 심지어 시를 쓰고자 배우는 어른들도 저 위의 셸리의 시에서와 같은 문장을 어디에서 쓸 것인가? 참 유치하기도 하다. 쓸곳이라고는 교육용 연극대사 밖에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 바로 시어의 "구체성"이며 시적사고의 깊이를 배워야 하는 것이며 나는 위 시를 통해서 이를 강조 하고자 한다. 시어의 구체성에 대한 언급은 오늘 강의의 마지막 부분에서 생각할 것이지만 먼저 우리는 좋은 표현과 창작인식을 배우기 앞서 무엇이 시를 창작하는데 있어 좋지 못한 인식의 유형들인가? 부터 좀 생각해 보자 ! 그것이 무슨 소리인가? 아니 시 창작은 쓰는 시인의 개성과 독창성이 중요하지 무엇 때문에 어떤 기준에 의한 좋지못한 인식들이 있다는 말인가? 하고 좀 생각이 있는 독자들은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어떤 시창작교재도 그런 저자만의 기준은 어떤면에서는 무의미 하기도 하다. 하지만 동서고금의 위대한 시학론들에는 거의 비슷하면서도 인류 문학사의 오랜기간을 거쳐 숙성되고 알게 모르게 인식된 시쓰기에 있어 왜면하는 요소들이 축적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적인 위대한 시인, 예술가들을 지향하는 한국의 글로벌 시 습작생들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당연히 이를 잘이해하고 더 발전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여러분들의 맑고 밝으며 정말 멋있는 고품격 선진문화 비즈니스들과 작품들을 생각하자면 나는 오늘도 가슴이 마구 쾅쾅 뛴다. 자 오늘은 시창작에 있어 좋지 못한 인식의 유형들이 무엇들인지를 살펴보자 !
1. 피상적 인식
피상적 인식은 말뜻 그대로 대상의 외형만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인식태도이다. 이러한 인식태도는 수박 겉핡기식으로 대상의 거죽만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이나 의미, 가치등의 새로운 발견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인식 주체자의 사적인 넋두리나 푸념으로 그치기가 쉽다.
마당에서 웅성거리던 바람이 빠져나가자
집은 빈 항아리처럼 가벼워진다
바람은 외진 밭길을 지나
막 힘들게 산등성이를 오르고
그 뒤를 따르던 상엿소리가
여린 코러스로 마을로 자꾸 뒷걸음친다
그때, 노인들은 팽나무 밑에서
세월 한 개비를 피워 물고 하늘을 본다
63년 된 오동나무 옆에선 젖은 영혼이 탄다
죽은 줄만 알았던
장롱 속에 버려진 것들이
지상에서 천천히 튕겨져 오른다 오랫동안
햇볓 앞에 당당히 나서지 못한
눅눅한 솜이불과
유행 타지 않는 몇 안되는 옷가지들
그리고 찢어진 꽃무늬 양산 하나가 던져진다
늘 무언가에 젖어 있던 그녀의 시간
차들이 빠르게 그 시간을 치고 달아난다
--------습작생 시 <상후풍경>전문 ---------
습작기에 있던 학생의 작품인 위 시는 한 여인의 쓸쓸한 죽음 이후의 풍경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그려낸 것처럼 보인다. 제1연에 나타나는 썰렁한 빈집과 망자의 이승에 대한 미련인 듯 마을 쪽으로 뒷걸음치는 상엿소리, 그리고 죽은 사람을 떠나 보내며 팽나무 밑에 넋 놓고 앉아 있는 노인들의 안타깝고 쓸쓸한 모습들은 죽음을 통한 삶의 무상함까지 느끼게 해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보여주는 분위기는 죽은 사람의 한평생이 그다지 유복하지 못한, 더 나아가서는 불행한 삶을 살다간 사람이었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제2연에서는 죽은 이의 자질구레하고 남루한 유품들을 소각시키면서 이러한 사실을 구체화한다. 그리고는 "늘 무언가에 젖어 있던 그녀의 시간"으로 기억되는 여인의 불우한 삶을 떠올리며 "이렇게 매운 세상살이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것은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통해서 지은이 나름대로 얻게 된 인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이러한 인식에 큰 공감을 가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매운 세상살이"를 살았던 그녀의 삶이란 게 어떤 것이었는지, "늘 무언가에 젖어 있던 그녀의 시간"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감할 구체적 표현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가장 핵심적이고 구체적인 정황이나 진실은 보이지 않은 채 지은 이의 눈길은 대상의 외피에만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으로써 대상으로부터 얻은 자기만의 인식이나 발견조차 이러한 피상성 때문에 설득력과 공감대를 적절히 형성하지 못하고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넋두리로 빠져버릴 위험성에 놓이게 된 것이다.
2. 관습적 인식
관습적 인식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태도가 지극히 고정된 틀에매여 있거나 자동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태도는 대상에 대하여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사실을 늘어놓기 때문에 진부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사물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나 발견도 있을 수 없다. "시는 세계에 감추어진 부분으로부터 베일을 벗기며, 혹은 눈에 익숙한 사물을 처음 보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는 셸리의 말처럼 시 창작이란 우리들의 삶 속에서 낡고 관습적인 틀로 고정되어 버린 사물의 모습을 벗겨서 새롭게 조명해 내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대상에 대해서 관습적인 시각을 떨쳐내는 일이야말로 창작하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과제이다. 사고가 낡았는데 새로운 언어가 태어날리 없고, 새로운 세계가 발견될 리 없기 때문이다.
삶이란게
쉽다가도 어렵습디다요
웃다가도 웃는게 사람이라지만
싸우다가도 보듬는게 인간이라지만
참말로 힘이 듭디다요
어제는 죽음을 생각했습니다요
그 흔하디흔한 교통사고도
유혹의 자태로 손짓하는 물속으로도
구하기 쉬운 수면제로도
목숨을 버리기는
참말로 힘이 듭디다요
인생이란게 다 그런거라고
농담처럼 웃어버리지만
언제까지나 웃는 것이 어디
쉽습디까요 그래도 내일의
해는 뜨고 시간은 지나고 또
계절이 무심히 흐르니
웃음이 비실비실 나옵디다요
웃다웃다 보니 눈 끝에 맺힌
눈물 한 방울이 어찌 보면
인생이 아닐는지 그런 생각도
잠시 듭디다요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겠지요 한치 앞도 못보는
내일을 기다리며 희망을 꿈꾸며
또 잠이 드는 것이겠지요
-----XXX, <삶이란게 다 그럽디요>전문 --------
참말로 읽어 보아도 말입디요, 삶이란게 쉽습디까요? 등단시인이 쓴 시가 맞당가요? 이것이 무엇이당가요? 당신만 힘들게 산답디요? 참말로 눈물나게 진솔하게 무겁게도 썼는디요 시골 할멍니도 요렇거룸 쓰겠습디다요....ㅎㅎ...위 인용시는 관습적인 인식에서 나타나는 전형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시적 대상이 되고 있는 '삶'을 바라보는 지은이의 시각과 사고를 살펴보면 금방 분명해 진다. 삶이란 참말로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내일을 기다리며 희망을 꿈꾸는 것이라는 생각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어쩌면 그렇고 그런 이야기다. 그리 새로울 것 없는 상식적인 말들을 감상조로 쏟아내고 있다. 적어도 삶이 어렵다는 지극히 일반적이고 관습적인 이 생각을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충격으로 인지시켜 주기 위해서는 그것을 환기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정황을 시적 공간에 형상화시켜야 했다. 그러나 독자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도 없이 그저 대상을 막연하고도 상투적으로 사고함으로써 시적 감동이 주는 울림보다도 마치 낡아빠진 구호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3. 기계적 인식
기계적 인식은 대상에 대한 치열하고 적극적인 사고없이 형식적이고 건성적인 관찰로 대상을 시적 공간에 옮겨 놓는 인식태도이다. 이러한 인식은 앞에서 살펴보았던 피상적 인식이나 관습적 인식과 마찬가지로 대상의 외형만을 대충 바라보는 태도이기 때문에 시적 깊이를 형성할 수가 없다.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는 밤
어머니는 도마 위 무를 썰었다
손목이 가볍게 움직일 때마다
얇게 썰어져 나가는 무
속살 가득찬 무즙이 나뭇결 따라 흘러 내렸다
이윽고 떡살 같은 흰 속을 드러낸 그것들은
다시 어머니의 칼질에 따라
깊은 겨울밤 송이눈처럼 도마 위에 쌓였다
어머니는 마술사였다
무딘 칼로 눈송이를 만들어 뿌리는 마술사
도마 위에서 그날밤 하늘이 잘게 썰어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 하얀 속을 한참이나 들여다 봤다
아버지가 넘어올 산을 지켜보 듯
잠결이었다
사립문이 힘겹게 열리는 소리
내일 아침 밥상엔 시원한 무국이 올라올 것이다
달콤한 기름에 무친 생채와 함께
-----XXX, <어머니와 도마> 전문 -----
인용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어머니의 무 써는 모습이다. 대상에 대하여 사실적으로 관찰한 모습을 감정의 지나친 노출없이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가 시적인 울림이나 깊이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 이유는 어머니의 무써는 모습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야 할 메시지가 없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대상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의미' 나 '진실'이 도대체 무엇인지 잡혀지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이것은 지은이가 대상에 대하여 집중적이고 깊이있는 사고 없이 눈에 보이는 현상을 형식적인 관찰과 기계적인 태도로 파악한 데서 온 결과이다. 시적 대상에 대하여 사실적이고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거기에서 의미 있는 사고를 이끌어 내는 것과 , 사실이나 현상을 단순하게 기계적으로 나열해 놓는 것이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 다음의 시와 비교해 보자.
어미를 따라 잡힌
어린 게 한 마리
큰 게들이 새끼줄에 묶여
거품을 뿜으며 헛발질할 때
게장수의 구럭을 빠져나와
옆으로 옆으로 아스팔트를 기어간다
개펄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시절
바다의 자유는 어디 있을까
눈을 세워 사방을 두리번 거리다
달려오는 군용 트럭에 깔려
길바닥에 터져 죽는다
먼지 속에 썩어가는 어린 게의 시체
아무도 보지 않는 찬란한 빛
---- 김광규,<어린 게의 죽음> 전문 ----
앞에서 인용한 학생의 습작시인 <어머니와 도마>와 마찬가지로, 시인은 어린 게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것을 관찰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똑같은 관찰자의 입장이지만 관찰태도와 사고의 방법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어린 게의 사소한 죽음이 시인의 눈과 사고를 통하여 결코 사소함에 그칠 수 없는 하나의 의미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어린 게의 작은 죽음을 통해 보여주는 생명의 비극적 인식과 그에 대한 깊고도 담담한 슬픔은 시인이 섬세하고도 집중적인 관찰과 그 내면까지 파고드는 깊이 있는 사고에 의해서 우리에게 정서적 울림과 충격으로 와 닿는다. 이것은 대상에 대해 기계적으로 바라보고 느끼는 태도로써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4. 추상적 인식
'추상적'이라는 말은 문학에서 결코 가치있고 바람직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히 시인이 어떤 대상에 대하여 보고 느끼고 생각한 인식의 총체를 구체적인 형상으로 가시화하는 곳이 시적 공간이기에 이 '추상적'이라는 용어는 시에서 가급적 피해야 할 성질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추상적 인식이란 대상에 대한 사고방법이나 태도가구체성을 확보하지 못해 내용이 모호하고 불투명하며 그 의미 파악이 힘든 경우이다.
비는
죽음으로 몰려드는 도시의
차갑고 쓸쓸한
대열 속에서 불탄다
도시는 불타오르는 화산처럼 뜨겁다
횟빛 나무들이 이마를 맞대고 참배하듯 들어서는 거룩한 화형장에서 화려한
불기둥으로 일어서는 빗줄기
여름내, 지상의 모든 불온함과
불투명한 먼지의 거리를 태우며
서서히 피어나는 불꽃,
불들의 향연
---- XXX, <장마, 1997년 여름>전문------
어느 여름날 도시에서 체험한 장마를 주관적인 인상에 의하여 불꽃으로 비유한 위 시는 매우 감각적인 면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당돌한 비유에도 불구하고 이 시의 내용이나 의미는 모호하고 불투명하여 추상적이다. 이런 모호함이 생기는 원인을 살피면 첫째, '죽음으로 몰려드는 도시'가 어떤 것인지 구체성을 상실한 채 지은이의 사적인 관념에만 머물고 있고 둘째, '지상의 불온함' 역시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 의미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불들의 향연'으로 비유된 장마의 의미 또한 가장 중요한 인식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구체성이나 의미가 제대로 형상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대상에 대하여 구체적인 인식과 그것을 형상화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위 시를 다음의 시와 대조해 보면 '구체성의 결여'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밤새 술 퍼마시고 돌아온 날이면
詩 쓰는 아들이 못마땅한 어머니는
문학이 밥먹여 주나며
나무라곤 했는데
이른 아침, 숙취로 고생하는 아들 위해
속을 다스려야 詩도 술술 나온다며
그 흔한 콩나물국 대신
재첩국 끓이신다
-----XXX,<재첩국>전문 ----
위 시 '재첩국'은 '장마'를 쓴 이와 동일인인 습작생의 시다. 재첩국은 단순한 내용의 소품이기는 하지만 독자와 함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재첩국'이라는 대상을 통해 거기에서 인식하고 발견한 의미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 형상화란 다름 아닌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이다. 재첩국은 자식에게 퍼붓는 어머니의 사랑 그 실체인 것이다. 그 실체를 구체적으로 가시화함으로써 정서적 감동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처럼 똑같은 지은이의 작품이지만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시의 성패가 달라짐을 보더라도 앞에서 살펴본 인식의 유형들을 극복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일이 시를 습작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중요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자 다음 필자의 졸시를 한 편 읽어 보자 !
지식인론(之食姻論)
맑은 샘
게는 앞으로 걷지않고 항상 옆으로 걷습니다.
중심없고 왕집게만 흔드는 뜯어먹기 “게”이기 때문이지요
게를보고 앞으로 걸으라면 이상한 것입니다.
그러나 킹크랩이 게를 보고
눈을 똑바로 뜨고 제발 옆으로 걷지말고 앞으로 걸으라고 소리칩니다
못생긴 게들은 ‘나는 옆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걷는 것’이라고 강변합니다
제들끼리도 참게니 자갈게니 왕게니 민물게니 격이 다르다며
싸움이 한창입니다
하나, 둘, 셋, 넷 일렬 종대로 줄지어 하나, 둘, 셋 “옆으로 갔”
왼쪽으로 갔다가 ‘쏘옥’ 더 왼쪽으로 ‘쏘옥’ 아니 약간 오른쪽
어미 중간이네 ‘쏘옥’
왕눈을 뜨고 위협적인 붉은 집게를 들고 무엇이든 맘에 들지 않으면 자르겠다고 가관입니다.
‘나 게는 바다의 개고 개는 곧 나 게’라며
사자(獅子)의 “커헝” 소리를 흉내내며 “멍멍 巨 엉멍”짖으며
훈민정음의 세종대왕 수염도 마음대로 뜯었다 붙였다
갑각류가 멍멍이 포유류가 되었다 ‘게꿈’도 잘 꿉니다
제 몸보다 무거운 조개 껍데기도 훔쳐업고
이리 쏘옥 저리 쏘옥 살판났습니다
육지의 두더지는 저리가라 입니다
같은 갑각류인 가재는 미칠지경입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다 시키는 것처럼
갑각류 망신은 게가 다시키거든요
‘야 야, 게 놈들아, 네들 눈깔박에 힘주면 세상이 바뀌냐?’
가재가 소리치지만
하도 '막게 세상'이라 먹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밀물이 쓰나미처럼 밀려 옵니다
가재는 되뇌입니다.
‘비열하고 한심한 자식들’
‘야야, 게놈들아 네들 눈깔박에 힘주면 세상이 바뀌냐?’
가재가 또 소리 칩니다.
대한민국의 붓들은 왕눈뜬 게들 때문에
완전히 ‘게 판’인가 봅니다
그러나 푸른 밀물과 게잡이 문어들도 밀려 옵니다
하늘에는 널린 게 잡으로 갈매기들이 떼지어 날고 있습니다.
게들은 우리는 하늘 아래 제일 고귀(高貴)하고 비싼 “지식인
(知識人)”이라고
옆으로 삐닥하게 걸으며 뜨거운 자부심의 깃발을 흔들어 댑니다
그러나 바다의 모든 생물들 눈에는 정권을 잡을 고상한 지식
인(知識人)이 아니라
한심한 지 식 인 (之 食 姻)으로 보일 뿐입니다
남들 앞에서, 또 이글을 보시는 문단강호의 고수(高手)들 앞에서 필자의 이 졸시를 내어 놓자니 부끄럽기 그지없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시 쓰기가 좋아서 시를 쓰고자 하는 미래의 시大家들, 시 습작생들을 위해 시창작강의 요소로 설명하고자 하는 바니 강호의 제현들께서는 혜량하시기를 바란다. 자 우선 이 시의 제목부터 한번 보시라...지식인(知識人)이 아니고 다소 엉뚱하게(之食姻)이다. 즉, 갈지자 걸음을 걸으며 밥과 결혼한 자, "갈지자 식충이"를 의미한다. 이 시는 무슨 감동을 자아내는 훌륭한 서정시는 아니다. 이것은 필자의 짧은 창작능력으로 지었던 "정치 풍자시"인데 지금은 이름을 언급하기는 싫지만 여당은 아니고 야권의 일부이긴한데 무슨 새정치를 들고나온 정치군상들에 관한 나의 생각이기도 하다. 왜 이런 시를 지었나 하면 당시 한참 대통령 선거 전이었고 나는 시인이기도 하지만 자유주의 언론인으로써 좌파의 왜곡,거짓,선동에 십여년 동안 내 양심과 진실에서 우러나온 사회적, 국가적 책임감으로 매우 열렬한 정치사상적 투쟁을 해왔던 사람이기에 사상적 책임도 앞서기에 그러했던 것이었다.
늘 자유주의 사상들이나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해외 선진국의 여러 자유주의 연구소들의 첨단 에세이, 논문들을 접하던 필자눈에는, 그리고 좀 제대로 법학과 경제학, 정치학을 공부하는 사람의 눈이라면 정치,경제 사상에 있어서, 또 그에 바탕한 정치,경제정책들에 있어서 구체적이지 못하고 모호한 태도의 지식인(知識人)인척 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그야말로 필자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구역질이 난다. 이제 이땅의 썩은 좌파는 국가정체성에 해충들이지만 이들을 숨겨주고 어정쩡 하게 감싸주는 중도파들은, 즉 정치학, 경제학을 제대로 모르는 국민들을 표퓰리즘으로 속여 사적 이권만 쟁취하고자 하는 정치 몰이배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좌파보다 더 영악하며 비겁하기도 한 것이다.
자 이런 생각이 들면 사실에 근거한 언론기사를 바탕으로 칼럼이나 논설문을 쓸 수도 있겠지만 나는 등단 시인이기도 하기에 독자들이나 일반국민들이 쉽게 알수있게 하는 방법으로 시창작을 택하였다. 이런 경우, 시창작에 있어 무엇보다 위에 설명한 피상적 인식, 관습적 인식, 기계적 인식, 추상적 인식을 피하여 구체적 인식으로 시를 써야 좀 괜찮은 시가 탄생할 수 있다. 물론 서정시든, 정치풍자시든 시를 쓰는데 위 강의에 나온 '피해라'는 인식은 모두 공통적이다. 문제는 이 풍자시의 경우, 뚜렷하지 못하며 어느 정치학에도 없는 개념의 중도표방, 남의 것 이것저것 베껴 짜집기 정치몰이배들을 쉬운 구체성의 시어로 표현해야 하는데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정치,경제학의 박사논문들의 내용이나 칼럼들을 나중에 강의하겠지만 시창작의 메타포와 우유,대유법을 쓰니 매우 그 형상화가 "게"라는 이미지로 뚜렷해지기도 하며 "네 눈깔박에 힘준다고 세상이 바뀌나?"라는 투박하지만 매우 직설적이고 강한 어조는 이 시를 무슨 만화를 보듯 생동감있게 하며 (之食姻)이라는 필자가 만든 신조어는 코믹하고 재미있게도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아니한가? 이 시는 무슨 큰 감동을 주는 훌륭한 시는 아니지만 이처럼 시를 쓰는데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과 시표현에 있어 구체적인 시어는 시를 짓는 사람도 읽는 독자에게도 재미를 불러 일으키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시나 다른 문장을 쓰는데 있어서도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읽는 이는 중학생이라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하자"는 소위 나만의 "쓰는 철학"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다음편 예고 : (18)강. 시창작에 있어 바람직한 인식은 구체적 인식이다...(19)(20)(21)강 계속......
첫댓글 열심히 쓰고 생각하고 일하는 M군-
밤이 깊어가네
시인에게 있어서 밤은 위안이라네.
제 18강의 구체적 인식을 기다리겠네
아침에 댓글을 보았습니다.
시의 내면을 찾아가는 작업, 고결한 정신적 작업일 수 밖에 없습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항상 행복, 건필들하시기를......